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94)
망나니학 개론-94화(94/300)
#094
응접실로 돌아오니 못 보던 얼굴의 소년이 일행 중심에 있었다.
흰 피부에 가는 턱선에 호리호리한 체형. 머리카락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여성이라고 착각했을 정도의 외모다.
“아으으으…….”
그는 한창 여성진에게 붙잡혀 귀염받고 있었다. 특히 앨리스에 이르러선 왜 이렇게 피부가 부드럽냐며 얼굴을 조물조물 당하기까지 했다.
내 뒤를 따라 응접실로 들어온 레이시스는 그것을 보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는 건가요.”
“…….”
그러자 앨리스를 비롯한 여성진은 장난을 치다 들킨 아이처럼 머쓱한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어, 왔어?”
“레이시스 양, 동생이 귀엽네요.”
“란돌프.”
누님의 부름에 그는 쪼르르 달려와 우리 앞에 섰다. 흥미 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니 레이시스는 제 동생의 어깨를 잡으며 나에게 말했다.
“제 동생, 란돌프에요. 내년에 바이에른 아카데미에 입학할 예정이죠.”
“한 살 차이라고?!”
그것에 놀란 것은 지금껏 란돌프를 가지고 놀던 여성진이었다. 하긴 날 올려다보는 녀석의 초롱초롱한 얼굴이 우리와 고작 한 살 차이라는 것을 믿기 힘들겠지.
난 이미 알고 있었기에 동요하지 않았지만, 다른 일행은 놀람을 표한다. 특히 지금껏 그의 얼굴을 주물럭거리던 앨리스는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을 정도였다.
“란돌프, 이쪽은 제 아카데미 친구로…….”
레이시스는 이제 자신의 동생에게 날 소개하려 손짓했지만, 그보다 먼저 란돌프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당신이 누님의 친구이신 오스티아 님이신가요?”
“그래, 내가 오스티아다.”
그의 표정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없이 진지했다. 혹시나 제 누나를 빼앗겨 나에게 질투라도 하는가 싶었지만, 이내 란돌프는 허리가 반으로 접히도록 몸을 숙이곤 나에게 말했다.
“선배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스승님으로 모시게 해주세요!”
“……?”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레이시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가와 제 동생의 어깨를 붙잡았다.
“란돌프, 대체 이게 무슨…….”
“그 고지식하던 저희 누님의 마음을 훔치신 비법을 전수받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란돌프의 태도는 굳건했다. 주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말을 관철하는 것이 여리여리한 외모와는 다르게 뚝심이 있는 것 같아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것에 웃음을 터트리자 레이시스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녀는 서둘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제 동생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그것을 바라보는 앨리스의 눈은 가늘어졌고, 상대적으로 레이시스와 친한 유리아는 입가를 가린 채 쿡쿡 웃음을 흘렸다.
“제자로 받아달라라…….”
“네, 부디!”
친구의 동생이라는 것에 점수도 컸지만, 난 녀석의 당돌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서 존재 자체의 격이 바뀌었다.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곤 하나 다른 사람이 날 본다면 무의식에서부터 그것을 느낄 터.
하지만 날 바라보는 랜돌프의 두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것이 기특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네 당당함은 높게 사지. 하지만 아직 자격이 부족하다. 적어도 네 누나처럼 마법 학부 수석으로 입학한다면 고려해 보지.”
“…그럼!”
“그래, 그러니 그때까지 정진해라.”
“감사합니다!”
의도치 않게 제자 한 명을 들이게 생겼다.
랜돌프는 나에게 확답을 받자, ‘아자!’ 하며 제 주먹을 불끈 쥔다. 제 누나의 얼굴이 새빨개진 채 부끄러움으로 몸을 덜덜 떠는 것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신난 것 같다. 다른 이들은 그 뒤에서 우리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주위는 상관하지 않는 타입인 것 같네요.”
제 누나의 예전 모습과 똑 닮았다며 엘리시아가 짐짓 감탄을 흘린다. 그것에 란돌프만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우리는 예정대로 관광하기로 했다. 아직 영지 내의 소동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곳곳에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잔뜩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까 싶었다.
란돌프는 마법 수업이 있어 우리를 떠나갔다. 그것에 앨리스를 비롯한 누님들은 아쉬운 기색으로 그에게 인사를 했다. 레이시스는 그가 한 말은 모두 오해라며 붉어진 제 뺨을 문지르며 말했지만, 일행은 모두 오묘한 표정만 지으며 나를 바라봐왔다.
그것에 난 괜찮다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뭐, 내게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만, 아쉽게도 할 일이 많은 몸이니 한 여자만의 남자가 되긴 어렵다. 그건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러니까…….”
레이시스를 놀리며 저택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슬슬 오후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저택과 가까이 있는 곳의 번화가로 향했다. 순찰이 강화돼서 그런지 오면서 보았던 텅텅 빈 거리와 광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다만, 걸리는 것은 일행의 면면이 전부 화려하다는 것이었다. 전부 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지만, 빛나는 외모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뭐, 어때. 여기 영주님 딸이 우리 친군데.”
앨리스는 알아보고 서비스를 준다면 오히려 더 좋지 않냐고 말했다. 홀린 듯 그것에 설득당한 우리는 그대로 관광을 시작했고, 레이시스가 소개한 유명한 식당부터 가게까지 전부 섭렵하며 휴식을 만끽했다.
그러다 발길이 닿은 광장에선 극단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분장을 보자니 데메드리오 왕국에서 마주쳤던 마인들이 떠오른다. 혹시나 녀석들이 있나 샅샅이 기감을 퍼트려 살폈지만, 다행히도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툭.
한창 공연을 구경하고 있자니 누군가 내 손끝을 살짝 건드려 온다. 광장엔 인파가 가득했기에 그것에 밀려 그러나 싶어 무시했지만, 그 손길은 재차 내 손을 건드렸다.
“…앨리스?”
살짝 짜증이 나서 고개를 돌리니 내 옆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공연을 바라보고 있던 앨리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내 부름에 이제야 눈치챘냐고 말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소매를 잡아왔다. 그러곤 상급 어쌔신다운 몸놀림으로 날 이끌었다.
“어디로 가게? 다른 애들은…….”
“레이시스한테 말해뒀어. 한동안 연극 보고 있는다니까 나중에 합류하면 괜찮겠지.”
그녀는 내 물음에 시원시원하게 답하며 계속해서 나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번화가를 지나 아까 보지 못했던 신기한 장신구나 특이한 음식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요즘 바빠서 나한테 소홀히 했잖아. 이 정도 투정은 받아줘.”
그녀는 짐짓 삐진 척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내 손을 잡아끌며 더욱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30분가량이 지났을까, 앨리스는 만족했는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공연을 하던 광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관광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볼 것도 먹을 것도 많아 심심할 겨를도 없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재미있게 즐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끝으로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하루 반나절을 돌아다녔기에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레이시스는 그런 우리에게 목욕탕을 안내해 주었고, 그곳에 처음 발을 내딛자마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좋은데?”
현실에 있었던 고급 사우나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좋은 시설의 목욕탕이 나를 반긴다. 물론 황궁에서도 목욕탕은 있었지만, 번쩍인 장식으로만 치장했을 뿐 시설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나 쏟아져 내리는 온천수는 정말로 현대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으.”
가볍게 씻은 후 탕에 몸을 담그자니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다른 이들 역시 같은 얼굴로 푹 늘어져 탕에 잠겼다.
물론 목욕탕은 남녀가 분리되어 있었다. 어디 소설처럼 엿볼 건더기가 없게 아예 건물 자체가 나눠져 있는 것에 디아크와 베르너는 살짝 아쉬움을 삼켰다.
“레이시스 양 덕분에 이런 좋은 경험도 하네. 나중엔 애인이랑 같이 오고 싶을 정도야.”
뺨에 흐르는 땀을 닦은 디아크가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 옆에 있던 베르너가 슬쩍 찔러보듯 물었다.
“우리 일행 중엔?”
디아크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러곤 어깨를 으쓱이며 우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서라, 경쟁자가 너무 압도적이다.”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다만, 베르너만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것에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있나?
“그나저나 오스티아, 넌 누구를 생각하고 있어?”
“누구를?”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내 반응에 베르너와 디아크는 진중한 얼굴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
“아무리 그래도 앨리스 양 아닐까. 입학 처음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 같으니까. 실제로 제일 친해보이잖아.”
“아니, 그래도 브리튼에서 잊었어? 둘이 밀회까지 했었는데. 병사들 사이에서 소문 쫙 났었잖아.”
“생각해 보니 레이시스 양이랑도 의심스럽네. 아까 반응 보니까…….”
그들의 대화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곳에 와서 고작 그런 이야기들이라니.
“실없는 이야기 하지 마. 약혼녀도 있는 몸인데.”
“약혼녀? 누구?”
그것에 디아크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마치 처음 들었다는 그 얼굴에 나는 가볍게 툭 내뱉듯 말했다.
“잊었어? 2학년의 페트라가 내 약혼녀잖아.”
“……?”
하지만 디아크는 의문이 풀리지 않은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에선 미묘한 표정으로 날 향했다.
“페트라 선배는 3황자 레이오스의 약혼녀인데 네가 무슨…….”
그것에 베르너가 입을 벌리며 뜨악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설마 아직까지 몰랐냐는 그 얼굴에 디아크의 눈동자는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오스티아가 3황자잖아.”
“…….”
잠깐의 침묵이 우리 사이에 흐른다. 그 사이 디아크의 눈동자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종래에 남은 것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며 현실을 부정하는 선택이었다.
“귀에 물이 들어갔나 봐. 이상한 소리가 들리네.”
* * *
“전하!”
디아크는 욕실 바닥에 엎드려 나에게 오체투지한다. 난 그것에 상반신만 탕의 밖으로 내밀어 바가지를 집어든 뒤 그의 머리를 향해 던지며 말했다.
“이제 와서 무슨.”
“…그렇지? 흐흐.”
상황 판단이 빠른 녀석이었다. 그는 내가 3황자라는 사실에 놀란 듯했지만, 제 캐릭터답게 곧 분위기를 파악하며 실실 웃음을 흘려 왔다.
“이러면 출셋길은 막힘없는 건가?”
“내가 뭐라 불리는지 잊었어?”
“…그나저나 소문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다시 탕에 들어온 디아크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도 명색이 귀족인 만큼 내 소문을 자세히 들었을 터.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보인 내 행보는 그것과 한참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소문은 자의적으로도 낼 수 있잖아.”
베르너가 옆에서 툭 내뱉듯 말한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많았다. 디아크 역시 바보는 아니었기에 대충 이해했고, 곧 우리 대화는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목욕을 끝낸 뒤, 디아크는 피곤하다며 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여성들은 아직 한창 목욕 중이었기에 심심하던 차, 나에게 다가온 베르너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와인을 흔들며 말했다.
“한잔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