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그러니 (2)
“아니, 아니, 아니 진짜요?!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요?!”
“어어. 혹시 문제 있어?”
“아니,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아, 아닌가? 문제인 건가? 아무튼 댁이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하, 참. 나한테 그림자를 붙여 놨던, 허, 참.”
그치,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래도 실시간 좌표 추적을 하고 있는 건 조금 큰 문제지.
나는 왔다 갔다 하는 데스브링거의 사고를 이해하며 공연히 고개를 주억였다. 데스브링거는 머리를 부여잡느라 그런 내 맞장구조차 못 알아채는 중이다.
“상대가 다른 도시에 있는데도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라… 대단한데.”
다만 옆에서 얌전히 듣고 있던 크러셔는 나와 의견이, 혹은 보는 관점이 좀 달랐다. “사냥할 때 편하겠어.” 그녀의 직업을 고려하면 썩 이상할 건 없는 발언이었으나, 등골이 다소 선득해졌다.
저 사냥은 과연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는 사냥일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의문이었다.
“끄응.”
“그래서… 편지는 안 읽을 건가?”
“아, 읽어야죠.”
아무튼 데스브링거는 놀란 나머지 뒤로 미뤄 두었던 편지를 건드렸다. 제법 비싸 보이는 봉투임에도 거침없는 손길이 입구를 우악스럽게 찢어발겼다.
“그렇게 막 찢어도 되는 건가……?”
“어차피 태울 건데요, 뭐.”
그, 저쪽은 널 걱정해서 찾아오기까지 하는데─수단이 무척이나 불건전하긴 하지만─그래도 되는 거야?
내가 잠시 혼란해하는 사이 데스브링거가 편지글을 읽어 나갔다. 꼬깃꼬깃 접혀 있던 종이는 그리 크지 않아, 살짝씩 움직이던 시선이 곧 맨 하단에 다다랐다.
“참 나.”
피식. 마지막 줄을 읽은 데스브링거의 입에서 실소가 튀어나왔다. 반쯤은, 무의식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이었다.
“별 내용 아니었네요.”
“그래?”
“예. 그냥 뭐… 안부 인사였습니다요.”
“그런가.”
바람손에게 호위 의뢰를 명목으로 접근하고, 이야기를 듣겠다며 추가 비용을 지불했으며, 이번엔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려 했던 사람인데 고작 안부 인사만 편지에 적었다고?
나는 그 사실에 약간의 의문과 데브가 그랬다면 그런 거겠지 하는 납득을 동시에 느꼈다. 수긍하는 순간 스카일라에게 경탄의 감정을 느낀 건 덤이었다. 나 같았으면 안부 인사도 한 장이 아니라 열댓 장을 구구절절 적었을 것 같은데.
“나리, 괜찮으시면 이거 태워 주실 수 있는지…….”
“물론이다.”
나는 실수로라도 편지 안쪽을 보지 않도록 유의하며 손에 불을 일으켰다. 편지가 순식간에 타들어 가며 그것의 존재를 지웠다.
“어제부터 궁금했던 건데.”
한데 이 현상을 물끄러미 보던 크러셔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약간의 굽어짐이 있긴 하나, 그래도 일직선에 가까운 뿔이 고갯짓을 따라 휘엉청 움직였다.
“마법사냐, 검사냐?”
“…내게 하는 질문인가?”
“그래.”
라텔이 망토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걸 못 봤을 리 없는데 왜 그런 질문을─ 아, 혹시 불 일으키는 것 때문에?
“검사다.”
“그럼 그건 어떤 요령으로 하는 거지?”
역시 이게 원인인갑다. 나는 손끝에 불꽃을 피우며 고개를 까닥였다. 이거 맞지?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마지막 확인이었다.
“그래, 그거.”
“요령이라 하면… 마력을 여러 개로 작게 응집시킨 후, 서로 충돌시켜서 불티를 일으킨다는 느낌이 되겠군.”
“…응집?”
“그래.”
나는 왼손을 앞으로 뻗어 낸 후 눈에 보이도록 마력을 뭉쳤다. 적당히 눈에 보일 만큼 응축된 마력이 두 덩어리 생겨나며 서로 부딪쳤다. 불티가 타악 튀었다.
“이것을 반복적으로 하면 이렇게… 불이 커지는 거다.”
하나 불티란 것은 보통 순식간에 잦아드는 법. 나는 두 개의 마력 뭉치를 계속해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충돌시켰다. 계속해서 인 불씨가 끝내는 큼지막한 화염으로 승화되었다.
“참고로 크게 둘로 뭉치는 것보단 여러 개로 잘게 쪼개어서 부딪치는 것이 같은 양 대비 더 높은 효율을─”
“미친놈인가?”
“…물음에 답하였을 뿐인데 그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아니, 마력을 눈에 보일 만큼 응집시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잖아. 마법사 아니라며.”
크러셔가 머리통 하나의 키 차이를 뛰어넘은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머리에 피가 쏠려서인가, 그녀의 눈은 더욱 새빨개진 것만 같다.
“쉬운 설명을 위해 눈에 보일 만한 크기로 뭉쳤을 뿐, 평소엔 입자를 그리 키우지 않는다.”
“…그게 더 징그러운데. 마력을 전부 제어하고 있단 소리야?”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들은?”
“미친놈.”
무표정한 얼굴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뉘앙스로 나를 지목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마법사가 아닌 이들은 마력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부터가 어렵다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체내의 것은 조작할 수 있지 않아? 그리고 조작하려면 인지가 기본으로 되어야 하고? 근데 그게 아닌 거야?
“됐다, 이 정도 수준이니까 대악마를 잡느니 마왕을 잡겠느니 할 수 있는 거겠지.”
저기요, 저는 납득 이전에 욕만 먹었는데요. 그 욕이 진짜 힐난하기 위한 게 아니라 경탄에 가까운 발언이었단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서, 다른 둘은?”
“지금 나오고 있다.”
나는 살짝 비켜 서듯 뒤로 반보 물러났다. 그러자 뒤늦게 합류하는 이들의 모습이 비쳤다.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느릿느릿 나온 이들이다.
“수가 많은데.”
“모두가 가진 않을 거다.”
내 말에 크러셔가 알아들었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그럼 저 백금발이랑… 푸르딩딩한 놈이 가는 건가?”
“그래.”
어떻게, 바로 맞히네.
나는 아크메이지와 베르세르크, 계명, 다니엘 중에서 정답을 바로 골라 내는 이를 보며 조금 감탄했다. 데스브링거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구나. 그런 어색한 헛웃음은 덤이었다.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참고로 계명… 푸른 쪽은 마법에 대한 조예가 깊으며 직접 다룰 수 있는 마법도 있다. 반면 베르세르크는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을 만큼 무예가 고강하지.”
“말은 누구나 번지르르하게 할 수 있어. 뭐, 저쪽은 그래도 말만큼은 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크러셔가 조금 고민하더니 앞으로 나섰다.
“거기, 한판 붙어 볼까?”
“음?”
“…상스럽다.”
“용사님의 말은 대충 들었다. 댁들이 맡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도 알 것 같고.”
어, 이쪽 대화에 집중하는 것 같았는데 사실 저쪽 대화도 듣고 있었나. 나는 양쪽 대화를 한 번에 다 소화할 수 있는 그녀의 멀티태스킹 능력에 찬사를 보내며 조금 더 물러섰다.
데스브링거가 내 옆에 은근히 붙었다.
“강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요……. 그냥 냅다 싸우는 겁니까요?”
“실력을 확인하는 데에 그만한 것도 없으니.”
나는 질린 기색이 가득한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물론, 나도 저들의 호전성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대련에서 재미를 못 느끼는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다짜고짜 대련은 좀.
“그러니 한판 붙어 보자고. 어차피 그쪽도 우리 실력을 체크해야 하잖아?”
그동안 크러셔는 자신의 오른 손바닥과 왼 주먹을 팡팡 부딪치며 호전성을 드러냈다.
멈춰 선 채로 팔짱을 끼고 있던 베르세르크의 두 팔이 슬 풀렸다.
“싸움은 거절하지 않는다.”
2m가 넘는 베르세르크와 1.5m를 간신히 넘길까 말까 한 크러셔의 싸움이라. 실력은 고사하더라도 체급 차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상념을 잠깐 떠올렸다. 뭐, 알아서 하겠지. 내 알 바는 아닌 듯했다.
“그럼 저는 이쪽 분이랑 한판 붙으면 되는 걸까요?”
와중에 호크아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계명을 가리켰다. 지목당한 계명의 이마가 잠깐 찌푸려졌다가 다시 풀렸다.
“어,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말고. 우리 역시, 댁들에게 목숨을 걸어도 되는 건지, 알고 싶은 상황이라고.”
망설인 인퀴지터가 중재에 가까운 물음을 던졌으나 크러셔는 호쾌히 거절했다. 그녀의 시선은 베르세르크에게 꽂히다시피 한 상황이었는데, 그 꼴을 보고 있자면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인 건지, 단순히 싸우고 싶어서인 건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하면 두 분은…….”
“이미 말했을 텐데. 싸움은 거절하지 않는다.”
“경솔한 자는 혐오하나, 필요하다면 상대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아무튼 싸움 신청이 들어온 두 사람마저 동의했다. 우리는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전사들이라 그런지 시원시원하군.”
그 과정에서 심판 자격으로 서게 된 아크메이지가 한마디 했다. 다만 ‘시원시원하다’라는 그녀의 말이 내 귀에는 왜 ‘무식하다’로 치환되어 들리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뜨끔거리는 속을 다독이며 그녀의 옆에 멀거니 섰다.
“수련장 넓네요.”
“마법을 수련하기 위해 쓰이는 공간이라 하니, 그럴 수밖에.”
“이야, 운 좋게 좋은 구경 하게 됐잖아.
참고로 본래라면 저 둘을 비롯해 바람손은 이쪽까지 출입을 못 하지만… 마역에 입장할 자격을 시험한다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허가가 떨어졌다.
데스브링거와 바람손, 간식 가져올 때 따라온 이사른콜까지 세 사람이 작정하고 자리를 펴며 관람 준비를 했다. 다니엘은 그것이 조금 불편한 눈치지만, 결국 이사른콜의 초롱초롱 눈에 져 주고 말았다.
“그러면 처음 붙는 건…….”
“몸풀기도 끝났으니 우리 둘이 먼저 가지.”
반면, 우리와 반대쪽에 서 있던 싸움꾼들은 서로의 순번을 정했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선언 한 번으로 불만 없이 순서를 정한 이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베르세르크와 크러셔였다.
“규칙은?”
“일격필살만 제하지.”
베르세르크가 아크메이지 옆에 우두커니 있던 인퀴지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쪽이 있는 한, 어떤 상처도 치료가 가능하니.”
“그거 편하네. 좋아. 그렇게 하자고.”
둘 다 진짜 본격적으로 싸울 셈인가. 나는 살초 제외 모든 걸 허락하는 규칙에 혀를 내둘렀다.
툭, 툭. 복싱 선수가 스텝을 밟듯 몸을 통통 띄우며 열기를 끌어올린 이가 주먹을 슬그머니 앞으로 뻗었다. 팔꿈치가 살짝 굽어진 채로 앞을 향한 주먹은 언제든지 상대를 노릴 것만 같다.
“내가 짊어진 명예는 피로써 용맹을 증명하는 자, 베르세르크.”
“음?”
“그리고 모든 것을 무기 삼을 수 있는 자, 웨폰마스터.”
다만 내 귀에 한번 들었던 소개와 듣지 못했던 소개말이 흘러 들어왔을 때, 크러셔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거창한 소개말은 딱히 없는데…….”
그녀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넘기다가 한숨과 함께 말을 뱉었다.
“주먹으로 악마의 늑골을 부수고, 다리로 그 두개골을 박살 낸다 하여 분쇄자, 일명 크러셔다. 잘 부탁하지.”
“이쪽도.”
그리고 그들의 인사가 끝나는 순간, 눈치를 보던 아크메이지님이 호각을 힘껏 불었다. 삐익! 다져진 땅 위에 있던 두 사람의 인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야, 사라졌─”
“격돌한다!”
콰앙!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련장 한가운데서 폭음과 먼지구름이 일었다. 충돌이 얼마나 강했는지 뒤늦게 변방에 있던 우리의 머리카락이 살랑 뒤로 움직였다.
“뭐, 뭡니까요?”
“둘이 박투를 벌이는군.”
게임 시스템으로 비유한다면, 둘 다 힘민체만 찍는 근접 딜러 타입이라 이렇게 될 건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더 역동적이고 격정적이다.
나는 먼지구름 속에서 오가는 손과 발의 격투를 보며 괄목했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기교들이 한가득이어도 너무 한가득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적용할 수는 없더라도 머릿속에 넣어 두면 좋을 만한 게 많다. 내 정신이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좀, 하는데!”
“그쪽, 이야말로.”
크러셔는 자신의 체격이 한참 밀린다는 것을 이용해 사각을 노리고, 베르세르크는 그런 의도에 말리지 않도록 유의하며 몸 자체를 무기 삼아 밀어붙인다.
이를테면 크러셔는 기동성의 극한을 찍었고 베르세르크는 묵직한 한 방을 기다리는 쪽인 셈이었다.
때문에 그 과정에서 섞는 손속은 복싱이나 격투기, 태권도 같은 무예와 비슷하면서도 살짝씩 달랐다. 기술 자체는 비슷한 결일 수 있으나 훨씬 간결해지고 생략이 많아졌다.
예컨대, 지금 크러셔가 베르세르크의 허벅지를 밟고 뛰어오르며 그녀의 턱을 무릎으로 후려 갈기려다, 손이 다가오는 걸 발견하자마자 베르세르크의 어깨를 손으로 딛고 널뛰기를 하는 걸로 자세를 바꾼 것처럼.
타, 타닥.
다만 그렇게 공중에 뜬 상태에서도 그들은 손과 발을 나누었다. 일격에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는 제한이 있어서인가, 상대를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기술보다는 잡으려 드는 기술이 좀 더 많았다. 뭐, 그마저도 서로 쳐 내고 비껴 내는 바람에 별 의미는 없었지만.
탁.
각설하고, 공중에 떴던 크러셔의 몸이 땅을 딛고 다시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베르세르크의 손이 크러셔의 것과 얽혔다.
휘익!
다만 크러셔는 그것을 도리어 이용했다. 손이 얽히자마자 자신 있는 쪽으로 베르세르크의 팔을 잡아당겨 그 균형을 무너트린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할 수 있던 것엔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 번째로 베르세르크와 크러셔의 근력이 비등비등하다는 것. 두 번째는 베르세르크가 작은 크러셔를 붙잡기 위해 앞으로 몸을 구부정하게 숙인 상태였다는 것이다.
“……!”
그 결과 베르세르크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강제로 발 하나를 앞으로 뻗게 된 순간.
퍼억!
안으로 파고든 크러셔의 주먹이 베르세르크의 명치를 강하게 후려쳤다. 퍼엉! 허공에 파동이 새겨질 정도의 강렬한 타격. 베르세르크의 몸이 살짝 접히며 뒤로 날아갔다. 도중에 그녀가 발을 땅에 박아 넣고 버티긴 했으나, 최초의 유효 타임은 확실했다.
“확실히, 맨손은 취향이 아니야.”
하나 한 대 맞았다고 패배를 인정하면 그게 베르세르크인가. 그녀의 손이 허리춤에서 달랑거리던 도끼에 닿았다.
탕!
순식간에 다가온 크러셔의 발차기를 겹친 두 팔로 막아 낸 이가, 뽑아 든 도끼를 휘둘렀다. 휘익. 휘둘리는 도끼를 피해 크러셔의 몸이 공중제비를 돌며 뒤로 물러났다.
“이제 본편인가?”
“글쎄. 직접 확인해 보시지?”
찰나의 호흡. 그것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의 몸이 다시 맞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