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93)
망나니학 개론-93화(93/300)
#093
“보인다.”
마차를 타고 얼마간 달려가니 사우스요크셔 영지로 들어가는 성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마차들이 그 앞에서 기다리며 출입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 마차엔 무려 셰필드 가문의 영애께서 타고 계시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모두 차렷 자세를 취하며 근무 중 이상이 없음을 보고했다.
“참 아가씨, 영주님께서 이곳에 도착하는 즉시 저택으로 오라고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아버님께서요?”
수비 대장의 보고에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우리는 곧바로 셰필드 가문의 저택으로 가는 중이었다.
중간에 레이시스가 추천하는 유명한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으려 했지만, 곧바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그녀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취소했다.
마차는 별 탈 없이 영지 내로 들어갔다. 우리는 창문에 붙어 도시를 구경했고, 다들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쪽이 제일 나와 감성이 맞는 것 같네.’
원작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도시의 정경은 정갈하기 그지없었다. 황궁만큼 화려하거나 브리튼처럼 고풍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한눈에 봐도 신경 써서 관리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차가 달려 나가는 길은 튀어나온 곳 없이 단정했고, 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생활 수준도 높은 것인지 영민의 복장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말끔했다.
엘리시아는 브리튼과 이곳을 비교하며 부러움을 흘리고 있겠지.
오히려 현대 도시의 풍경과 비슷한 느낌이 났기에 나에겐 정감마저 느껴졌다.
다만, 도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살짝 이상했다.
“……?”
기분 탓이겠거니 고개를 돌렸지만, 마차가 번화가에 들어서자 그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아직 점심도 지나지 않아 본래라면 사방에 사람이 넘쳐날 것이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가게들 문도 열려 있고 간간이 지나다니는 행인이 있긴 하지만, 한 도시의 번화가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한산한 풍경이었다.
심지어 우리 마차가 지나가는 걸 바라보는 시손 또한 무미건조했고, 표정에선 무언가 꺼리는 기색이 가득했다.
“……?”
마차 안의 다른 이들 역시 그것을 느낀 듯 의문 어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레이시스에 이르러선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원래 이렇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아닌데…….”
마차는 곧 번화가를 넘어 광장으로 접어들었다. 기대대로 훌륭한 시설이 아닌가 싶다. 물론 황도와 비교하자면 살짝 떨어지지만, 광장 길목 길목이나 중앙에 화려하게 장식된 분수대는 흠잡을 곳이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없었다. 번화가는 장난이었다는 듯 정말로 한 사람의 인기척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병사?’
그 직후 나는 광장 건너편 거리에서 움직이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셰필드 가문의 병사로 보이는 이들이 분대 규모로 대열을 맞춘 채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도시의 경비대가 치안을 위해 움직이는 일이야 흔한 것이었지만, 저렇게까지 중무장을 한 채 순찰을 도는 것은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은 채 입을 닫았다. 굳이 이들의 불안을 부추길 필요도 없을뿐더러 곧 셰필드 가문의 저택에 도착한다. 이곳을 다스리는 영주인 백작을 만난다면 대략적인 사정을 들을 수 있겠지.
마차는 곧 셰필드 저택에 도착했다. 마차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가자 수많은 인원이 정문 앞에서 도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그 가운데로 기품 있는 두 명의 남녀가 걸어 나온다.
레이시스는 설마 제 부모님이 마중하러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갔다. 그럼에도 살짝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내가 황자라는 걸 미리 말해둔 듯하다.
‘괜찮아.’
셰필드 백작 정도면 이미 내 동태를 알고 있겠지. 그것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녀는 살짝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제 부모와 마주 섰다.
“모두, 사우스요크셔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레이시스와는 달리 짧은 단발의 헤어로 단아한 기품을 가진 백작 부인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 온다.
마차에서 내린 일행은 그것에 화답해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것에 셰필드 백작은 양옆으로 짧게 나 있는 제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자, 어서 들어가지. 마차를 타고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그는 기품 있는 제 부인과는 달리 짤막하고 퉁퉁한 신체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상을 더 좋게 만들어주었다. 딸의 친구들은 언제나 환영이라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한 명 한 명 시선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것이 날 스칠 때 살짝 이채가 서렸지만, 난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백작은 재킷 밑으로 쑥 삐져나온 아래 뱃살을 출렁이며 저택을 가리킨다. 우리는 거절할 것 없이 그 뒤를 따랐고 일단 각자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중앙 응접실로 모였다.
“다들 피곤하진 않죠? 원래 일정대로 점심은 밖에서…….”
“아니, 첫 식사는 응당 저택에서 대접해야겠지. 우리 가문의 손님이 아닌가.”
어느새 응접실에 들어온 셰필드 백작이 허허거리며 권유했다. 우리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레이시스가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아버지의 말대로 식사를 준비했고, 우리는 호화스러운 점심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음식 자체는 브리튼에서 먹었던 것만큼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서 왕이 동석했던 것과 같이 셰필드 백작과 부인도 함께 자리했지만, 훨씬 더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이루어졌다.
식사가 끝난 후, 셰필드 백작 내외는 좋은 시간 보내라며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활기차게 떠들던 앨리스는 태도를 바꾸어 모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던 것 같지?”
“그러게요. 평소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혹시 레이시스가 아는 것이 있을까 물어보니 자신은 며칠 전에 시설 공사를 한다는 소식 이외에는 들은 것이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가긴 그러니 부모님께 여쭤보고 올게요. 관광 때문에 왔으니 어지간하면 말씀해 주시겠죠.”
그녀는 모두에게 갑작스런 상황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다들 괜찮다곤 했지만, 레이시스 본인에겐 괜히 분위기를 망쳐서 죄책감이 들 터.
곧 그녀는 응접실을 빠져나간다. 그 직후 나 역시 잠시 방에 돌아갔다 오겠다며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레이시스.”
“…당신.”
레이시스는 내가 따라 나올 줄은 몰랐다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것에 난 그녀와 나란히 걸어가며 앞을 가리켰다.
“일단 무슨 일인지는 들으러 가야지.”
“…그렇죠, 가만히 있기엔 당신 성격이 그렇게 얌전한 편은 아니죠.”
그녀는 피식 웃으며 내 동행을 받아들인다. 그것에 난 제법 많이 컸다는 식으로 레이시스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예전에는 눈만 마주쳐도 바닥에 엎어져서 벌벌 떨었는데.”
“…여자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이미는 건 악취미네요.”
그녀와 잡담하며 영주의 집무실로 향하자니 셰필드 백작 내외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맞았다. 그 반응에 나는 역시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지간한 일들은 내 선에서 컷할 수 있지만.’
나는 다른 황자나 고위 귀족의 개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설마 카리우스가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다리우스라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이미 자신의 속내가 들킨 이상 어떤 수를 써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이거 참, 딸아이가 전하께 실례를 범한 것이 아닌지…….”
셰필드 백작은 당연한 것처럼 나에게 말을 높이며 뺨에 흐르는 뺨을 닦았다. 겉모습은 살집이 넉넉하고 인상 좋은 아저씨지만, 셰필드 백작가의 주인 되는 사람이 절대 만만할 리가 없다.
그 본인 자체로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였고, 제국의 권력 틈바구니에서 구르고 구른 귀족일 터.
“…….”
그리고 그 옆에서 마치 백작의 그림자처럼 존재감을 지운 부인이 작은 미소와 함께 나를 탐색하는 것 같은 기운을 풍겼다.
원래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변화였지만,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나 자신을 관조할 수 있게 되면서 외부 감각에 민감해졌다. 그렇기에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까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나.’
셰필드 백작 역시 권력의 중추에 가까운 만큼 내 소문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더욱이 마법 명가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니 황궁 마탑에 심어둔 사람이 많을 터. 당연히 그곳에서 내가 일으킨 소란을 알고 있겠지.
다만, 마법사라는 족속은 직접 보지 못한 것은 믿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날 직접 대면하고 판단하려는 것이다. 레이시스 역시 그것을 눈치챘는지 살짝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딸아이에게도 여러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쪽엔 전하에 관한 내용도 있어서 말이죠.”
“호, 그건 흥미가 생기는군.”
“아버님.”
레이시스가 새빨개진 얼굴로 옷자락을 붙잡고 낮은 소리로 말한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기백마저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움찔한 백작은 이내 화제를 돌렸다.
“원래라면 성대하게 환영식이라도 열어드리고 싶지만, 상황이 안 좋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저는 시설 공사를 한다는 연락밖에 받지 못했는데.”
“그것이…….”
셰필드 백작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일주일 전부터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단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너무나도 은밀하게 일어난 일이라 처음엔 실종되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니.
“사흘째가 되던 날에서야 겨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파악하고 서둘러 조치했지만, 벌써 피해자가 50명이 넘었습니다.”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는 소리였다. 일주일 사이에 50명이 실종되었다.
단지 사라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간간이 사라졌던 이들의 신체 부위가 인적이 영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칼로 벤 것처럼 반듯하게 잘린 것부터 짐승이 물어뜯은 것같이 거칠게 찢겨 나간 신체도 있었다.
“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가문의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최선을 다해 흉수를 찾고 있다. 황실에서도 조력을 해준다고 하니 곧 진상이 밝혀지겠지.”
백작의 말은 나지막하게 탄식을 딸을 안심시키려 하는 것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나에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백작은 꽤 솔직하군.”
나는 그것에 조금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실책은 축소하고, 공은 과장되게 하려는 것이 사람의 본질이다. 하물며 바로 앞에 자신보다 윗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두드러지기 마련. 하지만 셰필드 백작은 내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셰필드 가문의 유지를 받들어 이 영지를 평안하게 하고, 발전시켜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소란을 숨기면 제 선조님들에게 체면이 서겠습니까.”
사실 나는 그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원작에서 언급되는 것도 워낙 짧은 데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마주하고 있자니 속뜻은 몰라도, 면면으로만 봐선 어진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 이후엔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오갔다. 서로에 대한 안부, 궁의 정세, 아카데미에서의 생활 등등. 대충 이야기를 끝낸 나는 레이시스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아버님이 괜한 말을.”
영주 집무실을 빠져나온 그녀는 지금껏 나눈 대화가 부끄러운 듯 괜히 제 머리를 쓸어 올린다. 그것에 난 괜히 짓궂은 웃음이 나왔다.
“좋은 분들이군.”
“저에겐 과분한 분들이시죠.”
“과분한 건 나도 마찬가진데 말이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그녀는 피식 웃는다.
“웃는 건 불경죄인데.”
“아드님이랑 친하니까 한 번쯤은 봐주시지 않을까요.”
그 말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