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96)
망나니학 개론-96화(96/300)
#096
“…전하?”
곁에 있던 셰필드 백작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불러온다. 그것에 난 손을 내밀어 그의 입을 다물게 한 뒤 귓가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평범한 녀석이 아니에요. 육신을 망가뜨린 걸 넘어 혼을 빼앗아갔어요.]“영혼을 빼앗아갔다라…….”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베르너가 손수건을 건네주었기에 그것으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낸 뒤, 나는 셰필드 백작을 바라보았다.
“흉수가 무엇인지는 특정했나?”
“그것이…….”
그는 입맛을 다시며 말을 아꼈다. 표정을 보아하니 알고 있는 것 같지만, 함부로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것에 나는 손을 휘둘러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물렸다.
“그래서?”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평범한 자의 소행은 아닌 듯싶습니다. 일전에 제가 셰필드 가문의 가주가 되기 위한 시련을 통과하기 위해 대륙을 횡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보았던 어떤 존재의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기라는 말을 참 길게도 늘려서 하는군.”
“…알고 계셨습니까?”
셰필드 백작은 괜히 장황하게 설명했노라 투덜거리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것이 우습긴 했지만, 그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신성 왕국을 제외하면 아직 이 세계에서 마기니 마족이니 하는 것은 대중적으로 생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셰필드 백작이야 마법 명가의 가주로 예전부터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을 터니 대략적으로 감을 잡고 있는 것일 뿐. 원래는 모르는 것이 정상이었다.
“이걸 아는 이들은?”
“제 심복들뿐입니다. 한 명은 마법사고, 한 명은 기사로 방금 시신을 살피고 있던 이들입니다.”
“흠…….”
그 말에 나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잠깐 떠올려 보았지만, 이곳의 에피소드 중 마족과 관련된 것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또다시 원작에 없었던 전개가 나타났다는 소리였다.
더욱이 나타난 마족이 단일 개체라는 보장도 없다. 실제로 브리튼에서 싸웠던 녀석들도 둘이 한 쌍을 이루어 덤벼오지 않았나.
“일단 시신부터 수습하지.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좋진 않으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면 전하께는 앞으로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는 슬쩍 내 의중을 살펴왔다. 표정을 보니 더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다.
혹시라도 황자인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결과 자체는 내 악평과 상관없이 그의 실책이 된다. 그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셰필드 백작의 주적들에게 압박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맡기지. 머리가 두 개라면 수사도 난항을 겪을 테니.”
그렇기에 난 여기서 손을 떼겠노라며 그에게 고했다. 리버는 평범한 녀석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곳에 있는 마법사들 역시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제국에 있는 수많은 마법사의 계보를 잇는 곳 중 무려 명가라 불리는 곳이지 않나. 본체로 강림하지 않은 마족 한둘쯤이야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테지.
“전하께서 친구분들과 즐거운 관광을 즐기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는.”
이 영지를 다스리는 그에겐 사뭇 심각한 일일 테지만,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인지 이런 상황에서도 농을 던져온다. 나는 그것에 얼른 가서 일 보라며 손을 젓고 발걸음을 옮겼다.
“리버.”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조금 전에 들려왔던 리버의 목소리는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잠에 빠져든 듯 이름 모를 벌레의 울음만 귓가에 들려왔다.
“흠…….”
그것이 살짝 아쉬웠지만, 그리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리버나 티르빙의 활약에 기대는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었으니.
나는 다시 일행이 있는 응접실로 돌아가기 위해 베르너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저 멀리 물러나 있던 무리에서부터 무언가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아버님!”
레이시스가 다급한 얼굴로 이쪽을 향해 뛰어온다. 그녀는 그대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저택이, 저택이 습격…….”
“무슨 일인 것이냐. 진정하거라.”
셰필드 백작은 거의 쓰러지듯 달려온 딸의 어깨를 붙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에 그녀는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저택 한 곳을 가리켰다.
“일단의 무리가 반대쪽 구역을 습격했습니다! 아직 싸우고 있어요!”
“……!”
그 말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곧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고, 셰필드 가문의 마법사들도 마법사답지 않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우리 뒤를 쫓았다.
“막아!”
“빛 속성 마법을 펼쳐! 녀석들은 빛에 약하다!”
워낙 저택의 크기가 커서 그런지, 가던 도중에서야 소란이 일어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우우웅-.
어둠을 가르고 수 개의 마법이 적들에게로 떨어져 내린다. 그 불빛 아래 드러난 괴한들의 모습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물인가.”
녀석들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어둠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움직이는 그런 모습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가리 없이 생긴 외형과는 달리 꽤 질긴 것인지 마법을 몇 발이나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빠른 속도로 달려와 기사들과 마법사들에게 몸을 던지며 그들을 침식하려 했다.
“이-놈-들-!”
내가 앞으로 나서기도 전에 셰필드 백작의 전신에서 거센 마나 폭풍이 일어난다. 쩌렁쩌렁한 호통과 함께 그가 양손을 허공으로 뻗자 수십 자루의 스피어가 만들어졌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신성력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실력이 있는 자라면 속성을 변환시켜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셰필드 백작 역시 그런 것쯤은 손쉽게 해내는 경지에 이른 자. 곧 수십 자 스피어 위로 밝은 빛이 서린다. 그러곤 그의 손짓에 따라 저택을 침입한 그림자 망령들에게 쇄도했다.
굵은 스피어가 그림자 망령들의 몸을 꿰뚫고 짓이긴다. 단 한 마리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전부 형태를 잃으며 소멸했다.
셰필드 백작이 앞으로 나서자 그의 수하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부상자들을 살폈고, 더러는 혹시라도 남아 있는 마물이 없는지 경계했다.
“전부 소멸한 것 같습니다.”
“사악한 것들이니 완벽하게 안전이 파악될 때까지는 경비 단계를 최고조로 올린다. 결계 역시 마찬가지다.”
“명심하겠습니다.”
저택 자체의 피해는 미미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저택을 둘러싸고 있던 벽이 부서진 정도.
‘내가 나설 차례는 없군.’
다급히 달려온 것이 머쓱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주위를 둘러보자니 레이시스와 베르너가 그제야 숨을 헐떡이며 이쪽으로 도착했다.
“너무 늦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빠른 거야. 무슨 검사보다 더 빨리 달려나가.”
베르너는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 투덜거린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했을 테니 그럴 만도 했지만, 기껏 도착했더니 활약할 틈도 없이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에겐 분통이 터지겠지.
“…그나저나 이상하네요. 저들은 어떻게 들어온 걸까요. 결계는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을 텐데.”
“아무리 결계라도 만능은 아니야. 일정 수준 이상의 강자는 손쉽게 통과할 수 있지. 예를 들어 나나, 네 아버지, 그러고 제일 강한 두 명 정도는?”
“그럼 상대도 그 정도가 된다는 건가요.”
“우리 이목을 속이고 이 정도 짓을 벌였으니……?”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 순간, 익숙한 기시감이 내 감각을 꿰뚫었다.
‘어디지?’
검에 손을 올리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풀어헤친 기감을 사방으로 보내며 몸을 살짝 낮출 찰나, 제일 가까이 있던 건물의 벽이 터져 나갔다.
콰아아앙-!
자욱한 먼지가 그 뒤를 따라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인영이 솟구쳐 올랐다.
“적이다!”
마법사들과 기사들의 이목이 그곳으로 집중된다. 과연 마법 명가답게 순식간에 수십 개의 마법이 캐스팅되고 목표를 노렸지만, 이내 레이시스의 비명에 의해 모두가 주춤했다.
“라, 란돌프! 모두 멈춰요! 란돌프가!”
“정지! 모두 정지!”
벽을 부수고 나온 괴한의 옆구리에 란돌프가 축 늘어져 있다. 처음부터 그가 목표였는지 모르겠지만, 란돌프는 셰필드 가문의 귀중한 핏줄이었다. 마법사들도 황급히 마법을 캔슬했고, 더러는 핏물을 내뱉으며 휘청거렸다.
“큭…….”
그것은 셰필드 백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 짧은 찰나에 수준이 높은 마법을 캐스팅했으나, 제 아들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보곤 황급히 마법을 캔슬했다.
그렇기에 그 반동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비틀거리고 있는 상태로 당장 움직이긴 힘들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망설일 것 없이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전하-!”
“오스티아군!”
등 뒤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부름에 난 슬쩍 고개를 돌려 말했다.
“흔적을 남길 테니 뒤따라오도록.”
파바바바밧-!
극한으로 활성화된 육체는 인간의 것을 초월한 폭발력을 내뿜었다. 땅을 박차자 내 몸이 순식간에 솟구치며 어둠 속을 활공했다.
‘저기 있나.’
괴한은 이미 저 멀리 앞질러 간 상태였다. 그대로 어느 상가 지붕에 내려앉은 나는 그 방향을 가늠하고 다시 몸을 날렸다.
거리는 생각보다 빨리 좁혀지지 않았다. 치고 나가려면 상대 역시 더 빠른 속도로 나에게서 멀어진다. 마치 나를 약 올리는 것처럼 거리를 내주지 않는다.
곧 녀석은 손쉽게 성벽을 넘었고, 나 역시 그것을 뒤따라갔다.
“어어엇!”
동시에 성벽을 지키고 있던 병사 한 명이 날 보곤 헛바람을 내뱉는다. 난 그의 투구를 툭 치며 말했다.
“네 주인이 오거든 방향을 잘 안내해 주도록.”
그러곤 훌쩍 몸을 날려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등 뒤에선 병사들이 뭐라 뭐라 소리를 질렀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은 사우스요크셔와 조금 떨어진 들판 위에 멈춰 섰다.
“……?”
여기까지 날 끌고 온 것에 무언가 꿍꿍이가 있나 싶었지만,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달빛 아래 초목이나 풀들의 그림자만 길게 늘어섰을 뿐.
“도망치는 것은 포기했나?”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녀석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엑스칼리버를 꺼내면 녀석이 경계하고 도주할 염려가 있다. 전력으로 쫓아온 것은 아니지만, 상대 역시 여유를 남겨두고 있을 터.
‘란돌프도 살아는 있는 것 같고.’
슬쩍 그의 팔에 메여 있는 란돌프의 상태를 살피자 가슴께가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인다. 다행히 의식만 잃은 것이라 추측되었다.
“그러면…….”
검을 뽑아 든 나는 천천히 그 위로 오러를 일으켰다. 녀석이 경계하지 않을 정도만 간략하게.
하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흘렀고, 나는 한달음에 녀석의 목을 벨 수 있을 거리까지 도달했다.
‘단숨에 처리하고, 란돌프를 확보한다.’
파바바밧-!
난 일순간 전력을 폭발시키며 앞으로 쇄도했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기세가 전신에서 터져 나와 녀석을 휩쓸었다.
“……?!”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발밑에서부터 내 기세를 가르며 거슬러 올라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감지하지도,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난 헛바람을 내뱉으며 검을 회수했지만, 한 발자국 늦고 말았다.
푹-!
차가운 검날이 살갗을 꿰뚫는 기분 나쁜 감각이 가슴께에서 느껴진다. 그것에 나는 망설임 없이 발밑을 찔렀지만, 녀석의 신형은 땅속으로 사라졌고 곧 제 동료의 근처에서 다시 솟구쳤다.
심장을 찔러온 치명타는 피했다. 다만, 패를 당한 듯 호흡이 점점 가빠져 왔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을 털어내며 나는 다시 검을 부여잡았다.
“…그런가, 그림자인가.”
나는 그제야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적의 수법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은 그림자를 통해 움직였다. 앞에 있는 녀석에게 신경을 빼앗긴 틈을 타 내 그림자에서 솟구쳐 일격을 가해온 것. 언제부터 그곳에 숨어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방 먹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스스슷-.
다시금 녀석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것에 난 손에 쥔 검을 놓으며 진한 웃음을 지었다.
“내 피를 보게 한 대가는 비싸게 받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