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65)
망나니학 개론-65화(65/300)
#065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옴과 함께 아카데미 2학기가 시작되었다.
앞서 말했듯 원작에서의 이 구간은 대부분 생략된 이야기였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주류를 이뤘고 행여나 글이 늘어질까 싶어 그것마저도 상당 부분을 쳐냈다고 한다. 출처는 내 전 선배의 기록 일지.
갑작스럽게 퇴사한 바람에 담당 작가들을 몇 명 떠맡게 됐지만, 다행히 일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이런저런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의 피드백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으니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다만, 편집자 본인이 소설 속으로 빙의하게 될 줄은 퇴사한 선배도 상상하지 못했겠지.
도시나 거리는 여름 날씨 때문에 푹푹 쪘지만, 아카데미 내부는 과연 제국 제일의 수준이라는 것인지 쾌적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동안 격렬했던 사건들이 먼 옛날의 일이었던 것처럼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아침이 되면 수업에 참석하고 과제를 한다. 주말이 되면 일행과 가끔 놀러 나갔다.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1학기 때도 그랬지만, 대학 시절로 돌아온 느낌에 뭔가 설레는 기분이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검술학부 전공인 내가 마법학부에 복수전공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학장을 뒷배로 두고 있었기에 그것은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고, 마법학부의 일부 과목을 수강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수업이 더럽게 재미없었다. 어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처럼 뭔가 피어오르며 화려하게 나갈 줄 알았는데 정작 배우는 건 마법의 이론이니 수식이니 하는 지루한 것뿐.
시스템 어시스트 덕분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있다만,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니 싫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마검사를 목표로 하고 계신 건가요?”
내 왼쪽 자리에 앉아 같이 수업을 듣던 레이시스가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 왔다. 그녀의 의문도 타당한 것이었다. 경지에 오른 검사가 다른 분야, 특히 마법을 배우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니까.
평생을 수련해도 하나를 다루기 어려운 세계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검 하나만 파고들었겠지만, 난 고작 그것 하나뿐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양피지에 낙서를 끄적거리던 펜을 내려놓고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다시피 고단한 인생이라 보험은 많을수록 좋거든.”
“하하…….”
이번엔 오른쪽 자리에 있던 유리아가 메마른 웃음을 지어왔다. 그녀들은 내 신분이 황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 이런 말장난쯤이야 서슴없이 칠 수 있다.
“유리아. 거기 수식 틀렸어요.”
“아, 고마워요.”
날 사이에 두고 두 여성은 사이좋은 분위기를 내뿜는다. 원작에서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이었지만, 나로 이루어진 스토리의 변화로 이제는 완전히 친해진 듯 보였다.
레이시스도 이젠 완전히 부드러워진 분위기였고, 유리아도 소심했던 모습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보는 시선들이 많아 차마 잘 수도 없었던 지루한 수업이 모두 끝났다. 레이시스와 유리아에게 수고하라며 인사를 해준 나는 지체 없이 교실을 나와 선생들의 집무실로 들어가 누군가를 찾았다.
“가베인 선생님.”
내 계획에 의해 강제적으로 바이에른 아카데미의 선생이 된 가베인은 거무죽죽한 낯빛으로 나를 맞았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야 불세출의 천재지 지금 이곳엔 그의 선배 되는 기수들이 잔뜩 있었다.
며칠간 적응 기간을 주고자 내버려 두었더니 살인적인 업무량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듯했다. 궁정 마법사까지 했던 놈이 제 안위 하나 챙기지 못하다니. 이래서 헛똑똑이 놈들은.
“…오스티아 군.”
서류에 파묻혀 있던 가베인은 조금 뒤에서야 내 존재를 눈치챘다. 그러더니 영혼이 빠져나올 것 같은 얼굴로 슬쩍 주위 눈치를 보며 나를 바라봐 왔다.
“슬슬 약속을 지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가장 큰 목적은 마법을 배우기 위한 것. 이제 슬슬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나 싶었다.
“그것이 아직 밀린 업무가 많아…….”
가베인은 애원하는 얼굴로 나를 향해왔다. 나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러니 어떻게 좀 해달라 이건가.’
“책임자가 누구지?”
그에게 고개를 낮춘 채 상관이 누구냐 물으니 가베인까지 덩달아 몸을 숙이며 제일 상석에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나이는 대략 서른 중후반, 슬쩍 보아도 한 성질 할 것같이 생겼다.
“…….”
그는 내심 내가 신경 쓰였는지 이쪽을 흘깃흘깃 훔쳐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작게 몸을 움찔하며 못 본 척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준비하고 있어.”
“예!”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대답한다. 어지간히 시달렸는지 이제껏 보지 못했던 환한 얼굴로 짐을 정리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선생님.”
나는 이름도 모르는 엑스트라 캐릭터 앞에 가서 섰다.
“일 학년 수석 오스티아 군 아닙니까. 무슨 용무죠?”
그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나는 절로 나오는 실소를 감추지 못하며 가베인 쪽을 가리켰다.
“오스티아입니다. 가베인 선생님께 보충수업을 받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데 업무가 많으신 것 같으셔서 말입니다.”
어떻게 좀 해줄 수 있겠냐는 뜻으로 물어보자 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런, 가베인 선생 같은 경우엔 갑작스럽게 부임이 결정되어서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겁니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약속을 미루는 것이 좋을 듯하군요.”
이것 봐라?
어지간한 선생이라면 내 신분을 알고 있을 테니 적당히 양보해 줄 텐데, 그는 어림없다는 눈으로 슬쩍 말을 돌린다. 선생들의 책임자니 그것을 모르고 있을 리도 없을 터. 그렇다는 것은 적어도 나 정도는 두렵지 않을 정도의 뒷배를 가졌다는 소리였다.
‘다른 황자인가.’
정면에 나서서 나를 구박하기엔 부담스러우니 이런 공작을 벌이는 것이겠지. 하긴 원작에서도 이런 식으로 많이 음해하긴 했다.
“선생님.”
그에 나는 가베인에게 했던 것처럼 고개를 낮추었다. 그러곤 전신의 기세를 풀며 이 공간의 공기를 휘어잡았다.
“…….”
선생들의 집무실은 각자 맡은 전공에 따라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가베인이 있는 곳은 당연히 마법학부의 선생들이 자리한 곳. 즉, 그 누구보다 마나의 흐름에 민감한 자들이다.
선생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진다. 설마 내가 정면으로 찍어 눌러올 줄은 몰랐다는 듯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며 입을 떨어댔다.
주위에 있던 다른 선생들도 마찬가지인 표정. 큰일 났다는 얼굴로 두 눈을 뒤룩뒤룩 굴려대는 것이 꼴 보기 싫은 모습이었다. 상대적으로 내 기세가 덜 미치는 저 끝에선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도망가려 하는 이까지 있는 정도니.
“동작 그만.”
나는 반쯤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있는 선생을 보며 말했다. 그는 말을 잘 듣는 어린양처럼 순수한 표정으로 다시 착석했고,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눈앞의 선생을 바라보았다.
“장기 말 따위가 감히 나와 맞먹으려 하나?”
고작해야 넌 버리는 패가 아니냐는 뜻으로 말하자니 선생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맞는 말인 것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푹 숙인다. 다른 선생들을 노려봐 주니 그들 역시 시선을 피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본인은 태생이 태생이라 인내심의 한계가 낮다. 그러니 잘 생각하고 현명하게 처신하도록.”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였지만, 헛짓거리하다 들키면 좋게 끝나진 않을 거라는 협박은 그들 뇌리에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끝에서 웃는 낯으로 그렇게 인사하자니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해왔다.
일을 끝낸 나는 후련한 표정으로 가베인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니 그 역시 통쾌하단 표정으로 준비를 마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오스티아 군과 약속이 있어서 이만 실례해 보겠습니다.”
“수, 수고하세. 이것들은 내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옆자리의 선배 선생이 헛기침하며 그의 책상에 있던 산더미 같은 서류를 자기 쪽으로 끌고 온다. 가베인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얼굴을 씰룩이며 내 뒤를 따랐다.
“고생이 많았나 보군.”
단지 몇 마디의 말을 저들에게 던진 것으로 십 년 묶은 체증이 내려간 듯한 밝은 표정을 지은 가베인을 보니 내가 다 즐거울 정도다. 그는 내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 업보 아니겠습니까. 고독한 천재의 몰락은 누구나 다 반기는 일이니까요.”
그 말에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천재란 설정을 하고 있지만, 보통 자기가 자기 입으로 천재라고 하나?
“뭐, 어찌 되었든 마법은 저한테 꽉 맡기십쇼! 밑바닥부터 정점을 찍어본 이 가베인이 성심성의껏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거참, 눈물 나게 믿음직스러웠다.
* * *
“…수백 번의 숙고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이 수식입니다! 학계 역사에 이러한 것을 발견한 사람은 감히 제가 처음일 거라고 단언할 수 있었습니다!”
저물어가는 석양의 빛이 들어오는 한적한 교실. 칠판에 수식을 써 내려가며 마법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던 가베인은 삼십 분쯤이 지나자 열정에 불이 붙었는지 이젠 침까지 튀겨가며 흥분을 토해내었다.
칠판엔 아까 수업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방대하고 복잡한 수식들이 몇 개는 겹쳐져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것들에 나는 멍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비록 제가 4클래스 마스터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이론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학장님마저도 제 이론을 들으시더니 감탄을 내뱉으셨을 정도니까요.”
수업의 내용은 반이 자기 자랑이었다. 그 크리스마저 감탄을 내뱉을 정도라니 조금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뭐 알아야 감탄을 해주든 말든 하지.
“첫 시간이니 가볍게 이론만 훑어보는 선에서만 했습니다. 이건 제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정립했던 이론들이니 전하의 수준이시라면 이해하시는 데 어려운 점은 없을 겁니다.”
가베인은 혹시나 알아보지 못하거나 놓친 부분이 있다면 세세하게 설명해 주겠다며 열의를 비춰왔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모르겠다. 아까의 수업 때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한 수식과 기호들이 칠판을 채우고 있었고, 가베인의 설명은 나와 그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난해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SYSTEM: ‘기초 마법 이론에 대한 고찰과 향상된 효율을 위한 수식 – 가베인 저’를 해석합니다.]나에게는 시스템 어시스트라는 편리한 능력이 있는 것을. 그것은 가베인이 써 내려간 수식을 하나하나 해체하며 재구성한 후 데이터를 쌓고 있었다.
가베인이 필요했던 것은 시스템 어시스트가 마법 쪽에선 어떤 식으로 기능을 할지 몰랐기 때문.
‘해석 완료’라고 뜬 네 글자를 본 나는 가베인을 바라보며 씩 웃어주었다.
“쉽네.”
전부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