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01)
401화 한 사람이 (7)
“그건 만약의, 그것도 정말 근소한 가능성일 뿐입니다.”
한참 만에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거기에 모험가 경은 일반적인 케이스도 아니지 않습니까. 해당 연구가 남아 있었다고 해서 그분께 도움이 됐을 거란 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소 냉정하게만 들리는 그 말은 그렇기에 객관적이고 또 명쾌하다.
“아니, 그건 또 모를 일이야. 여과 마법이 한창 개발되고 있는 지금이잖아. 그 연구가 남아 있었다면 이 연구의 진척 속도도 분명 빨라졌을걸.”
동시에 마이스터의 반박 역시 건조하고 날카로웠다.
“그 연구가 정녕 올바른 용도로 쓰였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건 나도 동의해. 그렇지만 약을 개발하다가 새로운 독을 만드는 것처럼, 독을 만들다 보면 약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법이지. 어떤 기술이든 있어서 나쁠 건 없다는 거야.”
“악용될 여지가 너무 큽니다.”
“그래. 그렇지만 그건 후차적인 문제라니까? 지금 중요한 건 그 기술이 있었을 때 어떻게 쓰였을지가 아니야. 그 기술이 있다면 이것에 도움이 되었냐, 안 되었냐지.”
“그러니까─”
“둘 다 그만하게. 기술의 옳고 그름을 두고 가치관 토론을 할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결국 아크메이지가 나선 뒤에야 두 사람의 입이 다물렸다. 본래 이들이 위안을 주려 했을 대상은 정작 둘 사이의 싸움을 말리느라 쓸데없는 상념이 다 날아간 표정이다.
해탈한 채로 둥둥 웃는 노인의 손바닥이 두 사람의 손등을 토닥였다. 푹신한 감각에 예민한 마이스터도 진중한 다니엘도 험악함이 한 꺼풀 벗겨졌다.
“저어.”
그쯤 되어, 눈치를 살살 보던 데스브링거가 조용히 귀를 쫑긋 세웠다.
“이거 그냥 저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닙니까?”
“……?”
“아니, 그 뭐냐. 오만은 마법에 능한 대악마라면서요? 계명 나리는 그런 오만의 기억을 다 받았고? 그럼… 이런 부분도 좀 아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요?”
그의 제안에 모두의 시선이 순간 한곳에서 멈춰 섰다. 당연하지만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데스브링거는 바로 쭈뼛거리며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만다.
“제, 제가 잘못 말했습니까요?”
“아니… 참으로 현명하다 싶어서 말일세.”
어차피 오만의 사냥을 이유 삼아 동행하게 된 참이다. 그의 지식을 이용한다 해서 새삼 이상할 것도 없으니.
“자네, 이에 알고 있는 것이 있는가?”
아크메이지는 바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러자 변두리에서 홀로 유리되길 자청했던 이가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특이성을 배제한 채 해당 가설에만 대답한다면, 이론적으론 불가능하지 않다.”
“그럼…….”
“하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나는 말하리라.”
펄럭.
이왕 들킨 것, 칙칙한 차림을 바꾸고 싶었는지 보다 세련되고 고급진 옷으로 갈아입은 이의 로브 자락이 나부꼈다.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광물처럼 표면이 반질반질거리는 망토의 안감은 움직일 때마다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난다.
“이유가 있습니까?”
“그대의 신체에 깃든 마력을 모조리 뜯어낸 후 마기로 채웠을 때, 그대는 살 수 있는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마기 침식이란 사례도 있으니 살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별로 당하고 싶은 일은 아닙니다만.”
“그래. 하면 마기 침식에 당해 놓고 자아를 유지할 자신은?”
“그건…….”
다니엘이 막힌 말문에 망설이는 사이, 인퀴지터가 입가에 손가락을 댄 채 곰곰이 생각하던 것을 토로했다.
“…그러고 보니 뱀파이어를 제하면, 마기 침식에 당한 자 중 정신이 무너지지 않은 자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건 경험을 기반 삼아 입증되는 가설이니. 묘하게 심기 불편해하던 마이스터가 눈가를 좁혔다.
“악마화든 인간화든, 성공할 수는 있어도 그 과정에서 자아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거다 이 소린가?”
“명확하다.”
“그럼, 악마 계약자들이나 뱀파이어는 대체 무엇입니까? 그것들은 어떻게 자아를 유지하는 겁니까?”
“그것들은 각자만의 방법으로 정신과 육신을 분리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악마와 계약한 자들은 스스로의 영혼을 악마에게 맡기기에 육체가 변질되는 고통에도 휩쓸리지 않는다. 변화한 육체가 줄 수 있는 이질감 역시 계약에 의해 보호받으며 극복한다.
그저 그뿐이었다.
“뱀파이어는…….”
“그것들이 타인의 생명을 갈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 거라 생각하는가?”
“…그것이 대가였던 거군요.”
“하면 이 이상의 설명도 더는 필요 없으리라.”
결국 특정한 방식을 동반하지 않는 한, 종족의 변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화를 통해 그것을 확신받은 이들이 각자의 숨을 토해 냈다.
안도일 수도 있고 아쉬움일 수도 있는 그런 숨이었다.
“하면… 내가 태운 그 연구는…….”
“있어 봤자 쓸모없었겠네요. 오히려 더 큰 문제만 일으켰을 것 같고.”
또한 그 숨의 끝에서 아크메이지는 그녀의 로브 자락을 움켜쥐었다.
“잘하신 겁니다요.”
“저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마법사들을 숨겨 주신 건 여전히 옹호할 수 없으나… 그 연구를 은폐하신 결정은 당시에 할 수 있던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전, 전 잘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눈치 보지 마라. 나는 네가 옳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법사들은 믿을 게 못 된다.”
“아, 그래도 연구는 좀 아까운데. 나중에 기억하는 거라도 말해 주시죠?”
“댁은 좀!”
이건 울고 싶은 건지, 웃고 싶은 것인지.
그녀는 움켜쥔 로브 자락을 다시금 펴며 그 남색을 가만 지켜보았다.
『브리사, 나의 산들바람.』
한때 그녀의 심장이었던 이가 가장 어울린다며 둘러 준 그 색을 그저 보았다.
『맹세할게.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이해와 납득으로 표현되지 않을 사랑을 너에게 줄 것을.』
가슴 안쪽에 쌓여 있던 응어리가 어쩐지 풀려난 기분이었다. 그 과거와 전혀 다른 불길의 들판이 그녀의 눈물을 떠받쳤다.
* * *
[…아.]나는 뺨에 입술이 닿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스모데우스를 가만 보았다.
그의 눈은 곧장 벌어진 일을 파악하고 곱게 휘어진다.
이 가벼운 행동을 허락의 신호로 여긴 것인지, 아스모데우스가 고개를 돌려 좀 더 깊게 입을 맞추려 했다.
“안 돼.”
그러나 그녀는 가벼운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며 아스모데우스를 피했다. 잡고자 하면 잡을 수 있을 움직임이었으나 아스모데우스는 그저 애석해할 뿐, 잡지는 않았다.
꼭 존중 때문은 아니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그녀의 태도가 급변하여 주변의 무언가를 던질 걸 알아서일 것이었다.
[#@$%$@*]결국 어깨를 으쓱한 아스모데우스가 주변에 손짓을 했다. 호위를 위해 서 있던 악마가 착실히 다가와 그와 입술을 맞댔다.
이 궁의 모든 악마를 자신의 연인으로 채워 넣은 놈이라 가능한 짓거리였다. 타인이 그것을 질투하지 않으리라 진심으로 믿는─혹은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입장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
아무튼 그걸 샐쭉 지켜보던 지옥 유일의 인간이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아스모데우스의 행위가 단순히 질투 유발용 행위가 아님을 알기도 하고, 남들이 쪽쪽대는 걸 지켜볼 이유도 없으니 그런 것일 터였다.
그리고 그건 나로선 참 다행인 일이었다. 나도 악마의 연애 짓 따윈 별로 구경하고 싶지 않다.
[$% 그분#$ 안 받#$%?]한데 그렇게 정원을 가로지르던 중,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등장한 놈들은 꼭 모욕이나 괴롭힘을 주던데.
내 눈이 반사적으로 찌푸려졌다. 그녀가 받아 온 모든 학대를 전부 목격한 건 아니나, 그 몇 번만으로도 이런 습관이 들긴 충분했다. 눈앞에서 악질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것 자체가 내겐 그저 고역이다.
“…어이가 없네. 내가 왜 그를 사랑해야 하지?”
그래도 눈치껏 판단해 보자면 이번은 그럴 것 같진 않네. 나는 이 평온한 기조가 쭉 이어지길 기도하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 그분#$% 살아@#$%#@.]“나를 살려 줬으니 사랑해야 한다고? 하, 어처구니가 없네.”
상대의 목소리가 부분부분이나마 들리는 걸 보면, 그녀에게도 이때의 대화가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좋은 의미로 기억에 남은 게 아니라, 어이가 너무 가출한 나머지 뇌리에 깊숙이 박힌 것 같지만.
“다른 건 다 제쳐 두더라도, 내 사랑을 얻는 순간 날 버릴 놈이야. 그런 그를 왜 용납해야 하지?”
[그#$@사랑#$%버리%$않#@.]“그렇지만 후순위로 밀리겠지. 지금의 너희처럼.”
[#$%후순#$@독점#$%@.]“하, 뭐야. 너희, 이제껏 독점해선 안 되는 분이니 뭐니 하며 정신 승리 해 왔던 거야? 그렇게 자위하며 살면 좋아?”
와중에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꺾이지 않은 표독함이 놀랍달지, 심란하달지. 나는 그녀의 강인한 정신에 괜히 뒤숭숭해하며 상대의 반응에 대비했다.
보통 여기까지 대화가 이어지면 죽빵이 날아오든 뭘 하든 했던 까닭이다.
[정$@리? 아@%요. 이건@#!#@.]하나 상대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본인의 심정을 드러내며 반론했다. 대강 눈치껏 그런 것 같았다. “하.” 보이지 않는 여인의 얼굴이 기가 차다는 듯 숨을 뱉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든, 스스로를 속이려 드는 것이든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다신 내 앞에서 그딴 말을 지껄이지 않길 바라.”
그녀는 자신의 발목을 들어 여전히 걸려 있는 족쇄를 내보였다.
“난 이런 걸 사랑이라 여기지 않거든.”
그것은 아스모데우스의 모든 위선적 행위 이전에, 이것이 결코 제대로 된 구애가 되지 못함을 증거하는 물건이다. 이딴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
“그러니 이만 꺼져 줄래? 나는 방에 돌아갈 거거든.”
근데, 이와 별개로 이렇게 되면 그녀에게 안 좋지 않나? 저쪽이 고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냅다 달려가서 이 모든 전말을 고해 바칠 가능성도 분명 있잖아. 그렇게 되면 아스모데우스는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될 텐데……?
나는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따르며 인간이 그리고 있을 그림의 너비를 짐작해 보았다. 가늠되는 것이 별로 없었다.
[…불쌍해라.]단지 유독 선명하게 들려온 음색과 물에 닿은 마그네슘처럼 순식간에 반응을 보이는 머리카락의 움직임은 보았다. 휙 돌아간 고개에 따라 검은 머리칼이 팔락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을 모@#는 당신이 불쌍해요.]그사이 악마가 또 한 번 뇌까렸고, 여인의 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일반적인 태양을 보지 못하게 되며 희고 창백해진 그녀의 피부는 불거진 핏줄의 형태를 유독 선명하게 내보인다.
“감히.”
그리고 끝내 그녀의 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나를.”
휘익. 앞으로 나오는 걸음에 맞춰 뻗어지는 손이 향하는 곳은 명백하다.
“동정해?”
콱! 그녀의 손이 로브의 멱 부분을 움켜쥐었다. 이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차마 인간을 건드리지 못하겠던 것인지 상대가 몸을 살풋 움츠렸다.
“너 따위가 감히 나를!”
그동안 인간은 그 스스로의 감정을 여실히 토해 냈다. 아스모데우스 앞에서는 차마 토해 내지 못했던 격노의 불길이 마치 언어가 되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눈동자가 검게 타올랐다.
“날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오직 나밖에는!”
[@#@$%#@#$.]“다물어. 네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으니.”
아주 검게, 더없이 검게.
“대신 기억해.”
세상의 모퉁이가 일그러진다.
“내가 사랑을 입에 담을 때.”
아니, 희미해지는 것인가? 악마의 멱을 잡고 선 그녀의 뒤로 새로운 이미지가 환영처럼 겹쳐진다.
“너희는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
[친애하는 그대, 그대가 이겼구려.]그건 광대의 목을 쥔 그녀였다.
[그대는 기어이 군단장에게서 마음을 지켜 냈고, 도리어 군단장을 완벽히 길들여 냈소.]아니다. 아스모데우스 목을 잡고 선 인간이다.
[거래는 지켜져야 하는 법. 자, 가져가시오. 나의 모든 것을.]몇 번이고 아스모데우스를 죽이고자 시도했고, 매번 실패함으로써 그 상황을 하나의 ‘약속’으로 만든 이가 또 한 번 칼을 들었다.
[그리고 복수하시오. 친애하는 이여, 꼭 복수하시오.]광대의 가슴이.
혹은 아스모데우스의 목이.
[내 뼈와 살 위에서, 반드시 해내시오.]그 칼날에 갈라지고 베이며 피를 울컥 토해 냈다.
[오직 그것만이, 과거를 잊고 이름을 버리고 자신을 잃을 그대의 영원한 위안이 될지니.]한 손엔 피 묻은 칼을, 한 손엔 심장을 치켜든 인간의 웃음소리가 성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