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21)
421화 그러니 (4)
“검을 쓰는 사람들은 말이에요.”
호크아이는 아까와 전혀 다른 표정으로 활대를 움켜쥐었다. 칼날과 맞닿은 충격으로 반대쪽으로 휘어진 활대가 그의 손에 잡히자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섰다.
깡!
양팔로 활대의 양 끝을 붙잡은 상태에서 다시 한번 칼을 막는다. 호크아이의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활잡이들이 근접전을 못할 거라 생각한단 말이죠.”
차앙!
그가 활대를 잡았던 손 하나를 놓는 순간, 엄청난 기세로 튕겨져 나간 활대가 검을 밀어냈다.
그것은 검으로 쳐 내는 것보다 더한 강력을 가지고 있어, 계명은 검술의 기본인 흘려 내기도 쉽사리 시도하지 못했다. 그녀의 팔이 폭발의 충격에 휩쓸린 양 뒤로 밀려났다.
“허튼 수작을─”
물론 그녀는 베테랑이었고 배신자였을지언정 한 도시의 수석기사였던 사람이었다. 당황 한 점 머금지 않은 얼굴이 빠르게 자세를 고쳐 내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런 상황일 경우, 검사와 검사의 싸움에선 보통 공격기가 들어왔으니 응당 해야 할 판단이었다.
“그리고 활잡이가 싸우는 방법도 몰라.”
그러나 그녀가 상대하는 것은 검사가 아니다.
호크아이는 손안에서 원 상태로 굽어진 활대를 굴려, 검을 정수에서 역수로 잡듯 잡았다. 그러곤 뒤에서 앞으로 자신의 다리 사이에 활대를 끼워 넣었다.
그에 맞춰 다른 쪽 팔은 다리 사이에서 튀어나온 활대의 끝부분을 잡고 허벅지를 지렛대 삼아 굽은 쪽 반대 방향으로 휘게 만들었다. 활에 시위를 거는 가장 정석적인 자세였다.
사악.
줄은 언제 걸었는지 모르겠다. 뒤로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잡고 있던 손이 앞쪽으로 건너와 시위를 걸었다. 그의 다리 사이엔 시위가 걸린 활이 끼게 되었다.
그 모든 게 계명이 버릇처럼 방어 자세를 취했던 1초간에 이뤄졌다.
“…….”
눈살을 가볍게 찌푸린 계명이 다급히 방어 자세를 풀고 중단세로 접근해 왔다. 하나 그 과정에서 호크아이는 다리에 걸려 있던 활을 꺼냈고, 또다시 활대로 계명의 검을 쳐 냈다. 그의 다른 손이 등 뒤에 걸려 있던 화살을 하나 꺼냈다.
“거리를 주면 죽어요.”
다만 거기서 나는 약간 질린 감정을 느꼈다. 아무렴, 계명은 결코 근력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력으로 강화하지 않더라도 실험당한 그게 있어서인지, 아니면 천부적으로 그런 것인지. 베르세르크와의 팔씨름에서도 몇 초간은 버텨 낼 정도의 힘은 가진 것이다.
한데 그런 이의 공격을 활대 쥔 손 하나로 쳐 내? 저건 기교도 뭣도 아니다. 근력으로 완전히 압살한 거지.
‘…현실을 반영하면 검사보다 궁사가 힘 스탯 높아야 한다더니, 그거 진짜였구나.’
「네?」
‘아냐. 활 쏘는 사람들 진짜 힘 세다고.’
계명이 어지간하면 부드럽게 흘려 내며 다시 공격 자세로 돌아왔을 텐데, 그게 아예 안 될 정도로 강하게 쳐 내 버린다. 단순히 팔심만 따지면 호크아이가 베르세르크보다 센 거 아닌가 싶다.
핑!
와중에 본인은 순식간에 활대를 고쳐 잡고 절피에 화살을 건 채 시위를 당겨 냈다.
도시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라기에 강할 건 예상했지만, 조준점을 잡고 시위를 당기는 것까지의 간극이 1초도 되지 않는 건 그저 경이로웠다.
뭐, 밥만 먹고 활만 쏘면서 살아온 건가. 날아가는 화살의 궤적이 계명의 볼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걸 보면 영 신빙성 없는 가설은 아닌 듯하다.
저것도 계명이 겨우 피해서 비껴 난 거지, 원래라면 뺨 직격이다.
“뭐, 거리를 안 준다고 해서 안 죽는다곤 안 했어요.”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다만 그쯤 되니 계명도 자존심이 살살 긁힌 모양이었다. 어울려 주기 싫다는 짜증과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 회의감 따위가 살살 물러나고 저 건방을 먼저 고쳐 주겠다는 오묘한 빡침이 갈음하듯 채워졌다.
“좋다. 죽음을 입에 담은 것은 네놈이 먼저이니.”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푸르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번째 주무기인 채찍이 없고, 마법도 동원하지 않는 만큼 완전한 진심은 아니겠으나, 상대를 만만히 보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신 건 분명했다.
그녀의 검이 부드럽게 휘어, 다가오던 화살을 쳐 내었다. 허공에 오로라처럼 남은 청록빛이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으음.”
“나리?”
아, 벌레가 몸 안을 갉아먹던 기억이 잠깐.
나는 더럽기 짝이 없던 식탐전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부드럽게 이어지는 계명의 공격을 보았다. 마음을 가다듬은 것인지 기억에 있던 우아하면서도 강력한 기술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어, 이건 좀 곤란한데요.”
그에 따라 호크아이도 조금 당황하며 살짝 급급해지기 시작했다. 활대에 마력을 담지 않는 한, 마력 담긴 검에 대항했다가는 둘로 잘릴 것이 분명하고 근접전 실력 자체는 계명이 압도적 우위에 선 탓이었다. 기존에 있던 근력 차도 마력이 전부 메꿔 주었고.
즉, 이 시점에서 호크아이가 계명에게 가지던 모든 이점은 삭제되고, 순수한 근접전 실력만이 남게 되었다.
호크아이가 전혀 난처해 보이지 않는 난처함만을 표정에 남긴 채 본인도 마력을 끌어올렸다. 주된 부위는 다리였다.
크러셔에게 전수받은 것인지 꽤 그럴싸한 형태로 발차기를 날리며 공격 몇 개를 무효화한 이가 순간 뒤로 풀쩍 뛰어올랐다. 계명이 바로 따라붙었으나 호크아이는 자신의 몸이 공중에 뜬 것도 모자라 공중제비를 돌고 있는 상황인데도 활시위를 당겼다.
채챙!
명사수는 명사수라는 걸까. 정확히 계명에게 날아간 화살이 그녀의 걸음을 지연시켰다. 몇 초 수준이었으나 그것으로도 족했다. 호크아이는 백스텝을 밟으며 화살을 쏘아 냈다.
중간중간에는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기도 했는데 무엇을 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들은 하늘로 올라가기만 할 뿐,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와, 활로 저렇게까지 하는 게 되는군요.”
“부족의 사냥꾼들도 저렇게까지 해내는 건 본 적 없는데… 저 아저씨 엄청 센가 봐요.”
“기묘한 놈이군.”
계명이 나름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결판이 나지 않아서인가. 사람들이 제법 신기한 눈길로 호크아이를 보았다. 최소한 실력 부족으로 왜 데려가냐 소리는 안 나올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화살 위로 날리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혹 아크메이지님께선 아십니까?”
“글쎄요, 인퀴지터. 그것은 저도 잘…….”
한데 그 과정에서 의도를 알 수 없는 행위가 종종 목격되어서인가. 아크메이지와 인퀴지터가 해당 행위의 진의를 찾기 위해 수다를 떨었다. 그걸 지켜보던 크러셔는 심드렁한 얼굴로 자신의 건틀릿을 풀어 낼 따름이다.
“뭐긴 뭐야. 판 짜기지.”
달칵. 그녀의 건틀릿이 금속음과 함께 널널이 풀려난 순간, 하늘에서 화살이 빗발쳤다. 호크아이가 아까 위로 쏘았던 그것들이었다.
“……!”
계명도 그 의도를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화살들을 손쉽게 피했다. 하나 쏘아 낸 화살의 수가 제법 많고 그 범위가 교묘하게 한 걸음마다 닿아 있어, 결국 하나씩 쳐 내야 할 게 나왔다.
파바박. 그녀에게 닿지 못한 화살들이 바닥에 묘비처럼 박혔다.
채앵!
위에서 떨어지는 것과 앞에서 쏘아지는 것. 시간차로 절묘하게 접어드는 화살을 기이한 움직임으로 어떻게든 꺾어 낸 이가 눈가를 설핏 좁혔다.
화살통에서 화살을 여럿 꺼낸 후, 하나씩 빠르게 걸어 쏘아 내는 속사. 그것이 그 뒤로도 끝없이 쏘아진 까닭이다.
팅, 팅, 티팅!
결국 접근을 포기한 계명이 제자리에서 화살 수십 발을 쳐 내는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계명 경의 검술이 뛰어남은 알았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고요. 신기에 달한 것만 같습니다.”
“근데요, 두꺼운 가죽을 가진 악마가 나타났을 때 저게 뭐 박히긴 합니까요? 저는 안 박히던데.”
“뭐라는 거야. 이건 대련이니까 일반 화살만 쓰는 거고, 원래는 마법 화살 써.”
“…돈 엄청 깨지지 않습니까요?”
“쟤는 돈 흥청망청 쓰는 타입 아니라서 괜찮아. 그리고 의외로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아.”
하나 아무리 용량이 큰 화살통을 써도 이렇게까지 계속 쏴 대면 바닥을 보이기 마련이라. 핑! 마지막 화살이 쏘아졌다.
“정말입니까?”
“그래.”
“그게, 대체 어떤 원리로 가능한 건지…….”
“원리라고 해도 거창한 건 없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호크아이는 제 화살통에 든 화살의 갯수를 전부 아는 모양이었다. 그는 쓸데없는 헛손질 대신 다른 곳으로 손을 뻗었다.
“잘 만든 화살은 재활용이 가능하잖아? 딱 그거야.”
바닥에 묘비처럼 박혀 있던 화살 하나가 뽑혀 들며 다시 시위에 걸렸다. 화살통이 비며 끝날 줄만 알았던 대전의 연장이었다.
* * *
“으아아, 결국 져 버렸네요.”
한참이나 이어질 것만 같던 대결은 결국 호크아이의 패배로 끝났다.
화살을 아무리 재활용해도 좁혀지는 거리가 있고, 근접전을 막강한 근력으로 커버해도 결국 기교가 압도하는 부분이 있었던 까닭이다.
하여 마지막에 가선 계명의 칼날이 호크아이의 목덜미에 겨눠졌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호크아이는 두 손을 든 채 패배를 인정했다.
호크아이 특유의 해맑은 표정이 돌아왔다.
“크러셔를 제외하면 대련에서 져 본 적이 없는데!”
“그러게 내가 격투기 좀 배워 두랬지?”
“지금까진 이 정도로도 충분했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줄 알았지!”
“바보야, 충분한 게 어디 있어?”
“너도 내가 활 배우라고 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으면서!”
“내가 활을 왜 쏘냐? 다가가서 퍽 치면 되는데.”
“주먹으론 멀리 있는 걸 못 죽이잖아!”
물론 크러셔가 시비를 걸자마자 그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정말 친해 보인다.
“이번엔 싸움이 길어진 것에 비해 두 분 다 상처가 적네요.”
각설하고 인퀴지터가 돌아온 그들을 자리에 앉힌 후 치료를 시작했다. 금빛이 은은하게 퍼질 때마다 그들의 몸에 새겨진 잔상처들이 말끔하게 지워졌다.
“전투 방식의 차이 때문일 거다.”
“확실히 저쪽은 간 보지 않고 화끈하게 내지르긴 했죠. 덕분에 상처가 축제를 벌였지만.”
“하, 다치는 걸 겁내면 어떻게 싸우냐?”
“맞는 말이다. 피를 흘릴 걸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흘린 피 이상으로 흘리게 만들 각오로 임하는 게 진짜 싸움인 법이지.”
데스브링거의 말에 크러셔와 베르세르크가 나란히 답했다. 그래 놓고선 서로 잘 맞는다 생각했는지 두 사람은 정면을 본 채로 주먹 하나만을 옆으로 뻗어 서로의 주먹을 콩 닿게 했다.
베르세르크에게 매미처럼 매달려 있던 소녀도 헛 하며 그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크러셔의 시선이 소녀에게 물끄러미 향했다.
“싸움이란 자고로 안 다치는 걸 목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 흉터란 부족함의 증거. 그것을 자랑스러이 여기는가. 어리석기는.”
“전… 치료하는 입장이라서…….”
반대로 아크메이지와 계명, 다니엘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말은 안 했지만 데스브링거도 이쪽 계파일 것이다. 여기 없는 마이스터는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며 안 다치는 게 짱이지 할 거고.
“계명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부족하기에… 제가 다치는 걸 감수하고 적을 무찌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인퀴지터까지 마지막으로 제 의견을 밝혔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내게로 모였다.
“나리는요?”
“…무슨 의도의 부름이지?”
“나리는 어느 쪽입니까요?”
아니, 호크아이도 어느 쪽인지 말 안 했는데 대뜸 나한테 묻는 거야? 거기에 양쪽 다 기대하는 눈을 하고 있는 건 또 뭐냐고. 편 가르기라도 하자는 거야?
“나리는 당연히 안 다치는 쪽이죠?”
“그를 오래 봐 왔음에도 모르는 거냐, 사냥꾼아.”
어이가 없네. 나는 데스브링거와 베르세르크의 말을 들으며 짝다리를 짚었다.
“안 다칠 수 있다면 안 다치는 것이 최선이나, 다칠 수밖에 없다면 적의 사살을 우선하는 게 낫지 않겠나.”
“제 의견이 바로 그거예요! 하여간 크러셔는 너무 호전적이라니까요.”
“너는 뒤에서 화살만 쏘니까 그런 거겠지. 전열은 상처가 일상이라고.”
“뻥치지 마! 크러셔는 안 맞을 수 있는 거 일부로 맞고 역으로 때리는 걸 더 좋아하잖아!”
호크아이의 끝말에 크러셔는 눈을 데굴 굴리곤 답하지 않았다. 그게 답이었다.
“정말, 불리할 때만 침묵한다니까.”
“뭐,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침묵보다 더 나은 것이어야만 한다고 하지 않나.”
“오, 뭔가 멋있는 말.”
“오오오.”
“그래서, 합류에 대해선 결정했나?”
뭐가 오오오야. 얘네들 가만 보면 나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런 상념을 주워 삼키며 인퀴지터에게 눈짓을 주었다. 너 또한 둘의 실력을 되짚어 보고 그에 대한 결정을 내리라는 재촉의 눈짓이었다.
인퀴지터가 아차 하는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뭐, 이쪽도.”
“저도 결정했어요!”
저들의 합류가 결정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