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152
분신으로 절대무신 152화
장일이 전하는 불법에 비하면 노승의 불법은 매우 단조로웠음에도 그러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우쳤다는 12연법 따위는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노승은 그저 공(空)을 말할 뿐이었다.
불가에서 말하는 공이란,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상을 말한다.
그리고 이 공은 장일에게 있어 친숙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바로 장삼풍이 소림에서 주로 이를 깨우치려 한 것이 바로 이 공이었기 때문이다.
이 공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바로 누진통(漏盡通)이었는데, 이 누진통을 얻는 일은 본신인 장일이라고 해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기억을 잃은 장삼풍이 이를 깨우칠 수 있던 것은 그가 스스로에 대한 기억을 잃으며 자연 법(法 존재)을 공하게 되어서다.
여기에 차원 너머 그가 발을 디딘 세상이 그를 배척하니 그야말로 그 상황 자체가 공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그라고 한들 누진통과 같은 지혜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처럼 공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던 장일이었지만, 그런 그도 노승이 말하는 공에는 한없이 모자랐다.
그도 그럴 게 장일이 깨우친 것은 아공(我空)이었기 때문이다.
아공은 인공(人空)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음을 깨우친 경지를 말한다.
장일은 이를 깨우치고 누진통과 같은 지혜를 안 것이다.
그에 반해 노승은 이 아공은 물론 법공(法空)까치 깨우친 뒤였다.
아공이 인간 자신 속에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음을 말한다면 법공은 그걸 넘어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음을 깨우친 경지를 말했다.
간략히 말하자면 인공은 열반 즉 해탈을 말하는 것이었고, 법공은 보리 즉 반야, 대지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것을 말했다.
이 둘을 이공(二空)이라고 말하는 데, 아공을 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하며 법공(法空)은 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한다.
노승은 이 인무아를 넘어 법무아를 마주하고 있는 수행자였으니, 장일의 그 큰 불법도 노승에 미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일은 그것을 알게 되자 그제야 마음속의 한 점의 꺼려짐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노승이 큰 지혜를 이룬 대사(大士)임을 알기에 이 사암(寺庵)에 머물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는 가우타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작지 않았다.
아니 그것이 어렵다면 대불사를 세운 송도대사라도 만날 생각 또한 내려놓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부처를 마주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장일이 정중한 태도를 보이며 그리 간청하자, 노승은 껄껄 웃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에 장일은 크게 아쉬워하였는데, 그런 그에 노승은 인자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장 시주께서 스승으로 모셔야 할 이는 제가 아닙니다.”
그 말에 장일은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다. 설마 자신을 다른 이에게 가르침을 받게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문도 잠시 장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승보다도 더 부처에 가까운 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설사 가우타마가 그 옆에 있다고 해도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장일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노승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장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 시주께서 스승으로 모셔야 할 이는 다름 아닌 장 시주 본인이십니다.”
“……..”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청을 거절하며 새로이 찾아 준 스승이 그 자신이라는 노승의 말에 장일은 말문을 잃어버렸다.
만약 다른 이가 그리 말했다면 그가 자신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 여길 불법을 이룬 노승이 그럴 리 없으니, 장일은 그 안에 또 다른 뜻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현묘한 뜻이 있지 않을까? 라 여긴 것이다.
그런 장일의 생각이 드러나기로도 한 것인지 노승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달리 무슨 숨긴 뜻을 담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장 시주께서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는 본인밖에 없다고 보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생각지 못했던 말인지라 잠시 머뭇거리던 장일은 이내 가르침을 청했고, 노승은 어려움 없이 말을 이어갔다.
“장 시주께서는 이미 삼공(三空)을 깨우치신 분입니다. 그를 보았고, 그를 다루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지요.”
삼공(三空).
이는 불가에서 앞서 말한 아공, 법공과 함께 구공(俱空)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이중 노승이 말하는 삼공은 구공을 말하는 것이었다.
구공은 아공과 법공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아공과 법공까지도 버려 비로써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경지를 말한다.
인공에서 열반을 하고, 법공에서 보리를 이루었다면 구공에서는 비로써 증득(證得)하게 되는 것이다.
바른 지혜로써 진리를 깨우치게 된다는 것으로, 이 바른 지혜라는 것은 그 모든 법에 상반되지 않게 된다는 말과도 같았다.
이는 우주의 유무형의 모든 법을 깨우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장일 또한 구공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알기에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둘러 답했다.
“저에게서 무엇을 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저는 구공은커녕 법공조차도 그저 벅찰 뿐입니다.”
“하하하!”
장일의 그 말에 노승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는 듯 대소하였다.
이에 장일은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노승을 바라보았다.
여느 구도자와 달리 감정 자체를 그대로 마주하는 노승이었기에 웃는 모습을 종종 보기는 했으나, 이처럼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승은 그렇게 한참을 더 대소하더니 이내 찬찬히 그 감정을 수습한 뒤에야 말을 이었다.
“본래 진리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것을 집으로 비유하자면 굳게 닫힌 집 안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할 수 있지요.”
진리는 아주 작은 창문 하나만이 놓여진, 하여 더욱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집이다.
그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구도자는 많은 일들을 시행한다. 어렵게 나무를 구하고 그것을 사다리로 만들어 지붕에 올라가며, 그렇게 올라간 지붕에서 찾은 굴뚝으로 온갖 어려움 끝에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간 구도자는 기뻐하기도 잠시 이내 허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사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그 집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서지요. 보통의 구도자들은 그렇게 뒤늦게서야 그 진리를 깨우치지요.”
“저 또한 그렇단 말입니까?”
그 물음에 노승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답했다.
“그랬다면 제가 이처럼 즐겁지도 않겠지요. 모르시겠습니까? 장 시주께서는 이미 그 집에 들어가 계십니다. 한데도 그를 알지 못하고 있군요.”
“…….”
장일은 다시금 말문을 잃어버렸다.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노승은 또다시 그에게 이미 자신이 구공을 마주하였음을 그를 깨우쳤음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승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장일도 이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장일은 자세를 다시금 바로 하며 가르침을 청했다.
“그를 알려면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에 노승은 장일이 그리 말하기를 바랬다는 듯 말했다.
“이 늙은 중의 생각으로는 장 시주께서 이를 알지 못한 것은 장 시주께서 한순간 대오각성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본래 진리를 구하고자 지혜를 쫓는 구도자들은 단계를 밟아 나아가지요. 이는 세존(世尊 석가모니)께서도 다르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한데, 장 시주께서는 그 모든 단계들을 뛰어넘어 이르신 것이지요.”
구도자의 길이 산을 오르는 길이라면 장일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니 그 산의 정상에 다다랐다는 말이었다.
수많은 구도자들이 꿈에서도 바라는 정상에 올라선 것이었지만, 문제는 장일이 자신이 산의 정상에 오른 것을 모른다는 점에 있었다.
애초 시작이 정상이다 보니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노승이 장일에게 제시하는 길은 명확했다.
“장 시주께서는 다시금 단계를 밟으셔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장 시주께 그 일은 다른 구도자들보다 더 어려울지 모르겠군요.”
정말로 그 구도의 길이 산이라면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편할 것이다.
하지만 구도의 길은 산이 아니었으니, 장일은 그가 오른 산을 내려가기 위해 스스로 길을 만들 뿐 아니라 그 지지대조차도 놓아야 했다.
노승이 더 어려울 것이라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였다.
하지만 다행히 노승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나마 길잡이가 되어 줄 만한 것을 그에게 내어주었다.
“십우도를 행한 과정에 나름의 깨우침을 담아 보았습니다. 부디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승이 장일에게 내어 준 것은 그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염주였다.
도가에서도 그렇지만 불가에서 염주와 같은 신물을 만드는 데 최상의 재료라 하면 여럿이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것은 번개 맞은 대추나무일 것이다.
벽조목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벽조목은 심하면 같은 무게의 은으로 값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노승이 준 염주는 그러한 벽조목도 여느 상급으로 치는 대추나무나 감태나무 등도 아니었다.
이름 모를 나무 조각를 가져와 그를 말려 깍은, 여느 시장에서 쉬이 구할 수 있는 염주였다.
말하자면 한 푼 가치도 없는 물건이라는 것인데, 이를 받은 장일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세존의 사리를 받은 듯한 태도였다.
천이통(天耳通)을 깨우친 장일이었기에 알아본 것이다.
노승이 내어 준 염주에는 그가 평생을 화두와 함께 싸우며 깨우친 불법의 흔적이 담겨져 있음을 말이다.
그것은 막막한 어둠 속에서 산을 내려가야 하는 장일의 시야를 밝힐 작은 횃불이 되어 줄 것이었다.
“이같이 귀한 것을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이미 그것은 저에게 있어 길가의 돌멩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냇가의 조약돌을 잡아 내어준 것이니, 장 시주께서는 그것에 대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무량수불.”
장일은 모든 법은 공(空)이니 염주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주는 노승의 마음에 그제야 이에 대한 집착을 놓았다.
그런 신물도 자신의 구도를 다루는 도구로서 여기며, 어느 순간 그조차 의미 없음을 깨우치는 도구로 여기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그렇게 장일의 길고 긴 십우도행(行)이 시작되었다.
십우도(十牛圖)는 소를 빗대어 도를 구하는 열 가지의 고행을 말한다.
그 첫 번째가 심우(尋牛)로, 풀이하자면 소를 찾기 시작하는 마음을 품는 것에 있다.
구도자로 치면 불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한 것을 말함이다.
보통 구도자들에게 있어 이 심우는 너무도 쉬운 단계였다. 사실 그런 단계가 있음을 알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보통인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장일은 이 첫 번째 심우에서 많은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가 찾고자 하는 불도가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으련만, 어설프게나마 정상의 것을 보고 느꼈던 장일은 어느 말로도 글로도 그 구하고자 하는 불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