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84)
망나니학 개론-84화(84/300)
#084
내 말에 장내에는 사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를 바라보는 다리우스의 눈은 날카롭게 변했고 금방이라도 윽박을 지를 듯 이마에 핏줄이 불룩 튀어나왔다.
“…….”
그와 반대로 카리우스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나를 응시했다. 단지 등을 의자 뒤로 기대며 두 손을 모아 턱을 괴었을 뿐.
셋 중에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살짝 인상을 찌푸린 다름슈타트 후작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이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반제국파의 습격과 아이작 검호대장군과의 대면, 그리고 대화.
“그는 두 형님을 모두 죽여 나를 황제로 만들어 주겠다며 손을 잡자고 제안해오더군.”
“개소리-!”
다리우스의 끓는 점은 거기까지였는지 곧 힘차게 수증기를 내뿜는 주전자처럼 벌떡 일어나 성을 냈다.
“도무지 들어줄 필요가 없는 말이군. 가십시다, 형님. 후작도 일어나시오.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듣는 데 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할 순 없소.”
“맘대로 하시죠. 제가 손해 보는 일은 없으니.”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니 다리우스는 다른 두 사람을 둘러보았다. 극단적인 그의 태도와는 달리 그 둘은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하다. 바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다리우스는 제 형을 재촉했다.
“형님.”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자꾸나.”
그래도 첫째는 첫째란 것인지 카리우스는 조금 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것에 다리우스는 불만인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대로 자리를 뜬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내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전하께서는 그에게 무어라 대답하셨습니까?”
다름슈타트 후작이 나에게 물어왔다. 주름 속에 감춰진 그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서린 것을 본 나는 살짝 섭섭하다는 식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후작, 내가 반제국파에 동조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테지. 난 반제국파의 누구보다 제국의 실정을 잘 알아. 고작 이런 변방의 나라에서 수를 써봤자 감히 제국에 타격을 입힐 수 없겠지.”
“네놈 말대로다. 아무리 아이작 검호대장군이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우리 역시 소드 마스터가 있다. 거기에 데메드리오 왕국의 기사단과 마법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정말로 멍청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겁박하려고 일부러 그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면만 보는 그의 모습에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 말을 어디로 들으셨습니까. 분명 데메드리오 왕국의 힘으론 제국의 타격을 입힐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제국입니까? 거기에 왕국의 중추인 검호대장군이 반제국파의 수장으로 있는 상황입니다. 그가 뭔들 못 하겠습니까.”
다리우스는 내 말에 입을 닫았다. 반박할 거리가 없을 것이다.
검호대장군은 디메드리오 왕국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군부를 중심으로 보자면, 그 힘은 형인 국왕을 뛰어넘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우리로서도 아이작 검호대장군을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만한 위치의 사람을 건드렸다간, 파장이 적지 않을 테니.”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카리우스가 말했다. 그의 말은 타당한 것이었다. 제국의 힘이라면 타국의 귀족 하나둘쯤이야 땅에 묻어도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작 검호대장군 정도가 된다면 왕국 전체가 들고일어날 수도 있기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일을 처리해야 했다.
물론 데메드리오 왕국의 소란 자체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까 베르너가 말했듯 황제가 군대를 일으킨다면 반나절 안에 수도까지 밀고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완충지대가 무너진 것을 본 다른 열강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빌미로 삼아 목덜미를 물어 올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뜻하지 않은 불씨를 퍼트리는 꼴이 되었다.
‘쯧.’
스토리와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은 하나하나 깊게 생각해서 움직여야 했지만, 눈앞에 녀석들을 보아하니 답답함이 들었다.
다른 소설의 주인공처럼 생각 없이 다 깨부수며 다니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우선 눈앞에 있는 꼴 보기 싫은 형님들부터 손을 봐준 뒤, 암 덩어리들을 전부 곤죽으로 만들고 싶었다.
“덧붙이자면 회장의 호위 병력을 돌파할 준비는 이미 끝낸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시내에서 그들의 뒤를 밟았었는데, 오히려 제 추적을 눈치채고 역공까지 가해왔습니다. 전부가 그렇진 않겠지만, 제법 실력 있는 놈들로 보이더군요.”
내 말에 후작의 눈이 빛난다. 제국 고위 귀족들에게 내가 검성의 후계자임이 알려진 상태다. 그런 내가 괴한들의 강함이 범상치 않다고 말했을 정도니 숨어든 수도에 숨어든 세력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을 터.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지.’
필시 어디 이름이 있는 유명 용병단이거나, 다른 나라의 숨겨진 정예 조직일 터.
실제로는 둘 다 아니었지만,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제국의 황자로서 제가 이야기할 것은 전부 말했습니다. 나머진 두 형님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더 있다간 다리우스의 건방진 태도를 참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쩍 그를 바라보니 다리우스 역시 나에게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내일 흠씬 두들겨 패주마.’
아마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렇기에 나는 노려봐오는 시선에 작게 한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주곤 망설임 없이 그곳을 떠났다.
* * *
나는 곧바로 앨리스 일행이 묶고 있는 숙소로 달려갔다. 학술제 마지막 날 소란이 일어난다면 그곳에 있을 그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휘말릴 터다.
그 자리에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의 판단이었지만, 내가 가는 상황에서 따라오지 않을 리가 있을까. 그렇기에 최소한의 대비라도 하게끔 나는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기로 했다.
“테러라고요?”
“반제국파라니…….”
이미 알고 있던 레이시스와 베르너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그것을 들었지만, 뒷이야기까지 듣지 못했던 페트라를 비롯해 다른 이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 딴에는 친구들이 학술제에 나가서 응원하러 온 것뿐인데 갑작스럽게 테러가 터질 예정이라고 말하니 놀랄 수밖에 없을 터.
“이미 위쪽에 말하고 오는 길이다.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줬으니 나머진 알아서 하겠지. 너희도 조심하라는 차원에서 이야기한 거니까 당일에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게 조심해.”
“…그렇죠. 국가 단위의 테러라면 저희가 섣불리 나섰다간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다들 조심하도록 해요.”
페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에게 말해왔다.
테러라곤 하지만 날짜도, 목표도, 움직이는 세력도 대충 파악했기에 잘 대비만 하면 된다. 두 황자와 후작에게 이것에 관해 이야기를 해줬으니 알아서 잘 대처하겠지.
어차피 일차적인 목표는 두 명의 황자다.
아무리 아이작 검호대장군이 나선다고 하지만, 제국에서도 소드 마스터가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터.
물론 아이작의 말을 전부 신용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그러지면 쉬운 목표를 찾게 되는 것이 궁지에 몰린 인간이지 않나.
언제 칼끝의 방향을 바꿔 나에게로 향해올지 몰랐다. 막말로 꿩 대신 닭이라고 나를 공격해 올지 모르지 않나.
‘여차하면 다 엎어버릴 생각이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보험을 들어 놓았다. 제일 좋은 점은 제국에 의해 테러가 저지당하는 것이었지만, 절대적인 개연성이라는 것 때문에 전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사수좌의 토너먼트 결승 당일이 밝았다.
바이에른 아카데미에서 결승에 도달한 것은 나와 레이시스, 그리고 다리우스 단 세 명뿐이었다.
우승 후보로 거론됐던 다른 학생들은 모두 중간에 패배하거나 부상을 당해 실격처리가 되었다.
아마 근 10년간 손에 꼽을 정도로 떨어지는 성적이 아닐까 싶지만, 앞서 있었던 발표회나 토론회에서 입상을 싹쓸이했다니 어느 정도 균형은 맞췄지 않았을까 싶다.
거기에 1학년으로 출전한 나와 레이시스의 이름도 한몫을 했다. 세대교체라는 명목으로 꾸민다면,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을 터.
“와아아아아아-!”
학술제에서 가장 큰 이벤트의 결승전인 만큼 이전보다 배는 더 큰 회장 안에 만 단위 이상의 사람들이 자리했다.
가만히 있어도 시끄러울 판국에 사회자가 뭐라 할 때마다 큰 함성을 쏟아내니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단순하게 결승전만 치르면 심심할 듯싶으니 개막전 화려한 공연이 펼쳐진다. 그것을 보며 감탄을 내뱉고 있자니 누군가의 인기척이 나에게로 가까워졌다.
“부디 이번엔 그때처럼 맥없이 항복하는 일 없길 바란다.”
다리우스는 입가에 가는 미소를 띠며 나에게 말해왔다. 그가 말하는 그때란 아마 건국절에 황자 간의 시합이 있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겠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막 이 세계에 와서 허둥지둥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니.
날짜로 따지자면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다.
분명 다리우스는 그때와 비교해보아도 일취월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진보를 이루었다.
하지만 나는?
‘웃음만 나오는군.’
어디 햇병아리에 이른 실력으로 나에게 대적해 오는 것인지. 그의 도발에 가볍게 미소를 지어주니 다리우스 역시 크게 웃으며 몸을 돌린다. 곧 개막 행사가 끝나고, 결승전이 개시되었다.
“놀랍게도 이번 사수좌의 토너먼트, 검술 부문엔 모두 바이에른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그것도 둘은 선후배 관계인 사이라고 하는군요. 신예인 후배이냐, 완숙한 선배이냐. 정말로 흥미진진한 시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좌중이 환호한다. 실상 선후배라 불릴 정도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무대 위에 올라선 나는 고개를 꺾으며 다리우스를 향해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
다리우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도취한 듯했다. 일부러 멋들어진 행동을 취하며 나를 향해 날카롭게 검을 뽑아 들었다.
“기어오르지 마라, 후배.”
그 모습에 관중은 더더욱 환호를 보낸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함성이 회장을 지배했고, 우리는 사회자의 선언에 따라 본격적인 시합에 임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줄까.’
아무렴 당한 게 많은 입장이다. 단번에 끝내기엔 아쉽지 않은가.
“들어오도록.”
그는 꼴에 선배라는 체면 때문인 듯 나에게 검을 까딱이며 선공을 하라고 말해왔다. 난 그것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고, 힘껏 땅을 박찼다.
‘처음엔 반 수 아래로.’
다리우스의 경지는 소드 익스퍼트 하급과 중급 사이의 어딘가. 나는 그것보다 딱 반 수 아래의 실력으로 그를 공격해 나갔다.
“…과연, 검성께서는 대단하시구나. 쓰레기 같았던 너를 단숨에 이 정도 경지까지 끌어올리실 줄이야!”
허공에 서린 검광을 모두 막아낸 다리우스는 놀랍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지만, 그다지 동요한 기색은 아니었다.
“……?”
그것에 난 살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황궁에서 황제를 알현했을 때, 그는 내 기세를 정면에서 받았을 것이라.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이것이 내 전부라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을 텐데.
‘설마 그것을 정말로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테고…….’
순간 싸늘한 한 줄기 한기가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과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다리우스의 입가에 기묘한 호선이 그려졌다.
“세상 모든 일이 네놈 손바닥에서만 굴러갈 줄 알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