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순금처럼 깨끗한 (3)
수프 다음으로 메인 요리가 슬슬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지구였다면 생선 요리나 뭐 그런 것들이 끼었겠지만, 육류를 선호한다는 지역 특성과 한 번에 다 내오라는 명령의 조합은 막강했다.
고기 음식들이 식탁에 득시글해지기 시작했다.
“…여긴 채소랑 과일도 있네요?”
그렇다고 내가 먹을 게 아예 없진 않았다. 두 개뿐이었지만 생선 요리도 있었고, 채소랑 과일로 만든 음식도 꽤 된 까닭이다.
[내가 얘넬 좋아하거든. 아삭거리는 게 맛있잖아.]아삭거림을 느낄 입이 있긴 한 거냐는 물음은 너무 모욕적이겠지. 그렇지만 궁금하다.
나는 순수한 의문을 목 뒤로 삼키며 생선을 발라 먹었다. 감자를 비롯한 채소를 아래에 깔고 허브를 뿌려 구운 생선이었다.
“…….”
“…먹고 싶나.”
한데 내가 가시를 다 발라 살점만 입에 넣으니, 소녀가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딱 봐도 맛을 궁금해하는 표정이라, 나는 순순히 살점 덩어리를 뚝 떼어 소녀의 접시에 옮겨 주었다.
“부드러워요!”
생선이 육고기보다 부드러운 편이긴 하지. 흰살이 이에 닿는 순간 알아서 찢기고 으스러지는 수준이니까.
“더 먹고 싶다면 말해라. 주마.”
“…그, 그래도 돼요?”
“그래.”
애 입엔 육고기보다 생선이 더 맞는 모양이다.
나는 발라 낸 생선을 통째로 옮겨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남은 생선탕도 소녀 쪽으로 끌어 주었다. 말간 탕인데도 소녀는 꿀떡꿀떡 잘만 먹었다. 아주 보기 좋았다.
“나, 나리는 뭘 드시게요.”
“샐러드와 스튜가 있으니 괜찮다.”
애가 먹고 싶다면 넘겨줘야지. 어른이 돼서 양보 못 하고 그러면 쓰나.
“이것도 먹어라.”
“네, 대전사!”
좋아. 착실하게 포동포동해지고 있구만.
나는 베르세르크와 나한테서 양쪽으로 얻어먹는 소녀를 보며 괜히 흡족해졌다. 헤어지기 전까진 반 배 더 부풀리고 싶은데, 그건 어렵겠지.
딸랑딸랑.
“거, 생선 요리 더 없습니까요?”
“내오겠습니다.”
“예, 옙.”
“…괜찮다만.”
“어차피 높으신 분들 지갑에서 나가는 거 아닙니까. 이럴 때 안 먹으면 언제 먹어요.”
그건 나도 인정하는 바긴 한데, 어색해서 못 시키는 거 아니었어? 아까부터 은근슬쩍 나한테 대행을 다 부탁하더니만.
“너도 먹어라.”
“아, 고맙다.”
데스브링거의 행위에 무어라 감상을 가지기도 전, 베르세르크가 내 쪽으로 무언갈 밀어 주었다. 내 쪽에선 좀 멀리 위치해 있던 토마토 스튜와 양배추 수프였다.
아, 안 그래도 이거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나는 국자로 스튜를 먼저 덜어 내, 숟가락으로 한 입씩 떠먹었다. 따끈한 온기 속으로 진하게 졸인 육수와 그 뒤를 잇는 토마토의 새콤달콤함이 느껴졌다. 동동 떠 있는 채소들은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익어, 씹지 않아도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는 상태다.
아삭.
반면, 양배추 수프는 비트가 들어 있어서 그런지 사각거리는 게 아직 남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단맛이 강해서 그런가, 호밀로 만든 흑빵이랑도 제법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뭐어, 내 취향에 부합하지는 않았지만.
“가이니르도 그거 먹고 싶다!”
“얼마든지.”
나는 두 개의 냄비를 반대쪽으로 밀어 주었다. 가이니르가 본인이 먹던 숟가락으로 스튜를 먼저 후루룩 덜어 갔다. 아, 아앗. 내 손이 조금 허망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국자는 장식이냐? 더럽게 먹던 숟가락 담그지 말고 국자로 퍼라.”
“알았다…….”
“수프 내놔. 스튜는 너희끼리 다 먹고.”
반면, 다음으로 스튜를 노리고 있던 마이스터는 인상을 마구 찌푸린 채 가이니르를 타박했다.
평상시대로 행동했을 뿐인 가이니르는 조금 억울한 눈치였지만 끝내 항의하진 않았다. 주눅 든 거구의 남성이 그릇째 들고 스튜를 퍼 마셨다.
“시종, 새것.”
와중에 계명은 아주 자연스럽게 새 스튜를 주문했다. 잘 먹는 것 같아서 좋긴 한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기분이 미묘하다.
“아, 진짜. 먹던 숟가락 담그지 말라고. 내 말은 콧구멍으로 처들었냐?”
“우우… 가이니르 알았다…….”
“너무 그러지 마라.”
“더럽잖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예절 가지고 힐난하는 건 좀. 나는 그것을 고려하여 아직 손도 대지 않은 고기 요리를 가이니르 쪽으로 넘겼다.
가이니르는 사람이 단순하니, 이것만으로도 기운을 차릴 거란 판단이었다.
“뭐냐? 가이니르 주는 거냐?!”
“그래. 옆의 둘도 같이 먹어라.”
“가, 감사합니다.”
역시나 가이니르는 바로 명랑해졌다. 얘 옆에 있던 보모… 보호자들의 표정은 조금 해탈한 듯했지만 그래도 고기를 거절하진 않았다.
세 노르다인이 열정적으로 고기를 뜯었다. 스윽. 튀는 고기 조각에 계명이 말없이 자리를 좀 더 오른쪽으로 옮겼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들어와.]“다들 여기 계신다 전해 들어서…….”
다만 식사가 중반에 접어들었을 즈음, 인퀴지터와 다니엘이 복귀했다. 짐이야 우리가 다 도맡았다지만, 말 여러 마리를 끌고 온 덕에 그들은 조금 더 꼬질꼬질해진 채다.
[잘 왔어. 밥 먹어.]“앗, 넵!”
시간을 고려하면 말을 맡기자마자 바로 온 것 같으니까 둘도 분명 배가 고프겠지.
나는 아직 건드리지 않은 요리들을 골라 내어 그들이 앉을 자리로 옮겼다. 어차피 그들 몫의 요리가 새로 올 테지만, 그동안 입가심이라도 하란 의도였다.
“만찬이군요.”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역시 배가 고프긴 했나 보다. 두 사람은 사양 한 번 없이 음식을 바로 입에 밀어 넣었다. 만두를 닮은 음식과 고기 꼬치, 한 소쿠리 준비되어 있던 빵이 순식간에 쭉쭉 줄어들기 시작했다.
“말은 어디다 맡겼지?”
“음, 아. 성주님께서 저희를 마중 나와 주셨더군요. 해서 여차저차 성주님께 말을 맡기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민가의 마구간에 맡기긴 어려울 것 같아서요. 신전도 멀고.”
대충 성주가 말을 보관해 줄 테니 주작한테 어서 가 보라 그랬나 보지? 나는 인퀴지터가 겪었을 상황을 어림짐작해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잘했다.”
인퀴지터를 마중한 이가 성주가 아니라면 일은 좀 복잡해지겠지만, 이 세상은 귀족 사칭죄가 제법 엄격한 편이다. 결정적으로 인퀴지터나 다니엘이 확인 없이 섣불리 맡길 사람도 아니고.
그러니 잘한 거다. 내 말에 인퀴지터가 헤헤, 하며 동글동글 웃었다.
“프레드릭이 사고는 안 쳤나?”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갈 때 불만이 많아 보이긴 했습니다만, 주신 블루베리를 바치니 그래도 참아 주더군요.”
“그래…….”
이따 되찾으러 갈 때 신경질 또 엄청 부리겠구만.
나는 프레드릭이 좋아하는 것들을 여기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며 디저트로 나온 페이스트리 케이크를 한 입 떠먹었다. 바삭한 레이어 사이로 꿀과 견과류가 툭툭 튀어나오며 혀를 즐겁게 하는 케이크였다.
꿀이 많이 쓰이지 않은 덕에 내 입에도 과하게 달지 않고, 식감도 재밌어서 퍽 마음에 든다. 곁가지로 나온 차도 단 향 없이 케이크와 어울리는 것이라 꽤 만족스럽고.
나는 어렵지 않게 케이크 한 조각을 해치웠다.
“하나 더 줄 수 있겠나.”
“잠시간 기다려 주십시오.”
아, 이 케이크 꽤 괜찮네. 지구에도 이런 거 있을까?
달칵.
“고맙군.”
나는 새 케이크를 리필받으며 디저트 포크로 케이크의 레이어를 자세히 확인했다. 정희가 이런 디저트류에 통달해 있으니, 돌아가면 한번 물어볼 요량이었다.
“그거 맛있어요?”
그러자 막 식사를 마친 소녀가 이쪽에 시선을 주었다. 식탐이 많다기보단 어른이 먹는 것이면 뭐든 관심을 보이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해서 나는 말없이 찻잔과 케이크 조각을 내밀었다. 아이가 본인 몫의 포크로 케이크를 쿡 잘라 갔다.
“사탕처럼 달아요……! 근데 그것처럼 딱딱하진 않고…….”
“꿀이 들어가고, 저 빵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서 그렇다.”
“저건 눈처럼 폭신폭신하고, 얘는 나무껍질처럼 바스락거리는데요?”
“반죽 방식과 굽는 온도가 달라서 그렇다.”
“그렇구나…….”
나도 제과 제빵 쪽은 잘 몰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맞겠지. 페이스트리는 반죽을 수백 겹 쌓아 굽는 거고, 저런 빵은 반죽 덩이를 그대로 굽는 거라 알고 있으니까.
“입이 너무 달면 차를 마셔라.”
“이거죠?”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디저트도 맛볼까.
나는 조금 떨어져 있던 쿠키를 주섬주섬 입에 넣었다. 버터가 잔뜩 들어간 현대식 쿠키에 비하면 향과 맛은 좀 덜했으나, 아몬드가 들어간 덕택에 고소함만큼은 진국이었다. 나는 쿠키를 하나 더 입에 털어넣었다.
홀짝.
그사이 소녀가 찻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한 숟갈 수준으로 조그맣게 들이켠 소녀의 미간이 오그라들었다.
“향은 나는데 맛이 안 나요…….”
“풀잎을 우린 물이니까.”
“맛없어.”
“그러냐.”
하긴, 애가 차 맛을 느끼긴 좀 어렵지. 나만 해도 스물 후반에야 겨우 먹을 줄 알게 된 편이고.
“네겐 이게 더 맞을 것 같군.”
“……! 달아요!”
해서 나는 시종에게 부탁해,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를 새로 준비해 주었다. 케이크는 입맛에 맞는 듯했기에 굳이 바꾸지 않았다.
“맛있어……!”
“그래, 많이 먹어라.”
쿠키와 케이크, 과일을 넣은 수즈마 등이 소녀의 배로 차곡차곡 사라졌다. 과연 성장기 아이다웠다. 얘가 데브보다 많이 먹은 것 같다.
“왜, 왜 보십니까요?”
“…쿠키 더 필요한가?”
“어, 조금요?”
중학생뻘 아이보다 적게 먹으면 어떡해.
나는 디저트라도 많이 먹으란 심정이 되어 데브의 앞접시에 과자를 수북히 쌓아 주었다. 데스브링거가 얼떨떨해했지만 마음 쓰여서 어쩔 수 없었다.
더 먹어라, 다 먹어라 이얍.
“다 먹었다…….”
그 잠깐 새에 소녀가 또 디저트 그릇을 비웠다. 배부른 기색이라기엔 눈에 아쉬움이 가득이라, 나는 시선을 슬금슬금 굴려 보았다.
미리 가져온 디저트가 다 떨어진 참이라, 이번에 시키면 시종 한 사람이 탑을 또 왕복하게 될 텐데… 그건 역시 잔인한 일이지 않을까?
“…계명, 디저트 안 먹을 건가?”
“그건 왜 묻지.”
“먹지 않을 거라면, 아이에게 양보할 생각 있느냐 묻고자 했다.”
그럴 바에야 안 먹는 사람 거 애한테 주는 게 훨 낫겠지. 음식 쓰레기도 없어지고 노동력의 낭비도 없게 되니까.
“시종에게 시키면 될 일이다.”
“이래저래 낭비가 많아 보였을 뿐이다.”
“주인 된 자는 아랫것을 배려할 필요가 없거늘.”
“그래서, 먹을 건가?”
네가 십 층 넘는 탑 오르락내리락해 봐라. 그게 사람 할 짓인가. 나는 그런 마인드로 다시 물었다.
“가져가라.”
계명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케이크와 쿠키가 아이에게 보충되는 순간이었다.
“감,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이거 먹고도 부족하다고만 안 하면 좋겠는데. 나는 아이의 먹성에 감탄하며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저…….”
때마침 쿠키를 우물거리던 데스브링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왜 마법사 나리를 계명이라 부르시는 겁니까요?”
“……?”
“그, 에루탤크가 이름 아니었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애들은 에루탤크의 이름이 계명인 걸 모르지. 안 알려 줬으니까.
“그것이 진짜 이름임을 들었기에, 그리 불러 줄 뿐이다.”
에루탤크가 왜 가명인지, 계명이 왜 진명인지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나는 그녀의 명예와 자존심을 고려하여 딱 기본되는 사실만을 전해 주었다.
“아… 그렇습니까요?”
멀리서 볼이 빵빵해지도록 음식을 물고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내 쪽으로 이끌렸다. 아닌 척하지만 계명도 은근히 이쪽을 주시하는 중이다.
“근데, 그… 언제 들으신 겁니까요?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건 아닌 것 같아서…….”
조금 곰곰이 생각하던 눈치의 데스브링거가 또 한 번 물었다. 이건 조금 답하기 까다로웠다.
“에루탤크가 진짜 이름일 것 같진 않아서, 제대로 물어봤다. 그래서 알게 된 거다.”
설마 왜 그런 생각을 한 거냐 묻진 않겠지. 그러면 좀 곤란해지는데.
나는 돌아오면 난처해질 질문의 답을 미리미리 고민해 두며 데스브링거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이, 이름을 물어봤…….”
“모, 모험가께서 이름을…….”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대체 뭐가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