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71)
망나니학 개론-71화(71/300)
#071
이른 아침 마차로 아카데미에 돌아온 직후, 나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던전 탐사의 피로와 함께 격렬했던 지난밤의 후유증이 겹쳤던 탓에 일말의 유예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만, 곧 들려온 소음에 다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쿵쿵쿵쿵-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솟구치는 짜증에 누워 있던 채로 마른세수를 했다. 점점 더 거세지는 노크에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을 여니 숫제 주먹을 쥔 채 문을 깨부수려던 찰나의 앨리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하하.”
가늘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니 앨리스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거둔다. 슬쩍 방 밖을 둘러보니 아직 인적이 드물다. 그렇기에 그녀도 마음 놓고 문을 두드렸던 것이겠지.
“…아니, 어젯밤에 잠깐 왔었는데 없어가지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을 찰나, 침묵을 견디지 못한 앨리스가 먼저 말해왔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
하품을 하며 그렇게 답하자니 이번엔 앨리스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슬쩍 방 안을 살피는 것이 들어오고 싶은 기색이었지만, 난 조금 더 자고 싶었다.
“용건은.”
“…할 일 없으면 점심이라도 먹으러 가자 싶어서.”
엉망이 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묻자니 그녀는 조심스레 말해온다.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점심 때인가 싶었지만, 그만큼 내가 깊게 잠들어 있었다는 것일 터. 앨리스의 말을 듣고 보니 허기가 지긴 했다.
“잠깐만 기다려.”
아무리 귀찮아도 기본적인 몸단장은 해야 했기에 문을 닫고 대충 머리라도 만지려 했다만, 앨리스는 어느새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방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온 뒤였다.
“외박한 거야?”
그러면서도 태연한 표정으로 물어온다. 난 이불을 대충 정리하곤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어, 생각보다 일정이 길어져서. 돌아올 마차가 없더라고.”
“…그 여성분이랑?”
“페트라다. 라이프치히 가문의 장녀지.”
앨리스는 페트라를 신경 쓰는 눈치다. 아마 엘리시아에게서부터 그녀가 내 약혼녀라는 것을 들었겠지.
“끙.”
대충 정리를 끝낸 나는 허리를 돌려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격렬했던 지난밤의 일 때문인지 아직 해소되지 않은 탈력감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그렇게 몸을 비틀다 문득 벽 한쪽에 세워져 있던 새하얀 검 한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맞다, 피곤해서 깜빡하고 있었네.”
난 그것을 들어 앨리스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고, 이게 무엇이냐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전에 엑스칼리버 말고 적당한 검을 주겠다고 했잖아. 어제 외박한 것도 이놈 때문이다.”
“…아.”
앨리스는 두 눈을 크게 뜨고는 검과 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예전에 했던 약속을 이제야 지키는 것뿐인데 너무 감동받은 표정이다. 선물한 내가 머쓱할 정도였으니.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그 이후로 앨리스의 기분은 계속 좋아 보였다. 검 한 자루로 그렇게까지 신나 하는 것을 보니 조금 미안해지는 감도 없잖아 있다. 나는 돈이 넘치다 못해 썩어날 지경인데 너무 궁색하게 굴었나 싶다.
“안녕하세요.”
“아, 유리아.”
앨리스와 식사를 하고 있자니 어느새 유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조심스레 비어 있는 옆자리에 앉더니 우릴 향해 인사해 왔다.
“레이시스는?”
평소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레이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물음에 유리아는 살짝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제 늦게까지 마법 영창 훈련을 하다가 탈진했어요. 여기 오기 전에 방에 가봤더니 아직도 정신없이 자고 있네요.”
“…하하.”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기에 탈진까지 오는가. 그것에 메마른 웃음을 흘리자 그녀는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오스티아 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나?”
“저번에 가베인 선생님께 보충 수업을 받았을 때 하셨던 마법의 영창 있잖아요. 이 일대가 난리가 났었던 그.”
“…그걸?”
“거기서 무언가 영감을 얻은 듯해요. 요즘 수업 이외엔 계속해서 그걸 연구하고 있던데…….”
“호오.”
이건 또 새로운 이야기였다. 레이시스가 설마 그 영창에 영향을 받았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전개가 또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조금 흥미가 솟았다.
“그나저나 앨리스 양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흐흥.”
유리아의 말에 그녀는 식사를 하느라 잠시 풀어놓은 백련(白蓮)을 가리킨다. 그러곤 의기양양한 표정과 함께 어깨를 펴며 말했다.
“선물 받았거든.”
“선물요? 아.”
유리아는 백련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곤 살짝 부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두 분은 사이가 좋으시네요. 솔직히 아니라고 할 때까지는 이미 교제하고 계신 줄 알았어요.”
“…뭐, 완전히 틀린 건 아닌데.”
앨리스는 우리가 평범한 관계는 아니라며 슬쩍 내 눈치를 바라보면서 답했다. 그것에 나 역시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평범한 관계는 아니지.
그렇게 우리는 여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계속했다. 다만, 우릴 찾아올 손님은 아직 남아 있었다.
“오스티아 군.”
낯익은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처음엔 잠에서 깨어난 레이시스나, 용무가 끝나고 아카데미로 돌아온 다른 일행인 줄 알았지만, 의외의 얼굴이 그곳에 자리했다.
“식사가 끝나면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괜찮습니다.”
페트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나에게 말을 건네온다. 그것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삼십 분 후 카페테리아에서 보자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무슨 일?”
“글쎄.”
앨리스의 물음에 나는 의문이 들었다. 검을 선물한 것에 대한 감사는 이미 충분히 받았다. 태도를 보아하니 어젯밤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데.
적당히 식사를 끝낸 뒤, 나는 홀로 카페테리아에 찾아갔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듯 그녀는 내 모습이 보이자 손을 흔든다. 그곳으로 걸어가자니 페트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럼, 가죠.”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기엔 조금 은밀한 이야기라.”
“…….”
그 말에 살짝 눈을 가늘게 뜨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상한 생각을 하면 화낼 겁니다.”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은 제 쪽이 아닌 것 같은데.”
페트라는 붉어진 귓불을 감추며 잠자코 따라 오라는 말과 함께 발걸음을 옮긴다. 카페테리아에서 굳이 자리를 옮길 정도의 이야기라면 꽤 중요한 안건일 터. 그녀는 학생회 소속이었기에 영락없이 학생회실로 가는 줄 알았으나 얼마 후 우리는 여자 기숙사에 도착했다.
“…페트라.”
“잠자코 따라오세요. 본래 이곳에 남자를 들이는 것은 학칙에 위배되는 일이나 은밀하게 성행하는 일이니까요.”
들키지만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녀는 내 팔을 잡아 이끌었다.
‘여기 오는 것은 처음인데…….’
앨리스 쪽에선 내 방을 몇 번이고 들락날락거렸지만, 내 쪽에서 여자 기숙사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일 층엔 로비를 비롯해 쉴 수 있는 라운지가 펼쳐져 있다. 다만, 휴일의 막바지라 그런지 인적은 드물었다. 그래도 시선을 끌지 않을 수가 없기에 우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고 페트라의 방에 도착했다.
“적당히 앉으세요.”
그녀의 방엔 옅은 라일락 향기가 감돌았다. 남녀 기숙사는 같은 구조로 지어졌기에 내 방과 별다를 차이가 없지만,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그녀의 체취에 살짝 기분이 들뜬다. 페트라는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책상을 뒤적여 한 장의 서류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건?”
“이번 달이 학술제 시즌인 것은 알고 계시죠? 올해는 데메드리오 왕국에서 개최하게 됐어요.”
“뭐, 알고는 있는데.”
학술제라 함은 대륙의 내로라하는 아카데미가 각각 대표를 뽑아 일 년간의 성과를 보이는 자리였다. 말 그대로 이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분야도 있었지만, 당연히 검술과 마법 부분에서 서로의 우위를 보이는 토너먼트 쪽이 제일 유명했다.
‘하지만 왜 이 이야기를 나에게…….’
원작 초반부에선 아예 언급도 되지 않았던 이야기다. 원칙상 아카데미 1학년은 학술제에 참여하지 못할뿐더러, 이 시기는 평범한 일상 파트로 그리 길지 않았던 부분이니까.
주인공이 학술제에 참여하는 것은 2학년이 되었을 때다. 그땐 새로이 들어온 1학년들에게도 학술제의 시드가 주어져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올해는 그러지 않았을 터.
“…학술제에 참가하기로 했던 2학년 대표 중 두 명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사퇴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부탁을 받아서 적당한 후임자를 물색하던 중이었는데 어제 일에 휘말리게 되었죠. 그래도 아직 하루 이틀 정도 기한이 남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며 잠시 말을 끊었다.
“…루이스 선배가 새로운 제안을 해왔어요.”
“카리우스가?”
루이스는 카리우스가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는 이름이다. 갑작스럽게 페트라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의 이름에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공석은 마법부와 검술부에서 각각 한 자리씩 났습니다. 루이스 선배는 검술부에 당신을. 마법부에는 레이시스 양을 추천했어요.”
“1학년은 학술제에 참여할 수 없지 않나?”
“원칙적으론 그렇지만, 제가 자리를 비운 어제, 루이스 선배가 데메드리오 왕국 측에 연락을 해서 이미 허락을 받아냈더군요.”
“허락은 무슨…….”
아마 제국 1황자의 이름으로 압력을 넣었을 것이다. 데메드리오 왕국은 제국과 제일 근접한 나라로 그 이름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
‘데메드리오면 베르너의 조국인가.’
“최우선은 당신들의 의지라곤 했어요. 하지만 그가 일을 꾸민 이상…….”
페트라는 말을 흐렸다. 내 일신의 무력이 그를 뛰어넘는다곤 하지만, 아직 전체적인 추는 카리우스나 다리우스 측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것에 페트라는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왔다. 안정적인 방향을 원한다면 그녀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아카데미 파트에서 카리우스는 여러 수작질을 벌여오곤 했으니까. 특히 이번엔 원작에서 없는 일을 꾸며온 만큼 무슨 수를 써올지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걸어온 싸움을 피하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라곤 해도 듣지 않을 줄 알았어요.”
내 표정을 본 페트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것에 난 두말하면 입이 아프단 식으로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레이시스 양은…….”
“내가 이야기하지. 그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테니.”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저도 아카데미 대표의 일원으로 동행하니 어지간한 백업은 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다만…….”
“루이스 정도 되는 녀석이 일을 허투루 꾸밀 리는 없겠지. 괜찮아, 어차피 녀석은 정면으로 덤벼오지 못하니까.”
내 호언장담에 그녀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자세한 사항은 내일 다시 전달해 주겠다며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페트라는 배웅이라도 해주려는지 뒤를 따라 나온다. 문득 장난기가 들어 그녀의 방을 나서기 전 발걸음을 멈춰 서자니 페트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무슨…….”
그 물음이 끝나기도 전, 나는 몸을 돌려 페트라를 품에 안았다. 그러곤 가볍게 입술을 맞추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 것이 되겠다는 맹세는 잊지 않고 있으니까.”
“……!”
페트라는 곧 얼굴이 새빨개지며 전신을 부르르 떤다. 난 얻어맞기 전에 재빨리 그녀를 놓고 방을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등 뒤에선 새된 비명과 더불어 무언가가 문에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그것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학술제라…….”
난 여자 기숙사를 나와 길을 걸으며 그 말을 곱씹었다. 원작에서 그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인공이 2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때 기억하기로 올해 열릴 학술제는 테러 건으로 무산되었다고 들었는데.
스치듯 지나간 내용이기에 자세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왕국 내에 친제국파와 반제국파가 나뉘어 서로 말썽이 많은 듯했다. 학술제에서 일어난 테러도 그것들과 연관이 있을 터.
“재밌겠네.”
걸리적거리는 형님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 중이었는데,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주다니. 정말로 이만한 형님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