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53)
망나니학 개론-53화(53/300)
#053
[SYSTEM: 성검(聖劍) 엑스칼리버를 획득하셨습니다.] [상태창]이름- 엑스칼리버
등급- 신화
성향- 성(聖)
칭호
-절대적인 선(善)
-불패(不敗)의 성검
제작- 멀린
*현재 엑스칼리버는 비각성 상태입니다. 소유주와 링크 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합니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에 쥐어진 검을 바라보았다.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겪은 듯 군데군데가 녹이 슬어 있는 낡은 검 한 자루. 어딜 보아도 그 유명한 엑스칼리버라 불리는 성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것이 엑스칼리버의 본모습이 아닌 것을 안다. 이대로 내 마나를 흘려 넣으면 표면에 균열이 일면서 상서로운 빛과 함께 대륙 최고이자 최강의 검의 모습을 되찾겠지.
다만, 왜 그것이 내 손에 쥐어져 있는가가 문제였다.
“…내 거 아니었어?”
앨리스는 묘하게 풀이 죽은 얼굴로 내 손에 들린 검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에 나는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엑스칼리버의 손잡이로 가져갔다.
파지직-
“앗?!”
그러자 자색 스파크가 번쩍이며 앨리스의 손을 밀어낸다. 명백히 그녀를 거부하는 반응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엑스칼리버는 성검이라고 불리는 만큼 소유하려면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했다.
첫 번째, 드래곤의 핏줄일 것.
두 번째, 여신에게 선택받았을 것.
앨리스는 두 번째 조건에 해당했지만, 나는 그 두 개의 설정 중 아무것도 들어맞는 것이 없다.
리베라가의 계보엔 드래곤의 핏줄이 섞여 있지도 않을뿐더러 여신은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
예전에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레이오스의 몸에 빙의하게 되면서 여신의 선택을 받았는지 몸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여신의 표식은 분명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머니 쪽에 무언가 있다는 건데.’
내 기억으로 레이오스의 어머니는 어느 시골 마을의 처녀라고 짤막하게 몇 줄 서술되었을 뿐이다. 작가님이 주신 설정에서도 특별한 것을 보지 못했는데.
“엘리시아.”
이번에는 멍하니 한쪽에서 서 있던 엘리시아를 불렀다. 그녀의 본가인 팬드래건은 드래곤과 맞닿아 있는 가문. 그렇다는 것은 그 계보를 잇고 있는 엘리시아 역시 엑스칼리버의 소유주가 되기에 적합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파지직.
“꺄악?!”
불쑥 뽑혀 나온 엑스칼리버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내 부름에 천천히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앨리스 때처럼 자색 스파크가 일어나 접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거 참.”
드래곤의 핏줄도 안 되고, 여신의 선택을 받은 이도 안 된다. 그렇다면 내 손에 엑스칼리버가 뽑힌 이유는 무엇이지?
“여, 여기 이 천을 사용하세요.”
엑스칼리버의 칼집으로 유명한 아발론은 현재 소실된 상태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으니 아무도 모르는 대륙 어딘가에 처박혀 있겠지.
그렇기에 엘라인은 급하게 천을 가져와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엑스칼리버의 볼품없는 검신을 그것으로 덮은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멜롯 궁성이라 근처에 있는 사람이 적은 것은 다행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비롯해 궁성의 호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할 것은 해야겠지.
“엘라인, 마력 서약서를 준비하도록.”
내가 엑스칼리버를 얻었다는 사실이 밖에 알려지게 된다면 귀찮아질 터.
곧 내 존재를 알릴 시기가 온다. 굳이 지금 이목을 끌 필요는 없기에 나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비밀을 맹세할 것을 약조하는 서약서를 쓰게 했다.
앨리스는 끝까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원래 사용하던 대검은 아카데미 입학 직전에 나와 있었던 싸움으로 반토막이 난 지 오래였다. 적당한 검을 구해준다고 말만 했지 몇 달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엑스칼리버를 쥐여주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그것이 내 손으로 들어온 이상, 앨리스에겐 적당한 것을 챙겨주어야겠다.
마치 줬다 뺏는 것 같아 우스운 모양새였지만, 솔직히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단지, 미래에 대해 살짝 걱정이 들었을 뿐.
‘앨리스가 엑스칼리버를 얻지 못한다면 이번 각성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하는 건가.’
주인공이 각성하는 방법은 한두 가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만, 엑스칼리버에 의한 건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이었기에 아쉬울 따름이었다.
내가 엑스칼리버를 뽑은 것을 비밀로 하겠다는 마력 서약서를 작성한 우리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내일 일정을 위해 편히 쉬기 위해서라지만, 일련의 소동을 정리하기 위해서란 명목도 있었다.
참고로 엑스칼리버가 뽑혀 나간 구멍엔 다른 적당한 것을 넣어두었다. 그러곤 무언가의 핑계를 대어 그 구역을 폐쇄했고, 지금은 가문의 직계를 제외하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슥.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방에 돌아온 나는 엑스칼리버를 꺼내 들었다. 검신을 가리던 천이 풀어지자 마찬가지로 볼품없는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
그것을 보고 있자니 살짝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원래 내 소유는 마검 티르빙. 상처를 입고 잠든 그녀를 깨우지도 못했는데 새로운 검을 손에 넣었다.
“나도 모르겠다.”
머리를 박박 긁으며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엑스칼리버에 마나를 주입했다.
드드드드.
그러자 검이 얕게 떨리며 작은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그와 동시에 검의 표면에 실금이 가기 시작한다. 평범했던 철검의 모습이 떨어져 내리고 상서로운 빛이 그곳을 뒤덮는다. 머지않아 엑스칼리버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름답군.”
검신부터 자루까지 번쩍이는 황금색 위로 푸른 장식이 들어가 있다. 티 하나 없는 검날은 그 어느 것이라도 베어낼 듯 날카로웠으며, 광택이 감도는 검신은 그 어떤 보석보다 값어치가 있어 보였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형태였다. 티르빙 역시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지만, 엑스칼리버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면.”
티르빙과 마찬가지로 성검이라 불리는 엑스칼리버 역시 자아를 가진 에고 소드. 주인공에게 리버라 불리며 귀엽고 귀여운 백치미를 뽐내던 소녀가 나오길 기다렸지만, 얼마를 기다려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파아앗-!
다만, 갑작스러운 빛이 검에서 뿜어져 나와 방 안을 뒤덮는다. 원작과는 다른 전개에 움찔하며 그것을 놓을 찰나, 찌를 듯한 그 빛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자니 이질적인 바람이 내 뺨을 훑고 지나갔다.
“…이건?”
그와 동시에 나는 착 가라앉은 두 눈으로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나는 분명 방 안에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주위의 풍경은 넓은 초원 위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크리스와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 하지만 그때는 공간 자체를 바뀌어 버린 것이라면, 이번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심상의 세계인가.”
“정답.”
홀로 중얼거린 내 말에 시원스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대답을 해왔다. 그에 고개를 들어 눈앞을 바라보니 어느새 자리하고 있는 한 여성을 볼 수 있었다.
“너는, 이 검에 깃든 존재인가.”
“정확히는 엑스칼리버 그 자체라고 해야겠지만.”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금발 머리의 여성이 우아한 태도로 인사를 해왔다. 나이는 대략 나보다 조금 연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 원작에서는 작은 소녀로 나왔을 터. 리버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중후반부, 주인공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아.”
그에 나는 무언가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엑스칼리버가 어째서 나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녀의 모습이 아닌 것은 나의 강함에 있었다.
주인공이 그녀를 손에 넣었을 때는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했을 때. 그러니 엑스칼리버의 수준 또한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제 주인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존재이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수준에 올랐다. 그러니 엑스칼리버 역시 그에 걸맞은 격으로 나에게 보인 것일 터.
“어째서 나를 택했지? 인과의 관계에서 네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나보다 먼저 너를 잡은 소녀였을 터.”
“고리타분한 이야기 전에 뭐라도 마시겠어? 누군가 이곳에 온 것은 오랜만이라 조금 들뜬 기분이거든.”
살포시 미소 지어오는 그녀의 얼굴은 아무리 나라도 거절하기 힘들었다. 아무렴, 자신의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족히 몇백 년은 저 좁은 바위틈에서 잠들어 있었겠지.
원작에서도 성검이라는 운명이 너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다. 자신같이 특별한 검은 주인을 만나기도 너무 힘들다면서.
리버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어느새 나와 그녀 사이에 새하얀 탁자가 나타났고, 그 위로 진한 향기를 풍기는 홍차와 여러 다과가 차려졌다.
“심상의 세계라 현실로 가져갈 수는 없지만, 마음껏 먹어.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충분히 음미할 수 있으니까.”
그녀의 태도는 분명 호의적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잠자코 자리에 앉아 그녀가 차려준 다과를 음미했다.
“…맛있군.”
“그렇지?”
내가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이 기쁜 듯 그녀는 내 앞에 앉아 방긋거리며 웃어왔다. 그러곤 희고 가는 손가락을 들어 새하얀 탁자 위를 훑었다.
“왜 그 아이가 아니라 당신을 택했냐고 했지. 물론 당신 말이 맞아. 정해진 인과에 따르자면 나는 당신이 아니라 그 아이를 택했어야 했어.”
“그렇다면 왜?”
왜 그런 것이냐고 물은 질문에 리버는 별다른 이유가 있겠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더 재미있어 보이잖아.”
“…뭐?”
“거기에 솔직히 취향 차이도 있고. 난 보다시피 여성성을 가지고 있어서 주인으론 여성보단 남성이 좋거든. 그래도 꽤 미의식이 엄격하단 말이지? 지금까지 많은 남성이 날 뽑으려 했지만, 다 성에 차지 않아서. 아, 당대 팬드래건 가문의 가주인 아서라는 남자가 조금 마음에 드는 얼굴이긴 한데. 조금 투박하게 생겨서 말이야. 나는 곱상하게 생긴 게 취향이거든. 당신처럼 말이야.”
“…무슨.”
그녀의 말에 나는 얼굴을 감싸 쥐며 틀에 박힌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성검 엑스칼리버에게 선택받은 이유가 고작 얼굴 때문이라니.
반대로 앨리스가 자신이 거절당한 이유를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래서 당신이 나를 쥐었을 때, 냉큼 뽑혔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야? 나를 쥘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고?”
리버는 보는 사람이 상쾌해질 정도로 시원한 미소를 지어왔다. 그에 나는 관자놀이가 지끈지끈해졌다. 내가 아는 리버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순박하고 착한 백치미 리버를 돌려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말이야.”
“……?”
리버는 웃는 낯 그대로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어떤 인간 여자를 만나던 나는 상관없어. 나는 네 검일 뿐이니까.”
지금까지의 따뜻한 목소리와는 달리 높낮이가 사라진 그녀의 어조에 나는 등골이 짜르르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성(聖)과 마(魔)는 서로 반대되는 관계. 즉, 서로가 양립할 수 없다.
스릉.
시퍼런 빛을 내뿜는 엑스칼리버의 끝이 내 코앞에 겨누어졌다.
“하지만 고작 마검 따위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것은 성검으로서의 수치야. 몇백 년 만에 나타난 계약자가 마검의 소유자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며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심상치 않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곤 진득한 살기를 피어 올리며 나에게 말했다.
“나야, 걔야. 여기서 딱 정해.”
둘 중 하나는 이곳에서 뼈를 묻을 거라며 리버는 나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시발…….’
엑스칼리버는 상상외로 미친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