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396)
396화 한 사람이 (2)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의 영혼이 낱낱이 읽히는 감각에 치를 떨면서도 억지로 끌어들인 이의 정신을 튕겨 내진 않았다.
[난, 난 절대 죽지 않을 거야…….]영혼이 잠시 튕겨 나갔을 그때, 그레트헨이 무엇을 하고 왔는지, 무엇을 알아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이래, 그의 태도가 더욱 매몰차지고 바늘 하나 박히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 것은 분명한 채라.
[절대로, 안 죽을 거라고.]이대로는 정말 죽는다. 정말 죽게 될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 공포에 휘감긴 채로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빌어먹을 그레트헨……!]그것은 처참하디처참한 자신의 기억을 모조리 까발리는 것. 이것은 자연적인 흐름을 이용하는 것이기에 계약에 걸릴 것도 없었다.
아무렴 영혼이 맞닿아서, 영혼이 깊게 얽혀서, 그녀가 영혼의 기억을 닫지 않아서. 그저 영혼 안에 담긴 정보가 흘러갈 뿐인 것인데 뭐가 계약에 걸리겠는가.
[날 동정해, 제발 동정해.]물론 그 결과가 어떤 물러 터진 사람의 연민을 불러오거든 그것까진 그녀의 탓이 아니리라. 그건 결국 우연의 결과일 뿐이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하잖아…….]그러니 부디… 길가의 돌멩이조차 받을 그 값싼 동정이 그녀에게도 주어지기를. 그녀에게만 비싼 연민이 부디 떨어지기를.
메피스토펠레스는 치욕감에 몸을 떨면서도 기도했다.
* * *
지옥에 떨어진 인간이 무어라 외쳤다. 음성이 뭉개지고 단어가 쪼개진 까닭에 무어라 외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버릇이 영 좋지 않구려.]다만 어릿광대가 그리 말한 것을 보면 퍽 험악한 말임은 분명했다. 인간이 말을 하다 말고 기침을 콜록콜록 뱉었다. 피가 섞여 나오는 기침이었다.
이 사람은 아픈 걸까? 나는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기묘한 시점에서 피가 점점이 묻어난 손바닥을 보았다. 튄 피의 양은 많지 않았으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으나, 다른 악마들 앞에선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오.]객혈한 여인이 갈라진 숨을 몰아쉴 즈음, 앞에 서 있던 어릿광대가 몸을 낮추었다. 흰 장갑 위로는 다이아 무늬가 새겨진 손수건이 있다.
[군단장을 사모하는 자 중에는 예의범절에 집착하는 자들도 있으니.]지지직. 아니, 그건 다이아 무늬였을까?
지직.
스트레이트.
지직.
민무늬.
지직.
격자.
지지직.
프릴 장식.
노이즈와 함께 흐트러질 때마다 손수건의 색상과 형태가 바뀌었다. 어릿광대의 모습도, 인간의 옷가지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모자, 혹은 실크 햇, 그것도 아니면 고깔모자.
모자 아래는 빨간 코가 달린 가면, 화장이 된 가면, 눈물·별·하트 마크 가면.
시시때때로 바뀌는 외형의 조각들이 어릿광대의 인상을 종잡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광대 자신의 특성인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내 판단으로 그건 아니었다. 인간의 옷가지도 남루한 셔츠나 원피스, 티셔츠 따위로 계속해서 바뀌었고 주변 풍경도 툭하면 노이즈와 함께 일부가 변동된 까닭이다. 예컨대 바위의 위치, 잘려 나간 괴물의 종류, 퍼진 핏자국의 형태 같은 것이.
“정말이지, 불안정하기 짝이 없네.”
정말 이상한 세계다. 애초에 내가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고.
[당연한 이야기요, 이건 기억으로 구성된 곳이니. 당사자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매양 흐트러질 수밖에.]“기억? 난 이런 기억 없는─”
내 고개가 확 돌아갔다. 돌아갔나? 실체 없이 사고만을 이어 가던 정신이 광대를 주시했다. 놀랍게도 그는 나와 시선을 맞대고 있는 채다.
[친애하는 그대,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 들어온 것이오?]“…어,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왜 여기 있는 걸까요?”
나는 그냥 자다 눈떴을 뿐인데.
“…이게 타인의 기억이라고요?”
[그대, 방금 본인의 입으로 이런 기억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아니면, 그 자신조차 잃은 기억인 게요?]“…그건, 아닐걸요.”
전생이니 전전생이니, 그런 설정만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면 분명 아니다.
[하면 타인의 것이지 않겠소.]“합당한 추론이긴 하네요. 이제 누구의 기억인지, 당신은 왜 기억 속 존재면서 저와 대화가 가능한 건지 새로운 의문이 생기지만.”
나는 새까만 머리카락의 여인을 힐끗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연필로 새까맣게 칠해 둔 낙서와 같다. 본래 그곳에 있었을 무언가를 알아볼 수가 없다.
인지되지 않는 얼굴이 다만 강하게 그러쥔 주먹과 입가를 닦는 손수건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표했다. 그것은 나를 보지 못하되 광대를 보며 분개하고 있다.
“…저, 성함이 메피스토펠레스라고 하셨죠.”
[그렇소만.]“마침 제가 아는… 인간 중 하나가 귀하와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혹시 영향을 끼쳤을까요?”
[오…….]하나 그런 그녀가 측은하느냐면 글쎄. 머릿속에 떠오른 가설 하나가 연민을 차갑게 식도록 만들었다.
메피스토펠레스. 분노. 내게 원인 모를 일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그 일에 그 이름이 섞여 나온다면 솔직히 범인은 훤했다.
[계승받은 이름과 먹어 치운 영혼은 영육의 뼈와 살이 되어 그 자리에 남는 법. 내가 그대와 대화할 수 있는 이유도 알 법하구려.]이건, 아마도 분노의 기억일 것이다.
“방금 해 주신 말씀은, 저로선 이해가 조금 어렵네요.”
[이것은 증명된 가설이 아니요. 따라서 나 역시 언어로 해당 행위를 정의할 수 없지.]다만 어째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어릿광대가 손을 휘저었다.
[그렇지만 친애하는 그대, 내가 기억에서나마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그대의 추측과 동일하리란 말 정도는 할 수 있겠소.]“그런가요.”
[참 흥미로운 일이지 않소? 세상엔 이런 우연도 있소.]“흥미롭지 않은 건 아닌데…….”
솔직히, 동의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무렴 이게 정녕 분노의 기억이라면,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고. 그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광대분한테는 미안한 말이겠지만, 진짜로.
[후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가 보오.]“…조금, 네.”
별로 좋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그냥 인생의 원수 수준이지만, 그걸 굳이 설명하고 싶진 않다.
나는 적당한 긍정으로 답을 마무리했다. 광대는 그것으로도 진실을 눈치챈 듯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나 그대. 어렴풋이 떠올린 기억이 아닌, 형상화된 기억을 나가는 것에는 그에 맞는 절차가 필요하오. 그대가 불쾌하다 하여 마음먹자마자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는 없단 의미이지.]“…왜죠?”
실제로 아까부터 의식적으로 깨어나려 했던 모든 시도가, 그러니까 심상 세계에선 분명 먹혔던 모든 방법이 이곳에선 먹통이 된 상태긴 한데. 진짜 왜?
[이유를 내게 물어도 어찌 설명하겠소. 법도가 그리할 뿐임을.]…이건 억까야! 내가 왜 원수의 기억까지 돌아봐야 하는 건데?! 분노 이 자식은 나한테 진짜 뭘 바라고 이딴 짓거리나 하는 거냐고!
나는 올라오는 빡침에 뒷목을 잡으려다가, 지금의 내가 실체 없는 존재임을 자각했다. 더 빡쳤다.
“그럼… 그 절차란 걸 알 수 있을까요?”
[형상화된 기억은 일종의 감옥이기도 하니. 그대는 기억의 교차로에 생기는 틈새를 노려야 하오.]“…아하.”
기억의 교차로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것 하나는 알겠다.
그 망할 틈새란 건 분명 기억을 보다 보면 나타나는 그런 종류의 것일 거다. 그리고 나는 아마 기억 대부분을 보고 나서야 그놈의 틈새란 걸 찾게 될 거고.
음, 벌써부터 거지 같다.
“그, 기억의 교차로란 건 뭔가요?”
훤히도 그려지는 미래에 괜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연하지만 이 두통의 원인은 향할 곳 없는 짜증이리라.
[기억이란 순행하되 연속되지 않고, 역행할 수는 없으나 교차할 수는 있는 것.]“……?”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양립하는 순간을 찾으시오. 그게 기억의 교차로요.]“…알겠습니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따라야겠죠.”
그래도 답 자체나마 알게 된 건 다행이다. 광대가 없었다면 단서도 없이 멋모르고 기억만을 구경했을 테니 당연하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감사 또한 전했다. 분노 녀석처럼 이 사람도 기만에 능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됐지만, 그런 불안감은 일단 미뤄 두었다. 지금은 이 사람이 알려 준 것밖에 걸 곳이 없다.
결국 나는 광대와 인간을 따라 그들의 기억을 엿보기로 했다.
[잘 따라오시오. 기억을 놓치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니.]과거에는 없었을 광대의 돌발적인 행동이 끝나는 순간, 진행되지 않던 기억의 장면이 드디어 흐르기 시작했다.
[자, 이곳이 그대의 방이오.]어릿광대는 메피스토펠레스로 추정되는 이를 어느 궁까지 날랐다. 궁의 책임자나 관리자를 만나는 일도 없이 방으로 인도한 건 덤이었다.
[본래라면 군단장을 먼저 뵈어야겠지만… 외출하신 듯하니 어쩔 수 없구려. 그렇다고 마기에 중독된 그대를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해당 방은 놀랍게도 대부분의 편의 시설이 제공된 채라.
[일단 이 방에서 쉬고 있으시오. 의사가 이곳에 곧 오도록 조치할 터이니. 또한 미치광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의사의 진찰을 부디 거부하지 마시오. 그는 그저 치료만을 위할 자요. 그대를 위협할 존재가 아니라.]그러나 어떤 편의 시설이 제공된단들 그 끝에 족쇄가 존재한다면 모든 건 무의미해진다. 사슬이 달리지 않은 족쇄를 발목에 차게 된 인간이 악에 받친 채로 고함질렀다. 와장창! 그때마다 방 안의 물건들이 박살 났다.
[그리 발악하여도 소용없소. 군단장의 눈에 든 이상, 그대의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광대는 박살 난 물건을 가만 보다가 손가락을 퉁겼다. 일어난 불꽃이 부서진 세간살이를 낼름 삼키더니 그대로 재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아니면, 친애하는 그대. 나와 내기하겠소?]그리하여 텅 비게 된 방, 그곳에서 어릿광대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지지직. 노이즈가 끼며 매 순간 바뀌었던 광대의 형상이 처음으로 고정되었다. 고작 얼굴에 한정된 부분일지라도 분명 고정된 건 고정된 거였다.
탑 햇을 쓰고 물감으로 마크를 새긴 염소뼈의 머리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해진 결말을 피할 수 있을지, 않을지… 말이오.]그 염소뼈는 내가 아는 분노와도 조금 달랐다. 뼈의 형태 자체가 다르기보다는 그 아래에 무언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분노는 사람이 염소뼈를 쓴 형상이지만 이것은 어둠이 뼈를 썼다. 악마였다.
[나는 그대가 현재에 안주하게 될 것임을 걸겠소. 반대로 그대는… 그래, 군단장의 구애에도 굴하지 않고 버틸 것을 거는 거요.]와중에 그 악마가 진행하는 거래는 파우스트와 분노가 진행했던 것과 썩 비슷하게만 느껴지니.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인간은 대개 배운 그대로 행동할 뿐이라는 그런 생각.
[이 계약으로 그대가 얻을 것? 탐욕스럽군. 하나 현명하오. 이익이 없는 거래는 하는 것이 아닌 법이지.]물론 그렇다고 해서 분노의 행위가 정당화되진 않는다. 나는 그것을 재차 상기하며 과거의 거래를 지켜보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인이 뭉개진 목소리로 악마에게 답했다.
“그@#!서? 내!@#줘야@@!$#?”
다만 이 순간의 기억은 그녀에게도 제법 인상적이었던 것인지, 먼젓번의 순간들보다는 알아들을 만했다.
한결 덜 뭉그러진 목소리가 맥락을 통하지 않아도 대화를 읽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대의 이름을 나에게 주시오. 그거면 되오.]“@#럼 네#$ 주@$건?”
[내기에서 그대가 이긴다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넘겨주겠소. 나의 영혼, 나의 이름, 그 모든 것을.]“부족#@$.”
[궁정에서 일하는 어릿광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오? 하물며 그대의 이름에 나의 모든 것 이상의 가치가 있기는 할 거라 여기는 거요?]“……!”
[명심하시오. 그대는 지옥에 떨어진 이방인이자, 언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미아이며, 군단장의 변덕으로 목숨을 건졌을 뿐인 비천한 영육에 불과함을. 또한 그대가 고작 그따위 가치밖에 지니지 못하기에, 이 거래는 동등한 이익을 내건 내기가 될 수 없소. 그저 내가 내 호의로 손해를 감수했을 뿐이지.]“…….”
[자, 하여 결론은 무엇이오? 할 것이오? 말 것이오?]그렇지만 이럴 바에는 차라리 들리지 않는 게 나았다. 나는 한 사람이 나락으로 향하는 걸 보며 괜히 찝찝해졌다.
물론, 인간의 몸으로 지옥에 온 시점에서 이미 나락으로 와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하여 이 거래가 그녀의 불운을 초래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악마와의 거래란 건 본래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착잡해지는 법이었다.
“하@#다.”
[좋소. 하면 승패를 결정짓는 조건으로는… 이것이 좋겠군.]그러나 나의 감상이 어떻든 그들의 계약은 진행되었다.
[찬란한 이 시간이여, 영원하라. 그대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그대가 패배하게 되는 것이오.]“쉽#@. 좋@%$.”
[하면 자, 서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시오.]어릿광대 메피스토펠레스와 미래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될 여인이 떠오른 계약서에 서로의 이름을 적었다.
안타깝게도, 여인의 이름은 까맣게 지워져 보이지 않았다. 가엽게도, 기억의 주인마저 잊어버렸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