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398)
398화 한 사람이 (4)
“그대들도 예상은 했겠지만… 나는 과거 마탑을 하나 운영한 적이 있네.”
아크메이지는 조금 심란한, 그러나 담담한 모양새로 말을 시작했다. 다만 그녀의 말은 마법사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 몇 사람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어… 그러셨습니까요?”
“마탑주였었나?”
“너희, 마탑의 장쯤 되어야 이명을 받는 거 모르냐? 이명을 받은 후 마탑주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이 존재할 순 있어도, 마탑주 경력이 없는데 이명을 받은 마법사는 없어.”
다행히 데스브링거나 베르세르크의 미진한 이해는 마이스터가 해결해 주었다. 면박을 기조로 하되 알려 주긴 하는 설명에 몇 사람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렇군요…….”
“한데 그것은 어찌……?”
지식의 부족이 가져온 잠깐의 환기에 아크메이지가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을까.
인퀴지터의 의문을 두고 그녀는 다시 표정을 고쳤다. 잘못 우린 차처럼 쓰디쓴 빛깔의 눈동자가 바닥을 향해 내리깔렸다.
“그 마탑은 나 혼자 운영하는 게 아니었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내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이가 원체 적었어서 말일세.”
“에엑, 법사 나리가요? 왜요?”
“아크메이지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데, 그럴 리가…….”
“좋게 봐 줘서 고맙네만, 내가 전공한 것이 비주류 계열이어서 어쩔 수 없네.”
“비주류 계열?”
“공격 마법으로 쓰이는 원소 계열 마법이나, 생명 계열 마법, 아이템 제작에 쓰이는 본질 마법이 아닌. 결계나 유지 보수 마법 같은 거 말일세.”
물론 결계 마법이나 유지 보수용 마법도 작정하고 파고 들어가면 우대받을 여지가 있긴 하다.
예컨대, 도시 전체를 계획적으로 건설하여 거대한 보호용 결계를 만들어 낸 ‘속죄하는 요정’. 시간을 건드리는 것으로 장벽의 내구도를 밑도 끝도 없이 올리는 데 성공한 ‘계속되는 보라뱀’. 이 두 명이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예시였다.
그들은 대현자치고 전투 능력이 낮은 축에 속함에도 이 얼어붙은 땅에서 인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오직 그들이 해낸 업적만을 가지고.
“다만 나는 한곳에 몰입하는 대신 두루두루 공부한 유형이라 말일세. 보조 계열 마법을 새로 만들거나 개량한 것에 그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축에 속했네.”
보조 계열 마법이란 자고로 공용 마법이나 일상 마법으로 불리기도 하니. 그런 것을 전공으로 하다 보면 아무래도 비주류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아크메이지의 설명에 모두의 표정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의 것이 되었다.
“그, 그래도 저흰 아크메이지님의 마법 덕에 엄청 편히 지냈는데!”
“맞습니다요. 화려하진 않아도 실생활에 긴히 쓰이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얕보일 것까진 없는 거 아닙니까요……?”
개중 데스브링거의 시선이 알게 모르게 마이스터에게 향했다.
댁도 뭔가 말 좀 해 보십쇼. 내가 왜? 아니, 댁이 저보다 잘 알 거잖습니까. 제대로 된 말로 위로해 드리라고요. 아니, 이게 위로할 일이야? 저 할망구는 어차피 신경도 안 쓰고 있을 텐데.
구깃한 표정으로 데스브링거와 눈싸움을 잇던 마이스터가 결국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그거지. 전선에 공격 마법사가 있으면 좋은데, 실용 마법을 연구하느라 후방으로 빠진 게 불만이어서 겁쟁이다 뭐다 지랄한 거. 마침 지들은 마법 쓸 줄도 몰라서 실용 마법 같은 게 있어 봤자 별 의미 없으니까.”
“시발.”
내가 위로하랬지 현실 적시 하랬냐고요. 데스브링거의 어이가 하늘로 상승하려던 순간, 마이스터가 뒷말을 뱉었다.
“전부 등신 새끼들이지. 보조 마법의 개량과 개발에 필요한 지식을 쌓는단 건, 한 분야에서 대현자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데.”
사감이 조금 섞인 듯한, 여전히 위로는 아닌데 위로인 듯한 말이 튀어나왔다. 오올. 데스브링거가 드디어 안도한 얼굴로 감탄했다.
“…그, 보조 마법이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당연하지.”
그때 마법에 문외한인 피리꾼 소녀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똘망똘망한 눈에 마이스터의 어깨가 꼿꼿해지고 중지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보조 마법 한두 가지를 배우는 거야 별거 아니지만, 대현자 타이틀을 딸 정도면 현존하는 보조 마법 전부에 통달했다는 소리일 거잖아? 그리고 보조 마법은 보통 한 가지 분야의 지식만을 사용하지 않아.”
가령 알람 마법은 범위를 지정해야 하니 결계 마법이 기본으로 깔리고, 거기서 특정 개체가 접근할 때만 발동해야 하니 지정 마법이 더해지며, 알람이 울리기 위해선 소리 마법도 들어간다.
보온 마법도 만만치 않다. 구역 지정 및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열을 내거나 뺏는 수식을 더해야 한다. 주변 온도에 따라 소모 마력에 부하가 걸릴 수 있으므로 제때제때 조정해야 하는 건 덤이다.
단순히 보조라고 해서 사용이 쉬운 게 아니란 이야기다.
“헤이스트 마법은 신체에 적용되는 것이니 생명 마법을 기본으로 깔고, 주입된 마력과 대상자의 마력이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도 해야 하는 데다가…….”
“이봐요, 중간부터 못 알아먹을 소리만 하고 있잖아요.”
“빌어먹을, 너희 대가리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아니면 내가 개념부터 일일이 박아 줘야 하는 거냐? 욥 저 녀석 좀 본받아 보라고. 저놈은 딴 동네 출신인데도 잘만 알아듣잖아.”
“그건 나리니까 가능한 거구요!”
각설하고 마이스터 덕에 아크메이지의 대단함을 새삼 깨달은 자들이 놀라운 눈을 했다. 그들이 지금껏 감사히 받아 쓰기만 할 뿐, 별생각 없이 흘려보냈던 마법들이기에 그 놀라움은 더했다.
아크메이지를 보는 이들의 눈에 존경심이 좀 더 더해졌다.
“하하… 그렇게 금칠해 줄 것까진 없네. 좋게 말해 두루 능란한 것이지, 다르게 말하면 전문적인 분야가 단 하나도 없단 소리도 되니까.”
“보조 마법으로 대현자까지 가 놓고 겸손 떨어 봐야 알 놈은 다 알거든요?”
어쩐지 우리 영감탱이랑 친하더라. 결국 괴물은 괴물들이랑 어울린다 이거지. 마이스터가 팔을 뒤로 짚으며 투덜거렸다.
“댁이 할 소립니까?”
당연하지만 여기서 스스로를 가장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는 자가 흰 눈을 했다.
“크흠… 다들 나를 배려하는 말은 고맙네. 그렇게 말해 줘서 기쁘군. 한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는가?”
“아아아, 물론입죠.”
“경청하겠습니다.”
모두의 성원에 아크메이지는 감사를 표하며 마저 말을 이었다.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래. 전공한 마법 특성상 나는 제자들의 수가 부족했고, 그 결과 혼자서라면 마탑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네.”
하지만 당시 마탑을 세운다는 건 단순히 명예와 권력을 챙긴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명예와 권력은 마탑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 때 창출되는 부가적인 무언가일 뿐. 마탑의 진가는 대규모로 후원을 받으며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음에서 왔다.
“나는 대현자 칭호를 받을 만한 업적을 세우는 데 성공했고, 마탑을 유치하는 데 필요한 투자금, 즉 투자자를 구하는 데도 성공한 상태였네. 하나 마탑은 대현자 하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 법. 마탑을 세우는 데 필요한 마법사의 최소 인원은 50명이었고, 나는 그 50을 채우는 데 실패했지.”
“뭐야, 투자자가 있으면 그냥 다른 연구를 하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마법사를 데려오면 되지 않아요?”
“그런 수도 있긴 했네. 하나 내겐 그것보다 더 빠르고 편한 방법이 있었지.”
그녀가 혼자였다면 결국 그런 수를 썼을 것이나, 당시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매정한 삭풍. 나와 같은 마탑 출신이자 나와 동 시간대에 업적을 세워 대현자 위에 도전할 수 있던 친구가 공동 마탑을 건립하자 제안해 왔네.”
동기이자 동료이고 친구였으며 연인이었던 이.
“거절할 필요라곤 조금도 없는 일이었지. 그의 마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는 많은 반면, 투자는 잘 못 받아서 우리 둘 모두에게 윈윈인 거래였으니까. 공동 마탑을 세운다 해서 대현자직을 못 받는 것도 아니었고.”
그녀는 그와 함께 마탑을 세웠다.
“하나 그건 내 인생, 최악의 선택이었네.”
지금은 계획도시 파사르엘이 존재하는 그 땅에.
“그 결과, 도시 일부가 통으로 날아갈 뻔했으니.”
본래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던 그 대지에.
* * *
“와, 와, 저 썅놈!”
슬슬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는 기분이 되었다. 아스모데우스가 뒤에선 폭력을 명령하고 앞에선 자상한 대시를 보내 왔기에 더욱 그러했다.
착한 경찰 나쁜 경찰 작전도 아니고 사람 홀려 먹겠다고 지랄하는 게 아주 염병이었다.
[그대의#$#$%%^&.]물론 여전히 대사는 대부분 뭉개져서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 차라리 그게 나았다. 눈앞에서 보이는 태도만 보아도 뭔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갔던 까닭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저 후레자식의 기억 대부분을 잊어버린 게 이해 간다. 나 같아도 저 썅놈은 기억에서 삭제할 것이다.
저딴 쓰레기는 기억할 가치도 없다. 물론 미래의 메피스토펠레스도 그런 유형의 인간이 되었지만.
“더러운#$개#@%$^#.”
이게 욕 필터링인지, 기억 필터링인지 모르겠네.
나는 개빡친 인간을 보며 속을 쓸어내렸다.
마치 아침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쓰레기 남주의 전화번호와 선물을 전부 불태우는 걸 보는 심정과 비슷했다. 비록 그 쓰레기 남주는 내일도 찾아와서 새로운 선물과 전화번호를 주겠지만, 아무튼 심리적 지배에 안 넘어가는 게 어딘가.
여기서 당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공감이고 뭐고 고구마 처먹는 시청자처럼 가슴을 퍽퍽 쳤을 거다.
아니, 근데 이 씨발 놈은 지가 당하면서 좆같아 했던 짓─심리적 지배─을 미래의 꼬맹이한테 한 거냐? 진짜 인성 쓰레기네.
“#$%$^%…….”
그러다 까득, 하고 인간이 본인의 손톱을 씹었다. 얼굴은 여전히 먹칠이 되어 있어 보이지 않았으나 그 행동만으로도 초조함이 여실히 전달되었다.
지지직
그리고 익숙한 장면 스킵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그녀의 손에 칼이 들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어라, 갑자기 칼? 당황스러운 전개에 멍해지던 정신이 도로 똑바로 세워졌다.
휘익.
어디서 빼돌렸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칼로 탈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성질머리를 못 이겨 커튼을 찢는 척하며 일부 천을 빼돌리거나 밥을 굶는 척하며 식량을 준비하거나, 서가에서 책을 읽어 지식을 쌓는다거나, 산책하면서 저택의 구조를 파악하거나.
내 입장에선 탈출의 발판으로 보이는 작업을 착착 쌓아 간 것이다.
“아악!”
그러나 그녀의 첫 번째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악마와 인간의 능력 차이가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탈출을 막아선 악마는 그녀의 사지를 박살 냈고, 아스모데우스는 또다시 그녀를 간호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분노 게이지가 착실히 쌓인 건 덤이었다.
“@^#$%#$#.”
다만 탈출이 실패한 후, 그녀는 자신의 격노를 억누른 채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아스모데우스에게 마음을 푼 척 하나씩 무언갈 얻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번째는 검술이었다. 악마와의 신체 능력 차로 인해 제대로 배운 것은 없으나, 그녀는 대충이나마 검식을 익혔다.
두 번째는 선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악마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도구들을 찾기 시작했다. 티가 나선 안 되니 은밀하게,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그렇게 처음보다 더한 준비가 가해진 두 번째 탈출이 시도되었다.
처음만 보면 ‘성공인가?’ 싶은 시도였다.
[#%&%$^%?]하나 저택을 나가 자유를 거머쥔 순간, 그녀는 다시 온갖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그녀보다 약한 것은 없었고, 그렇다고 세상이 그녀에게도 친절한 것은 아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악!”
한 악마에게 잘못 걸려 발이 부르트도록 도망치고. 정말 따돌리는 데 성공했나? 싶을 즈음 가혹한 환경에 고통받고. 식량과 식수가 다 떨어져서 아무거나 주워 먹었다가 중독되어 고통받고. 어떤 악마가 그녀를 구조해 주나 싶었더니 이상한 투기장 같은 데 팔려 나가서 죽을 위기에 처하고.
[그%#$&, 왜 저택을 나$%^.]결과적으론 다시 아스모데우스의 손바닥 위에 올라왔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곳에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
나는 팔 한쪽이 잘려 나가고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온몸에 상처가 새겨진 채로 아스모데우스의 품에 들려 나가는 이를 보았다.
그녀는 이 험악한 세상에 결국 체념했을까? 절망하며 자조했을까?
“…버릴 거야.”
아니.
“죽여 버릴 거야.”
나는 악에 받친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호흡을 뱉었다.
“전부 죽여 버릴 거야.”
그녀가 이다지도 강인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미래의 그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