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61)
망나니학 개론-61화(61/300)
#061
연무장의 분위기는 다시 고조되었다. 본격적으로 싸워보겠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 아서의 검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붉은 오러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단지 오러를 사용했을 뿐이지만,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이 내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우웅-
나 역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엑스칼리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그 위로 상서로운 빛이 서리기 시작한다. 본디 내 오러의 색은 바다처럼 푸른 쪽빛이었지만, 엑스칼리버의 영향으로 새하얀 우윳빛 오러가 솟구쳤다.
진홍과 순백의 대립.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려는 그 첨예한 싸움에 연무장 바닥에 균열이 일며 신음을 토해냈다.
“드래이그의 찬가.”
아서의 대검이 가로로 눕혀지며 그 위에 덧씌워진 오러가 몸집을 부풀린다. 그와 동시에 2, 3부에서나 나올 법한 기술의 등장에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검을 다잡았다.
‘저거 잘못 막으면 다치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텐데.’
설마 원작에서 마계 간부를 산산조각 냈던 그 기술을 이곳에서 사용할 줄은 몰랐다. 넘실거리는 붉은 기운을 보니 손대중할 것 같지도 않기에 작게 숨을 내쉬곤 전신을 긴장시켰다.
가장 익숙해진 검술의 기수식을 취한다. 그에 아서의 두 눈이 빛을 발하며 흥미를 보였다. 입가가 가늘어지는 것이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악동의 모습과 겹쳐 보여 내 각오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파아아앗-!
시뻘건 오러의 격류로 휩싸인 대검이 휘둘러진다. 마치 세상을 반으로 베어 가르는 착각 속에 나는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의 연어처럼 거칠게 그것을 뿌리쳤다.
검성류(劍聖流) 오의 별무리(Constellations).
마족, 람마스의 몸을 베어 갈랐던 검이 내 손아귀에서 펼쳐진다. 새하얀 빛의 궤적이 허공을 가르며 어둠을 밝혔고, 반으로 갈라지던 세상의 파멸을 막아냈다.
쿵-!
거친 충격이 검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상단에서 내려찍은 그의 검을 정면에서 막은 것이 대련이 시작되었을 때와 같은 모양새였지만, 우리 둘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해져 있었다.
기기기긱-
맞댄 검을 뒤로 마주한 아서의 눈동자는 타오르는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선명할 정도로 피어오르는 그 격렬한 투기는 질릴 정도였지만, 어쩌면 그것이 아서라는 남자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어울리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나도 질 수는 없을 터. 마나의 양이라면 같은 경지의 사람에게 질 생각은 없다. 아서도 브리튼의 공왕이라는 직위상 좋은 것을 많이 먹었을 테지만, 나는 황자라는 입장을 이용해 그동안 많은 영약을 섭취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웅웅웅-!
“……!”
엑스칼리버를 뒤덮은 새하얀 오러가 점점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오러는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그 형태와 성질이 변화했다.
그것은 앞서 있었던 몇 번의 싸움으로 얻은 깨달음. 검 위에 또 다른 검이 덧씌워진 그 모습은 흡사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인 오러 블레이드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짝퉁이지만.’
“헉!”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서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까지 놀라는 목소리를 토해낸다. 내심 느껴지는 쾌감에 입가가 씰룩거리는 걸 가까스로 참아내며 나는 더욱더 검을 밀어 넣었다.
기긱- 기기긱-
순백의 오러 블레이드가 붉은 오러를 베어 가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집약과 밀도의 차이. 물론 이것만으로는 아서를 이길 수 없겠지만, 내 실력을 인정받을 수는 있을 터.
“흡!”
그것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일순간 아서의 두 팔에 서려 있던 근육들이 요동친다. 그와 동시에 맞댄 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거력에 나는 헛바람을 토해냈다.
오러에선 내가 우위에 있었지만, 전력을 다한 힘은 아서가 앞섰다. 그 기묘한 구도에 전신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낼 찰나 아서가 먼저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
그것이 또 무언가의 준비인 듯싶어 잔뜩 경계하고 있자니 그는 자신의 대검을 바닥에 꽂아 넣으며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대단하군. 검성의 후계라 불려도 손색없을 실력이야!”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에 살짝 따라가지 못해 주춤하고 있자니 그는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맞잡으니 억센 손길이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거칠게 휘둘러 댔다.
“대련은, 이것으로 마치고 잠시 진지한 이야기를 해볼까.”
* * *
우리는 장소를 옮겨 다시 아서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의 손짓에 따라 맞은편 자리에 앉으니 대련에 참관했던 기사들이 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제 주인의 뒤로 기립했다.
‘멋있네.’
나도 저런 기사들을 밑에 거느릴 수 있을까. 황자라는 이름 아래 내게도 편성된 기사단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황궁 내에서도 쭉정이에 불과한 녀석들. 다른 기사들보다 계급이 미천하거나 실력이 부족해 한직으로 내몰린 부류였다.
당연히 망나니라 소문난 내 밑에 있는 것에 만족할 리도 없을 테고, 불만만 가득하겠지. 예전에 아우구스의 일로 잠시 소란이 일어났을 때 내 방을 찾아왔던 세 녀석의 태도가 보통일 터.
“부럽나?”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아서가 씩 웃으며 말해온다. 속마음을 들켜 살짝 찔렸지만, 나 역시 담담한 미소로 그에 답했다.
“아쉽게도 제 주변엔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이 적어서 말입니다.”
“차차 쌓아가는 법이지. 자넨 아직 젊지 않나.”
시종이 준비해 준 차를 마시며 우리는 가볍게 담소를 나눴다. 주제는 주로 아카데미 생활에 관한 것. 그리고 엘리시아의 근황에 관해서였다.
그것에 대해선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녀의 아카데미 생활은 완벽하기 그지없으니.
“…그나저나 검성의 후계라는 이야기는.”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나는 슬쩍 운을 띄웠다. 아까 전부터 궁금했던 내용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모두 황제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런 만큼 함부로 이야기가 나돌겠지 않겠다고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더 빨리 이야기가 퍼져 의아했던 차다. 그러자 아서는 별것 아니란 투로 나에게 말했다.
“이번 제국행은 검성께 초대를 받아 이루어진 일이다. 그렇지 않더라면 내가 그곳에 갈 일은 없었겠지.”
“그렇습니까.”
아서와 검성의 관계. 이것은 나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기에 살짝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다는 것은 검성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겠지.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던데.”
“아직 많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소드 마스터에 오르는 단서가 잡힐 듯 말 듯 하면서도 막막하기 그지없으니. 무협지 같은 데선 검성 같은 고수가 툭 하고 심득은 던져줘서 오르는 경우를 종종 보아서 도와줄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검성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러면 개나 소나 다 소드 마스터를 찍지 왜 좌절하냐고 나를 구박해 왔다.
‘깐깐한 영감탱이.’
내 대답에 껄껄 웃던 그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황위를 노리고 있는가?”
더없이 직설적인 물음이다. 나는 살짝 갈등에 잠겼다. 아서의 질문은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것이었다.
황제가 된다. 솔직히 스토리 초반엔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방향이지만, 지금에 와선 꽤 매력적인 카드가 되었다. 수많은 강자를 거느린 채 시련을 맞이한다면 좀 더 수월하게 그것을 돌파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원작의 전개가 뭉그러지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이야기를 그르치면서까지 진행할 만큼의 메리트가 있을까.
원작의 아서라면 그는 델르케와 마찬가지로 신뢰를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의리와 신의를 중요시하며 주인공이 제국의 적이 되어 쫓길 때도 위험을 감수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했으니.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 난 겨우 결정을 내렸다.
“…곧 제국은 사오 갈래로 분열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잔잔했던 아서의 눈 위로 가벼운 파동이 일어난다. 설마 황자인 내가 제국을 부정하는 말을 내뱉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렇게 된다면 작금 황실은 권위를 잃고 옥좌를 차지하기 위한 수많은 세력이 제국 곳곳에서 일어나겠죠.”
“그 뜻은?”
몰락이 예정된 황실의 권위에 굳이 발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내 아카데미 생활이 끝나면 제국 내에서부터 반기를 드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며, 그들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제국의 분열을 원하는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받아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원작의 카리우스 역시 허울뿐인 적통의 핏줄만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으나, 주인공의 동료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겨우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미래는 큰 변환점이 없는 이상 예정된 사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담담히 고했다.
“저는 황위에 오를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런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결정을 뒤바꿀 수 있다. 그런 뉘앙스로 말을 끝내자 아서는 무언가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분명 나를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 일부분엔 검성의 입김이 좋게 작용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정말로, 많이 컸구나.”
뜬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보니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딸을 잘 부탁하네.”
그 말에 관해선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아서가 돌아온 뒤로는 엘리시아에게도 여유가 생겼기에 우리는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녔고, 여한이 없을 정도로 실컷 놀았다.
그리고 아카데미 개강의 사흘 전, 슬슬 수도로 돌아가야 했기에 우리는 모두 아쉬움을 흘렸다.
“아, 다음 방학에도 이렇게 다 같이 놀고 싶네.”
베르너가 정말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진다. 그에 레이시스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말해왔다.
“…그렇다면 다음 방학엔 저희 셰필드 가문으로 초대해도 괜찮은데요.”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그녀의 말에 엘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법사의 중심인 셰필드 가문의 영지도 제국 내에서 손꼽을 정도로 발전한 곳이었다. 다들 괜찮겠다며 다음 방학을 기대하자 레이이스가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어왔다.
일정이 모두 끝나고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먼저 수도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또 내버려 두고 간다며 앨리스가 투덜거렸지만, 잠시 황궁에 들렀다 오겠다는 내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서와 엘라인에게 인사를 끝으로 나도 황궁으로 텔레포트를 했다. 몇 번이고 맛봤던 익숙한 기시감과 함께 황궁에 도착한 나는 고개를 숙여오는 마법사들을 무시한 채 그대로 황궁 마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십니다, 전하. 또 어쩐 일로…….”
몇 주 만에 재회한 아라센은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맞아준다. 나는 그에게 가벼운 인사와 함께 브리튼에서 가져온 선물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것을 전해줄 겸,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
“어떤 것입니까?”
“황궁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할 때, 마법사가 임의로 좌표를 바꿀 수 있나?”
“…그건 중죄에 해당하는 일입니다만.”
황궁에서 사용되는 텔레포트 게이트는 각 좌표가 미리 입력되어 있는 아티팩트에 마나를 주입하는 간단한 원리란다. 그렇기에 마법사가 헷갈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이상 내가 말한 오류는 발생할 리가 없다고 말해왔다.
“그렇단 말이지.”
목표 장소가 바뀐 것도 아니고 상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렇다는 것은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조작한 것일 터.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라센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에 난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그에게 동행을 요구했다.
황궁의 텔레포트 게이트. 방금 나왔던 그 안으로 다시 들어서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의자.”
내 말에 그들은 황급히 의자 하나를 가져와 내 뒤에 내려놓는다. 난 그것에 걸터앉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챙-!
“……!”
마법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된다. 아라센 역시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봐 왔다.
“저, 전하 대체 무슨 일…….”
“십 분 준다.”
“…예?”
“십 분 줄 테니까, 날 브리튼 영지의 하랄 산맥 상공으로 텔레포트 시킨 놈을 찾아서 데리고 오도록.”
못 데려오면 너희들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