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87)
망나니학 개론-288화(288/300)
#288
쐐애애액-!
엑스칼리버에서 일어난 새하얀 빛줄기가 허공을 베어 갈랐다. 그것은 아룡의 가죽 위에 기다란 흔적을 남겼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쯧, 마물 주제에 신성력에 저항을 가지고 있다니.”
땅을 박차 뒤로 훌쩍 물러난 나는 인상을 쓰며 엑스칼리버를 내렸다.
아룡은 움직임이 민첩했고, 커다란 덩치만큼 무식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엑스칼리버의 공격이 족족 막히는 것을 보니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엑스칼리버의 소환을 해제한 나는 티르빙을 꺼내 들었다. 몽실몽실한 마기가 그 위에서 피어오름과 동시에, 나는 다시 땅을 박차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파아아아앗-!
시커먼 마기가 뭉치며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냈다.
신성력으로 안 된다면 마기로 베어 내면 그만. 일전에 내가 쓰러뜨린 그레모리 같은 키메라가 아니라면 상반되는 기운에 면역을 가지고 있지 못할 터.
핏-!
그러자 아룡은 입을 크게 벌려 마치 채찍처럼 제 혀를 휘둘렀다. 몇 번이고 내 발목을 붙잡으려 했던 그것은 엑스칼리버로는 베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티르빙을 휘감고 있던 마기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것을 베어 냈고, 이내 그 본체까지 닥쳐갔다.
“흡-!”
이대로 단숨에 몸을 이등분 낼 작정이었다. 그렇기에 두 손에 힘을 싣고 검을 내리찍었지만, 우습게도 그것은 내 기대를 배반했다.
파아앗-.
티르빙 위에 서린 마기가 마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아룡의 피부로 스며들었다. 그것에 헛바람을 내뱉을 찰나, 이쪽으로 머리를 들이 밀은 녀석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웅웅웅-!
정체를 알 수 없는 혼탁한 기운이 그 안에서 용솟음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대로 직격당했다간 아무리 나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시, 실드-!”
평소에 잘 쓰지도 않던 마법을 몸에 두르고 땅을 박찼다. 하지만 아룡에 입에서 토해진 걸쭉한 기운은 겨우 실드 한 장 가지고는 막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스터! 더 뒤로 물러나세요!] [저 녀석 대체 뭐야? 신성력뿐만이 아니라 마기까지 흡수한다고?]리버와 티르빙이 움직인 듯 내 앞으로 각각의 기운을 띤 결계가 펼쳐졌다. 아룡의 공격은 그것을 뚫어 내진 못했지만, 절반 정도 그것들을 녹여 내며 그 위력이 심상치 않음을 보였다.
“…….”
전쟁터에서나 맡아질 법한 시체 썩는 냄새가 주위에 맴돌았다. 가볍게 손을 휘저어 그것을 쫓아낼 찰나, 문득 눈앞에 있던 아룡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윽?!”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닥쳐온 무지막지한 질량에 나는 헛바람을 내며 몸을 뒤집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살기에 황급히 티르빙을 내밀었으나, 그 묵직한 충격에 얻어맞아 제자리에서 튕겨 나갔다.
몇 번이나 땅을 구르고 바닥에 처박혔다. 지금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토해 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룡은 다시금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샛노란 눈동자로 내 쪽을 주시했다.
“…지금까지 날 농락한 거라고?”
아까까지 보여 준 움직임이 상한선이라 생각해 나 역시 그 정도 수준의 힘만 사용했다. 전력을 다하면 어떻게든 찍어 누를 수 있겠으나, 이 공간 자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바닥을 구르고 나니 머리에 피가 끓어오르며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자 이거지.”
티르빙을 왼손으로 넘겨 잡고 오른손에는 엑스칼리버를 다시 소환해 냈다.
아룡은 절대 강하지 않았다.
마룡 파브닐은커녕 지금껏 싸운 마계 군주들의 턱 끝조차 미치지 못했다. 잘 쳐 봐야 상위 마족 정도 되는 강함 정도.
하지만 어째서인지 신성력과 마기에 모두 저항을 지니고 있으며, 전투 방식 또한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바닥을 구르는 수모까지 겪었으니. 나에게 당한 그레모리나 여타 강적들이 본다면 분통을 터뜨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을 상황이었다.
캉.
엑스칼리버와 티르빙을 부딪히자 불똥이 피어올랐다. 아룡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이쪽을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풀려난 기세가 사정없이 주위를 헤집으며 공간을 장악해 나갔다.
꽈득.
가볍게 발을 내딛자 바닥이 움푹 파이며 균열이 생겼다. 가볍게 숨을 들이쉰 나는 이내 땅을 박차며 아룡에게로 달려들었다.
……!
내가 순식간에 지척까지 다가오자 아룡은 흠칫 놀란 모습을 보였다. 아까 내가 보였던 것과 흡사한 얼굴. 그것에 나는 입가를 비틀며 힘껏 검을 휘둘렀다.
“신성력과 마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엑스칼리버와 티르빙 위로 순수한 마나로 만들어진 푸른 불꽃이 서린다. 그것은 곧 거칠게 몸을 부풀리더니 이내 한 자루의 검을 그 위에 덧씌웠다.
순수한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나타냈다.
서걱-.
선명하게 들려오는 피육음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게 베어 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살가죽 위에는 이전과 달리 선명한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질기긴 더럽게 질기군.”
퉤.
아까 바닥을 구르며 입안에 들어온 먼지를 뱉어내며 씩 웃었다. 그러자 아룡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명백히 경계하는 모양새로 몸을 낮추며 이쪽을 바라봐 왔다.
“왜, 이제야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라도……?”
둥둥둥.
기묘한 소리와 함께 아룡의 몸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남겨둔 흔적들은 빠르게 아물었고, 본디 옅은 누런 색이었던 그 몸이 점차 시뻘겋게 물들어 갔다.
크르르르-.
몸집은 더욱 커지고 기세는 흉포해졌으며, 땅에 내디딘 발톱은 거칠게 그 밑을 파고들었다. 전신에 서린 마기의 잔재는 더욱 선명해졌고, 금방이라도 이쪽을 물어뜯어 올 듯 이빨을 갈았다.
쾅-!
곧 아룡은 땅을 박차 이쪽으로 쇄도해 왔다. 엑스칼리버나 티르빙보다 거대한 발톱이 길게 휘둘러지며 내 목을 노려 왔다. 그것에 나는 다시금 전력을 실어 검을 휘둘렀을 뿐.
콰아아아아아앙-!
한 번의 격돌 이후 주위는 자욱한 먼지로 뒤덮였다. 왼손에 들린 티르빙으로 그것을 베어 가르자, 세찬 바람이 일며 다시 눈앞이 깨끗해졌다.
컹…….
아룡은 이쪽으로 달려왔던 기세보다 더 강한 힘에 얻어맞아 그 반대편으로 날아간 직후였다.
날 향해 휘두른 앞발은 뭉개져 있었고, 걷어찬 가슴은 뼈가 함몰된 듯 안으로 꺼져 있었다.
“그러게 주제를 알아야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 봤자 알로켄이나 여타 그런 존재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생각 이상으로 힘을 낸 덕분에 벽이며 천장이며 이곳저곳 균열이 생기긴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아예 이 공간째로 묻어 버려야겠다.
명색이 고대 시대의 마궁인데 고작 이 정도로 전체가 무너지진 않겠지.
* * *
탁탁.
얼마 뒤, 아룡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반쯤 무너진 공간을 둘러보았다. 이 녀석이 내게 닥쳐온 시련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한바, 가이넬이 말한 전승대로라면 이제 나는 시련을 통과한 보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며 마궁 밖으로 내보내질 것이었다.
“……?”
하지만 무너진 돌무더기 위에 걸터앉아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궁에 들어와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아룡과 드잡이질 한 것을 생각하면 벌써 한 시간은 훌쩍 지났을 터.
“아직 뭔가 조건이 남아 있는 건가?”
슬쩍 아룡을 내려다보았지만, 움직일 기미는 없다. 설마 이것을 쓰러뜨린 경험 따위로 더 강해질 것이라며 보상을 충족한다는 그런 결말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마궁의 심처에 존재하는 주인의 멱을 따 버려도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닐 것 같았다.
구구구궁-.
그때, 그토록 기다렸던 징조가 나타났다. 저 너머의 공간이 열리며 길이 나타난 것.
한 치의 의심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을 향했고, 이내 캄캄한 어둠이 나를 맞이했다.
“……?”
어째서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초월에 이른 육체라면 이런 어둠을 꿰뚫어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
라이트 마법을 시전하려 입을 열었지만,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기에 황급히 엑스칼리버를 소환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들과의 연결이 묵묵부답이었다.
‘이건…….’
그제야 나는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농밀한 마기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의 마룡이나 어지간한 마족 따위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순수한 기운의 집약체. 아니, 악마의 씨앗으로 각성한 알로켄조차 감히 이 정도에 이를 수 있을까.
얼핏 느끼기론 마룡 파브닐에게서 받았던 느낌과 매우 흡사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마궁의 존재가 그와 비슷한 격을 지닌 존재라는 것.
“…….”
등줄기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판단 실책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마룡이나 마왕 정도를 제외하곤 큰 차이가 나는 상대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궁은 원작 요소 외의 이야기가 아닌가. 뭔가 이레귤러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불가시의 가호가 있다지만, 그런 존재가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할 리는 없다. 단적인 예로 파브닐 역시 한 번에 파악해 내지 않았나.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선 채 수를 궁리했다. 뒤로 돌아갈 길은 깨닫지 못한 사이에 막혀 버린 지 오래. 그렇다면 유일한 활로는…….
‘[사악을 멸하고 죄악을 태우는 불꽃이여.]’
천천히 마나를 움직이며, 하나의 마법을 엮어 냈다.
‘[지금 이곳에 피어나, 그 찬란함을 흩뿌려라.]’
신화 시대, 인간을 사랑한 반신 프로메테우스가 그들을 어여삐 여겨 내려 준 정화의 마법. 그것이라면 내 눈앞을 가리고 있는 이 마기들을 몰아낼 수 있을 터.
‘[프로메테우스의 불꽃.]’
하지만 주변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마나를 쥐어짜 내도, 한계까지 끌어올려도 묵묵부답일 뿐. 그것에 작게 한숨을 내쉴 찰나, 문득 가슴 부근에서 무언가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익숙한 존재감이 불가시의 가호로부터 제 기운을 드러냈다. 일전 브리튼의 성지에서 드래곤의 가호를 각성하기 위해 만났던 정령, 수비드.
성지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불가시의 가호와 일체화했던 그의 존재가 지금에서야 빛을 발했다.
화륵-.
한 줄기 불꽃이 눈앞에 피어올랐다. 그것은 곧 청명한 빛을 내뿜었고, 자신을 꺼뜨리려 사방에서 몰려온 어둠을 거칠게 잡아먹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앗-!
성화(聖火)가 크게 몸집을 부풀린다. 그 덕분에 나는 온몸을 옭아매고 있던 마기의 속박에서 풀려났다.
그제야 리버와 티르빙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다시 감각이 선명해졌다. 동시에 나는 그동안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
내가 있던 곳은 작은 방 안이었다. 아무것도, 아무런 장식도 존재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실내. 오직 프로메테우스의 불꽃만이 남은 마기를 집어삼키며 제 몸을 부풀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야.
“……!”
갑작스럽게 귓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다시 들려올까 싶어 천천히 의식을 집중하니, 곧 그 목소리는 다시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아이야, 그곳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너라. 이곳에 도달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될지니.
“…하.”
악마의 속삭임인지, 구원의 손길인지 모를 속삭임이었다. 그것에 짧게 실소를 토해 낸 나는 고개를 들어 언제부터 자리했는지 모를 문을 바라보았다.
이때까지의 현상으로 보아 이 앞에 있는 녀석은 적어도 파브닐급에 이른 괴물일 터.
날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불러들여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전승처럼 정말로 내 소망을 이루어 주려고?
아니면…….
“뭐, 별수 있나.”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길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엑스칼리버와 티르빙을 빼 들고, 전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채 천천히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