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82)
망나니학 개론-82화(82/300)
#082
영웅과 마인은 서로 대칭점에 있는 존재다. 한 명 한 명이 소드 마스터에 근접하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러한 이들은 많이 나왔다. 하지만 마인이 최고 경계 대상이 된 이유는 비단 육신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다.
영웅이 고대 핏줄과 전승 때문에 특별한 각성을 했다면, 마인은 마족과 직접 계약을 통해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서운 것은 사람을 홀리고 세력을 구축하거나, 와해시키는 것에 특화되었다는 것이다.
힘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인간과 별다를 것이 없다. 그런 이들 한두 명이 거대한 무리로 들어가 내부에서부터 공작을 벌인다면 강대한 세력 하나가 조각조각 갈라지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강한 힘에 이끌려 타락한 이들이었으니 인간의 약점에 대해선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추악한 욕망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그 세 치의 혀는 그것을 읽고 있던 나조차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
나는 녀석들의 물음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은 채 녀석들의 기세를 가늠했다. 다행히 마스터에 이른 것은 아닌지 상대적으로 나보다 떨어지는 격이 감각에 들어온다. 대략적으로 따지자면 둘 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정도.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기지 못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엑스칼리버까지 있으니, 잘만 하면 마스터 격의 마족까지 비벼볼 수 있을 터.
“일단 붙잡아놓고 캐물을까?”
“피르텔 녀석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녀석 정신 조종이 특기잖아.”
“냅둬, 그 지저분한 녀석이랑은 상종하기도 싫다.”
녀석들은 나를 다 잡은 물고기로 착각이라도 한 듯 두고 투덕거리며 말싸움을 했다. 그것에 피식 웃음을 흘리자니 마인 중 한 명이 일그러진 광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웃어?”
타다다닷-!
그러곤 벽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나에게 쇄도해온다. 그 손에 번뜩이는 갈퀴에 나 역시 검을 빼 들었다.
캉-!
날카로운 고성이 골목에 울려 퍼진다. 주위에 번화가가 있어 지금 당장 소란이 나진 않겠지만, 싸움이 거칠어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이목을 끈다. 마인 역시 그것을 성가시게 생각하는 듯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면…….’
나 역시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대로 녀석들에게 쓰러지는 척하며 잡혀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그렇게 해서 마인을 일망타진했겠지만, 슬슬 점심이 끝나가는 데다 아직 오후 시합이 두 개나 남아 있다.
‘다음 기회로 미룰까.’
원래는 아직 등장할 예정이 없던 녀석들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만 파악하면 쓸데없이 자극할 필요는 없겠지.
쐐애애액-!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몇 번의 검이 오고 갔다. 마인이 휘두른 갈퀴를 전부 막아내고 역으로 허점을 찌르자니 그는 땅을 박차곤 거리를 벌려 그것을 훌쩍 피해낸다. 그러곤 인상을 찌푸리며 제 동료를 바라보았다.
“보통 놈은 아닌데?”
“아, 귀찮게 진짜. 아직 일도 남아 있는데.”
짜증 섞인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녀석들의 모습에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이들과 반제국파의 관계. 그리고 잘하면 목적까지 알아낼 방법이.
“왕국에 너희 같은 광대가 있다고 들은 적은 없다. 제국의 개새끼들인가? 감히 반제국파인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나는 역으로 살벌한 기운을 떨치며 녀석들에게 성을 내었다. 그러자 그들은 내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제국파라고?”
“우리가 제국의 개새끼라고?”
“어이,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우리는 제국의 간자가 아니다.”
“개새끼가 자신을 개라고 인정하지 않지.”
단호하게 부정을 내뱉는 내 말에 마인은 다급한 기색으로 손을 내저었다.
“우리 역시 반제국파를 돕기 위해 이곳에 와있다. 서로 오해가 있는 듯한데 한번 말을 맞춰보지.”
나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그들을 응시했다. 자신들의 말이 어느 정도 먹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인지 마인들은 서둘러 나에게 대화를 시도해 왔다.
“너도 그 정도 실력자면 반제국파의 중추겠지. 우리는 학술제 마지막 날에 있을 작전에 마법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어쌔신이다.”
“어쌔신?”
확실히 기척을 숨기고 내 뒤를 점했던 그 모습을 떠올리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앨리스와 같은 부류인가.’
나는 앨리스와 녀석들의 승부를 가늠했다. 아무래도 용사 특전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같은 경지라 할지라도 힘의 차이가 있다. 한 명이면 우세하겠고, 두 명이면 박빙, 세 명부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녀석들을 죽이고 싶었으나, 아직 이들에게 내 정체를 드러낼 차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말을 알아들은 척을 하곤 검을 넣었다.
“서로 오해가 있었던 부분이니 사과는 하지 않겠다. 나 역시 그분의 지령을 받고 왔으니.”
“아이작 검호대장군?”
“함부로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설마 마인이 그 정보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살짝 움찔했으나, 완벽한 연기를 위해 나는 일갈을 내질렀다. 그것이 녀석들에게 확신을 주었는지 실실 웃으며 미안하다고 손을 흔들어왔다.
“아니, 오해가 풀렸으면 다행이군.”
“이름을 듣고 싶은데 말이야. 너 같은 강자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니 놀랍군.”
마인들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난다. 여차하면 날 포섭하고 하는 눈치였지만, 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왕국의 이면에 살아가는 자다. 너희들에게 댈 만한 이름은 없다.”
그럴듯한 핑계였다. 그것에 두 광대는 못 말리겠다며 어깨를 으쓱였고 일은 차질 없이 준비할 테니 그날에 보자며 자리에서 떠나갔다.
“…….”
텅 비어버린 골목길에서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마인이어서 다행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다면 분명 방금 서로 간의 대화에서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찾아냈겠지만, 마기에 의해 뇌가 침식당한 그들은 이성보단 본능이 앞섰다. 그렇기에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내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 테지.
나중에 혼자 곱씹으며 깨닫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상황은 끝나 버린 후일 터.
“하지만 이로써 확실해졌군.”
학술제의 마지막 날, 반제국파는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다, 회장은 마법사들의 결계와 기사단에 의해 엄중한 보호를 받고 있겠지만, 마인들이 나선다면 그것은 어렵지 않게 무력화될 터.
정말로 쿠데타라도 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현 왕은 반제국파와 상관없다는 소리가 되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최우선 목표는 아마 제국의 황자들이 될 터. 만약 정말로 카리우스와 다리우스가 사로잡히거나 죽게 된다면 그 여파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거 참, 일이 성가시게 됐네.’
원작을 따라가려면 이 테러는 실패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을 막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개인과 세력의 싸움. 시간도 촉박하고 힘의 우위도 명백하다. 얼핏 보면 체급 차이가 너무 컸지만, 그리 절망할 상황은 아니다.
이쪽엔 아직 사용하지 않은 카드가 손에 몇 장이나 남아 있었다.
* * *
“정말, 말도 없이 어딜 갔다 온 거예요.”
마드리드 아카데미로 돌아오니 오후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페트라는 자신의 시합도 있는 상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부전패로 처리되는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결승에서 당신이랑 붙는 걸 기대하고 있으니지지 말아요.”
“다리우스를 이길 자신은 있고?”
그 말에 그녀는 쉬이 승리를 내어주진 않을 거라며 자신만만하게 웃어왔다.
그 이후로는 다행히 순탄하게 행사가 진행되었다. 나는 나흘째까지 무난하게 압도적으로 승리를 따냈고, 페트라나 다리우스 역시 그러했다.
이변이랄 것은 우승 후보 중 1명으로 일컬어지는 남자가 다리우스의 손에 박살 났다는 것. 이로써 남은 것은 바이에른 아카데미 소속의 3명과 저 멀리 어디 왕국의 출신 1명이었다.
그리고 5일째. 남은 4명은 또다시 시합을 펼쳤다. 여기서 이기게 되면 6일째로 넘어가 결승에 진출했지만, 패배하게 된다면 다시 3, 4위를 정하는 시합을 벌였다.
앨리스 일행이 도착한 것은 내가 상대를 박살 내고 무대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내일이 주말이었기에 여유롭게 왔어도 괜찮지만, 뭐가 그리 급한 것인지 다들 서둘러 달려온 기색이 역력하다. 그것과 별개로 바이에른 아카데미의 제복 탓인지, 아니면 다들 워낙 외모가 화려한 면면인 탓인지 주위의 이목이 쏠렸다.
“1학년이 순위권이라니. 이건 아카데미 역사에서도 없던 일일 거야.”
베르너가 눈을 빛내며 말해온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인 표정으로 대단하다며 나를 칭찬해 왔다.
“어차피 내년에 너희들도 올 테니 진정해.”
그들과 관객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있자니 곧 페트라와 다리우스의 시합이 시작된다. 둘은 시작부터 팽팽한 접전을 벌였고, 누가 이기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뽐냈다.
다만, 혈통의 차이인 것인지 끝끝내 다리우스가 승리를 따냈다. 정말로 종이 한 장 차이였기에 그녀는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곧바로 3, 4위전을 결정하는 시합이 있었다.
결승 진출은 실패했지만, 순위권엔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녀는 숨을 고른 채 다시 시합에 임했다.
둘 다 패배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페트라는 아직 멀쩡한 데 반해 그 상대는 나에게 처참히 깨져 심지가 꺾였다.
검 끝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보지 않아도 승패가 예상되었기에 나는 지금을 적기라 여기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시합을 바라보고 있던 베르너의 어깨를 툭툭 쳤다.
“……?”
그는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온다. 그것에 나는 밖을 가리켰고, 베르너는 살짝 아쉬운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더니 군말 없이 나를 따라나섰다.
은밀한 장소가 필요했기에 나는 저번에 아이작과 대화를 나눴던 빈 교실을 빌렸다. 베르너는 저번의 내가 했던 것처럼 대충 책상에 걸터 앉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야? 아쉽게도 내가 좋아하는 건 앨리스 양이라서 미리 거절해 두지.”
“아쉽게 됐군. 그녀는 너 같은 남자가 취향이 아니라서.”
그는 내 말이 너무 심하다며 툴툴거린다. 그것에 나 역시 베르너를 바라본 채 웃음을 흘렸다.
베르너는 내 신분을 알고 있음에도 나를 다른 이들과 같이 대했다. 곁에 붙어서 이득을 취하려는 것도 없었고, 이용하려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 근처에 이들 중 온전하게 나를 나로 바라봐 준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기에 그와의 관계를 이렇게 비트는 것이 살짝 아쉬웠지만, 세상일이 이런 것을 어쩔 수 있겠나.
“내 신분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그 말을 내뱉자마자 녀석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표정을 보니 설마 이 타이밍에 먼저 말해올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연애 상담이나 그런 건 줄로 알았는데.”
“뭔.”
그 태도에 기막혀하니 베르너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해왔다. 요새 여성 관계가 너무 복잡하지 않냐며.
앨리스나 엘리상, 레이시스와 붙어 다니고 어느새 선배인 페트라까지 친한 모습을 보였다.
“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앨리스 양이 얼마나 질투를 하는지. 엘리시아 양 역시 은연중에 관심을 비추고 있어.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
그것에 할 말이 없기에 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탁자를 두드리며 손을 저었다.
“머리 아픈 이야기는 뒤로 살짝 미뤄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내 태도에 그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국의 황자께서 속국의 왕자에게 무슨 용건이 있으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