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40)
망나니학 개론-40화(40/300)
#040
중간고사의 날이 밝았다. 원래 세계에 있을 땐 시험이다 뭐다 하면 항상 긴장해서 그런지 속이 쓰렸는데 레이오스의 몸에 빙의한 뒤로 그런 일은 없었다.
나약한 육체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해야 할까. 살짝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파티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갔다 온 거야?”
예정보다 조금 늦었기에 미안하다고 손을 들자 앨리스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혹시 몰라서 보험 좀 들고 왔지.”
중간고사의 실습은 아카데미 외부에서 이루어진다. 각 구역을 담당하는 선생을 중심으로 우리는 배정받은 던전을 탐사하고, 그 결과물을 지표로 삼아 성적을 산출해 냈다.
다른 파티는 전날까지만 해도 모여서 수련하고 시험을 준비했지만, 우리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야 초반부 여포가 두 명이나 있는걸.
그리고 다른 이들 역시 다들 한 가닥씩 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법 학부 수석 레이시스.
창술 명가 출신 디아크.
광전사의 재능을 지닌 마리아.
그리고 내 히든피스인 유리아까지.
원작의 주인공 파티도 이렇게 화려하진 않았다. 솔직히 메인 에피소드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이들로만 해도 던전 공략을 충분히 할 수 있겠지.
시험 자체는 간단했다. 사건이 터지는 것은 마족과 계약한 디아크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솔직히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겠지만.’
던전 최심부에 이른 디아크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제물을 바쳐 마족을 소환한다. 마족은 자신의 해방을 위해 소환자인 디아크를 먹어치울 테고 그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간 같이 생활하면서 조금 정이 들었지만, 어쩌겠나. 마족과 계약한 사람은 이미 손쓸 도리가 없다.
“준비는 다 됐지?”
“난 끝.”
“나도.”
“…응.”
앨리스, 디아크, 마리아 순으로 대답한다. 아직 자신이 이 파티에 소속되었다는 걸 적응하지 못한 유리아는 핑핑 도는 눈으로 안절부절못했고, 레이시스는 연신 내 눈치를 보기 바빴다.
“너희는?”
“…문제없답니다.”
“저, 저도요.”
굳이 시선을 주면서 묻자니 레이시스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아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그녀는 애초에 포텐셜을 보고 뽑은 거다. 지금 당장 활약하지 않아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자, 그럼 가볼까.”
우리 파티가 공략할 던전의 이름은 ‘죽은 자의 안식처’. 이름대로 언데드가 주를 이루는 던전이었다. 입구는 그저 평범한 동굴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길이 나왔다.
“손길이 많이 타 있네.”
나와 같이 선두에서 나아가는 앨리스가 주위 벽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럴 테지. 대대로 아카데미 시험에 사용되었을 테니까.”
실제 던전이라고 해도 학생들의 시험 장소로 사용되는 만큼 주기적으로 아카데미 차원에서 정리가 들어간다. 던전 같은 곳은 시간이 지나면 기운이 쌓여 강한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였다.
파티의 선두는 함정을 찾아낼 수 있는 앨리스와 전위인 내가 맡았다. 그리고 그 뒤로 디아크와 마리아가 자리했고 제일 후미를 마법사 두 명이 지켰다.
“최심부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시작될 거라고 했지?”
앨리스의 시선이 은밀하게 디아크를 향했다.
“하하, 걱정하지 마.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내가 다 때려잡아 줄 테니.”
세 명의 여자를 지키며 걷는 중인 그는 물 만난 물고기와 같았다. 연신 그녀들에게 말을 걸며 자신의 활약을 기대하라고 했지만, 소극적인 성격의 두 명과 시큰둥한 표정의 한 명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 저것도 어찌 보면 재능 같았다.
“마법사들, 슬슬 앞을 비춰줘.”
입구를 통해 들어오던 빛이 슬슬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나를 활성화하면 어둠 속에서도 대낮처럼 볼 수 있었지만, 마법사가 있는데 굳이 마나를 쓰고 싶진 않았다.
“[태초의 빛, 라이트].”
레이시스는 별다를 것 없이 간단한 영창만으로 주먹만 한 빛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그것을 본 유리아 역시 질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힘겹게 영창을 읊었다.
“[태초의 빛이여, 세상에 그 은총을 베풀어 이치를 밝혀라, 라이트].”
레이시스의 곱절은 되는 영창. 거기에 나타난 구체는 그녀의 반절도 되지 않는 크기였다.
“둘 다 수고했어.”
고작 라이트 주문 하나만으로 헐떡이는 유리아가 한심스러워 보였는지 레이시스는 티 나지 않게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나한테는 들켰지만.
‘저 자존심 좀 죽여야 할 텐데.’
유리아의 재능은 마법 무효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으로 지금 시점에선 발현되지 않은 능력이다. 그녀는 주인공을 만나 자신의 재능을 깨닫기 전까지는 쭉 아카데미의 낙제생으로 지낸다. 후에는 주인공 파티에 합류해 침묵의 마법사라는 이명으로 성장하니 마법사의 안티테제로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에 반해서 레이시스는……. 뭘 했던가?
“전방에 적 발견.”
앨리스의 말에 우리는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전투준비를 했다.
“수는?”
내 말에 그녀는 눈에 마력을 집중했다. 새하얀 빛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정면을 주시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스켈레톤이 서른 개체가 좀 넘고, 구울이랑 좀비로 보이는 녀석들이 합쳐서 열 개체 정도.”
“대략 오십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되나.”
“하위 언데드 오십 마리 정도야, 별것 아니지.”
디아크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걸어 나온다. 스켈레톤과 구울, 좀비는 모두 언데드 몬스터 중에서도 최약체로 분류되는 몬스터. 그 상위종이라면 모를까, 이 정도라면 나나 앨리스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굳이 마법사들이 나설 필요는 없겠군. 전위인 네 명이서 각각 열 마리씩 맡는다.”
마법사들의 마나는 한정적이기에 이런 잡몹들에게 사용하는 것은 별로 좋은 판단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들에겐 뒤에서 엄호를 명했고 나를 비롯한 네 명의 전위가 앞으로 나섰다.
“누가 더 많이 잡는지 내기할까?”
디아크가 제 창을 붕붕 휘두르며 호기롭게 말했다.
“나쁘지 않지. 꼴찌가 오늘 저녁 사기!”
앨리스가 그의 말에 대답하며 갑작스럽게 땅을 박찼다. 그 뒤를 당황한 디아크가 반칙이라고 소리치며 따라갔고, 슬쩍 나를 바라본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달려 나갔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 사기라니.’
디아크는 오늘 죽을 운명이다. 그런데 그런 내기라니 살짝 악취미였다.
“그렇다고 승부를 포기할 순 없지.”
나 역시 검을 쥐고 스켈레톤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레이시스는 탐탁지 않은 눈으로 제 옆에 있는 쪼끄만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짧은 은발 머리. 외모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도대체 이 아이가 뭐가 특별하다고.’
제일 간단한 라이트 마법조차 힘들게 구현해 내지 않았는가.
외형도 재능도 실력도 집안도.
그녀 자신보다 출중한 것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설마…….’
일전에 레이시스는 특수한 성적 기호를 가진 남성들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개중엔 유리아처럼 작고 가녀린 체구의 여성을 선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기에 그쪽으로 의심이 갔다.
‘같이 붙어 다니는 앨리스라는 아이도 비슷해 보이니까.’
얼굴은 예쁘장했지만, 체형은 유리아와 마찬가지로 자신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다만, 앞에 나서서 함정을 파악하는 능력과 스켈레톤을 쓰러뜨리는 움직임을 볼 때, 실력이 없어 보이진 않았다.
‘후우…….’
복잡한 심경에 레이시스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능력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원래 그녀는 자신의 배경과 실력으로 파티를 휘어잡으려 했다. 말을 잘 듣는 충실한 수하들로만 파티원을 구성하고, 자신은 여왕처럼 그 안에서 군림하는 것을 꿈꿨지만,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있었다.
‘레이오스 폰 리베라.’
아카데미에선 오스티아라는 가명을 쓰는 리베라 제국의 삼 황자. 그에 대한 소문은 화려했다. 황제가 가벼운 흥취 삼아 하룻밤을 보낸 출신도 모르는 여인의 자식.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의 상징이며 밑 사람들에게 패악질을 일삼는 망나니.
올해 바이에른 아카데미의 입학 수석이 설마 그였다니.
‘하지만 무능한 망나니라고 하기엔…….’
물론 태도는 망나니에 못지않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배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싸움을 했을 정도니.
하지만 무능하진 않았다.
그때 교실에 찾아와 자신에게 보였던 기세는 분명 힘을 가진 강자의 것이었다.
‘힘을 숨겼나.’
그렇기에 레이시스는 얌전히 그의 파티에 속해 오스티아를 파악하는 데 나섰다. 셰필드가가 마법의 명문가라 하지만, 근래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는 우수한 마법사들로 그 입지가 줄어들었다. 원래의 막대한 영향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 레이시스는 그것을 오스티아에게서 발견하지 않을까 싶었다.
“레, 레이시스 양.”
호쾌하게 스켈레톤들을 부수는 파티원들을 기다리며 잠깐 상념에 빠져 있던 그녀는 곧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집중이 깨졌다.
“…뭔가요.”
원래라면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의 격차가 있는 소녀, 유리아가 작게 두 주먹을 쥐며 말해왔다.
“저 힘낼게요. 방해되지 않도록 할 테니까요……!”
‘쯧.’
그녀 자신도 이런 우수한 파티에 염치없이 끼어 있는 것이 못내 눈치 보이는 것이리라. 레이시스는 그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하면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을.
“가지.”
곧 스켈레톤 무리를 전부 산산조각 낸 오스티아의 부름에 그녀들은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야, 설마 마리아가 전부 쓸어 담을 줄은 몰랐네.”
몇 번의 전투 후, 디아크는 머쓱한 표정으로 제 뺨을 긁었다. 첫 번째 전투에서 크나큰 점수 차이로 패배한 그는 곧 이어진 전투들에서 그 격차를 회복하려 했지만, 시뻘건 눈으로 순식간에 적들을 격살한 마리아 때문에 틈도 없었다.
확실히 그녀의 활약은 대단했다. 광전사의 특성인지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들에게 그 격차는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했고 우리보다도 더 호쾌하게 녀석들의 머리통을 부쉈다. 솔직히 무력만 따지고 본다면 디아크보다 강하지 않을까 싶네.
“보고서는?”
시험은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이 끝이 아니다. 주목적은 던전 탐사이기에 던전의 내용물과 우리의 탐사 내용을 기록해야 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적고 있어요!”
“잘하고 있네. 계속 부탁한다.”
그에 유리아는 조금 전과 달리 싹싹한 태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해왔다. 그 모습이 기특해 고개를 끄덕여 주자 뺨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부끄럼 타는 건가, 귀엽네.
“…로리콤.”
“어이.”
동생을 귀여워하는 감각을 비틀린 성욕으로 만드는 발언에 앨리스를 노려보자 그녀는 모른 척하는 얼굴로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돌렸다.
“앞에 세 갈래 길이 나왔어. 가운데 길이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 최심부고, 다른 두 곳은 우리가 들어왔던 것과 같은 통로 같네.”
“그런가.”
던전에 들어온 지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동했기에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각자 가져온 보존식을 먹으며 체력을 비축했고, 무기나 방어구를 점검하며 다가올 싸움의 준비를 했다.
“…누군가 온다.”
그때, 저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와 비슷하게 앨리스 역시 고개를 들었고 우리의 시선은 어둠 너머를 주시했다.
“어머.”
선명할 정도로 붉은 머리카락이 어둠 속에 휘날린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엘리시아의 파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