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83)
망나니학 개론-284화(284/300)
#284
“전하, 의료원에서의 연락입니다. 오즈 사서장이 깨어났다고 합니다.”
“오즈가?”
루즈벨 장군과의 통신을 끝낸 직후, 제페가 소식을 전해 왔다.
몇 달 동안 의식이 없던 그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니. 두말할 것 없이 집무실을 떠나 의료원으로 향했다.
“정신이 드십니까? 눈동자를 움직여 주시겠어요?”
몇 명의 치료사가 병상에 달라붙어 오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
그는 여전히 수척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라면 치료사가 가망이 없다고 말해 올 정도로 큰 상처였지 않은가.
온갖 약재와 영약을 아끼지 않고 퍼부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깨어나지도 못한 채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 하…….”
두 눈을 뜬 오즈가 내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니, 그는 두 눈을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나?”
“예, 전하. 지금까지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힘들었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신체 회복에 집중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치료가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그렇기에 살짝 뒤로 물러나자, 오즈에게 달라붙은 치료사들이 포션을 퍼부으며 힐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났다. 치료사들이 전부 나가떨어졌을 때, 오즈는 혈색을 완벽하게 회복했고 이내 병상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래도 아직 무리하면 안 됩니다. 지금 당장은 포션과 마법의 영향으로 안정된 상태겠지만, 사흘 정도는 계속해서 안정을 취하면서 상태를 봐야 합니다.”
“그러지.”
치료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그에게 뭔가를 시킬 생각은 없었으니.
“…하.”
길게 한숨을 토해 낸 오즈는 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해 왔다.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부족한 탓에 카리우스 전하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되었다. 상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작을 부려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내 실책이지. 그대는 내 부탁을 이행해 준 것밖에 없다.”
얌전히 황궁 서고에서 자신의 본분에 다하고 있던 그를 움직인 것은 순전히 내 욕심에 의한 것이었다.
책망받을 일도 아니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 말에 오즈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몸이 낫는다면 제 본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만…….”
책을 좋아하는 만큼 계속 황궁 서고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찰나, 오즈가 먼저 말을 이어 왔다.
“…지금 정세가 그리 순탄하게만 돌아가진 않겠죠.”
“솔직히 말해서 자네 정도 되는 마도사가 도와준다면 감사할 따름이지.”
내친김에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오즈와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대충 그가 누워 있을 때를 기점으로 일어난 일들과 현재 대륙의 정황에 관해서였고, 그 얼굴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한가롭게 책이나 읽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군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지.”
“부족하나마 전하께 손을 보태겠습니다. 원래는 세속에 관여하려 하지 않았지만, 대륙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눈을 돌리는 건 북쪽 마탑의 마도사라는 이름이 울지요.”
“그렇, …뭐?”
“예?”
나와 오즈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스칼 제국의 출신이라고 했지.’
방랑 마법사. 그의 출신이 북쪽 마탑이었다고?
“혹시 북쪽 마탑의 현자를 알고 있나?”
“아, 제 스승님이십니다. 그 이름은 오랜만에 듣는군요.”
오즈의 대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이렇게 묘한 인연이 엮이다니. 그러곤 이내 치료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움직일 정도로 회복하려면 얼마 정도 걸리지?”
“어,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최소 사흘은 안정을 취해야 하고, 못해도 일주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주일, 일주일이라.”
북쪽 마탑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현자라고까지 칭해지는 이가 날 청할 정도이니 어설픈 이야기는 아니겠지.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네 스승이 날 보자고 청해 왔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 말에 오즈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 영감탱, 스승님께선 비록 괴짜시지만, 능력만은 확실하십니다. 그중 가장 뛰어나신 것이 미래를 점지하는 것과 얽힌 운명들을 읽어 내는 것이지요.”
“그런가.”
현자라더니 예언가와 비슷한 성격인가.
그 이야기를 들으니 북쪽 마탑에 가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앞으로 일주일 뒤에 북쪽 마탑으로 출발할 것이다. 생각이 있는가?”
“…….”
오즈의 얼굴이 복잡함으로 물들었다.
폐쇄적인 마탑을 나와 세상을 떠돌며 결국 도착한 곳이 이곳의 서고이니 분명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전까지 확실하게 몸을 회복해 놓겠습니다.”
“확실히 들었다. 조리 잘하도록.”
***
요 일주일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북쪽 마탑에 가기 위해 앞으로의 일정을 몰아서 처리한 것도 있었지만, 마계 군세가 나타나는 빈도가 점차 잦아진 것이 문제였다.
심할 때는 하루에 두 곳이 터지기도 했으니. 전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총괄은 모두 내가 하고 있으니 부담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욱이 제 나라에 균열이 생기기라도 하면 위쪽에서 압박을 받은 대사들이 당장 연합군을 보내 달라며 난리를 치기까지 했으니. 누가 보면 내가 어디를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해 와 짜증이 극도로 쌓였다.
그렇기에 화풀이도 할 겸 선을 넘는 녀석들은 협박과 위협을 가해 입을 다물게 하고, 때로는 화평 정책으로 좋게좋게 어르며, 분란을 잠재웠다.
더러는 나보고 폭군이 될 거라며 뒤에서 수군거려 왔다. 처음엔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귀찮은 녀석들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다면 폭군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후.”
그리고 마침내 일주일째.
북쪽 마탑으로 떠나기 몇 시간 전, 나는 대륙 지도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계와의 전쟁이 본격화된 지금, 서대륙의 주요 왕국들은 단 한 곳도 잃지 않고 지켜 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깊은 산맥이나, 대륙의 가장자리 쪽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원작에서 1/6 정도가 마계에 점령당했던 걸 생각하면 고무적인 성과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동대륙은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마계 군세의 위험함을 깨닫고 뒤늦게 오스칼 제국을 중심으로 뭉쳤지만, 남부 지역의 삼분지 일이 짓밟힌 뒤였다.
그래도 원작에서는 오스칼 제국을 비롯해 왕국 대부분이 멸망했을 운명이었으니,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대략적인 시스템은 구축해 놓았으니까 며칠 자리를 비워도 되겠지.”
내내 마계 군세와 싸우다 보니 연합 수뇌부 쪽에도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였다.
어떤 균열엔 어느 정도 군세가 나타나고, 마계 군주급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나는 친절한 마음을 담아 하나씩 그것을 모두 정리해 놓았고,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터.
곧, 황궁 텔레포트 게이트 앞에 북쪽 탑으로 갈 인원이 모였다.
“오스칼 제국의 마탑은 저희 제국보다 폐쇄적인 성향이 강하거든요. 외부인은 철저하게 출입을 막는다는데, 이런 경험을 다 하네요.”
레이시스가 눈을 빛내며 말해 왔다.
원래는 오즈와 단둘이 떠나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다들 고생했으니 잠시 휴가를 보낼 겸 불러 모았다.
설사 마계 군주급이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파브닐과의 패배 이후 그 치욕을 갚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검성과 크리스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는지, 마계 군주가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곧바로 전장으로 나아갔다.
아직 쓰러뜨린 군주는 없지만, 그래도 무서울 정도로 경험치를 쌓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근래 상황을 보면 파워 밸런스 부분에서 상향 조정이 시작된 것 같았다.
전쟁의 전후로 각지에서 소드 마스터와 마도사에 올랐다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고, 이름 있는 마족을 무찌르며 위업을 쌓는 영웅들도 속출했다. 아마 대영웅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전조가 아닐까 싶었다.
“다 온 것 같네요. 바로 출발할까요?”
페트라의 말에 나는 일행을 둘러보았다.
페트라, 앨리스, 레이시스, 엘리시아, 유리아, 그리고 루인과 오즈에 가베인까지.
생각보다 대인원이 되었지만, 그쪽에서 초청한 이상 알아서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데시아와 베르딘은 아직 자기 나라에 있었다. 저번 전쟁에서 큰 피해를 보았으니 할 일이 많을 터.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실비아 역시 바쁘기 그지없다. 아마 나보다 더 여유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신성력의 축복을 받은 무구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어 연합군에 배포되기 시작했으니.
축복을 받은 무구는 일반 신성력의 가호와는 달리 그 효과가 일주일 정도 길게 이어졌다.
물론, 소모품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그 덕분에 마계 군세를 상대로 비약적인 효율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실적으로 입증되었다.
나중에 따로 진득하게 휴가라도 보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노는데, 자기만 고생하면 불쌍하지 않은가.
“북쪽 마탑이라. 과연 황궁 마탑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일지 궁금하군요.”
가베인이 제 옆에 선 오즈를 살짝 의식하는 시선으로 말했다.
그는 근래 6클래스, 즉 마도사의 경지에 올랐다. 이 정도면 대륙의 어느 마탑을 가도 대접을 받는 수준이었기에 사뭇 자신만만한 것 같다.
“…글쎄요, 아마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오즈가 그냥 마도사가 아니라는 것. 그의 특성은 전부 전투 특성에 치우쳐져 있어 비슷한 경지의 마스터와 접근전을 해도 꿀리지 않는다. 외모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그에게는 가베인의 행동이 그저 귀여워 보이겠지.
뭐, 그래도 막혔던 벽이 뚫리니 일취월장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아직 좀 어리숙하지만, 현재 마탑주를 맡은 아라센에게 후임으로 어떠냐고 귀띔해 놓았다. 그래야 부려먹기 좋을 테니.
나머지 역시 한층 더 성장했다.
앨리스는 마스터에 완전히 적응했고, 페트라는 드디어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엘리시아와 루인도 최상급의 완숙에 이르렀고, 레이시스는 마도사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유리아는 5클래스에 들어섰다.
여기 있는 이들만 해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전력이었다. 당장 어느 전쟁에 투입해도 큰 활약을 보일 수 있겠지.
나는 마법으로만 따지자면 유리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검으로 보자면 검성을 제외하고 적수는 없으니, 굳이 칭하자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자화자찬만 늘어놓는 것 같았으나,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있나.
물론, 검성을 따라잡는 것은 아직 조금 더 먼 이야기였지만.
“그러면, 가 볼까.”
일행은 나를 필두로 텔레포트 게이트로 발을 내디뎠고, 이내 오스칼 제국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