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순금처럼 깨끗한 (7)
[신성력의 증폭이 잦아들었다라…….]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전선에 대한 사정을 들었다. 주작과 인퀴지터가 대표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우리는 곁에서 듣는 느낌의 보고였다.
[악몽을 꾸는 빈도는 늘고?]“그렇습니다.”
[악몽을 꾼 자들 대부분에게서 저주의 잔재가 발견됐다는 걸 보면 필시 악마의 소행 같은데…….]다만 나는 아직도 배움이 부족한 상태라, 그들이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예컨대, 악마의 소행인 것까진 알아들었으나 범인이 누구인지까지는 추정하지 못한단 소리다.
[나태겠군.]“나태네요.”
하나 기반 지식이 있는 이들은 달랐다. 주작과 인퀴지터가 확신에 서린 채 단언했다.
“…저.”
“왜 그러십니까?”
“결론이 왜 그리되는 겁니까요?”
그때 데스브링거가 다니엘을 향해 조심히 질문했다. 주작은 멀리 있으니 차마 못 묻겠고, 인퀴지터도 심각한 얼굴로 대화 중이니 차선으로 그를 고른 것 같았다.
어차피 그도 정체를 미리 알아챈 눈치임은 매한가지였다.
“아…….”
해서 나도 그쪽에 잠깐 귀를 기울였다. 이유가 궁금한 건 나도 똑같았다.
“일단… 색욕의 대악마는 외설적인 꿈을 선사할지언정 단순한 악몽을 선사하는 일이 없습니다. 악몽까지 꾸게 하기엔, 꿈은 그의 관할이 아니기 때문이죠.”
각설하고, 보고가 방해되지 않게 목소리를 낮춘 다니엘이 해당 부분을 설명해 주었다. 화상에 가려지지 않은 눈동자는 악마를 향한 적의와 불쾌감으로 살짝 흐려진 상태다.
“자연히 그 휘하의 악마나 추종자들도 악몽만큼은 다룰 수 없습니다. 모시는 대악마가 못 쓰는 힘이니, 당연한 일이죠.”
“아… 그래서.”
“나태가 바로 지목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가 주관하는 것은 꿈… 그것도 사람을 늘어지게 만드는 악몽이니까요.”
근데 나태라… 나태라면, 그 뭐냐. 사막 도시에 있던 거 아닌가? 난리 통 속에서 직접 상대도 해 봤던 것 같은데…….
「…맞아요. 직접 상대해 보셨어요.」
그래. 역시 걔 맞지? 듀크인지 뭔지 했던 걔. 악몽으로 가자니 어쩌니 하면서 이상한 환영 같은 걸 보여 줬던─
“아.”
나는 과거의 기억에까지 상념이 미친 순간, 새로운 사실을 자각했다. 그때, 파우스트도 그걸 보고 있었을까?
“나리?”
“…신경 쓰지 마라.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났을 뿐이다.”
나는 가족의 환영이 나타나 저주를 쏟는 광경 속에서 소년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잠깐 가늠해 보았다. 그다지, 좋았을 것 같진 않았다.
“다만, 듀크가 전선에 나타난 게 진실이라면 일이 좀 귀찮게 되겠군.”
“……?”
“그가 보여 주는 악몽은 사람의 트라우마와 직결되는 듯했으니.”
덩달아 내가 생초면이었을 그들을 가족이라 부르며 화냈던 장면도… 그걸 목격했을 소년의 어이없음도…….
음, 잊자! 잊어버리자! 나는 산뜻하지 못하게 기억을 콱콱 짓밟아 저편으로 넘겨 버렸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
“왜 그렇게 보는가?”
그런데 다들 시선이 왜 그래? 혹시 내가 쪽팔려 하던 심정을 표면 밖으로 표출했냐?
“아니, 상대해 보신 겁니까?”
“…그렇다만?”
왜 모르는 얼굴… 아, 그땐 다니엘이 파티가 아니었지.
“아아, 맞아. 남쪽에 있었을 때 그랬죠?”
다행히 데스브링거는 곧장 기억이 났나 보다. 얼굴 위로 느낌표가 뜨는 듯한 환영이 보이고 두 귀가 축 늘어졌다. “그때 난리도 아니었는데…….” 솔직한 심정으론, 우린 항상 난리였다고 대답하고 싶은 중얼거림이었다.
[…너 정말 악마랑 연이 깊구나. 분노에, 질투에, 인색이랑, 탐식, 나태까지.]와중에 보고받던 주작이 끼어들었다. 그 역시 해당 사건을 모르고 있었는지 어딘가 질린 기색이 낙낙하다.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는 알겠으나,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군.”
별개로 연이 깊다고만 표현하니까 뭔가 다른 쪽으로도 해석이 되잖아. 차라리 악연이라고 해 줘. 악연 자체도 뭔가 짜증나긴 하지만, 연이란 한 글자보단 훨 낫다고.
[아, 미안.]“됐다…….”
“분노, 질투, 인색, 탐식, 나태라. 오올. 색욕이랑 오만까지 만나면 일곱 대악마를 다 만난 최초의 인간이 되겠네.”
“그런 영광 따위 바란 적 없다.”
빌어먹을, 한 놈 정도는 다른 인간이나 세력이 처치해 줘도 좋았을 텐데……! 아니면 이미 뒈져 있었다는 설정도 좋아! ‘일곱 악마를 만나고 살아 돌아온 자’ 같은 업적, 현실에선 전혀 필요 없다고!
‘업적작 해 봐야 스텟 보너스 달린 칭호도 안 주는 쓰레기 겜…….’
「……?」
현실은 역시 좆망겜이야.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을 꾸욱 억누르며 두 손의 손가락을 얽었다. 팔꿈치를 댄 채 얽은 손에 얼굴을 기대면 이내 ‘고뇌하는 자’의 자세 완성이다. 젠장.
[아무튼… 나태가 올라온 게 맞다면 상황은 별로 좋지 않겠군.]“예… 새롭게 가세한 악마들에 더불어 악몽까지 더해지니, 전선의 피로도가 훨 올라간 상태입니다. 거기에 주작께서도 자리를 비우신 통에…….”
[쯧.]“외람된 말씀이오만, 전선의 복귀는 언제쯤 가능하실 것 같습니까?”
[아직 사나흘은 더 걸릴 것 같은데… 완전한 회복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전선에 복귀하는 게 나을 것 같네. 급한 곳은 없을지언정, 병사들의 피로도가 계속 쌓이면 좋을 게 없으니까.]“그렇습니까.”
주작이 깨알 같은 글자가 적힌 종이를 내려 두며 손을 휘저었다.
[너흰 어떻게 생각해?]“예?”
[너희 걸음으로는 전선까지 오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리잖아. 너희만 괜찮으면 난 전선에 복귀할 때 너희도 데려가려 했거든. 내 등에 태워서 가면 하루 이틀로 족하니까.]“확실히… 그게 더 효율적이긴 하겠습니다. 어차피 저희도 전선에 내려가야 하는 입장임은 같으니까요.”
[며칠 더 안 쉬어도 되겠어?]“아, 혹시 바로 가실 겁니까?”
[바로까진 아니지만… 늦어도 내일 중으론 떠나려고. 아까도 말했지만, 급한 곳은 없어도 늦게 가 봤자 썩 좋을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그렇군요. 하면…….”
곰곰이 무언가를 헤아리던 인퀴지터가 좌중을 돌아보았다. 우리에게 의견을 묻는 자의 얼굴이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솔직히 좀 쉬고 싶은데.”
그녀의 물음에 일반인의 체력, 마이스터가 냉큼 답했다.
“난 너희처럼 강철 체력이 아니라고.”
다만 ‘언제나처럼 훌륭하게 눈치를 안 보는군’이라고 하기엔 그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거뭇한 상태라. 마냥 마이웨이라서 그렇게 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테이저 건도 개량하고 싶고.”
아니, 어쩌면 그냥 마이웨이라서 그렇게 답한 걸지도.
“저는… 뭐, 괜찮습니다요. 아래 내려가서도 쉴 수는 있을 거 아닙니까.”
“…글쎄, 과연 그럴지.”
“에, 나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어, 진솔한 심정으로는 그렇지. 딱 잘라서 부정한다거나, 특별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좀… 제대로 된 휴식은 불가능하지 않으려나.
“뭘 알고 계신 겁니까?”
“그런 건 아니다만…….”
나는 흐트러진 눈썹에 약간의 난처함을 담아 인퀴지터를 일별했다.
“우리의 행적을 돌아보거든,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사건이 곧장 터지지 않았나.”
“앗.”
“어.”
“논리적인 예측보다는 징크스에 의한 불안에 가까울 것 같군.”
그도 그럴 게, 이 세계가 게임이 아닌 건 알고 있지만 어디 갈 때마다 사건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딱딱 터진단 말이지. 이동했는데 멀쩡한 도시도 있었고, 이동하던 과정에서 갑자기 터진 경우도 물론 있었지만… 한 도시를 목적으로 잡았을 때만큼은 거의 100%로 사건이 터졌단 말이야?
그뤼 텔츠라든가, 파 에녹이라든가, 휴델렌이라든가, 캄버러라든가, 베뮈르헨이라든가… 염병, 이거 그냥 목적지 삼는 족족 터진 거 아니냐?
“뭐야. 너도 그런 미신을 믿었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나도 맹신하진 않아. 단지… 가챠 게임을 할 때 소환진을 그려 두거나 물 떠 놓고 비는 정도로만 할 뿐이지. 적어도 그런 건 시도해서 손해 보는 게 없잖아. 그래도 안 뽑히면 세상을 욕하게 되긴 하지만, 어쨌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갈 때마다 사건이 터진다는 게─”
“베뮈르헨.”
“그건 2주의 간격이 있었잖아.”
“뮌문트. 이건 갔더니 일이 터진 상태였다.”
“음.”
“이번에 다녀온 세계의 끝도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공교롭게 늑대가 나타났지.”
나는 겸사겸사 그 앞에 있었던 일들도 간략히 토해 냈다. 모든 걸 들은 이 마이스터와 다니엘의 표정이 묘해졌다.
“…너, 그 불운의 폭풍이라도 몰고 다니는 거냐?”
“…경은, 그, 마가 붙으신, 아니 진짜로 마가 붙어 계시긴 한데.”
여기에도 굿 같은 게 있었으면 둘다 굿 한번 받아 보라고 했겠구만. 근데 나도 그 의견엔 동의하는 바야. 게임 좀 하려 했더니 다른 세계에 납치된 게 말이나 돼? 이쯤 되면 팔자가 사나운 걸 떠나 누가 살을 날린 게 분명하다고.
“후우. 그래도 가야 한다면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지구 가면 진짜 굿 받을 거야… 잡귀나 악마가 더는 못 끼게 굿이니 구마니 받을 거라고…….
나는 그런 잡념 따위를 주변으로 팔랑팔랑 날리며 팔짱을 꼈다. 절로 목구멍에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어째서?”
“우리가 가자마자 터질 사건이, 설마 우리가 가지 않았다고 터지진 않을 것이니. 그럴 바에야 차라리 대항할 전력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게 나을 것 아닌가.”
“뭐, 그건 그렇지.”
“반대로 우리가 간다고 해서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좋은 일이겠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전황을 살필 수 있을 테니.”
“한 점의 틀림도 없는 말씀입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에 한한다면.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대들의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출발한다 했을 때 고생인 건 나보단 그대들 쪽에 가깝지 않은가.”
특히 마이스터랑 데스브링거. 다니엘도 일반인에 가깝긴 하지만 저쪽은 이런 강행에 워낙 익숙해 보여서 말이지. 계명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날 양반이 아니고, 내 쪽에서도 그거까진 배려하고 싶지 않고.
아, 이사른콜도 좀 걱정이긴 한데… 쟤는 애초에 전선까지 데려갈지 말지조차도 모르겠단 말이지. 여기라고 좋은 곳은 아니지만, 전선은 이 이상으로 위험해서…….
“하, 이미 거절하면 쓰레기가 되는 상태인데, 거기서 우리 의견을 묻냐?”
“…의도한 바는 아니다. 사과하지.”
앗, 그게 그렇게 되나. 근데 마이스터, 너는 이미 거절한 상태잖아. 야 인마.
“저도 뭐… 괜찮습니다요. 가서 쉬면 되죠.”
“저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투덜대는 사이 남은 이들도 하나둘 의견을 내었다. 하필이면 아크메이지님이 자리를 비운 상태라, 모든 이의 의사를 확인하진 못했으나, 그분도 아마 괜찮다고 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비슷한 판단을 한 듯 마이스터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저, 저희는…….”
[너흰 여기에 있어. 전선에 따라와 봤자 못 볼 꼴만 볼 게 뻔하니까. 영주한테도 말해 두었으니 정착하기 어렵진 않을 거야.]“옙.”
[그리고 너는…….]“전 따라갈래요.”
[난 모르겠다. 알아서 결정해.]“따라갈 거예요.”
소녀가 너무 당돌해서 괴롭다… 나는 소녀에게 남아 달라 간청할까 하다가, 나를 직시한 채 선언하는 모습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얘는 설득이 될 애가 아니다.
“부디… 가자마자 사건이 안 터지길 비는 수밖에 없겠군.”
안 그래도 남은 보스들 능력이 양심 없던데, 제발 체력 회복 시간이라도 확실하게 줬으면 좋겠다. 나는 두 손 꼭 붙잡고 간절하게 빌었다.
* * *
“배신자 에메랄드가 살아 있다고 한다.”
이제는 성주가 된 전 소성주의 발언에 장내의 기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허락되지 않은 행위는 무례였으나, 그걸 지적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당장 성주부터가 눈을 음산하게 뜬 채 암묵적으로 허가하고 있거니와, 모두가 분노 따위에 휩싸여 자잘한 예의를 따질 상황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성주님, 부디 저를 보내 주십시오. 반드시 그 배신자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은 채 돌아오겠습니다!”
“토파즈 경은 이미 밀린 전적이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저를…….”
“그만.”
치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간곡히 청하던 기사들이 소성주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무릎은 한쪽이 꺾여 바닥에 막 붙여지는 중이다.
“그것은 용사 일행에게 이미 사로잡혔다고 한다.”
“하면…….”
“다만 그것의 능력이 대악마를 상대하는 데 유용하여, 부디 전쟁을 끝낼 때까지만 형벌을 유예해 달라는군.”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자가 이 도시에 한 짓이 있는데……!”
“나는, 아직, 입을 열어도 되노라 허락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귄터는 서늘한 눈으로 꿇은 기사들을 내려다보며 본인 손에 들린 편지를 팔락였다.
“나는 이를 허가할 것이다.”
편지의 끝자락에는 전체적인 주제와 전혀 궤를 달리하는 한 줄이 적혀 있으니.
“악마들과의 전쟁이 끝난 후 그것이 여즉 살아 있다면, 그것의 생사는 반드시 뮌문트에게 넘기겠노라 용사가 약조하였으니. 나는 대의를 위하여 나와 우리의 원망을 잠시간 접어 둘 것이다.”
“…성주님.”
“반론이 있다면, 나와라. 받아 줄 것이니.”
⌈사탄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파우스트를 구원해 주겠다는 신의 확답을 받았다.⌋ 그것은 그가 감히 변절한 자를 살려 두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없습니다.”
“성주님의 판단을 따릅니다.”
“좋아. 모두가 이해해 준다 하니 기쁘군.”
하지만 이걸 기사들이 알 필요는 없다. 악마와의 전쟁을 끝낸다는 명분으로도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는 충분하니까.
“…다만 그것이 도망칠 불안은 있으니, 우리 측에서도 사람을 파견하여 감시를 할까 한다.”
물론 대의만으로는 불편한 자들이 있겠지. 귄터는 그런 이들을 위하여 두 번째 개껌을 준비했다. 이것으로 기사들의 입은 최소한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다물리게 될 것이다.
“누굴 파견하시겠나이까?”
다만 파견 대상으로 누굴 고를지는 고민인데…….
귄터는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했다.
“사파이어 경과 자르딘 경으로 하지.”
부상을 회복한 수석기사와 정식기사로 갓 승격한 이의 이름이 불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