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Blood Disciple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제17장 재액(災厄)(10)
“전투 준비를 하시오. 남부 전단 중에서도 사, 오, 육, 팔, 구 함대에 긴히 연합 전령을 넣고, 일, 이 함대에는 합전 훈련이라 알리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장군.”
오호는 달리 설명을 듣지 않아도, 추자양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북부 전단을 연합 전선에서 배제함은 물론, 같은 남부 전단에서도 구미에 맞는 지휘관들만 추린 것이다. 보아하니 실제로 명령이 먹히는 모양인지라, 공적만 탐하는 자가 어찌 이런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토벌대의 수준이 낮아서인가.’
오호는 확신을 갖고서 결론짓기를 어려워했다.
첩밀대의 정보를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절강 남부는 하북 본가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근역에 첩밀대 인력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지부가 갖춰져 있질 않았다.
남왜 토벌대의 전력 상황 자체가 대단히 유동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무인들의 들고 나감이 지나치게 빈번했다.
고수가 합류하면 함대의 전투력이 급격하게 상승했다가 떠나면 다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변폭이 크기도 큰데다가 실시간으로 파악조차 쉽지 않았다. 항행과 상륙이 반복되는 활동상의 특징 때문이었다. 총체적인 분석이 근본부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식의 전투 집단을 잘 보조하려면 방대하고 능률적인 정보 부대가 필수적이었다. 물론, 이곳에서는 그런 사치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세가의 섬세한 체계 속에서 성장한 오호의 눈으로는 이 토벌대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만 보였다.
“모두 심기일전하여 저 보잘것없는 놈들에게 강호 무림의 저력을 보여 줍시다! 왜구의 수괴는 중원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수장될 것이오!”
추자양은 자신의 연설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환호성 지르는 무인들을 두고 봐줄 수가 없었다.
질끈 눈을 감고 싶었다.
이럴 거면 아까 눈에 들어 온 남자 두 명이나 쫓아가서 어떤 자들인지 제대로 봐둘 걸 그랬다. 참고 또 참으며 막사에서 나갈 때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 * *
오호는 출항할 때까지도, 나루에서 봤던 두 남자를 다시 보지 못했다.
토벌대 내에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놓은 것 같았다.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들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그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오호는 개별적으로 적진에 침투하고 싶었다.
적들의 소재지로 확실치도 않은 금문 군도보다는 무인을 양성한다는 왜적 소굴이 훨씬 더 중지(重地)로 보였다. 오호가 함대 지휘관이었으면 거기부터 쳤을 것이다. 거길 중간 기점으로 하여 적 정보를 재확인하고 병력을 정확하게 가늠해서 출진하는 것이 수순에 맞다. 불확실한 적진 첩보는 재차 삼차 검증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래야 승률도 올라가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묘산을 따로 보려 했다. 왜적 소굴의 동향을 직접 듣길 원했다. 단문이 맞는지도 한 번 더 확인해야 했다. 직감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필요하다면 오호가 혼자라도 직접 섬으로 건너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호는 묘산과 독대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묘산의 곁에는 항시 수병들이 붙어 있었다. 야밤에도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감시였다. 묘산은 함대의 지휘관이자, 함정에 빠져 군함 세 척을 날려 먹은 패장이었다. 적측 정보를 캐내어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해도 패전이란 전적을 무마할 수는 없었다. 군 조직에 불상사가 발생하면 책임질 자가 나와야만 했다. 묘산이 어쩔 수 없는 패배에서도 기어코 살아 돌아온 영웅이 될지,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고 수치스럽게 도망친 죄인이 될지는, 해당 전투 상황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결과는 대체로 시운(時運)에 달려 있었다. 직급 높은 자의 변덕에 의한 것일 수도, 군 전체의 사기 변화에 따라서일 수도, 그저 본보기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묘산의 운명은 한 끗 차이로 갈리게 될 터였다. 그게 정해질 때까지 묘산은 수병들의 관리하에 있었다. 식사나 용변조차도 온전히 홀로 할 수 없었다.
오호는 묘산을 포기했다.
대신, 해군 산하에서 운용되고 있을 첩보 부대에 접촉할 방법을 찾았다. 보직 이동을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헌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기밀로 감춰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정식 부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이 남부 전단에서는 따로 편성된 조직이 없는 것 같았다.
‘단문 녀석은 어떻게……?’
적진 내 첩자가 있다면, 첩보 활동을 보고받고 감독할 기관이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헌데, 토벌대 안에서 정보 부대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럴 수도 있어.’
추자양부터가 그렇다.
토벌대엔 상식이 없다.
첩보 기관이 없는데 첩자 단문이 있다.
불가능도 아니다.
단문이 독단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다. 단문은 인내심이 크지 않다. 이런 부대를 참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호 역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지휘관 밑에서 답답하게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것보다는 단독으로 적진에 들어가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다.
‘아니지. 애초에 첩밀대니까.’
오호는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단문은 오호나 천위와 달랐다.
천위는 진즉에 죽어 없어진 신분이었고, 오호도 아직 첩밀대에 정식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일개 무림인으로만 참여하라. 아버지와 독대할 때 받은 명이 그랬다.
하지만 단문은 지금껏 첩밀대 요원 신분을 상실한 적이 없었다. 해군 첩보대 소속이 아니라 첩밀대로 적진에 들어간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보고도 해야 했어.’
상황을 좀 더 파 봐야 했다.
출진까지 이제 겨우 삼 일 남았다.
남해로 내려올 때, 아버지는 월 일 회 중간 보고를 조건으로 달았다.
시일이 간당간당했다. 금문 군도로 출항하게 되면, 보고할 시기를 놓치게 될 것이 자명했다.
아버지의 명을 충실히 들을 생각은 없었으나 첩밀대 요원들이 잔뜩 내려와 그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사양이었다. 문득, 차라리 그렇게 해서 첩밀대 정보력을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첩밀대를 바다로 보내겠다는 뜻은 그를 보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본가로 끌고 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일단 당장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옳았다.
오호는 야음을 틈타, 군영을 빠져나왔다.
여차하면 탈영까지도 불사할 요량이었다. 토벌대는 여기 말고도 이곳저곳에 많았다. 북부 전단에는 무당파 제자들이 있다고 들었다. 이런 이상한 놈 밑에 있는 것보다는 거기가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절강 최남부 첩밀대 지부를 찾아갔다. 밤사이에 다녀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지부는 상주 인력 없이 숨겨진 안가(安家)만 있었다. 안가 서탁에 첩밀대 암호를 남겼다.
오호. 무사(無事). 특별한 보고 내역 없음.
그대로 두고 나오려다가 온 김에 뭐라도 있는지 서간들을 들춰보았다. 헌데 급보(急報)라 하여 주의 요망이 붙은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요원 오호. 가명으로 남왜 토벌대 합류 중. 발견 즉시 출항 만류. 해전(海戰) 절대 불허. 위험인물 출현. 확인 즉시 첨부 기록 말소.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내용이 이상했다.
첩밀대 각 지부에 오호의 출진을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위험인물 출현과 기록 말소라는 첨언도 마음에 걸렸다. 순간, 나루에서 본 두 남자가 먼저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현 상황에서, 출진을 만류할 정도로 위험한 적이라면, 왜장들의 사범이란 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해전을 불허한다는 어구도 맥락을 같이 했다. 헌데, 기록 말소란 대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첨부 기록이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혹시나 싶어 쌓여 있는 보고서들을 일일이 확인했으나,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기야 확인 즉시 말소하라 쓰여 있었으니, 이미 여기엔 없을 터였다.
자꾸만 왜구보다, 나루에서 본 자들이 신경을 건드렸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특히 뒷모습도 제대로 못 본 자.
얼굴 본 자보다 그자가 문제다.
이러다가 꿈에도 나올 것 같다.
오호는 순간, 의식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찾아오지 않았던 몽유(夢遊)가 엄습하려 했다.
“후우우우우.”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공을 거세게 휘돌렸다. 하단에서 솟구진 공력이 중단을 거쳐 상단으로 치받아 올랐다.
눈을 감았다. 감긴 것이 아니라 의지로 감았다.
오호는 죽립 밑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아니, 죽립은 벗고 없었다. 그가 오호를 무심해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그랬다. 서 있는 그는 칼을 들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칼이었다.
“후욱.”
오호가 눈을 떴다.
성공이었다.
몽유에 빠져들지 않고, 꿈을 몰아냈다.
해결책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기(氣)가 만들어내는 만상(萬象)은 결국 그 안의 것이었다. 가진 것을 잘 통제할 수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침몽단의 힘이 강하다 하여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오호는 곧바로 지부에서 나왔다.
관도 갈래 길 앞에서 갈등했다. 여기서 북쪽을 택하면 출항은 취소다. 첩밀대에 하달 된 지침대로 따르는 셈이다. 남쪽을 택하면 명령 불복이다. 필시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저 작은 지부에까지 지급(至急)으로 명령서가 왔다. 그것도 오호 한 명을 표적으로 해서다. 첩밀대에서는 대단히 드문 일이다. 이 정도면 첩밀대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호가 마음을 정했다.
상황이 틀어져 헤엄쳐 돌아오더라도, 의문은 풀어야겠다. 꿈 운운하는 것은 천위였지 그가 아니었다. 이제 와서 예지가 그의 고유 특성이 되는 것도 이상했다. 직감은 직감이고, 직접 눈으로 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가 관도를 달렸다.
남쪽을 향해서였다.
오호는 날이 밝기 전에 수영으로 복귀했다.
밤사이 그의 부재를 눈치챈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무림인들은 내공에 의한 감각을 너무 믿었다. 믿는 만큼 의심하지 않아 속이기도 더 쉬웠다.
출진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오호는 예감이라는 것을 철저히 무시하기로 했다.
정 위험해 보이면 다 내버려 두고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그가 팽가 출신이라는 것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전투 중에 행방불명되어 사망 처리된 강호인 아무개 정도면 가문에 누를 끼칠 일도 없었다.
쏴아아아아아!
파도를 가르며 군함들이 바다로 나아갔다.
근해에서 다른 전단들이 합류했다. 대형 군함이 두 척이었고, 중형 군함이 이십 척에 달했다. 장관이었다.
이 정도 작전을 일개 무림인이 주도하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추자양의 신상 내력에 그가 알지 못한 것이 있었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숨겨진 황실 혈통이나, 어디 대귀족의 서자(庶子)라도 되지 않고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대명 해군의 지휘 계통에 심각한 하자가 존재한다고 봐야 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오호는 수병처럼 돛대 밧줄을 점검하고는, 배정받은 선실로 향했다. 대형 군함이라 선실들이 많았다. 오호가 들어간 선실 내엔 벽을 둘러 긴 의자들이 박혀 있었다. 무림인들은 수병들처럼 자세가 곧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오호는 다시 나루에서 본 남자를 만났다.
“가장 무공 높은 선임이시군. 이쪽으로 앉으시오. 이야기나 나눕시다.”
피곤에 찌들어 있는 자는 의외로 목소리가 밝았다.
그가 통성명에 앞서 자리부터 권했다.
사마공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