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48)
망나니학 개론-48화(48/300)
#048
챙-!
황제의 앞에서 기세를 발산한다는 것은 역모죄에 걸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에 호위를 서고 있던 로열 나이츠가 검을 뽑아 들었지만, 황제는 가볍게 손을 저어 그들의 행동을 막았다.
“…….”
이 정도면 충분한 시위가 됐을 것 같아 다시 기세를 안으로 갈무리했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들이 나에게로 쏟아지는 것이 피부 위로 느껴졌다.
그것엔 아무리 나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최고 권력을 쥐고 있는 제국의 실세들. 앞으로 내가 싸워가야 할 적들이었다.
“제국의 장래가 밝군요. 이 가야온,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재상의 이름이 가야온이었나. 그는 조금 전의 무례는 사과하겠다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왔다.
“…….”
귀족들은 하나같이 다 비슷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이용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반면에 두 형님은 아무런 태도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카리우스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했다. 설마 그렇게 괄시하고 무시하던 내가 힘을 숨기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아직 황태자 자리가 선택되지 않은 이상, 나라는 변수는 그에게 있어 큰 걸림돌이 될 것이었다.
물론 내게 황제가 될 생각은 없다. 되기도 힘들뿐더러, 저런 자리에 있다가는 위장병만 생기겠지.
“이만들 물러나거라. 이후에 대한 방침은 내 나중에 따로 전달해 주겠다.”
황제는 우리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아우구스에 관한 이야기는 알려줘도 그 이후에 대한 처리는 자신의 심복과 하려는 것인지 칼같이 선을 긋는 태도다.
나야 뭐 불만은 없다. 마족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신성 왕국에 빌미를 잡힐 수 있는 일. 만약 이야기가 새어 나가게 되면 파란이 이는 것은 분명할 테니까.
하지만 카리우스는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그는 이제껏 황제의 곁에서 제국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참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외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알현실을 나가는 얼굴이 제법 볼만했다.
“…설마 힘을 숨기고 있었을 줄은 몰랐구나.”
나에게 말을 거는 카리우스의 얼굴에선 이제 우월한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유 따윈 일절 없는 표정으로 적을 보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뿌듯한 마음까지 느껴졌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송곳니 한두 개 정도는 감춰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역시 이전까지 보였던 정중한 모습은 버렸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자 그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러곤 작게 헛웃음을 토해내더니 일절의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다리우스 역시 창백해진 얼굴로 그 뒤를 따라간다. 마음 같아선 뒤통수라도 때리며 시원하게 그들을 갈구고 싶었지만, 이제 그들에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 * *
돌발 이벤트인 황제와의 알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제 이곳엔 볼일이 없었기에 그만 브리튼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새로이 떠오른 이벤트에 일정을 하루 미뤘다.
“후우.”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누워 늘어져 있자니 파르시가 다과를 가져왔다. 그녀와 그간 쌓인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죽이고 있자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열어줘.”
파르시가 문을 여니 익숙한 얼굴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에 나는 어처구니없음에서 나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게 누구십니까, 스승님.”
“허허,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구나.”
정말로 빈말이었지만, 요하넬은 기분이 좋은 듯했다. 나는 짤막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소드 마스터는 찍고 오픈하려 했던 제 계획이 모두 무산됐지 않았습니까.”
“그놈들이 너를 무시하는 것이 짜증 나서 그랬다. 쯧쯧, 무지몽매한 것들. 제 눈앞에 토끼인 척하는 범이 이빨을 들이밀고 있는 것도 모르다니.”
제국의 명운이 어둡다며 요하넬은 혀를 찼다.
“그래서, 후계자 이야기는 뭡니까. 저는 예전에 분명 거절한 것으로 아는데.”
“형식적인 거다. 그렇게 신경 쓸 것은 아니야.”
그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무렴 제국 내에서 검성이 갖는 의미는 황제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뭐, 어찌 되었든 나에게 해가 될 일은 없지만.’
솔직히 검성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호감을 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계속 투덜거려도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받아들이니.
“그래서, 이제 방학이지? 무엇을 할 생각이더냐. 뭣 하면 우리 영지로…….”
“브리튼으로 갈 겁니다.”
요하넬이 눈을 빛내며 말해온다. 나는 그것이 끝나기 전에 재빨리 끼어들며 내 일정을 말했다.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브리튼 공국의 영애와 친해져서 말입니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초대받았습니다. 황궁에서의 일정 때문에 조금 늦어졌지만, 생각보다 일찍 끝났으니 그리 뒤처지지는 않겠네요.”
“…이건 좀 놀라운 소리군.”
“……?”
뭐가 놀랍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에 요하넬은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네가 정상적인 교우관계를 맺으리라 생각하지 못해서 말이야. 수하면 몰라도 친구라니. 내 영지의 기사들이 들으면 폭소를 하겠군.”
“거, 참.”
누구를 망나니로 보나. 라고 말하려 했지만, 일단은 망나니기 때문에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그나저나 브리튼이라. 기가 막힌 우연이군. 사흘 후, 내 영지로 브리튼의 공왕이 놀러 오기로 해서 말이야.”
“그 아서 왕이 말입니까?”
아서 왕과 요하넬이 서로의 영지에 놀러 다닐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는 소리는 나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에 놀람을 표시하자 요하넬은 뭐가 이상하냐는 듯 제 가슴을 툭툭 쳤다.
“나 검성이다, 검성. 이 대륙에서 검 꽤 쓴다고 이름 알려진 녀석 중 나를 거쳐 지나가지 않은 놈이 없어.”
“아, 예.”
하긴, 검으로는 비빌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요하넬은 할 이야기는 끝났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나중에 보자, 제자야.”
“…그놈의 제자 소리.”
하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 *
다음 날, 나는 브리튼 공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앞으로 언제 다시 황궁으로 돌아올지 몰랐기에 보석류를 비롯해 값어치가 나가는 것은 모조리 쓸어 담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파르시는 내가 또다시 떠난다는 소리에 살짝 아쉬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펴며 자신은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겠다며 말해오는 것이 살짝 애틋하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파르시.”
“네, 전하.”
“…만약 내가 황궁을 나가겠다고 하면 어쩔 거지?”
눈치가 빠른 그녀는 그 말이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제 가족의 안위만 보장이 된다면 전하를 따라가고 싶어요.”
“그런가.”
기분이 좋아지는 대답이다. 파르시의 가족 정도야 챙길 여유는 충분했다. 그에 난 그녀에게 곧 황궁을 떠날지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어차피 돈은 썩어날 정도로 많다. 적당히 사람을 고용해 상단을 운용해도 되고, 이도저도 아니면 저 밑의 지방에 내 소유로 된 영지로 가서 자리를 자리 잡아도 되었다.
“저는 전하께서 불러주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래, 곧 연락할게. 짐이나 단단히 챙겨두고 있어.”
황궁에서의 일정이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반도 안 돼서 끝이 났다.
잘하면 내가 그들보다 먼저 브리튼에 갈지도 모르겠는걸. 그러면 적당히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먼저 관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파르시의 일도 해결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마탑을 향해 갔다. 곧 궁정 마법사들이 나를 안으로 안내했고, 브리튼으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다.
익숙한 부유감과 함께 몸이 붕 뜬다. 시릴 정도로 비춰오는 빛살에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부유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무중력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몸이 두둥실 떠다녔다.
“…뭐야, 시발.”
곧 눈이 빛살에 적응했을 때, 내 입에선 절로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첩첩산중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그 위로 허공에 체공하는 중이었다.
“…….”
당황함에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한 법. 영원할 것 같았던 부유감은 어느새 끝이 났고, 내 몸은 중력의 영향에 구속되기 시작했다.
“씨이이이이바아아아아알-!”
까마득한 높이에 머리가 새하얘진다. 소드 익스퍼트고 나발이라고 여기서 떨어지면 곤죽이 되어 죽는다. 유격훈련이라고 줄 하나로 11M 모형탑에서 하강 훈련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어으어어어어어어-!”
마나까지 끌어 올리며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렸지만, 허공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땅과 키스하기 얼마 직전,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 누구도-! 나를 해할 수 없으니-!”
이잉-
곧 눈부신 빛과 함께 시퍼런 갑주가 내 전신을 뒤덮는다. 그 직후 지면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고 온몸을 강타하는 둔중한 충격에 헛바람을 토해냈다.
콰아아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폭음이 귓가에 울린다. 그와 동시에 상태창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SYSTEM: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을 받아 아킬레스의 갑주가 해제됩니다.]아무래도 그 충격을 버티기 힘들었는지 내 몸을 지키던 갑주가 해제된다. 나는 그 여파로 바닥에서 튕겨 나갔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땅을 구른 뒤에야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켁, 아흐, 인생 씨발…….”
나는 땅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왜 경치는 이렇게 좋은 곳인지. 전신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자 내가 굴러 떨어진 경로의 위로 산 중턱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움푹 파인 곳이 있었다.
저기서부터 굴러 떨어져서 내려온 건가.
“푸하.”
용케도 살아남았다 싶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뭐, 마왕과 싸운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하다니.
“빌어먹을 새끼들.”
갑작스레 열이 확 하고 뻗쳤다. 아마 누군가 수작을 부린 것일 터. 내 씨발 돌아가면 마법사들의 멱부터 다 따버릴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물론 마법사들은 사주만 받았을 테지. 그 뒤엔 누가 있을까. 아무래도 카리우스나 다리우스 중 하나겠지?
후반부에 역할이 있어서 건들지 않았더니 아주 나를 물로 보는 것 같다. 둘 다 아우구스가 입원해 있는 병상의 옆으로 보내주리라.
“후우…….”
이를 악물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이곳이 브리튼인지도 의심스러웠다. 떨어질 때 보니까 아주 첩첩산중이던데. 낙사가 실패했다면, 오지에 보내서 죽이려고 한 건가.
일단 옷부터 바꾸기 위해 나는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지금 복장은 황궁용으로, 실용성이 떨어지는 복장이었다.
나는 여행자에 어울리는 심플한 옷으로 바꿔 입었고, 머리색도 아티팩트로 다시 오스티아의 것으로 바꿨다.
무장은 검 한 자루. 그 이상은 사치다.
비상식량 또한 넉넉히 있다. 최소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겠지. 문제는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느냐인데.
크르륵.
“……?”
돌연 폐부를 찌르는 살기가 느껴진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곳곳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수많은 괴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씨발…….”
아무래도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