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60)
망나니학 개론-60화(60/300)
#060
바닷바람은 선선했지만, 카멜롯 궁성의 밤공기는 쌀쌀하기 그지없다. 두 개의 달이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나는 연무장의 중심에서 아서와 마주 섰다.
갑작스럽게 성사된 대련이었지만, 시야 한편에 떠올라 있는 메시지를 보아하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듯싶었다.
[절대적인 개연성이 작용합니다.]이 대련은 원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였다. 그것으로 인해 주인공이 인정받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주체가 나로 작용했다. 엑스칼리버를 내가 얻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휘릭.
아서는 잠시 몸을 푼다며 연무장에 비치된 가검을 가볍게 휘두른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서 역시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나와 비슷한 경지라는 소리가 되었지만, 경험적인 면에서 차이가 갈렸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실전을 겪어왔으며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헤쳐 나온 끝에 브리튼의 영웅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치트 키가 있다곤 하지만, 그는 이미 완성된 괴물에 가까웠다.
‘오히려 검성보다 더 압박감이 심하군.’
그 앞에 서자니 손바닥이 흥건하게 젖어왔다. 검성과의 대련은 압도적인 격차 때문에 오히려 긴장되지 않았다. 미지는 무지(無知)나 마찬가지라고 하니까. 하지만 아서와는 눈에 보이는 격차에 그 무게를 더 실감하게 되었다.
정면에서 붙는다면 승산은 적을 터. 하지만 이것은 이기기 위한 대련이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서 경험을 배울 작정이었다. 검성이 말했듯 내 검의 깊이는 얕다. 그러니 나보다 더 완성에 이르러 있는 그의 것을 가져온다면 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연무장 한쪽으로 자리하는 인기척에 시선을 돌렸다. 대련의 소식을 들은 것인지 몇 명의 인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에 아서를 바라보니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미리 이야기를 해두지 않아서 미안하군. 형식상의 절차지만, 저들이 있어도 괜찮겠지?”
“문제없습니다.”
아마, 그의 심복이거나 가문의 중진일 터. 그렇다는 것은 내 신분을 얼추 알고 있어 경거망동하지 않을 테니 문제는 없었다.
예열을 끝마친 것인지 그는 가검을 내려놓고 기사가 가져온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엑스칼리버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날이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예기를 뿜어내는 것이 상당히 이름 있는 검일 터. 준비를 마친 아서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엑스칼리버를 얻었다고 들었다. 그것을 들어줄 수 있겠나.”
명령이 아닌 권유에 나는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와 단둘이 대련을 하는 것이면 상관이 없었으나, 주위에 지켜보는 이목들이 있다. 그것에 주위를 슬쩍 둘러보자 아서는 내 염려를 깨달았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끄덕여 왔다.
“이들은 브리튼의 기둥일세.”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으나, 공왕인 아서가 그렇게까지 말해오는데 엑스칼리버를 뽑지 않는다면 그의 명예를 얕잡아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어 허공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와라, 엑스칼리버.”
몇 번이고 봐왔던 눈부신 광채가 내 손안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 직후 모습을 드러낸 새하얀 성검의 자태에 주위에 있던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감탄을 흘렸다.
“저것이 성검 엑스칼리버!”
“설마 내 대에서 전설이 실현될 줄이야.”
가볍게 엑스칼리버를 움켜쥐자 주위에 있던 기사들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연신 찬사를 내뱉었다. 그것에 아서 역시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검을 들었다.
“엑스칼리버의 주인 정도 되는 자라면, 마땅히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나.”
“마침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하하.”
아서는 호전적인 내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순순히 밀릴 생각은 없었다. 반년이란 짧은 시간이라곤 하나 나 또한 이 몸으로 지내오면서 적지 않은 강함을 쌓아왔다.
이때껏 알로켄 때를 제외하곤 진심으로 누군가와 부딪쳐 본 적이 없다. 마침 그는 나와 비슷한 경지로 딱 좋은 상대. 그렇기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 딸을 맡기기에 적합하니.”
“…예?”
“뭘 빼고 그러나. 설마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겠지?”
갑작스럽게 방향이 뒤틀린 이야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서는 그런 내 반응을 무언의 긍정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거리를 벌리곤 본격적인 대련의 시작을 준비했다.
“무릇 어떤 일의 시작과 끝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법.”
“…아.”
갑작스럽게 들려온 익숙한 대사에 나는 무심코 탄성을 내질렀다. 저것 역시 원작에서 아서가 주인공과 대련을 하기 직전에 내뱉은 대사. 그는 그 두루뭉술한 말의 뜻을 생각할 겨를 없이 질풍처럼 쇄도해 온 아서의 검을 받아내는 데 급급했지만, 나는 한껏 고양된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말은 즉, 자신의 성이 찰 때까지 대련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주인공과의 대련은 저녁부터 동이 틀 무렵까지 계속되었으니, 그의 말은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하하하하-!”
내 말에 아서는 진심으로 만족한 듯 흡족한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곤 단숨에 태도를 바꾸어 어둠을 꿰뚫는 시뻘건 안광으로 나를 바라봐 왔다.
“여흥은 여기까지.”
그와 동시에 사방을 짓누르는 기세가 전신에 닥쳐왔다. 단련된 내 육체마저도 여기저기 비명을 지르며 삐걱거렸다. 하지만 고작 이것으로 약한 소리를 할 수는 없는바.
“…….”
몸 깊숙이 잠들어 있던 마나를 끌어 올리자 실낱같은 푸른 기운이 내 주위에서 피어올랐고, 아서가 발한 기세를 부드럽게 밀쳐냈다.
나나 아서의 경지에 이른 강자들의 싸움은 단순한 칼부림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검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역을 확립하는 것. 나는 내 영역을 파고든 그의 기세를 흩어버리고 내 권역을 공고히 다졌다. 그것에 아서의 눈이 가늘어지며 새빨간 눈동자 속으로 짙은 호승심이 가득 채워졌다.
“범상치 않은 것 같다곤 생각하고 있었지만, 황제가 괴물을 키워냈군.”
“과찬을.”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라 하는 것인지. 나는 등골을 오싹오싹하게 만드는 무지막지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아서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후웅.
아서의 검은 그의 체격과 마찬가지로 폭이 넓은 대검이었다. 하지만 대검은 그 둔중한 모습과는 달리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며 벼락처럼 휘둘러진다. 그 파공성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흘려? 아니, 어설프게 피했다간 오히려 빈틈을 찔린다.’
검이 길고 커다란 만큼 그 궤적 또한 한참이나 규격을 벗어나 있다. 마음 같아선 이쪽에서 파고들거나 아예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아서의 기세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정면을 선택했다. 엑스칼리버의 끝을 붙잡고 위에서부터 우직하게 떨어져 내리는 그의 검을 받아냈다.
쿵-!
“크윽……!”
묵직한 충격이 전신을 아우른다.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인지 내디딘 발밑으로 연무장 바닥에 균열이 일었다.
‘사람인지 의심스럽군.’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힘이 마치 오우거의 공격을 받아냈을 때와 같았다. 아직 마나를 일으키지 않고 순수한 육체의 힘과 기술을 겨루는 준비운동이라고 보았을 때, 아서의 힘은 확실히 남다른 격이 있었다.
하지만 싸움은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닌바. 정면에서 검을 받아냈기에 그 기세는 많이 떨어졌다. 잘게 경련이 일어나는 팔로 그것을 흘려보낸 뒤, 빈틈이 생긴 그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아무런 기교도 기술도 없는 단순한 카운터. 막고 때린다는 정석적인 공격이었지만, 이런 우직한 공격은 오히려 정석적인 것이 더 잘 먹히는 법이다. 하지만 예상했다시피 그는 가볍게 그것을 튕겨냈다. 어둠 속에 튀어 올라 사라지는 불똥을 눈에 담으며, 이번에는 내 쪽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흡!”
나는 상대적으로 아서보다 체격도 작고 무게도 적게 나간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잠깐의 도움닫기. 내가 정면에서 그의 공격을 받아냈으니 아서 또한 그러리라 생각했다. 브리튼의 영웅은 그런 남자였으니까. 과연, 그는 두 다리를 굳건하게 땅에 붙이고 서서 내가 했던 것처럼 검을 눕혀 내 공격을 받았다.
쿵-!
아서의 것보단 조금 가벼운 소리였지만, 내 진심을 담은 일격이다. 그것이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아서의 무릎이 일순간 풀리며 살짝 비틀거렸다.
‘빈틈.’
그는 나처럼 정면에서 검을 받은 뒤, 흘린다는 기교를 취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순간 드러난 작은 틈에 나는 힘껏 발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발차기가 그의 무릎을 가격한다. 그것으로 아서는 균형을 잃고 넘어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다리를 뒤로 빼는 것으로 내 공격을 수월히 피해내었다. 위기는 곧 기회, 자신의 검을 짓누르던 내 검의 압박이 약해지자, 커다란 대검이 다시금 제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이번엔 허공을 가르고 베어지는 선이 아닌, 공간을 밀어내며 닥쳐온 면이 내 전신을 두들겼다.
쿵-!
“……!”
나는 검을 역수로 세워 내 몸을 가리곤 검면으로 닥쳐온 대검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 충격은 적지 않았다. 마치 달려오던 자동차에 부딪힌 듯 일순간 호흡이 끊기며 시야가 아득해진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아서가 이미 코앞까지 육박한 뒤였다.
샤아아악-!
나는 가까스로 몸을 뒤로 젖혀 내 몸을 이등분하려는 대검을 피해냈다. 아니, 분명 피해냈건만 그 무지막지한 검풍에 휩쓸려 균형을 잃었고, 아서는 그 위에서 다시금 나를 찍어 눌러왔다.
콱-!
대검이 연무장 바닥을 뚫고 깊숙이 박힌다. 나는 그 직전에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려 가까스로 거리를 벌린 상태. 일 초만 늦었어도 정말로 황천길을 건널 뻔했다.
‘원작에선 봐주면서 했던 것 같은데.’
그땐 주인공과의 실력 차가 워낙 많이 나서 그랬던 것인지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는 식으로 대련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노리고 힘으로 찍어 누르는 난타전. 나도 아서도 한 치의 앞을 알 수 없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방이었다.
잠시간 대치가 이루어졌다. 검을 몇 번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적된 충격 때문에 손끝이 잘게 떨려온다. 하지만 아서 또한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하며 나는 검을 굳게 다잡았다.
툭.
그는 연무장 바닥에 깊숙이 박힌 자신의 검을 뽑아 들어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그러곤 더 없이 정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왔다.
“…정말로 놀랍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주위에 있던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인 태도였다. 다만, 다들 입을 벌린 채 넋을 잃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겸손은 떨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나와 검을 맞대 진심으로 찬사를 해준 아서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건 그렇고 슬슬 대련이 끝나가는 분위기다. 무협지에도 그러지 않나, 고수는 몇 번의 싸움만으로 상대의 실력을 파악했다고.
아서 정도의 실력자라면 내 경지를 어느 정도 가늠했기에 저렇게 놀란 것일 터.
“…….”
그렇기에 작은 희망을 담아 그를 바라보았지만, 아서는 흥이 오른다는 얼굴로 다시금 제 검을 세워 들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우웅-
커다란 대검 위로 시뻘건 기운이 피어오른다. 흡사 화염에 휩싸인 것 같은 모양새. 그것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기운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 잠자기는 틀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