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79)
망나니학 개론-79화(79/300)
#079
나를 황제로 만들어주겠다.
“…….”
아이작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곤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허언이나 허풍 따위는 아닌 듯싶었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도 터무니없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기에 나는 교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 앞줄에 있는 책상 중 하나에 걸터앉고는 강단 위에 서 있는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더 이야기해 보라는 내 대답에 그는 투박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은 미소를 지어왔다.
“그 전에.”
아이작은 교실 문가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 멍하니 있던 가레스에게 눈짓했다. 그는 곧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얼굴을 붉혔지만, 감히 내 쪽을 바라보지 못했다. 다만, 아이작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자리를 떠나갈 뿐.
“우수하지만 아직 경험이 짧은 아이다. 너무 겁박하지는 말아주게.”
“범은 제 새끼를 강하게 키우는 법이지.”
“아쉽게도 그 정도 그릇까지는 아니라.”
망설임 없는 혹평이 그의 입에서 나온다. 가레스가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래서, 나를 어떻게 황제로 만들어줄 셈이지?”
나는 호기심을 띤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직 황궁에 있었을 때, 그런 달콤한 말을 속삭인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전부 영양가가 없을뿐더러 내 곁에 붙어 떨어지는 꿀만 취하려는 승냥이 같은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너도 그런 부류냐는 뜻으로 시선을 보내자니 아이작은 씩 웃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간 자네가 겪어온 쓰레기들과 내가 같아 보이는가?”
확실히 그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신용할 수는 없는 노릇. 곧 아이작은 자신의 말을 보충했다.
“원래는 이렇게 내 신분을 노출할 생각은 없었다네. 제국의 망나니 정도는 그들로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으니.”
반제국파의 원래 계획은 나를 납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질 삼아 제국을 협상대로 끌어내리고 유리한 고점을 선점한다.
물론 계획대로 되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아이작은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노라며 담담하게 말해왔다.
“하지만 자넬 본 순간 우리는 계획을 전면 수정했지. 저주받은 사생아, 무능의 극치. 역대 황족 중 가장 형편없는 평가를 받지만, 사실은 포효할 때를 기다리며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사자라니.”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는 마치 무대에 선 배우처럼 과장되게 손을 벌리며 나에게 말해왔다. 물론 전혀 낭만적이지 않기에 나는 조용히 잠자코 있었다.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이작은 머쓱한 표정과 함께 손을 내렸다.
“삭막한 친구로군. 보통 이러면 맞장구를 쳐주던데.”
“곁에 간신만 있나 보군. 한 번 싹 갈아엎는 걸 추천하지.”
“그들도 나름대로 다루는 맛이 있지 않나.”
“그런 이들까지 중용해야 할 정도로 궁한 것은 아니고?”
“이거 참, 신뢰를 얻기 어렵군. 보통 검호대장군이란 이름을 들이밀면 껌뻑 죽거늘.”
“아쉽게 됐군. 이쪽은 보통이 아니라서 말이야.”
내 대답에 아이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여튼, 본제로 돌아가지. 원래라면 우리는 2황자 다리우스에게 은밀하게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다. 그와 1황자 카리우스는 일신에 이룩한 경지도, 구축된 세력도 비슷하지. 그럼에도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황위를 잇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균형을 맞추려 했다?”
“맹목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둔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만큼 다루기 쉬운 것이 없지. 실제로 그들과는 꽤 이야기가 진전되었다.”
이미 접촉했던 건가. 하지만 그것으로는 나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것에 아이작은 작게 미소 지으며 재차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탐욕적이야. 전형적인 둘째의 모습이지. 황위에 오른다고 해도 과연 우리와의 약속을 지킬지는 모르는 일이지.”
“그 상황에서 내가 나타났다?”
“그래. 난 자네가 얼마만큼이나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네. 고작 그 나이에 그런 경지까지 이르렀다. 황궁 내에 은밀히 떠도는 소문 중 자네의 것이 섞여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철저히 자신을 감출 수 있을 줄이야.”
그야말로 적격이 아닌가. 아이작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는가? 이건 비단 데메드리오 왕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네. 우리는 자네 예상보다 훨씬 큰 세력을 구축했어. 제국을 달가워하지 않은 이들은 많으니.”
“…….”
그는 진심으로 제국을 전복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 듯했다. 이렇게 전부 이야기해 주는 것도 나 하나쯤이야 이야기가 새어 나가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겠지.
“설사 내가 너희들과 협력한다고 하더라도 1황자와 2황자가 건재한 이상 그 말은 실현되기 어렵다. 그건 어찌할 생각이지?”
“어렵지 않은 소리군. 장애물이 있다면 없애면 되지 않은가.”
내 물음에 아이작은 곧바로 대답을 꺼냈다. 없앤다는 것은 즉, 그 둘을 배제하겠다는 것. 그 이야기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검호대장군의 위명은 상당하다. 데메드리오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 곳곳에 알려져 있으니. 제국에서도 그를 인정하는 사람이 많았고, 검성조차 일전에 언급한 적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하지만 제국은 소드 마스터를 고작이라 폄하할 정도로 강성한 곳이었다. 아무리 여러 왕국이 연합을 맺고 반제국파의 세력을 부풀려도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승산이 없으니까.’
아무리 전력을 끌어모아도 제국엔 부족했다. 그렇기에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나에게 접근했지만, 아쉽게도 녀석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로군.”
“물론 그럴 거로 생각하네. 다만, 지금은 조금의 도움만 주면 그걸로 만족하지.”
그의 말에 나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어느샌가 아이작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내 협력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가 된 듯했다.
‘아니, 이 모습조차 날 속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반제국파의 수장으로 예상되는 작자가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할까. 그것도 존재 자체가 이레귤러나 마찬가지인 나를 대상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 실제로 나에게만 접근하는 것처럼 꾸미며 다리우스에게 연락을 취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전개의 변화였다.
이곳에서 카리우스나 다리우스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알던 이야기에서 무언가 비틀림이 생겨날 수도 있었다.
큰 틀이 바뀔 확률은 낮지만, 작은 날갯짓 하나만으로 큰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은가.
만약 둘 중 누군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황제는 제국의 권위가 떨어진 것에 화를 낼 터. 그의 분노는 데메드리오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한 남자가 아닐 텐데.’
인질을 잡고 협상을 운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체급이 비슷해야 성립하는 것이었다. 데메드리오 왕국 정도는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아 전역이 불길에 휩싸일 터.
“뭐,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단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빠르겠지. 학술제에서 일어날 행사를 기대하시게나.”
아이작은 오늘만 날이 아니라며 후를 기약했다. 이윽고 그의 인기척이 사라졌을 때, 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미친놈.”
작게 한숨을 토해냄과 함께 거만을 떨던 가식을 벗어버렸다.
적을 숨기려면 아군부터 속여라. 나는 그 앞에서 발톱을 숨긴 사자의 모습을 연기했다. 다행히 그것은 어느 정도 먹혀들었고 아이작과 원만하게 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너희랑 편을 먹냐.”
반제국파는 이 세계관 내에서도 손에 꼽는 악랄한 녀석들이다. 제국의 분열을 위해서는 밑의 사람 한두 명의 목숨을 희생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정작 자신들의 안위는 끔찍이 여긴다. 물론 제국 역시 마찬가지지만, 녀석들은 정도가 심했다.
‘페트라가 죽은 것도 이 새끼들 때문이니.’
아직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쓰리다.
다만, 검호대장군이란 변수는 생각지 못한 것이기에 이 기회에 잘 이용해봐야 할 듯싶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이번 학술제에서 카리우스와 다리우스에게 무슨 일을 꾸밀 생각인 듯싶으니.
물론 나 역시 그 두 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마계 군세와의 전쟁에서도 나름대로 비중이 있는 녀석들이다. 고작 이런 곳에서 쓰러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자, 그럼 나도 준비를 좀 해볼까.”
검호대장군이라는 대어를 낚는 일이다. 그렇다면 미끼는 성대한 것으로 준비해야겠지.
* * *
아이작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학술제는 별다른 일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첫날부터 사흘까지는 각 아카데미에서 준비한 주제를 가지고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진다. 간혹 내가 보기에도 그럴듯한 성과를 가져온 곳이 있었으나, 저게 정말로 유용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마법사이자 학자 성격이 다분한 레이시스는 그것마저도 흥미로운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힌다. 그렇기에 난 이튿날까지 혼자 다니게 되었지만, 사흘째에 발표가 끝난 페트라가 합류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같이 있어도 되는 건가?”
그녀는 남의 이목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나와 함께 움직였다. 그것이 살짝 신경 쓰여 물어보자니 페트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어차피 대표 팀 대부분 당신의 신분을 알고 있으니 말이죠.”
이럴 때라도 같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그녀는 작게 미소를 흘렸다.
“그나저나 역시 테러는 폐회식에 일어나려나요.”
페트라는 어느 아카데미의 발표를 지켜보는 와중 은밀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에겐 이미 아이작과 나눈 대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반제국파가 학술제 기간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데메드리오 왕국 측에서 경비를 맡았다곤 하나, 한 패일지 모르는 이상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말로는 다른 황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지만,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어 나나 내 근처의 사람들을 공격해 올 수도 있는 법이니.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편이 더 의심을 사지 않을 테니.”
데메드리오 왕이 있는 와중 테러가 일어난다면, 아이작이 움직이기는 더 쉬워진다. 왕국의 기사단뿐만 아니라 제국의 기사들까지 은밀히 황자들의 호위로 와 있다지만, 그가 직접 나선다면 상대하긴 막아내기 어려울 터.
“알겠으니까 잘 싸우고 와요.”
페트라는 내 등을 가볍게 밀었다. 사흘째가 시작되었기에 내가 참여하는 사수좌의 토너먼트가 개최되었다. 아카데미의 대표들이 모여 각 분야에서 자웅을 겨룬다. 얼핏 보아하니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지만, 전부 자신이 우승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1학년이라고?”
내 첫 상대는 저 멀리 가이샤 왕국, 테르테미안 아카데미에서 온 베이직이란 남자였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뒤덮인 녀석과 마주하자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바이에른 아카데미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런 햇병아리가 나오다니.”
그는 짜증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법 실력에 자신이 있는 듯 이미 나를 아래로 보는 눈치다. 그것에 나는 웃으며 검을 까딱였다.
“태어난 건 네가 먼저겠지만, 가는 데는 나이 상관없다.”
뒤지기 싫으면 나이로 유세 떨지 말라는 내 말에 그는 정색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 내 검 앞에서도 그런 소리를 지껄일 수 있나 보지.”
베이직은 살벌한 대사와 함께 제 신장만 한 대검을 휘둘러온다. 그것에 난 가볍게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서걱.
“……?”
그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나와 교차해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지만,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쩡그렁.
거친 소음이 무대 위로 울려 퍼진다. 그것에 베이직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쯤 잘려 나간 제 대검을 바라보았다.
“…이, 이게 무슨.”
“승자, 바이에른 아카데미의 오스티아!”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이 환호를 지른다. 그 달아오른 열기에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이에른 아카데미 학생들이 앉은 곳을 보니 대부분 경악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명은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좋네.”
아이작은 나를 보고 발톱을 감춘 사자라 칭했다. 다만, 나는 이제 발톱을 감출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