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72)
망나니학 개론-72화(72/300)
#072
다음 날 점심. 난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앨리스는 수업 내내 배고프다며 엎드려 있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할 일이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어, 잠깐 마법학부 쪽에 다녀와야 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알았다고 말하며 엘리시아 쪽으로 합류했다. 난 서둘러 마법학부 건물로 향했고, 도착했을 땐 막 밖으로 나오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오스티아 군?”
유리아와 함께 짐을 챙기고 있던 레이시스는 날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수업이 끝난 지금 자신을 찾아온 것이 궁금한 것일 터. 나는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따로 일정이 없으면 식사하면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전 다른 아이들이랑 먹을게요.”
“아니, 괜찮아. 같이 가도 돼.”
유리아가 슬쩍 우리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빠지려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딱히 숨겨야 할 일도 아니고 그녀가 비켜줄 필요도 없다. 앨리스를 따로 보낸 것은 이야기 도중 시끄러워질 것을 대비한 것뿐. 그녀를 비롯한 반 친구들에게도 나중에 말할 예정이었다.
“네, 뭐. 어차피 유리아랑 먹으려 했으니 상관은 없어요.”
레이시스는 떨떠름한 얼굴로 내 제안을 수락했다. 아카데미 식당에서 식사를 고른 뒤, 우리는 벽이 트인 테라스로 이동했다. 날씨가 좋기에 적지 않은 사람이 있었지만, 때마침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 우리는 그곳에 자리했다.
“참, 주말엔 어디 나갔다 오셨나요? 앨리스가 도끼 눈이 돼서 당신을 찾아다니던데.”
“…아, 조금 밖에서 일정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유리아가 쿡쿡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벌써 화 다 풀렸던걸.”
“어머, 무슨 수로?”
“오스티아 군이 예쁜 검을 한 자루 선물했어.”
내 말에 레이시스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슬쩍 미소를 띄워왔다.
“…왜 그런 표정을 짓지?”
“아니요, 이성 관계에서 순 벽창호인 줄 알았는데 선물도 할 줄 아시고.”
“누구보고 벽창호라니.”
순간 그 말이 거슬려 발끈하자니 그녀는 농담이라며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레이시스는 스테이크를 썰며 나에게 물었다. 옆에 있던 유리아 역시 그것이 궁금한 눈치. 그것에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학술제라고 알지?”
“당연히 알고 있죠. 이번엔 데메드리오 왕국에서 열린다고 했었나요?”
“그래. 그리고 거기에 너와 내가 참가하게 됐다.”
“…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포크로 고기를 찍어 입으로 가져가던 그녀의 손이 멎는다. 그러곤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되물었다.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번 학술제에 너와 내가 참가하게 됐다. 원래는 예정에 없었는데 대표 일원 중 두 명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사퇴했다더군. 그래서 그 결원으로 우리가 선택된 거고.”
“1학년은 학술제에 참가 자격이 안 되지 않나요?”
레이시스의 의문은 당연하였다. 하지만 난 어쩔 수 있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3학년의 루이스 선배가 우릴 추천했다더군. 너와 나를 콕 집어서 말이야.”
“…루이스 선배라함은.”
그녀의 눈이 기이하게 빛난다. 그것에 난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 녀석이지.”
“……?”
오직 그 옆에 있던 유리아만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 레이시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보충했다.
“루이스는 카리우스 일 황자의 가명이에요.”
“…아.”
유리아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달았는지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봐 왔다.
세간에 알려진 황자 간의 관계는 썩 나쁜 것은 아니었다. 삼 황자인 내 쪽을 제외하곤.
아니, 내 쪽만 나쁘다. 나와 엮여서 좋은 소리를 들을 사람은 없으니 귀족 중에서도 라이프치히 가문을 제외하곤 교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미 협회 측엔 허락까지 받아놓은 상태야. 너와 나만 허락한다면 오늘이라도 아카데미 대표에 선정한다고 하더군.”
“…당신은 수락했나요?”
“굳이 뽑아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야 없지.”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고 말하자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국의 미래가 어둡군요. 황자 중에 정상이 없으니.”
“그래도 그쪽은 줄을 잘 잡았잖아.”
“지금 살짝 보니 조금 썩은 것 같은데요…….”
요즘 주변 평가가 조금 너무해진 것 같았다. 난 혹시라도 레이시스가 거절할까 싶어 조금 더 보충 설명을 이었다.
“아카데미 측에 물어보니 학술제에 나가게 된다면 가산점이 붙는다고 하더군. 너나 나나 수석 자리는 유지해야 하잖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이자 레이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거절할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티 났나?”
“조금요.”
아무래도 그녀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나았기에 주저하는 태도가 나오자 살짝 애가 탔다. 그것에 레이시스는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왕 잡은 줄, 썩었으면 도려내고 꿰매야 하지 않겠어요?”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었지만, 왜인지 그 말은 살짝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 * *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났다. 점심 이후 내내 졸던 앨리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일어나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아, 오늘 점심 먹으면서 수업 다 끝나고 엘리시아랑 같이 수련하기로 약속했는데 올래?”
“아쉽지만, 일정이 있어서.”
“…요즘 뭔가 바쁜 것 같아?”
거듭되는 거절의 말에 앨리스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회의가 끝나면 다른 이들과 함께 설명해 주려 했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니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학술제?”
“응. 결원으로 뽑혀서 말이야.”
적어도 일, 이 주는 데메드리오 왕국에 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에 앨리스는 살짝 인상을 썼다.
“동행하는 건 힘들겠지?”
“아카데미 대표 측만 참여하는 거니까.”
앨리스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부터 성적에 신경 쓰지 않아 그다지 순위가 높지 않았다. 그녀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다며 쏜살같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이상한 일이나 꾸미지 않으면 다행이련만.”
전혀 알겠다는 표정이 아니기에 살짝 걱정되었지만, 참가 자격이 없는 이상 그녀가 어찌하겠는가. 난 그대로 레이시스와 만나 학술제를 위한 아카데미 대표 회의에 참석했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다.”
대표 회의는 카리우스가 지휘했다. 분위기를 보니 암묵적으로 이곳의 수장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무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가 일 황자인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다들 알다시피 학술제가 삼 주 뒤로 다가왔다.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바이에른이란 이름에 걸맞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신경 써줬으면 한다.”
그의 부드러운 태도 덕분인지 회의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연구 결과며 수련의 진척이며 여러 가지 보고와 발표가 이어진다. 그리고 카리우스의 정확하고 단호한 피드백이 뒤를 따랐고, 그들은 아무런 반론 없이 그것을 수긍했다.
‘나와 레이시스까지 합해서 모두 열다섯 명인가.’
면면을 보니 다들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는 이들이다. 아무렴 제국 제일의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인원인데 실력이야 확실할 터.
“그리고 이전에 공지한 대로 검술부와 마법부에 생긴 결원에 관한 이야기다. 원래라면 2, 3학년 쪽에서 적당한 인원을 찾으려 했는데 어차피 그 분야는 우승이 확정이니 1학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들을 차출해 왔다.”
지금까지 그의 말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다만, 결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좌중은 조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루이스. 아무리 그래도 1학년으로 채워 넣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을까. 실력적인 측면에서도…….”
3학년인 듯 보이는 선배가 손을 들고 의견을 낸다. 확실히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하자면 루이스의 결정은 상당히 무리가 뒤따르는 바다. 아무리 협회가 허가를 해줬다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상황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으니.
“네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오스티아 군은 검술부를 비롯해 1학년 전체 수석, 그리고 레이시스 양은 마법학부의 수석이다. 실력적인 측면에선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카리우스는 우리의 성적을 가지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일 뿐 제대로 된 답변은 되지 않는다. 상대 측에서 뭐라 말할지 기다릴 찰나, 그 학생은 작은 신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거두었다.
“뭐, 수석이라면 어지간한 녀석들보단 낫겠지. 더군다나 네 판단이라면.”
“과찬 고맙군, 피르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얼핏 보면 훈훈하게 끝낸 듯싶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손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짜고 치는 것도 어지간히 해야지, 저렇게 어설픈 연기란.’
피르케라 불린 선배의 질문은 아마 미리 약속된 것일 터다. 다른 이들이 우리의 인선을 두고 말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 것일 터.
이미 서로 이야기를 끝내 버린 상황에서 다른 이가 또 같은 화제로 문제를 만든다면 아무래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 마련. 거기에 대세는 카리우스를 따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섣불리 자신의 이견을 낼 수 있을 만한 담력을 지닌 이는 드물 터.
“…….”
실제로 페트라 역시 눈에 뻔히 보이는 촌극에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었군. 오스티아 군, 레이시스 양.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잘 부탁한다.”
그 뒤로 이어진 내용은 별 영양가가 없는 것이었다. 대부분 남은 발표나 연구회의 실적에 관해서였고,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데메드리오 왕국에선 뭘 얻을 수 있을까.’
난 두 눈을 흐리멍덩하게 뜬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 자리에서 카리우스가 뭘 꾸미는지 생각해 봤자 알아내는 것은 힘들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 더 생산적인 일일 터.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히든피스가 거론된 적은 없었고 기껏해야 다른 아카데미에서 온 학생들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작 일, 이 주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겠는가. 거기다 주요 인물들은 내년에나 참가할 예정. 어차피 테러로 인해 제대로 된 학술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예정이니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괜히 간다고 했나?’
원작에선 없던 이야기라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지만, 떠올려 보니 그다지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들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철회할까 싶어 고개를 들자니 카리우스는 때마침 회의의 끝을 선언했다.
“자, 그러면 다음 회의는 다음 주 이 시간에 이곳에서. 그때까지 다들 열심히 준비하도록.”
“…쯧, 가서 뭐라도 건지겠지.”
어차피 이 시간대는 생략된 분기인 만큼 작은 것 하나라도 건지면 이득이었다. 그래야 3학기 때 있는 실습을 대비할 수 있으니.
“어이.”
레이시스의 뒤를 따라 회의장을 나갈 찰나, 문밖에 서 있던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린다. 그것에 난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리우스의 선택이라곤 하지만, 날 납득하지 못하는 녀석들도 있을 터. 연습이라는 명목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것은 흔한 클리셰였기에 난 철저하게 박살 내주기로 마음먹었다.
“나 기억하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친근한 태도를 보이는 한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일 학년에 같은 대표 팀이라니. 그러는 김에 대련 한번 어때?”
“…하하.”
에릭센, 2학년 창술의 천재.
붉은 머리의 바보가 헤실헤실한 표정으로 다시금 내 어깨를 툭 쳐왔다.
…10연패로는 모자랐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