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49)
망나니학 개론-49화(49/300)
#049
브리튼 공국 남서쪽 경계령.
태초의 요람이라 불릴 정도로 몬스터가 많은 하랄 산맥과 맞닿아 있는 그곳은 브리튼 공국에서도 치열한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었다.
다만, 습격이 시작되는 건 먹이가 떨어지는 겨울이었기에 지금처럼 따뜻한 봄철은 비교적 조용한 삶을 보낼 수 있었다.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농사를 지어 식량을 비축하고 성벽의 빈틈을 메워 방비를 견고히 한다.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의 역할을 다했고 그것이 모여 브리튼을 이루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얼마 전부터 몬스터의 침입이 있었다. 본격적인 공세가 아니라 간헐적인 빈도긴 했지만, 명백히 이질적인 사태가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음…….”
브리튼 공국의 둘째 영애, 엘라인 팬드래건 브리튼은 조사대가 가져온 보고서에 얼굴을 찌푸렸다.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몬스터의 습격이 오늘 하루만 벌써 세 번이 될 정도로 빈도가 증가했다.
“아버님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고요.”
“예, 사람을 보냈으니 늦어도 사흘 내로 답신이 있을 겁니다.”
‘쯧, 아버님도 언니도 없는 이때 하필.’
브리튼 공국의 공왕 아서 팬드래건 브리튼의 슬하에는 한 살 터울의 두 여식이 있었다.
첫째인 엘리시아는 현재 아카데미에 재학 중으로 첫 학기가 끝나 며칠 뒤에 브리튼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아서 왕 역시 검성을 만나러 자리를 비운 지금, 브리튼의 최고 권력자는 둘째 영애인 엘라인 본인.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의 사태에 대해 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했다.
다른 평범한 귀족가의 영애라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팬드래건 가문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무예를 수련해 뚜렷한 주관을 길렀다.
더군다나 그녀 역시 팬드래건의 소속이라는 자부심과 브리튼을 다스리는 일가의 구성원이라는 것에 의식이 투철했고, 제 일을 남에게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사들로 이루어진 조사대를 꾸렸으며, 그녀 본인이 직접 산맥에 들어가 원인을 찾겠다고 나섰다.
보통이라면 나이가 어린 그녀가 험한 전장을 누비는 것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법했지만,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팬드래건 가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마침내 조사대는 하랄 산맥에 들어갔다. 워낙 넓은 구역이기에 조사 기간은 사흘로 예정되어 있었다. 산맥 곳곳을 누비며 보이는 몬스터는 베어 가르고, 이변이 일어난 원인을 찾기에 힘썼다.
그리고 사흘째가 되는 날, 엘라인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입술을 씹었다.
“물러나! 아가씨를 지키면서 후퇴한다!”
하람 산맥의 본격적인 심처에 돌입하기 직전, 그들은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정하던 와중이었다.
그간 조사한 것으로는 안쪽에서 무언가 일이 생겨 쫓겨 나온 것이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성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전력을 갖추고 나온 뒤 재조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들어갈 것인지 찬반 의견이 있었다.
엘라인은 조금 욕심이 났다. 이왕 깊이까지 들어온 것 조금 더 가보자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이 사달이 일어나고 말았다.
조사단의 인원은 모두 열다섯 명. 한 개 분대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모두가 오러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로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베어낼 수 있었지만,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어지간한 몬스터 따위가 아니었다.
쿠워어어어어-!
지축을 울리는 포효와 함께 거센 진동이 사방을 휩쓴다. 산맥 최상위 포식자 중 한 마리인 자이언트 오우거가 그들을 향해 맹렬하게 살기를 피워 올렸다.
“제기랄!”
자이언트 오우거는 소드 익스퍼트에 이르는 실력자들이 두 자릿수는 있어야 사냥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열다섯에 이르는 일행 중 소드 익스퍼트는 단 다섯 명. 산맥 심처에 들어갈 것도 아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건만,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
쿠에에엑.
몬스터는 자이언트 오우거만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휘하 세력을 따로 일구고 있는 것인지 트롤이며 오크며 잡다한 군락들이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몬스터들은 오랜만에 본 인간의 모습에 군침을 흘리며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었고, 그 기세에 아무리 브리튼의 정예 기사라 할지라도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합!”
팬드래건의 기사인 퍼시벌은 맹렬하게 장창을 떨치며 괴수들을 밀어냈다. 그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으로 기사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였다.
그럼에도 자이언트 오우거를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오러가 담긴 장창이 그 살가죽을 찢고 들어갔지만, 고작 한 마디 정도 파고든 다음 튕겨 나갔을 뿐이다.
‘실책이다. 산맥을 너무 얕봤어.’
설마 심처도 들어가지 않은 이곳에서 자이언트 오우거 같은 최상위 몬스터와 조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사들 역시 분전하고 있지만, 이대로 발목을 붙잡힌다면 어찌 될지는 뻔했다.
‘여차하면.’
팬드래건의 혈통은 브리튼 공국의 자부심 그 자체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두 죽는 한이 있어도 그녀는 살아야 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요!”
막 오크 한 마리를 베어 넘기던 엘라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시선에 뭔가를 눈치챈 듯 악을 썼다. 그에 퍼시벌은 쓴웃음을 지었다. 천방지축을 날뛰던 그 말괄량이 공주님이 언제 이렇게 성장한 것인지. 그렇기에 그의 결심은 더욱 단단해졌다.
“…….”
싸움의 도중 기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인 듯 기꺼이 몸을 바쳐 활로를 열 각오를 보이고 있었다.
“하압-!”
퍼시벌은 더 늦으면 뒤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금껏 안배해 놓았던 오러를 맹렬하게 떨치고는 잠시간의 공백 상태가 된 틈을 타 엘라인의 허리를 낚아챘다.
“놔! 놓으란 말이야!”
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몸을 구속한 퍼시벌의 등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꿈쩍하지 않은 채 담담히 땅을 박찰 뿐이었다.
쿠어어어어어-!
하지만 하늘은 그런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막, 도망가려고 했던 방향에서 자이언트 오우거 한 마리가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달려오는 수많은 몬스터에 퍼시벌의 몸이 굳었다.
“…아가씨, 아가씨는 저희의 자랑입니다. 땅을 구르든 오물을 묻히든 어떤 추한 모습이 되시더라도 꼭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퍼시벌…….”
퍼시벌은 제 목숨을 불태워 길을 뚫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서른다섯 평생을 갈고닦았고 앞으로도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기사의 목숨이다. 그는 간절히 하늘에 빌었다. 부디 자신이 피워 올린 불꽃으로 그녀가 달아날 수 있는 길을 열어낼 수 있기를.
두 발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땅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새하얘질 정도로 창을 쥔 손은 그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 몬스터를 도륙해 내겠다는 각오를 보였으며, 부릅뜬 두 눈은 제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기 위해 시퍼런 정광을 담아냈다.
‘아…….’
엘라인은 눈물을 흩뿌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자신의 결정이고, 자신의 실책이었다.
기사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산맥을 거닐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오만이었다.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으리라. 살아서 돌아가게 된다면 십 년을 수련하며 자신을 위해 죽은 이들을 위해 복수의 칼날을 벼리겠다고 그녀는 결심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간절한 마음에 하늘은 응답했다.
서걱.
한 줄기 가벼운 피륙음이 전장 가운데로 울려 퍼졌다. 그것은 그 누구의 검격보다 경쾌한 것이었다.
끄어어어?
새로이 등장한 자이언트 오우거로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인간과 몬스터 구분하지 않고 그들의 신경이 집중되었을 때.
저저적-
자이언트 오우거는 정수리에서부터 정확하게 몸이 양분되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아.”
그리고 그 뒤, 자이언트 오우거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작은 크기였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는 기세를 가진,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드디어.”
몬스터가 아닌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일까. 가슴이 벅차올라 절로 한숨을 토해냈다.
빌어 처먹을 이 산맥은 무슨 몬스터가 이리도 많은지 일분일초가 싸움의 연속이었다.
검성의 영지에서도 최소한의 의식주는 보장해 줬는데, 여기 몬스터는 정말로 사정이 없었다. 일부러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쪽잠을 취했는데,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눈을 뜨니 사방에 원숭이같이 생긴 몬스터가 나를 둘러싼 채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결국, 이곳에 떨어진 일주일 동안 한숨도 못 잤다. 식량은 아껴 먹은 덕에 아직 며칠 분의 여유가 남아 있지만, 잠을 자지 못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커피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한순간이라도 의식을 놓았다간 몬스터의 밥이 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베어낸 것일까. 사흘째 되던 날 오백 마리를 돌파했을 때, 나는 세는 것을 멈췄다. 주위에 있는 녀석들을 모두 죽인 뒤에야 겨우 쉴 수 있었고, 그것도 곧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놈들 때문에 방해받기 일쑤였다.
아무리 걸어도, 아무리 뛰어도 끝나지 않는 첩첩산중. 아예 확 불이라도 질러서 전부 태워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었기에 전부 도륙해 버리려고 하던 찰나, 너무나도 반가운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법 실력이 있는 이들인 듯했는데,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어떻게 만난 사람들인데 쓰러지게 놔둘쏘냐. 난 그대로 일 검에 길을 막아 세우던 자이언트 오우거를 베어냈고, 주위에 널려 있던 자잘한 몬스터까지 전부 처리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내 난입에 표정이 밝아지더니 나를 도와 몬스터를 쓰러뜨려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희는 브리튼 공국 소속 팬드래건 가문의 수색대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귀하의 성함과 출신을 알 수 있겠습니까.”
브리튼의 팬드래건. 그 익숙한 이름에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적어도 아주 생뚱맞은 오지에 떨어진 것은 아니구나.
꽤 실력이 있어 보인다 했더니 팬드래건 가문의 기사라니. 내가 그들을 구해줬기 때문인지 공손한 모습이었지만, 눈동자 한쪽엔 명백한 경계심이 있었다. 좋은 태도다. 이런 산맥에서 맨몸으로 돌아다니는 녀석이 제정신일 리는 없으니까.
“내 이름은…….”
나는 오스티아라고 칭하려 했다. 무언가의 부작용으로 텔레포트가 실패했고, 오지에 떨어지게 되었다. 브리튼의 영애인 엘리시아의 친구인 것을 알게 되면 상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내 정신은 너무 몰려 있었고, 지금까지의 상황이 너무 좆 같았다.
“레이오스 폰 리베라.”
“…예?”
딱.
손가락을 튕기자 머리색을 바꿨던 아티팩트가 해제되고 찬란한 금발이 햇빛 아래 드러난다. 그에 기사들의 턱이 서서히 벌어졌다.
“답례는 됐으니까, 닥치고 빨리 성으로 안내해라.”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망나니란 악마를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