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63)
망나니학 개론-63화(63/300)
#063
보통 마법사는 높은 곳을 지향하는 특성이 있다. 그렇기에 황궁 마탑 역시 직위와 경지가 높을수록 상층에 거주했지만, 딱 한 명 지하 창고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마탑주와 이야기를 끝낸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마탑의 지하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발끝엔 한기가 감돌며 지나갔다.
“저긴가.”
마탑의 운영에 사용되는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 가운데 유일하게 팻말이 걸려 있는 곳이 하나가 있었다. 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자니 안쪽에서 나던 인기척이 뚝 멎었다.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열어라.”
꼴에 없는 척을 하려는 것인지 필사적으로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행동을 멈췄지만,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감각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문 너머에 누군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끝까지 시치미 뗄 생각인가.”
순탄하게 일이 진행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비틀린 천재의 욕망과 고집은 어설픈 태도로는 바로잡기 힘들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고 힘껏 뻗었다.
쾅-!
창고 문의 경첩이 박살 나며 그 통째로 나가떨어진다.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내딛자니 내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모를 생명체가 담긴 유리병, 수많은 서적과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이 정말로 사람이 사는 공간인지 의심될 정도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코를 찌르는 악취마저 일어날 지경이었지만, 몬스터와 싸우면서 비위가 강해졌기에 그리 심하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어 발끝으로 그 쓰레기들을 밀고 안으로 발을 내딛자니 방의 주인이 발작하며 나에게 소리쳤다.
“무, 무슨 짓이오! 이곳은 엄연히 나의 연구실인데 이렇게 무단으로 침입해서…….”
덥수룩한 수염,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머리카락. 얼굴에는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옷은 몇 달은 갈아입지 않은 것처럼 삭아 있다. 나는 달려드는 그를 발로 툭 쳐 밀어낸 뒤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을 부르겠소! 감히 제국의 궁정 마법사에게 이런 폭거라니……!”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헛소리만 주저리 늘어놓는 녀석의 모습을 보아하니 조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방 안이 어두워 내 얼굴을 보지 못한 것 같기에 나는 탁자 위에 있던 점화석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우웅-
“…엇?!”
붉은 조명이 어두운 내부를 밝힌다. 가베인의 시선이 찬란하게 빛나는 내 금발에 못이 박힌 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탁자 위로 손을 가져갔다.
파지직-
“…보호 마법인가?”
점화석을 켤 때는 일어나지 않았던 반발력이 내 손을 밀어낸다. 지직거리는 스파크에 나는 가베인을 슬쩍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
‘이건 충격요법이 조금 필요하겠군.’
푸른 마나가 내 손 위로 피어오른다. 옅게 남아 있는 어둠을 몰아내는 그 불꽃에 가베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물러섰지만,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탁자 위를 향해 손을 내리쳤다.
캉-!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탁자 위를 감싸던 보호막이 산산조각 난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탁자 위로 주먹만 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
가베인은 설마 보호막이 깨질지 몰랐다는 듯 기겁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곤 제 몸으로 탁자 위를 가리며 필사적으로 내게 말했다.
“저, 전하! 송구하오나 이것은 제 연구 결과입니다! 이 누추한 곳을 찾으신 이유는 모르겠으나 조금만 시간을 주신다면 정리를 한 후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끝에 가선 아예 애원하는 모양새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제 몸까지 이용해 숨긴 것은 다른 마법사들이 보았다면 경기를 일으키며 가베인을 죽이려 했을 물건이니까.
“비켜라.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전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천재는 결국 금단의 것에 손을 댔다. 그가 품고 있는 것은 바로 마기(魔氣)의 결정. 가베인은 이것을 흡수함과 동시에 그토록 염원하던 경지에 오르지만, 그 반동으로 점차 인성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만약 주인공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희대의 마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터.
이제부터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해줘야 할 인재가 망가지는 꼴은 볼 수 없다.
퍽!
그렇기에 나는 다시금 발로 그의 몸을 밀쳐내었다. 그러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마기의 결정을 집어 들었다.
츠즈즈-
“아…….”
시커먼 마기가 결정에서 흘러나와 내 손을 물들인다. 그것을 본 가베인이 절망에 찬 얼굴로 헛바람을 토해냈다.
마기에 오염된 것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신성력을 사용하는 신관뿐. 내가 이것을 집어 든 시점에서 가베인의 죄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뭘 그리 낙담하고 있어.”
이제 와서 고작 이런 기운 따위에 몸을 뺏길 소냐.
“와라, 엑스칼리버.”
눈부신 빛이 내 손 안에 서린다. 나는 그것을 움켜쥐었고, 곧 새하얀 자태의 엑스칼리버가 구현되었다.
툭.
그 이후론 화려한 이펙트도 없었다. 단지 검 끝으로 결정을 툭 치는 것만으로 응축되어 있던 마기는 단숨에 형태를 잃고 흐트러진다. 아무리 강대한 마기라 할지라도 성검 앞에서는 무용지물. 순식간에 재로 변하는 마기 결정에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템빨이 좋긴 좋아.’
“…어, 어떻게.”
가베인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온다. 그에 나는 턱끝으로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와.”
* * *
나는 가베인과 함께 내 궁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니기에 파르시에게 부탁해 목욕하게 시켰다. 수염을 밀고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했다. 옷도 말끔하게 갈아입히니 제법 봐줄 만한 모습이 되었다.
“…….”
하지만 정작 그 본인은 안절부절못한 채 내 눈치만 바라볼 뿐. 소파에 앉아 무릎에 제 두 손을 올려놓은 채 경직된 자세로 곧 다가올 운명을 기다리는 듯했다.
“가베인.”
“…예, 예 전하!”
그는 내 부름에 허리를 꼿꼿이 폈다. 나는 파르시가 가져다준 차를 마시며 그의 처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막힌 벽을 뚫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 다만, 그 본성 자체를 고쳐놓아야 하는 게 문제인데…….’
“이번에 마탑주가 나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지. 그래서 약조하기를 원하는 마법사가 있다면 내 휘하로 들여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너를 점찍어뒀는데, 이의 있나?”
“…저, 말입니까?”
왜 하필 나를? 이라는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봐 왔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우수하고 과감한 녀석이 필요했거든. 예를 들어 천재였음에도 벽을 넘지 못하자 마기의 결정이라는 금단의 수단을 이용하려 했던?”
“…….”
내 말에 가베인의 몸이 움찔한다. 그러곤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누구에게나 절실함이 있지. 그 마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릇된 방법을 사용하려던 너를 탓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단지 네가 발버둥 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나는 그런 가베인을 달래듯 위로를 건넸다. 그는 오랫동안 홀로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다. 천재라는 이름에 그 누구보다 얽매여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까.
“…….”
푹 숙인 그의 고개 밑으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처음 만난 내 말에 저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라면, 얼마나 심신이 피폐해져 있겠는가. 나는 천재가 아니었기에 그의 심정을 전부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괴로움을 받아줄 수 있었다.
“…저는 머저리입니다. 남들은 전부 손쉽게 올라가는 벽도 몇 년 동안이나 넘지 못해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까요. 전하께서 저를 거두신다고 하셔도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확실히 그렇겠지.”
망설임 없이 나온 내 대답에 가베인의 고개는 더 바닥과 가까워졌다. 그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짓고 그의 멱살을 잡아 자리에서 일으켰다.
“저, 전하?!”
갑작스러운 내 태도에 그는 당황하며 버둥거렸지만, 나는 더욱 강한 힘으로 그를 끌어당겨 얼굴을 마주한 채 눈을 맞췄다.
“목숨을 걸고 마기의 결정을 흡수하려고까지 했는데, 더 두려운 것이 남아 있나?”
“…….”
가베인은 내 말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벌렸다.
“몇 년 동안 벽에 가로막혀 있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었다는 것부터가 하나의 재능이다. 너는 그렇게 자조하고 비난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계속 깎아내릴 생각인가?”
가볍게 있는 척만 하려 했을 뿐인데, 머리에 피가 쏠린 것인지 무심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가베인은 목이 졸려 답답할 법도 했지만, 이젠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않은 채 내 말에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멱살을 움켜쥔 내 손을 잡아왔다.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전하께선 무슨 짓을 해도 넘을 수 없을 높은 벽과 마주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몇 날 며칠을 새도, 한 달을 지새워도, 반년을 지새워도 일 년을 지새워도! 도저히 오를 수 없던 그 벽을 말입니다!”
힘이 부족한 그는 결국 내 손을 뿌리치는 일 따윈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흉흉한 불꽃이 그의 눈동자 안에 피어올라 있었다.
“이제 좀 살아 있는 사람 같군.”
역정을 토해내는 그의 모습에 씩 웃어주자 가베인은 자신이 감정에 휩쓸려 나에게 실례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고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그에 나는 힘껏 쥐었던 멱살을 놓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겠지?”
예전보다 많이 희석되었지만, 제국 내에 내 악명은 자자하다. 특히 그 중심인 황궁엔 아직도 내 욕이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니.
저주받은 망나니, 창녀의 아이, 무능의 화신.
그렇기에 나는 또다시 엑스칼리버를 손에 쥐고 새하얀 오러를 피워 올렸다. 세찬 마나의 격류가 일어나 방 안을 휩쓴다. 소드 마스터에 거의 근접한 격이 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고, 가베인은 그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네 눈앞에 있는 것은 정말로 그 소문 속의 망나니 같은가?”
“…….”
그는 감히 대답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나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자신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면 믿지 말도록. 대신 너를 선택한 나를 믿어라. 내가 너를 선택한 이상, 너의 잘못도 책임도 오롯이 내가 감당할지니. 네가 할 것은 나에게 변함없는 충심을 보이는 것이다.”
“전하…….”
“이의가 없다면, 이제 너는 내 것이다.”
짙은 웃음과 함께 그렇게 말하자 가베인은 보잘것없는 몸이지만, 충심을 다하겠노라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보잘것없긴 왜 없어. 너는 작은 개울을 가로막고 있는 벽에 살짝만 구멍을 뚫어준다면, 크리스를 이어 대마도사라 불릴 녀석이다.
“다만, 그 전에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부터 뜯어고치자.”
“……?”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자니 문득 과거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것에 미소를 흘리자 가베인이 움찔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실전을 치르며 수련하기엔 검성의 영지만 한 데가 없다. 명색이 제자인 몸인데 내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겠지.
“몬스터 소굴에서 밤새 싸우면 자신을 비하할 생각도 싹 사라질 거다.”
“…예?”
“예, 는 무슨. 아카데미 개강까지 사흘 남았으니 이번엔 가볍게 그 정도만 해보자.”
형이 제대로 한번 키워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