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87)
망나니학 개론-87화(87/300)
#087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도시 곳곳이 불에 타고 있으며 시커먼 연기가 수도 없이 솟아오른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무장한 세력들이 칼을 휘두르며 서로를 죽였다.
이건 테러라고 불릴 규모가 절대 아니었다. 숫제 반제국파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는 말이 맞을 터.
‘왕위가 목적이었나.’
꼼짝없이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에 나는 이를 갈았다. 아이작 검호대장군 정도 되는 남자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어 쉽게 그의 말에 넘어갔고, 그것을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한 것이 실책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손해가 클 텐데.”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반란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 중심이 되는 것은 반제국파의 인사다. 기존 왕국의 세력과 국민이 그들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
아무리 검호대장군의 이름이 있다지만, 반발을 전부 뒤덮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일단 수도로 들어가기 위해 말을 몰아 성으로 향했다. 안쪽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그런지 성의 경계는 삼엄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될 인원이 성벽에서 날카로운 창을 든 채 경계를 서고 있었고, 원래는 활짝 열려 있을 터인 성문 또한 굳게 닫힌 채 출입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리베라 제국의…….”
“그대가 누구인지는 관계없다! 지금은 본 왕국의 전시체제가 선포되어 있는 상태! 그곳에서 더 접근한다면 공격하겠다!”
성문의 수비대장으로 보이는 지휘관이 예외는 없다며 엄숙한 얼굴로 나에게 선포한다. 성벽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니 명령이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화살을 쏘아 보내고 돌을 던질 기세다. 그렇기에 난 별말 없이 말을 돌려 뒤로 물러났다.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된다면 또 다른 혼란을 이야기하게 된다. 만약 반제국파의 지원 세력이 성문을 함락했다는 오해를 사게 된다면 이 상황에 큰 악영향을 미칠 터.
‘될까.’
다시 산등성이로 올라간 나는 타고 온 말에서 내린 후 엉덩이를 때려주었다. 녀석은 한 번 푸르릉 소리를 내더니 숲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여, 간절히 소망하오니, 그대의 발자취를 따라, 내가 뒤를 쫓게 하소서, 인비저블].”
무려 4절에 해당하는 영창을 읊자 몸 속에 있는 마나가 쑥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내 몸을 뒤덮었고, 주변 풍경과 동화되어 그 원색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성공했나.”
그것에 난 미소를 지었다. 상태 창에 표기된 것에 따르면 나는 마법으로 4클래스 마스터의 수준에 올랐다. 하지만 인비저블 마법은 본디 5클래스부터 사용할 수 있는 것.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마법의 경지에도 무언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정답이었다.
내 모습은 투명 망토를 뒤집어쓴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만, 소리나 기척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말 그대로 보이는 모습만 지우는 듯했다.
‘그거야 문제없지.’
난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가 다시금 성 앞에 섰다.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은 당연히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도시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이 신경 쓰이는지 연신 흘깃거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스스슷-.
나는 그대로 성벽을 타고 올라 그들 사이를 뛰어넘었다. 앨리스에게 배운 어쌔신의 몸놀림이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생각보다 효과가 있는 듯했다.
“……?”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내 앞에 멈춰서서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 땐 등 뒤로 식은땀이 났지만, 곧 착각이라고 결론을 내린 듯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난 그대로 무사히 입구를 통과해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물러서지 마라! 곧 왕국의 군대가 움직일 것이다!”
도시 외곽은 쥐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인적이 뜸했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서니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데메드리오 왕국의 병사로 보이는 이들은 열세인 상황에서도 중심부로 향하는 골목을 지키며 필사적으로 항전한다. 다만, 반제국파의 숫자가 더 많았고, 간간이 쉬이 볼 수 없는 실력자들도 섞여 있었다.
“진짜 미친놈들이군.”
테러리스트가 정규 군대보다 더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다는 것은 녀석들이 외세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
아카데미에서 아이작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는 반제국파가 대륙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고 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들의 원조를 받은 것일 터.
‘다만, 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도왔겠냐는 것이지.’
실제로 길바닥에 쓰러진 이 중엔 병사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많이 보였다. 보통 반란이 일어나게 되면 적대 세력을 제외하고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녀석들은 자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
지금의 흐름 역시 원작에는 없던 이야기도. 이것 또한 나라는 이레귤러가 기폭제 작용한 것일 터.
아이작은 나를 회유하는 척하며 다리우스와 손을 잡고 데메드리오 왕국을 노린다. 왕위를 찬탈하게 되면 다리우스가 제 형인 카리우스와 황위를 두고 경쟁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겠지.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디며 왕국과 반제국파의 병사들이 싸우는 전장의 중심을 향해 들어갔다.
“뭐냐, 이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은?”
육중한 거구를 가진 반제국파의 병사 한 명이 나를 내려다보며 비열한 미소를 짓는다. 잔뜩 피 냄새를 풍기는 것을 보니 그저 살육을 즐기는 녀석 같았다.
주위의 녀석들이 그 앞에 선 나를 보고 껄껄 웃음을 터트린다. 왕국의 병사들은 전선을 유지하느라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태. 안타까운 얼굴로 얼른 이쪽을 향해 도망치라고 소리쳐왔다.
“구역질 나는군.”
혼란을 이용해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쓰레기 같은 놈들. 녀석들의 목을 치기에 엑스칼리버는 너무나도 고귀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난 그것을 허리께에 찔러 넣고, 바닥에 누워 있던 시체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이 빠진 검을 주워 들었다.
“꼴에 반항이라도 해보겠다는 것이냐. 순순히 항복한다면 이 형님이 좋은 것을……?”
서걱.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그것은 너무나도 쉽게 거한의 목을 베어냈다. 그는 자신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머리와 목이 분리되었고, 그대로 바닥에 몸을 뉘었다.
“무, 뭐.”
그 이후부턴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난 반제국파 놈들을 한 명도 남겨두지 않은 채 전부 숨을 끊었다.
피비린내가 가득한 전장의 중심에서 몸을 돌리니 왕국의 병사들이 몸을 흠칫하는 것이 보였다.
“민간인들을 구출하는 것에 힘써라. 반제국파의 봉기는 곧 끝날 것이니.”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들에게 담담히 고하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온다. 그것에 난 검을 까딱이며 말했다.
“알면 다쳐.”
* * *
아이작의 목표가 왕위라는 것이 밝혀지자 나는 조급한 마음을 지우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것을 살짝 미뤘다.
왕을 목표로 한 이상 녀석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쉬이 건드릴 수 없을 터. 특히나 다리우스와 손을 잡은 상태에서 제국의 인사를 건드린다는 악수를 두진 않겠지.
난 그대로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반제국파의 인원들을 죽이는 데 힘썼다. 어떤 때는 왕국의 군대와 마찰을 빚어 대치하기도 했지만, 곧 소문이 퍼진 것인지 대부분 나에게 협조와 도움을 요청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구역,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홀로 발을 들이자니 익숙한 얼굴들과 재회했다.
“어이, 레이오스 전하. 오랜만이지?”
일전에 거리에서 만났던 광대들이 날 보며 씩 웃는다. 다만, 그들은 날 노리고 찾아온 것이 아닌 듯했다. 각자 짐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왕도를 빠져나가려고 하던 찰나에 우연히 마주친 것으로 보였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군.”
“자기가 똑똑한 줄로만 아는 꼬마 한 명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지.”
“어때, 홀라당 넘어간 소감은?”
그들은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낄낄거리며 조롱해 온다. 그것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기분 참 더럽군.”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그때 광대는 두 명이었지만, 어느새 다섯 명까지 늘어나 있다. 전부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기세가 느껴지는 것이 나를 두고 여유만만하게 있을 법했다.
“그래서, 어떤가, 저번의 제안은?”
“어차피 넌 황제가 되지 못한다. 죽든가, 쫓겨나든가 둘 중에 하나겠지.”
“차라리 우리와 손을 잡는 게 어때?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녀석들은 나에게 질척거리며 자신들과 손을 잡자고 말해왔다. 하지만 난 입꼬리를 가늘게 늘어뜨리며 그 말을 잘랐다.
“인간이길 포기한 미물들과 손을 잡을 생각은 없다. 더러운 마인 놈들.”
“…….”
내 말에 주위 공기가 내려앉는다. 그와 동시에 녀석들의 눈이 시커메지며 나를 향해 찌를 듯한 시선을 보냈다.
“너, 누구지?”
한없이 가볍던 방금까지와는 다른 태도와 분위기. 그것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제국의 3황자, 레이오스 폰 리베라라는 것쯤이야 네놈들도 알고 있지 않으냐. 혹시 속여 넘긴 것이 너희들만이라고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군.”
이번엔 내 쪽에서 비웃음을 흘리니 그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인들은 지금껏 제 정체를 철저히 감춘 채 수면 밑에서만 활동해 왔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이런 곳에서 뜬금없이 나에게 정확한 포인트가 잡혔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하겠지.
“…꼬투리가 잡힐 만한 일을 한 적은 없는데.”
“당연하지. 내가 스스로 알아낸 것인데. 물론 이 사실은 나밖에 알지 못한다.”
“그 말을 믿으라고?”
“알다시피 처지가 처지라 내 편은 별로 없어서.”
“…너만 죽이면 된다는 말을 참 예쁘게도 해주는군.”
다섯 명의 마인이 본색을 드러낸다. 왕도를 벗어나던 찰나였지만, 내가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조금의 소란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것일 터.
스릉.
난 들고 있던 이 빠진 검을 바닥에 박아놓고 허리에 매여 있던 엑스칼리버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녀석들은 한 몸인 것처럼 비웃음을 흘리며 날 향해 말해왔다.
“네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우리 전부를 상대하진 못해.”
그 말에 나 역시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었다. 확실히 이전의 나라면 끽해야 저 다섯 중 두셋을 죽이고 동귀어진하는 것이 한계일 터.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파바바바바밧-!
날카로운 다섯 줄기의 살기가 쇄도한다. 그것에 난 별 어려울 것 없이 들고 있던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서걱.
단 한 번의 참격이 허공에 새겨진다. 하지만 날 공격했던 마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소드 마스터에 이른 힘만으로도 충분히 찍어 누를 수 있다. 그것과 더불어 내 손에 쥐어진 성검 엑스칼리버는 마를 숭상하는 이들에게 최악의 안티테제였다.
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을 자랑하는 마인이지만, 이 검에 베이면 상처는 성스러운 불꽃이 피어올라 타들어 가며, 결국엔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게 되었다.
네 명의 마인은 순식간에 목숨이 끊어져 가루조차 남기지 못한 채 허공으로 사라졌다.
난 겨우 명줄을 유지한 채 숨을 헐떡이고 있는 마지막 한 놈의 배를 짓밟으며 그 목에 검 끝을 겨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릴 죽인다고 해도, 어차피 그분 품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성스러운 불꽃에 온몸이 타들어 가던 마인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나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마인은 기본적으로 죽게 되면 그 영혼은 계약에 따라 종속된 마족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육신을 얻고 하수인으로 부활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해주었다.
“아니, 다시 못 살아나.”
“…뭐?”
“이거, 성검이야. 엑스칼리버라고 들어는 봤나 모르겠네.”
악을 멸하고, 마를 죽이는 구세의 신검(神劍). 마족을 비롯한 그들에게 종속된 모든 것은 엑스칼리버에 베여 목숨이 끊어지면 그대로 이 세상에서 소멸했다.
“…….”
엑스칼리버에 서린 기운을 보고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은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얼굴에 공포가 깃든다. 그것에 마인은 필사적으로 소리치며 나에게 구걸했다.
“정보! 정보를 줄게! 아무도 모르는 우리에 대한……!”
푹.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베었다. 죽어가는 와중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째서…!”
“필요 없어.”
이미 다 알고 있다며 어깨를 으쓱하자 녀석의 두 눈이 커다래진다. 그러곤 무슨 말을 토해낼 틈도 없이 재로 변하며 허공에 스러졌다.
“조금만 기다려라, 다른 녀석도 순차적으로 보내주마.”
아, 이미 다섯 명이 함께 갔으니 외롭지는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