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45)
망나니학 개론-45화(45/300)
#045
하루 전의 일이었다.
나는 깊은 밤을 틈타 크리스를 찾아갔다. 다음날 던전 탐사에서 같은 파티원인 디아크가 마족을 소환한다. 원작대로라면 나나 앨리스의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헤쳐 나올 수 있는 난관이었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보험을 들어놓고자 하는 이유에서였다.
앨리스에게 뺏다시피 빌린 은막의 가호는 교사들을 비롯한 감시체계를 속여 넘겼고, 나는 어렵지 않게 크리스의 숙소로 침입할 수 있었다.
과연 대마도사의 숙소답게 온갖 마법 장치와 방어 마법이 설치되어 있지만, 은막의 가호는 그것들조차 속여 넘겼다. 은밀하게 그녀의 침실의 앞까지 침입한 나는 크리스의 기척이 방 안에 있음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나다.”
“…….”
“……?”
그녀의 눈이라면 문 정도는 가볍게 꿰뚫어 내 얼굴을 확인했을 터. 내부에서의 기척은 분명히 느껴졌지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
“크리스.”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크리스는 묵묵부답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자, 잠깐만!]원래 분위기와는 다른 상당히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냉기가 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크리스는 검성과 더불어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군이었다. 원작과 이야기가 비틀린 이상,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어도 모를 일. 그에 나는 황급히 문짝을 힘껏 열어젖혔다.
“아…….”
크리스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그녀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적지 않겠다. 다만, 그 이후로 그녀와 얼굴을 맞대는 것이 상당히 불편해졌을 뿐이다.
…괜찮아, 나도 많이 하는 거니까. 사람이든 엘프든 성욕은 자연스러운 거다, 음.
하여튼, 묘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내일 있을 일을 이야기했다. 마족이 나타날 것이라는 소리에 크리스는 살짝이나마 냉정함을 되찾았고,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우리를 주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지금.
예정된 시각이 지났음에도 우리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친히 이곳에 강림한 것이었다.
“분명 하급 마족일 거라고 들었는데.”
“난들 저런 게 갑자기 튀어나오리라고 알았을까.”
크리스는 싸늘한 얼굴로 알로켄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수호자인 그들은 선천적으로 마족이라면 치를 떨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증오하는 사이이기에 마주치는 순간 둘 중 하나는 사지가 찢어져 죽는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었다.
[…엘프? 설마 아직 중간계에 남아 있는 엘프가 있었다니.]알로켄 역시 지금껏 보여왔던 태도와는 달리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원초적인 증오를 토해냈다.
“그래, 네놈들의 그 마룡(魔龍) 때문에 우리 일족은 전멸했지.”
꽈아악.
알로켄의 몸을 구속하는 사슬의 힘이 강해진다. 그는 있는 힘껏 마기를 끌어 올려 그것을 밀어내려 했지만, 애초에 제 몸으로 현신한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빙의한 것으로는 크리스의 발끝조차 미칠 수 없었다.
[뭐, 잠깐의 유흥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엘프의 존재도 알았고…….]알로켄의 눈이 날 향한다. 찌를 듯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자 그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는 것도 발견했으니.]“누가 순순히 보내준다고 했나?”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알로켄의 모습에 크리스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복잡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그 안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왔다.
[컥……!]미라의 것처럼 빼빼 말라비틀어진 그 손은 곧 알로켄의 몸을 파고들었고, 시커먼 무언가를 뽑아내었다.
[네놈……!]그의 입에서 거친 일갈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크리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늘한 미소를 지어줄 뿐이었다.
“네 격의 일부는 내가 맡아놓겠어. 원한다면 찾으러 오던가.”
아우구스의 몸에서 치솟아오르던 마기가 형용할 수 없는 괴성을 토해낸다. 마치 그녀를 저주하는 것 같은 괴이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허공으로 스러지며 모습을 감췄다.
드르륵.
아우구스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사슬이 풀려 나간다. 그녀는 알로켄의 몸에서 뽑아낸 결정을 품에 넣고는 몸을 돌렸다.
“내 역할은 이걸로 끝이지? 그러면 이만.”
공식적으로 그녀는 없는 존재였다. 이제 곧 크리스는 바이에른 아카데미의 학장으로 변해 우리 앞에 나타날 테지.
“후우…….”
사건이 일단락되었기에 나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육체적 피로가 만연했지만, 그보다 먼저 정신적인 피로가 지대했다.
‘하루 동안 몇 번의 고비를 넘긴 것인지.’
고작 첫 번째 메인 에피소드다. 그것 하나 깔끔하게 끝내지 못해 쩔쩔매는 꼴이 한심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앨리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은가. 비록 불가시의 가호를 소비했다곤 하나 충전식의 아티팩트인 이상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다.
“대체.”
근처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레이시스의 모습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그녀에게도 살짝 동정심이 일었다. 원작에서의 전개대로라면 레이시스도 어느 정도 활약을 했을 텐데, 지금의 모습은 그저 혼비백산한 모습일 뿐이다.
“세상엔 네가 모르는 곳에서 여러 일이 일어나고 있는 법이지.”
소설 속 망나니에 빙의한 편집자가 활개 치고 다녀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 * *
크리스가 떠난 뒤 아카데미 감독관들이 던전 안으로 들이닥쳤고, 부상당한 이들을 수습하는 것으로 우리의 다사다난했던 던전 탐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우습게도 이번 일은 제국을 음해하려는 테러 세력의 음모로 발표되었다. 던전 안에 누군가 모종의 함정을 설치했고, 보물인 줄 알았던 학생이 그것을 건드려 저주를 받아 소란이 일어난 것. 그로 인해 관계자 몇 명의 목이 날아갔다고 들었다.
비유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하루 뒤, 던전에서 구조된 세 파티의 학생들은 전부 아카데미 안에 있는 치료실에 입원했다. 가장 경상에 그친 레이시스가 일주일은 쉬어야 할 정도니, 남은 이들의 상처도 어지간했다.
참고로 앨리스는 아직 기력이 회복되지 않은 듯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치료사 말로는 눈에 띄는 외상은 없지만, 온몸의 기력이 쇠해 그것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온몸의 상처가 그렇게 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신화급 아티팩트의 효능은 정말로 대단한 듯싶다.
참고로 불가시의 가호는 회수했지만, 충전 방식을 모르기에 재사용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살 만해졌는지, 아침까지 죽은 듯 잠만 자던 학생들이 어느새 일어나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눈다. 흔치 않은 경험이었기에 그것을 제 전공으로 삼아 크게 떠벌렸고, 다른 이들 역시 그것에 동조하며 제 공을 치켜세웠다.
“가우스는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와중, 담임이라는 명목상 나를 찾아온 델르케가 내 침상 앞에 앉아 은밀히 말했다.
정말로 놀랍게도 아우구스는 죽지 않았다. 분명 녀석을 끝장냈을 때 심장을 짓이겼었다.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하지만 알로켄이 그것을 복구해 준 것인지, 아니면 크리스의 처치가 좋았는지는 몰라도 그는 가사 상태나마 명줄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이미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대충 한 손으로 들고 나갔는데.
황족, 그것도 직계 황자가 관련되어 있기에 일이 더 빨리 수습된 면도 있었다.
돌아갔다는 건 황궁으로 불려 갔다는 것이겠지. 마족, 그것도 지옥 대공이라는 거물을 불러냈으니 한동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터. 살아 있는 것만으로 기적이니 불평하지도 못하겠지.
“참, 얘들아. 점수는 만점이다. 마족을 쓰러뜨려서 가산점이 들어갔다더군. 축하한다.”
돌연, 델르케가 떠들고 있던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만점이란 소리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곧 치료실이 떠나가라 환호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하하…….”
정말로 순수하게 기뻐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나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들은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녀석이 마계에서도 악명 높기로 소문난 지옥 대공이라는 것을 알아도 저런 모습이 나올까.
저들이 기뻐해야 하는 것은 고작 만점 따위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임을.
‘나도 꼰대 다 되었네.’
혼자만 고생해서 살짝 심통이 난 것인지 모든 게 삐뚤어져 보였다.
참고로 나는 이번 시험에서도 필기와 실기 모두 만점을 받으며 수석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그 뒤를 레이시스가 따라와 차석을 차지했고, 엘리시아는 아쉽게도 3등에 그쳤다.
아우구스는……. 아마 이제 끝났지 않나 싶다
하여튼 첫 학기의 첫 시험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 * *
바이에른 아카데미의 1년은 3학기로 이루어졌다. 1학기는 그간의 성적을 평가하는 시험을 끝으로 방학을 맞이했고, 나는 그때 활동할 계획들을 야심 차게 구상하고 있었다.
황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몸이 되는 한 달하고도 보름이란 시간. 일단 내 세력이 모일 장소와 곳곳에 흩어진 인재, 그리고 숨어 있는 기연들을 찾아 나서려 했지만, 크리스가 전해주고 간 한 통의 서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다.
“빌어먹을 황제 새끼…….”
서찰에는 황궁에 돌아올 것을 명하는 황제의 날인이 찍혀 있었다. 즉, 황명이라는 거다. 거부하면 그날로 이 제국에서 발붙이기 힘들어질 테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아쉽게 됐네요.”
내가 방학 동안에 고향에 내려간다는 소리에 엘리시아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아직 내가 황자인 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던전에서 있었던 사건 당시 내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겸사겸사 그것에 대한 감사도 표하고 이번 학기 동안 친해진 이들과 친목회도 할 겸 몇몇 친구들을 브리튼 공국에 초대했다.
브리튼 공국이라 하면 사시사철 괴수와 전쟁을 벌이는 척박한 곳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한편으로는 관광산업이 발달한 휴양지기도 했다.
고풍스러운 고성부터 시작해 바다로 이어진 자연경관은 괴수와 싸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구경하러 갈 만하다고까지 했으니.
인원은 앨리스, 마리아, 레이시스, 디아크, 베르너 그리고 유리아까지였다.
우연하게도 주요 조연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나 싶었지만, 브리튼 공국으로의 초대는 원작에서도 있는 스토리였다.
다만, 그때와는 인원의 구성이 달라진 것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원작에서라면 주인공인 앨리스는 브리튼 공국에서 봉인된 성검, 엑스칼리버를 얻는다.
그것은 앞으로의 싸움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무기로 그녀의 각성을 이끌어줄뿐더러 마족의 카운터가 되는 능력을 지니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조금 욕심이 났지만, 이미 나에게는 티르빙이라는 마검이 있다. 그러니 이번에는 눈물을 머금고 앨리스에게 양보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일만 보고 바로 합류할 테니까 바람맞히지 말고.”
주인공이 가는데 내가 가지 않을 수야 없지. 늦어지면 황제 뺨을 쳐서라도 뛰쳐나오고 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