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85)
망나니학 개론-286화(286/300)
#286
“곧바로 간다고요?”
“응, 그러니까 애들한테 잘 좀 말해줘.”
루즈벨과의 자리를 끝낸 나는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일행은 아직 한창 만찬을 즐기고 있는 상황에 미안한 말이지만, 연회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북쪽 마탑행이 결정되었다.
“일단은 쉬러 온 건데 빡빡하게 해서 미안하네.”
“아니에요, 다들 아직 팔팔한걸요. 낮에도 오랜만에 놀아서 괜찮을 거예요.”
“그런가, 그러면 부탁해.”
페트라는 내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찰나, 연회가 끝났고 내 일행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전하, 밤이 깊었는데 괜찮겠습니까?”
가베인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오즈가 슬쩍 하늘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마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희 마탑의 마법사들은 대부분 올빼미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녁이 지난 시각이니 그들에겐 이제 한창때의 낮이나 마찬가지겠군요.”
“…뭐, 그건 황궁 마탑도 마찬가지니…….”
“그럼 괜찮겠군. 뭐, 자고 있어도 깨우면 그만이니.”
이쪽은 초청을 받은 입장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방문했는데, 이 정도 대우는 받아야 마땅하겠지.
황궁에서 북쪽 마탑까지는 마차를 타고 이 주일이 넘는 거리. 하지만 당연히 텔레포트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어서 단숨에 이동할 수 있었다.
“기대되네요, 그렇죠?”
“응, 특히 북쪽 마탑은 천문 연구에 특출나니까. 나, 그쪽 좋아하거든.”
“그러네요, 아카데미에 있을 때도 교양으로 선택하셨죠.”
레이시스와 유리아는 마탑행이 기대되는 건지 조그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둘 다 마법사이니 당연한 관심일 터. 더욱이 그녀들은 마법사 업계에서도 유명 인사였다.
레이시스는 최연소 마도사를 눈앞에 두고 있고, 유리아는 마법의 카운터인 이레이저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현재는 어느 마탑이든 눈독을 들이는 상황. 그 욕심 없고 소탈하던 아라센까지 흥미를 보이며 장래엔 꼭 황궁 마탑에 오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내게 부탁까지 해 올 지경이었다.
‘어림도 없지.’
귀한 인재들을 마탑에 처박아 둘 필요가 있겠는가. 한동안은 내 옆에서 고이 모셔 둘 것이다.
“레이오스, 북쪽 마탑엔 며칠간 머물러요?”
“글쎄, 상황에 따라서 길게는 사흘까지 머물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유리아와는 일전에 있었던 일로 약간 서먹한 관계가 되었지만, 지금은 북쪽 마탑에 관한 이야기로 정신이 팔린 듯했다.
사실 일행 중 가장 잠재력이 높은 것은 바로 그녀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최연소로 마도사를 노리고 있는 레이시스보다 뛰어났으니. 그간은 이레이저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해 눌려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을 다루는 능력이 세밀해지면서 본래의 재능이 발휘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레이시스가 원작보다 훨씬 더 빠른 성장을 이루게 된 것도 무서운 속도로 뒤따라오는 유리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
그렇게 활발한 마법사들과는 달리 검사들의 무리는 조용했다. 주로 검을 다루는 페트라나 앨리스, 엘리시아에겐 마탑은 그냥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터. 그것에 나는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자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북쪽 마탑의 방어구 아티팩트가 뛰어나다는데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몇 개 사 주도록 하지.”
“방어구요?”
“굳이 사 준다는데 거절하진 않을게.”
“하하…….”
엘리시아가 눈을 빛냈고, 앨리스도 씩 웃으며 화답했다. 옆에 있던 페트라만이 가만히 미소 지으며 제 목을 쓰다듬을 뿐.
슬쩍 그것을 바라보니 예전에 내가 건네준 아킬레스의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의 대마법사가 만든 만큼 어지간한 것들보다 뛰어난 아티팩트다. 격이 떨어지는 것은 보관조차 하지 않은 황궁 비고에 잠들어 있던 것이니 제국의 보증 수표를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북쪽 마탑에 있는 것들도 비고에 있는 것과 견주어 보았을 때 비슷한 수준이겠지.
살짝 속물적인 생각이겠지만,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것에 비싼 선물만큼 좋은 것이 없지 않은가 싶다.
“너는?”
“…저도, 뭐. 사 주신다면 굳이…….”
“에이, 튕기긴. 줄 때 받아. 선배 좋은 게 뭔데.”
한쪽에 멀뚱히 서 있던 루인에게 묻자,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었다. 그것이 못내 귀여웠던 것인지 앨리스가 폴짝 뛰어올라 루인의 머리에 팔을 휘감고 그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악, 선배!”
부끄러움에 루인의 얼굴이 빨개진다. 앨리스는 그런 그의 등을 팡팡 두드리곤 다시 내 옆으로 섰다.
“그러면 가 볼까.”
곧바로 텔레포트 게이트로 북쪽 마탑을 향해 이동했다. 전이는 순식간에 끝났고, 게이트 밖으로 나서자 그 앞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마법사들을 볼 수 있었다.
‘호오.’
북쪽 마탑의 테마는 녹색인 듯했다.
파릇파릇한 나뭇잎 색을 품은 로브 위에 푸른 마력 회로가 은은하게 흐르고 있다. 강한 기운이 느껴질수록 그 회로의 술식이 복잡해지는 것을 보니 경지에 따라 나뉘는 것일 터.
곧 다른 이들의 전이가 모두 끝났을 때, 가장 복잡한 회로가 새겨진 로브를 두르고 있는 노인이 나와 우릴 환영했다.
“반갑습니다, 레이오스 전하. 그리고 리베라 제국의 관계자 여러분. 본인은 북쪽 마탑의 주인인 가이넬이라 합니다.”
북쪽 마탑주, 현자 가이넬.
본디 원작에서는 주신의 정보를 캐내려는 마룡에 의해 잔혹하게 고문당해 죽을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전의 싸움에서 내가 그것을 먼저 말해 버린 탓에 사망 루트를 강제로 회피하게 된 것일 터.
“레이오스 폰 리베라다. 환대에 감사하지.”
일행을 대표해서 인사를 하자, 그들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왔다.
“본 제국에 온 첫날이지만, 서둘러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알다시피 이쪽은 마계를 상대하는 연합의 맹주로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들른 만큼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군.”
사양할 것 없이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말했다.
북쪽 마탑주인 그는 이곳에서 신이나 다름없겠지만, 내겐 한 명의 마도사일 뿐이다. 내 휘하에 있는 마탑에는 그보다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마도사들이 몇 명이나 더 있으니.
“그렇군요, 일단 제 연구실로 올라가시겠습니까. 일행분들은…….”
“마법사들에게는 북쪽 마탑의 마법사들과 교류회를 하게 하고 싶은데. 검사들은 북쪽 마탑의 자랑인 아티팩트를 구경시켜 주고 싶군.”
“분부가 있겠습니까, 곧바로 준비하도록 하지요. 제니퍼.”
“예.”
제니퍼라는 부름에 한 여성 마법사가 앞으로 나왔고, 곧 내 일행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설레는 표정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던 중, 남은 이들을 바라보던 가이넬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오즈?”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
“아니, 대체…….”
가이넬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기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본 제국의 황궁 서고 사서장이다. 이쪽과 연이 있다기에 동행했지.”
“…리베라 제국 황궁 서고의 사서장이라니. 아무래도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군요.”
그는 할 이야기가 많은 듯했지만, 보는 눈이 많기에 참는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가이넬의 연구실은 마탑의 최상층부터 그 아래 5층까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과연 제국 마탑의 마탑주라는 명성에 걸맞은 규모인 듯싶다.
우리가 자리한 곳은 그 중간의 응접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가이넬이 직접 내온 차를 마셨다.
“그래서, 어찌 된 영문이냐. 이십 년도 더 전에 홀연히 마탑을 떠난 네가 어찌 리베라 제국에…….”
“제 이야기는 말하자면 깁니다. 그보단 전하의 용무가 우선이 아닙니까?”
오즈는 대답을 피하며 내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가이넬은 잠시간 말을 머뭇거리더니 짤막한 한숨을 토해 내며 내 쪽을 향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오랜만에 만난 제자 놈이라…….”
“이해한다. 그럴 만도 하겠지.”
둘 사이에 쌓인 내막은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오즈가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닌 마도사라는 것뿐.
하지만 지금 내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만 이야기를 시작하라는 내 눈빛에 가이넬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하겠군요.”
“감사?”
“예, 원래라면 저는 얼마 후 죽을 운명이었습니다만, 전하 덕분에 어떻게든 그 운명을 빗겨 낸 듯합니다.”
그 말에 나는 내심 놀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현자라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미래까지 읽어 올 수 있는 것인가.
내 얼굴에 서린 의문을 읽은 듯 가이넬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하늘의 별자리를 읽어 어느 정도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정말로 추상적인 개념이죠.”
“그것이, 자네의 죽음을 말했다?”
“예.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저에게 닥쳐오리라고 그려져 있었습니다. 끝내, 저는 죽음에 이르렀겠죠.”
“그런가.”
“하지만 갑작스럽게 리베라 쪽에서 솟아난 큰 별이 그것을 막아 내지 뭡니까. 그 탓에 큰 별의 빛이 조금 바랬지만, 나중에 다시 멀쩡해진 것을 보고는 안도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큰 별이라?”
“지금 리베라 제국에서 전하보다 중요하신 분이 없잖습니까.”
듣기 좋으라고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별자리니 천기니 하는 것은 모르지만, 앞뒤 전후로 보았을 때 그가 말하는 큰 별이 나를 의미하는 것이 맞을 터.
“감히 여쭙고 싶습니다만, 대체 그 존재는 무엇입니까.”
가이넬의 눈에 진지함이 깃든다. 아무리 현자라 할지라도 마룡의 존재까진 파악하지 못했는가 싶었다. 하긴 그 녀석은 몇백 년 동안 마계에 머물러 있으니 알려지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 중간계에 드래곤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알고 있겠지?”
“예, 마탑주 사이에선 몇 대 전부터 은밀하게 돌던 이야기였습니다. 이젠 무수한 소문이 파생되어 뭐가 뭔지 믿을 수 없지만…….”
“사실 중간계의 드래곤은 모두 죽었다. 마룡 파브닐과 전대 마왕의 손에 의해서 말이야.”
“…….”
갑작스러운 말이었는지 가이넬의 얼굴이 굳었다. 그와 더불어 옆에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즈 역시 입을 떡 벌리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전하. 대체 그게 무슨…….”
“어느 한 마리 예외랄 것은 없다. 마룡이 자신의 존재를 마계에 속박하는 것으로 마왕이 중간계에 나올 인과를 충당했지. 그렇게 백 년이란 세월 동안 한 마리씩 드래곤을 사냥했고, 녀석들은 드래곤 하트를 한데 모아 막대한 힘을 취했다. 아마 신에 버금가는 힘을 손에 넣었겠지.”
“데미갓, 반신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스스로 주신의 자리에 도전하려 하더군.”
“그런 터무니없는…….”
오즈는 더 이상 참지 못한 것인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두 사실인 것을.
“그러면 전하께선 어떻게 마룡을 상대하셨습니까?”
“원래는 검성과 한 마도사의 도움을 받아 마룡을 격퇴하려 했다. 인과가 마계에 묶인 이상 중간계에서 본신의 격을 해방하려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하니. 주신과의 싸움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잘못 판단했었던 같군. 녀석은 그런 손해를 감수하고 우리를 죽이려는 것을 택했다.”
“그러면……?”
“마룡이 혹할 만한 정보를 말해서 위기를 모면하는 수밖에 없었지. 가령, 주신의 화신체가 있는 곳이라든가.”
“…….”
그 말에 가이넬의 눈이 깊어졌다.
그 역시 주신의 화신체가 있는 곳을 알고 있을 터.
“대체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답해 줄 생각도 없었다.”
“…다만, 이다음에 마룡과 마주하신다면 타개책이 있으십니까?”
“없다. 없으니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에 온 것이지.”
그 말에 가이넬은 흥분을 가라앉히듯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제 두 손을 깍지 끼곤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다행히 그 부분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다행히 이곳으로 온 것은 헛된 발걸음이 아닌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