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96
분신으로 절대무신 96화
34장. 황제
황제를 본 순간 지독한 혐오와 악의에 휩쓸려야 했다.
동시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달리 확인할 것도 없이 그가 천하를 뒤흔들던 주적이었다는 것을.
* * *
-분신.
-음무어…….
삶에 체념을 내려놓은 소의 울음소리가 참으로 처량하게 울려 퍼진다.
그 모습에 그 소를 끌고 왔던 이들은 저마다 믿기 어렵다는 눈빛을 보여댔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이 끌고 온 소는 여느 소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 덩치만큼이나 힘과 성질머리가 대단해 이곳에 끌고 오다 나가떨어진 이들만 서넛에 달했다.
그랬던 녀석이 소문의 백정을 만나자 대뜸 기가 죽어 삶을 포기한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군!”
“저 무시무시한 녀석이 저렇게 순해지다니.”
“다른 백정들처럼 험하게 다루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믿어지지 않아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이들을 뒤로 한 채 장삼풍은 고개를 숙인 소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퍼석.
휘두른 망치는 그리 대단히 빠르게 휘두르지도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번을 휘두를 필요도 없이 그 한 번으로 그 거대한 소가 무너진 것이다.
-끼익, 끼이익!
장삼풍은 그 소의 멱을 따 밧줄로 거꾸로 매달아 커다란 대야에 피를 받았다.
잡식을 하는 돼지와 달리 풀만 먹는 소는 그 피가 깨끗하다 보니 이를 한번 끓여 굳혀서 먹기도 해서다.
그렇게 한 시진 이상을 매달아 피를 뺀 뒤에야 본격적인 도축이 시작되었다.
장삼풍은 하루에도 이런 작업을 적게는 다섯 마리를 많게는 그 두 배에 가깝게 행하곤 했다.
그가 값을 배 이상 높이 받음에도 그러했는데, 그만큼 그가 도축한 소가 여느 푸줏간에서 작업한 것보다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고기의 맛은 어떻게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이고 어떻게 도축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 점에서 장삼풍의 솜씨는 상상 이상이다 보니 오히려 값을 높였음에도 그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처음부터 이와 같은 솜씨를 보였다.
장삼풍이 여러 일 중에서 푸줏간을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소를 잡는 일을 본 순간 그는 백정의 도(道)를 깨우쳤다. 아니, 이미 깨우쳤던 것을 알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도를 깨우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기억이 없는 것과 별개로 그저 그렇게 타고난 것처럼 새겨지는 것이다. 마치 어미 뱃속에서 나온 망아지가 달리 가르치지 않아도 이내 걷고, 젖을 찾아 무는 것처럼 말이다.
소를 잡는 일에 있어 장삼풍이 그러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도축은 도경의 심오한 가르침을 깨우치는 데 큰 도움을 가져다주었다.
살육을 더 이상으로 살육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자, 그 행위 자체가 도를 닦는 일이 되면서 생긴 일이었다.
이렇다 보니 그가 사용하는 칼은 처음 이 일을 하기 위해 맞추었던 칼에서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예기는 더 날카로워져, 장삼풍의 소문에 구경하러 온 백정들은 그 칼을 가지고 싶어 안달을 내기도 했다.
비가 오곤 눈이 오곤 한 번도 쉬지 않았던 장삼풍의 푸줏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오늘은 쉽니다.
백정이 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글씨가 쓰여 있는 패가 굳게 닫힌 가게의 문에 걸렸다.
푸줏간을 연 지 무려 2년 만에 처음으로 쉬는 것이었지만, 그 모습에 의외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만큼 오늘은 황도에 큰 행사가 있을 예정이라서다.
바로 최근 백련교와의 전쟁에서 성과를 보지 못해 침체되었던 제국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황제가 위무(慰撫)를 위해 나섰기 때문이다.
위무라고 해서 전장에 나가거나 하는 등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황도의 거리를 행차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신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은 권력을 쥔 황제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민들은 감격스러워했다.
그러니 건방질 정도로 그 무뚝뚝한 백정이 황제를 보고자 가게를 문 닫은 것이라면 이해할 만했다.
-뿌우우우우!
요란한 나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대고(大鼓)가 울리더니 화려하기 그지없는 복장을 갖춘 금의위들이 그 위엄을 드러내며 나아갔다.
동원된 금의위들의 숫자만 일천이 넘었는데, 그중 1할이 절정 고수라는 점에서 한 제국의 기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는 금의위들이 아니었다.
황제가 탄 가마를 앞뒤로 호위하는 수십 명에 달하는 온통 검은색에 하얀 가면을 쓴 이들이 진짜였다.
그들이 바로 황제의 칼이라고 불리는 동창이다.
기침 한 번에 성 하나가 떠들썩하게 하는 고관들도 이들 동창에 대해서는 크게 두려움을 가진다.
그들이 보기에는 동창들이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아서다.
그도 그럴 게 인간의 감정을 거세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식욕, 성욕 등 모든 욕구를 가지지 않았다. 사람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인 자는 것이나 먹는 것도 그저 생존에 필요할 정도만 챙길 뿐이었다.
이 때문에 동창을 두고 거세한 환관들로 이루어졌다고 말이 돌았지만, 실상은 그저 개인의 욕구를 거세할 뿐이다.
이들은 황제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했다.
당연히 권력과 돈을 탐하는 고관으로서는 가장 상대하기 힘든 존재다. 회유 자체가 안 되니,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장삼풍은 그 유명한 동창들을 멀리서나마 본 순간 고개를 저어댔다.
“저래서야 사람이라고도 볼 수 없겠군. 실혼인(失魂人)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백련교에 있을 때 한 제국이 뒤에서 벌인 짓거리들이 대단히 추잡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사람을 이 지경까지 만들 줄 몰랐던 장삼풍은 자신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나긴 행렬 끝에 드디어 황제가 거대한 가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황제는 온전히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얇은 천 너머로 겨우 그 윤곽만이 보일 뿐이다.
“만세! 만세!”
그러나 그것에 불만을 가지는 신민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 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격스러워할 뿐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큰 감정의 변화를 마주한 것은 그런 주변의 신민들이 아니었다.
“!!!”
바로 장삼풍이었다.
그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것을 마주보기라도 한 듯 충격에 빠졌다.
그가 얇은 비단 천 너머로 본 황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다. 전설이나 민화에서 말하는 터무니 없는 괴물이라고 보아도 과함이 없을 정도다.
-덜덜덜.
깨어나 한 번도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던 장삼풍이었지만 그는 온몸이 떨릴 만큼 짙은 두려움을 맞이했다.
더불어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단전 아래에서 끌어 올라왔다.
혐오와 두려움 그것이 섞이자 장삼풍은 뒤틀린 욕망에 휘감겨져야 했다.
당장에라도 칼을 빼 들어 그를 베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에 휘둘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가 칼을 빼는 일은 없었다.
소림에서 깨우친 누진통을 통해 그 치밀어 오르는 욕망을 겨우 가라앉힌 덕분이었다.
그는 멀어져 가는 황제의 행렬을 보며 그제야 격해진 숨을 토해냈다.
“후우. 지금 이 대륙에 혼란을 의도한 자는 황제였군. 아니…… 정말 그 본인이 맞기는 한가?”
저런 괴물이 인간 행세를 벌인다는 것도 모자라 황제에 이르렀다는 것 자체가 장삼풍은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괴물이 황제를 죽여 그 거죽을 뒤집어썼다고 믿는 게 나을 지경이다.
단 한 번이었고, 그마저도 겨우 윤곽을 보는 정도였지만 장삼풍은 더는 황제를 보는 것에 대해 욕심을 버렸다.
뒤늦게서야 자신이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알아서다.
“그 괴물과 나는 천적이다. 만약 그가 나를 알아보았다면, 그는 나를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겠지.”
두려움은 몰라도 그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그 또한 느꼈을 것이라고 직감한 것이다.
하여 장삼풍은 한 점의 미련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황도를 떠났다.
자신이 베어야 할 자가 어떤 괴물인지 알았으니 그 힘을 얻기 위한 수련을 행해야 했다.
황도를 벗어난 장삼풍은 호북성에 자리를 잡았다.
황제가 있는 하북성과는 적당히 거리가 있으면서도 전쟁의 여파에서 다소 자유로운 곳이라서다.
그는 호북성에서도 무당산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영기가 어린 세 봉우리 때문이다.
도를 닦기에 최적화된 명당인 것이다.
그 때문인지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기 전에도 수십에 달하는 작은 도관이 곳곳에 널려 있었을 정도였다.
장삼풍은 과거 누군가 사용했던 도관을 수리하여 그곳에서 도를 수행해 내갔다.
그렇게 명당에서 도경의 뜻을 깨우치려 했으나, 그 과정은 그의 생각보다 지난했다.
그조차도 도경의 그 막대한 가르침에 쫓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무엇보다 도를 깨우친다는 것은 단순히 앎이 아닌 존재로서 새로이 그 길을 각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그 격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다.
고대 신선이 된 자들은 수많은 환생을 반복하여 차츰 이를 이루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장삼풍은 운이 좋았다.
점차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그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본신이 올린 무려 2.9의 존재감에 그는 이미 그 끝에 이르고도 남을 자격을 갖추었다.
여기에 누진통이 함께 하니, 도를 좇는 고행은 더는 고행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다시 20년의 세월이 무상하게 흘러갔다.
그 과정에서 세상은 천지가 뒤바뀌는 일들이 무려 세 번이나 있었다.
한림왕이 이끄는 백련도가 마침내 제국의 반열에 이르렀던 일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한림왕이 급사한 일이다.
조부 백련존자의 힘을 온전히 깨우치며 천하제일에 가까워졌던 그가 갑작스레 급사한 일은 실로 믿기지 않는 일.
이 때문에 많은 말들이 오갔고, 그 과정에서 백련도가 세운 명 제국은 거짓말처럼 흔들렸다.
결국 갈기갈기 찢겨 버렸는데, 이 여파에 한 제국도 자유롭지 못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전쟁에 의해 한 제국에서도 현 황제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이 나타난 것이다.
그로 인해 천하는 과거에 비해 더할 수 없는 혼란을 맞이하니, 오히려 과거 명 제국이 있던 당시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 혼란 속에 무당산의 도사들이 하산했다.
일부는 천하안민을 위해서 나섰으며, 그중 일부는 입신양명을 위해 속세에 뛰어들기도 했다.
혼란은 질서가 무너져 생긴 일이라, 그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높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천하에 뛰어든 무당산의 도사들 대부분이 유명세를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산속에서 도를 닦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혜로웠으며 강인했다. 소림과 같은 명문에서도 그와 같은 이 하나를 내놓기 어렵건만, 이들 대부분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자연 사람들은 그들이 수행했다는 무당산에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런 그들의 의문이 담긴 시선을 이겨내지 못한 것일까?
유명세를 탄 무당산의 도사들 중 일부가 결국 자신들의 비밀을 내뱉었다.
“무당산에는 삼봉진인께서 계십니다. 저는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삼봉진인?”
삼봉진인은 무당산에 있는 영기가 어린 세 봉우리를 마주한 곳에 자리 잡은 장삼풍을 그곳의 도사들이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