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family RAW novel - Chapter 310
310화
-결자해지 (9)
한백도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는 다른 길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사내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하였습니다. 도를 닦음에는 수신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배움의 길을 걸을 때…… 지금도 걷고 있지만 낮아야 배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르침은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건 스스로 수신할 때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도를 전할 때는 교가 필요합니다.”
“스승은 다양한 방편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높은 곳에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낮은 곳에 있어야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교의 하위에 방편으로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길은 무에서 만물로 갈라지는 길이고 수행자의 길은 만물에서 무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인간의 길을 가르치는 데는 교가 앞에 있는 것이 맞겠으나 수행자의 길을 널리 펴고자 한다면 스승이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널리 펼 수 없을 것입니다. 태양은 높은 하늘에서 빛나기에 만물이 보고 향상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태양도 밤이 되면 서천 하늘 아래로 내려가지요. 신교는 그간 음지를 살피며 양지로 나아가려고 하셨지요.”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한백도는 단절을 느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한백도는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틀린 것은 눈앞의 사내다.
전생에 그 많은 업을 쌓고도 실패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자신의 신념을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할 뿐인데…….’
하지만 사내는 교자를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한백도의 정신이 조금 아득해졌다.
‘이 글자를 바꾸지 못하면 앞으로 정말 힘들어질 텐데……. 실패할 줄 뻔히 아는 길을 다시 걸으라는 건가?’
한백도도 사내에게서 시선을 돌려 순백의 공간을 바라보았다.
순백의 공간을 바라보던 한백도는 자신의 가슴에 화가 가득 차 있는 걸 느꼈다. 그건 전생에 대한 분노였다.
한백도는 자신의 분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전생은 실패한 인생임에도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생이 힘들어지고 겪지 않아도 될 고생길을 가야 함에도 개의치 않고 있었다.
한백도는 이 모든 것이 전생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사내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한백도는 그걸 보고 자신이 전생 탓을 할수록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이래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주어진 운명과 업에 이끌려 한평생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뻔히 아는, 그런데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한백도는 이 모든 것이 사내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원망이 마음이 커져갔다. 순간 한백도는 자신이 심상세계에서 밀려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솟아올랐다.
한백도는 본능적으로 지금 일어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상세계가 날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 경지가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심안의 지(智)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심마에 걸렸구나.’
한백도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심안의 요결을 떠올렸다.
심안의 시작은 먼저 아는 것이다.
한백도는 자신이 자신의 전생을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백도는 전생을 알아보기로 했다.
“누가 이기나 한판 합시다.”
사내들 사이에 서로를 빨리 알아가는 방법은 전력을 다해 한번 싸워보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자신을 아는 상대는 바로 적.
생사대적이다.
한백도는 자신의 전생과 목숨을 걸고 싸워보기로 했다.
순간 그 마음이 통했는지 사내도 고개를 들고 한백도를 노려보았다.
둘 사이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사내의 두 눈은 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내의 전신에서 일어난 산악 같은 패기가 순백의 공간을 뒤덮었다.
한백도는 천뢰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천지를 찢어발길 수 있는 거대한 뇌전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사내의 앞에 거대한 무형의 벽이 생겨났다. 강호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천마벽이다.
사내는 천마벽으로 천뢰를 쳐내며 일보를 내디뎠다. 천마군림보다.
콰아앙!
거대한 진동이 순백의 공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사내의 전신에 자색 뇌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전마공이다.
콰콰쾅. 콰콰쾅!
자전마공의 뇌기와 한백도의 천뢰가 격돌했다. 푸르고 붉은 섬광이 태양처럼 터져 올랐다.
한백도는 염화를 압축하여 염화의 검을 만들었다. 순간 사내도 혈기로 단죄의 검을 만들었다.
한백도와 사내의 손이 동시에 움직이고 두 검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염화의 검이 깨지면서 단죄의 검이 한백도의 중단을 관통했다.
한백도의 가슴이 그대로 찢어졌다. 그 찢긴 곳에서 흘러나온 빛이 사내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순간 한백도는 깨달았다.
‘강제 각성. 여기서 지면 내가 전생에 먹히겠구나.’
사내는 한백도를 잡아먹기 위해 거대한 이빨을 드러냈다.
한백도는 의념으로 도를 만들어 군룡승천도법을 펼쳤다. 수천 마리의 군룡이 순백의 공간에서 일어났다.
순간 사내의 뒤에 암흑의 장막이 일어나더니 검은 덩어리들을 토해냈다.
검은 덩어리들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형상을 갖추어갔다.
한백도는 그들이 십대천마와 백팔마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정화시킨 게 전부가 아니었구나. 그건 극히 일부일 뿐이었어.’
“군룡질주!”
한백도의 도가 사내를 가리키자 수천 마리의 군룡이 일제히 포효하며 날아갔다.
십대천마와 백팔마존도 마기를 뿜어내며 군룡들을 공격했다. 그건 마치 천상과 마계의 격돌 같았다.
한백도는 수천 개의 뇌전과 자전이 휘몰아치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사내와 격돌했다.
순식간에 수천 초가 부딪쳤다.
한백도는 전신의 뼈마디가 모두 부서지고 근육이 찢기는 고통을 느꼈다.
사내는 더욱 기세등등해져서 한백도를 공격했다.
‘이대로는 진다.’
한백도는 기장을 열고 천기와 지기를 연결했다. 순간 한백도는 기장이 열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는 지금 한백도는 기장 안에 있는 것이다. 기장 안에 있기에 사고를 심상의 공간으로 이끌 수 있었고, 이곳에서 전생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백도와 전생의 자신은 이곳에서 평등한 존재였다.
사내의 일격이 한백도의 가슴을 갈랐다. 갈라진 가슴에서 빛이 뿜어졌다. 사내는 입을 벌려 그 빛을 빨아들였다.
사내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백도는 급히 뒤로 몸을 날리며 연환을 소환했다. 다행히 연환은 손에 잡혔다.
한백도는 연환으로 허공을 때렸다.
“여래종(如來鐘) 일타(一打)!”
순간 허공에서 범종의 형상이 나타나며 울음을 토해냈다.
데- 엥!
범종의 거대한 충격파가 전장을 휩쓸었다. 십대천마와 백팔마존이 고통에 괴로워하며 귀를 막고 나뒹굴었다.
그리고 군룡들도.
한백도는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에 몸을 떨었다.
사내는 그런 한백도를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 보였다.
“너는 나다.”
한백도는 부정하지 못했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너는 인생을 부평초처럼 목적도 의지도 없이 살아왔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온 인생에 네가 이룬 것이 무엇이냐?”
“…….”
“어차피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 사는 인생이라면 내가 너를 대신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이냐?”
“내 삶은 너와 다르다.”
“그렇지 않다. 너는 결국 내가 걸은 길을 걷게 되어 있다. 그것이 네 운명이니까.
천명이 개입된 운명.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확실한 목표와 실천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네게는 없다.”
한백도는 사내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사내가 말했다.
“나는 많은 실패를 거듭해 왔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 목표를 잃지 않았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그에 반해 너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
한백도는 할 말이 없었다. 사내가 말했다.
“내가 네가 된다고 해서 많은 것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딱 하나만 바뀐다. 그것은 바로 확고부동한 신념과 목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교(敎)?”
“그렇다.”
한백도는 자신의 마음이 깊이 침잠하는 것을 느꼈다. 한백도의 단전에 마지막 글자 교가 새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한백도의 눈앞에 도관에서 본 글자들이 떠올랐다.
한백도는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심안의 요결과 승리의 비결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었다.
한백도의 단전에 새겨지던 교 자가 완성되었다. 순간 중용의 열다섯 글자가 단전에서 빛을 발했다.
한백도가 사내를 보며 말했다.
“나는 너다.”
사내는 씩 미소를 지었다. 한백도도 웃으며 말했다.
“현생의 내가 부평초처럼 살아온 것은 너의 선택이자 나의 선택이다.”
사내의 얼굴 전체가 빛으로 휩싸였다.
한백도가 다시 말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너다. 나는 너의 이런 결정을 존중하며 네가 만든 자산과 부채를 모두 인정하고 넘겨받겠다. 그것은 내 것이기도 하니까. 이제 내게 모든 걸 넘겨라. 지금부터는 내가 현생의 성존이다.”
사내는 빛 속에서 손을 내밀었다. 한백도는 그 손을 움켜쥐었다. 사내의 빛이 한백도의 전신으로 빨려 들어와 하나가 되었다.
한백도는 찬찬히 눈을 떴다. 한백도의 눈에 사고의 모습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사고는 등을 보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었다. 사고의 두 손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한백도는 자신의 중단이 사고의 눈물과 공명하는 것을 느꼈다.
아프고 아팠다.
한백도는 저미는 가슴을 손으로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깊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백도는 조용히 연환을 들고 정자를 내려왔다.
안개로 막힌 다리에 도착한 한백도는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사고의 눈물이 다시 전해졌다.
‘감정은 옳고 그름이 없구나. 자신이 아프면 아픈 것이고 슬프면 슬픈 것인데…….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며 살았구나.’
한백도는 사고에게 인사를 하고 다리를 건넜다.
안개를 뚫고 다리를 건너자 꽃향기와 함께 맑은 하늘이 보였다.
한백도는 기지개를 쭉 폈다. 온몸이 상쾌하고 시원했다.
“아, 좋다.”
기지개를 켠 한백도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검마 선배와의 비무만 남은 건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다 녹여내자. 그럼 지지 않을 것이다. 검마 선배와의 비무에서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한백도는 작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복숭아나무 뒤쪽에 숨은 홍경이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한백도는 홍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하. 아직도 내가 두려우냐?”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홍경은 도리질 쳤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보이느냐?”
“너무-. 웅. 너무 커 보이세요.”
한백도는 웃음이 나면서도 아직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백도를 심안을 의념 하면서 주저앉았다.
“지금은?”
홍경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화아-. 귀여워. 너무 귀여우세요. 어린애 같아요.”
한백도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홍경이 총총히 달려와 한백도의 머리를 쓰담쓰담했다.
“와-. 눈도 딥다 크고 너무 예뻐요. 문주님 어떻게 되신 거예요?”
“그냥. 낮아진 거란다.”
홍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백도가 말했다.
“엄마는?”
“신학이 먹이 주러 갔어요.”
“신학?”
“네. 천년 신학이 있거든요. 사부님께서는 그 신학 타고 다니세요.”
“아-. 그래. 그럼 우리 같이 신학 보러 가자. 엄마도 보고.”
“네.”
홍경은 신나서 한백도의 손을 잡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어린 동생을 이끌고 가는 누나의 모습 같아 보였다.
몇 달 후 홍택호.
한백도는 홍택호 호반의 한 바윗돌 위에 앉아 시장에서 사온 만두 한 접시를 옆에 놓았다.
만두에는 아직 따뜻한 열기가 남아 있어 먹을 만했다.
한백도는 만두를 씹으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넓은 호수에는 수백 척의 배가 떠 있었다. 배에는 강호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한가득 타고 있었다.
호수 주변에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기저기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과 도박판이 벌어져 판돈을 거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모두 천뢰공자와 검마의 비무를 보기 위해서 몰려든 이들이다.
한백도는 만두를 씹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벌리셔 가지고.”
한백도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있는 공개 비무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한백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오셨습니까.”
신마 연철강은 한백도 옆에 앉으며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천하의 한 대협께서 부르시는데 내 어찌 그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나.”
한백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 좋으십니까?”
“좋다마다. 오랜만에 생사대적을 만나는 일인데. 우리 한 대협도 좀 더 크면 내 기분을 알게 될 것이야.”
“검마와의 비무 약속을 잡으신 탓에 제가 얼마나 애가 탔는지 아십니까?”
신마 연철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네?”
“내가 검마와 비무를 하는 게 그렇게 애가 탈 일인가?”
한백도는 멍하니 신마 연철강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게 천뢰공자의 신분으로 검마 선배와 비무를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한 대협. 설마 내가 한 대협과 검마를 붙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
“실망인데…….”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넘겨짚었습니다.”
신마 연철강이 한백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많이 달라졌네. 직접 해도 될 것 같은데.”
“…….”
신마 연철강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거절을 안 하네. 좋아 그럼 직접해 봐.”
“생사대적과의 오랜만의 비무인데 직접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신마 연철강은 고개를 저었다.
“말에 진정성이 없어. 우리 한 대협, 이제 보니 야망이 있는 친구야. 왜 이참에 검마와 맞서보려고?”
한백도는 고개를 저었다.
“배울 게 많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신마 연철강은 조금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좋아. 대신 검마와의 비무가 끝나면 나하고도 하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하하하. 역시…….”
“그리고 다른 부탁도 하나 있는데.”
“뭔가?”
“제 대역을 잠시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신마 연철강은 살짝 놀라면서도 감탄한 표정으로 한백도를 바라보았다.
“한 대협 이 연 모 정말로 감탄했네, 감탄했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날 대역으로 쓰겠다고 한 사람은 한 대협이 처음이네. 검마의 일 초보다 한 대협의 그 한마디가 내게는 더 큰 충격이네.”
“제 대역을 부탁드릴 분이 딱히 없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부탁을 들어주면 한 대협도 내 대역을 해주는 건가?”
한백도는 장철을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저보다 더 좋고 잘할 분을 소개시켜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신마 연철강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백도가 말했다.
“그분이 마음에 안 드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그럼 좋네. 그리고 대역을 하게 되면 저기 저 아가씨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어디까지 해도 되나?”
한백도는 신마 연철강이 가리킨 배를 보았다. 그 배에는 수십 명의 강호인들이 타고 있었다.
한백도는 그들 사이에서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란향과 백란이다. 둘이 정말 다정해 보였다. 그 두 여인 곁으로 당화영이 석일, 허전과 함께 웃으며 다가가고 있었다.
한백도는 이마를 살짝 짚었다.
“저곳에 가시면…….”
한백도는 신마 연철강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곳에는 한백도가 서 있었다.
신마 연철강이 한백도로 변신한 것이다.
“왜 놀랐나?”
“어? 목소리까지…….”
“하하하. 이 정도는 기본이지. 어때 이런 무공 배워보고 싶지 않나?”
한백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그런 무공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 익히지 않았을 뿐이다. 한 번만 해보면 될 것이다.
“아닙니다. 적당한 선에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약속이나 호언장담은 지양해 주시고요.”
“흠, 알았네. 이번에 젊은 친구들의 실력과 눈썰미가 얼마나 좋은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
“안 들키실 자신 있으십니까?”
“호오, 도발까지. 하하하. 이제 다 컸네. 좋아, 좋아.”
한백도는 개구쟁이처럼 좋아하는 연철강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강호는 좀 어떻습니까?”
“마교가 좀 이상한 것 빼고는 뭐 그럭저럭.”
“많이 이상합니까?”
“파벌싸움이 시작된 것 같아.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파벌싸움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다른 곳이라면 내전이 벌어져도 몇 번은 벌어졌을 텐데 묘하게 일이 봉합되는 것 같고. 종교단체라서 그런가.
아무튼 마교가 혼란스러운 덕분에 강호가 한숨 돌리고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기는 한데……. 마교의 꿍꿍이가 뭔지 참으로 의심스럽네. 뭐 이제는 천뢰공자가 알아서 하겠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는 천뢰정혼맹이 정식으로 발족해도 될 것 같아. 하니 천뢰공자가 전면에 나서서 강호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나?”
“저를 앞세우고 뒤에서 조종하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리십니다.”
“그럼 노부가 이 늙은 노구를 이끌고 나서야 하겠나?”
“저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볼 생각입니다. 그분들에게서 인생과 세상을 배우려고 합니다. 천뢰정혼맹의 대임은 다른 분이 좀 맡아주시면 좋겠는데……. 궁주님은 안 하실 것 같고 이청도장 어떠십니까?”
신마 연철강은 한백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 진중해졌다.
“정말로 천마는 윤회전생을 하는 존재인 건가?”
한백도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작은 강물의 물방울 하나일 뿐입니다. 어쩌면 물방울보다 못할 수도 있고요. 아직은 그 정도 수준입니다.”
신마 연철강은 지긋한 눈길로 한백도를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거 검마에게 다섯 문을 걸었는데 잃을 수도 있겠군. 내 가서 다시 걸어야겠어.”
신마 연철강은 한백도의 어깨를 한 번 두들겨 주고는 도박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둥!
그때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홍택호에 울려 퍼졌다.
한백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백도는 사람들 틈 사이를 걸으면서 푸른 두건을 썼다. 한백도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백도는 비무대를 향해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의 전신에 뇌기가 일렁였다.
순간 홍택호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천뢰공자다.”
“천뢰공자가 나타났다.”
“우와아!”
홍택호와 백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높은 하늘 위로 태양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한백도는 검마와의 비무에서 이기지 않았다.
승부를 가리기 위한 비무가 아니라 배움을 위한 수행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한백도의 생각은 이러했지만 세상은 새로운 천중십일의 탄생에 환호를 했다.
그들의 환호에는 천뢰공자가 강호에 평화를 가져와 주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었다.
-완(完)
[작가의 말]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부족한 작품을 읽어 주시고 정성스러운 댓글도 달아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재용 배상
추신 : 못다 한 이야기는 좀 쉬었다가 외전으로 연재를 할까 합니다. 심안을 연 후의 한백도가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분량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