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24)
424화 그러니 (7)
“당장 만들러 가야겠어.”
“천박한 자와 협력하는 것은 불쾌하나… 이번만은 협력하지.”
“저도, 저도 돕겠습니다.”
뭐,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되는 것 같다. 나는 달아오른 세 사람의 반응을 보며 떨떠름하게 펜을 멈췄다.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다행이군.”
근데 너희 뭐냐. 진짜 이런 발상은 안 해 본 거냐?
“오만은 마기의 부족에 허덕여 본 적이 없다. 하니 외부로부터 힘을 가져온다는 상상 역시 해 본 적 없지.”
“너는 오만이 아니잖나.”
“…그래. 아니지.”
오만의 성향을 너무 짙게 물려받아서 본인도 생각 못 한 건가.
하긴, 신체를 개조하여 능력치를 올리는 것과 힘을 저장했다가 쓰는 건 분야가 좀 다르지. 전자는 떠올리기 쉬운데 비해 후자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편이고.
“다만, 그대가 모른단 건 오만도 모른단 것이니, 그것 하나는 다행이군.”
“……?”
“그 괴물이 저장해 둔 힘까지 있다면 곤란하지 않겠나. 이것으로 우리가 이점을 하나 더 가져가게 되겠군.”
지금부터 마력 저장을 해 봐야 얼마만큼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예비 마력이다. 신난다.
“아니다, 그러지 말고 너, 괜찮다 싶은 거 다 말해 봐라.”
“뜬금없이?”
“출신이 달라서 그런가, 네 발상이 독특하고 좋단 말이야.”
그렇게 말해 봤자 당장 떠오르는 건 몇 개 없는데…….
나는 마이스터의 닦달에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전쟁에 도움이 될 만한 거라, 전쟁에 도움이 될 만한 거…….
“체력 포션이라거나…….”
“체력 포션?”
“방금 말한 마력 배터리와 비슷한 개념이다. 보통 액체나 단환 형태로 만들어서 섭취하는데… 상처를 급속도로 낫게 하는 개념으로 보통 나오지. 비슷한 물건으론 마력 포션, 스태미나 포션 등이 있고.”
“…‘개념’으로 나오지?”
“진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공상 소설에서 언급된 거다.”
“아니, 내가 아이디어를 말하랬지 공상을 말하라고 했냐?”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군. 대뜸 제트기 같은 걸 언급해 봤자 못 만들 거 아닌가?”
“그건 또 뭔데.”
음속으로 날아다니는 비행기다, 짜샤. 나는 그리 대답하려다 말고 티마뉴크의 손에 어깨를 붙잡혔다. 그의 눈에는 딱히 반사판 같은 게 없음에도 어째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다.
“그 개념,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트기를 말하는 건가?”
“아니, 포션 말입니다.”
“개념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다다만…….”
소설, 만화마다 효능이나 제조법, 형태가 다 달라서 뭐라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려운데.
“잘하면 제작이 가능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시간의 물질화라. 가능성이 없진 않군.”
“둘 다 뭔 소릴… 아.”
하나 티마뉴크를 시작으로 세 사람이 머리를 모아 의견을 나누었다. 어라, 아까도 이랬던 것 같은데? 어쩐지 데자뷔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야, 그 공상들 더 말해 봐.”
“이랬다 저랬다 난리군…….”
나 진짜 공부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차분히 상념을 이어 갔다.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거, 될 만한 거.
“예전에 말했던 무전기, 기억하나? 그게 있었으면 좋겠군. 실시간으로 연락하면서 상황을 전달하면 작전 수행이 훨 편해질 거다.”
“좋아, 그리고?”
“폭탄 같은 것도 있으면 편할 것이다. 저쪽도 저주를 항아리에 담아 던지는데 우리라고 못 할 건 없잖나.”
“그건 이미 있어. 그냥 우리가 안 쓰는 거지.”
“아니, 기존에 쓰이는 것들을 개조하여 화력을 높이면 제법 쓸 만할 것이다. 체급이 거대하여 던지는 족족 맞을 카인을 생각하면 더욱.”
그 외에 또 뭐가 있으려나. 얘네 말하는 거 보면 현실에 꼭 있는 게 아니더라도 도움이 꽤 되는 것 같은데… 게임이나 소설에서 뭐 쓸 만한 거 나왔던가?
“먹으면 버프가 걸리는 음식 또는 포션이라거나…….”
“가능성은 둘째 치더라도 꽤 신박한 의견인데.”
“마법이 적혀 있는 스크롤이라거나?”
“그건 또 뭐야.”
“찢으면 마법이 발동된다는 설정의 두루마리다.”
“제작이 어렵지는 않겠군요. 쓸모 있는 수준의 마법을 휴대 가능한 크기까지 압축하는 게 문제지만.”
아, 그러고 보니 항상 물어본다 물어본다 해 놓고 까먹은 것도 있었네.
“이건 아이디어는 아니고, 단순한 의문이다만.”
“뭔데?”
“신성력을 뭉쳐서 터트리는… 그런 건 안 되나?”
오만의 궁전이면 마기의 집합체쯤 될 거잖아. 거기다 신성력 폭탄 같은 거 던지면 꽤 재밌어지지 않을까? 아, 이미 성수가 그런 역할을 하던가?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군요. 성수를 베이스로 밀도만 높이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마력 뭉텅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요.”
“악질적이군.”
“너 되게 터트리는 거 좋아한다?”
내 질문에 세 사람은 각자의 반응을 보였다. 근데 마지막, 그거 오해야. 난 폭발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닌자가 아니라고. 단지 화력 하면 떠오르는 게 폭발이니까 그쪽으로 생각이 먼저 갈 뿐인 거라고.
“일시적 강화도 괜찮은 것 같다. 마법적인 강화가 아니라, 각성제 같은 종류의…….”
“수명을 깎아 힘을 내는 식이라면 지금도 몇 개 만들 수 있다. 조합식을 전해 주지.”
“…가능한 깎이는 수명이 적은 것들로 부탁하지.”
근데 수명 깎아서까지 싸워야 하는 게 맞나… 심지어 이거 내 몸도 아닌데.
「저, 전 괜찮아요. 싸움이 수월해질 수만 있다면 수명 다 쓰셔도 돼요.」
차라리 쓰지 말라고 하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라면서 홀랑 써 버리겠는데, 얘는 ‘다 쓰세요 다 쓰세요’ 하고 방석을 깔아 주니까 도리어 더 못 쓰겠단 말이지.
한데 그렇다고 괜히 안 썼다가 패배하기라도 하면 그땐 수명 -n 수준이 아니라 ×0을 해 버린 게 되잖아. 아꼈다 똥 되는 것보단 역시 수명 좀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가장 베스트는 아예 안 쓰는 거겠지만.
“아무튼 이제 그만 가라. 나는 마저 외우는 것을…….”
“형, 얘 잡아?”
“응? 그래요.”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나는 최약체 두 사람이 내 양팔을 붙잡는 걸 보며 얼이 빠졌다.
“아니 시발, 왜 이렇게 무거워.”
“미, 미동도 없…….”
잘 먹고 잘 잤더니 110kg대로 몸무게가 불었다. 심지어 그 몸무게의 대부분은 근육과 뼈 무게였고. 심지어 지금 나는 저들이 뭐 하려는지 몰라 허리와 엉덩이에 힘준 상태다. 그런 나를 나약하기 짝이 없는 마법사가 들 수 있을 리가.
“염병, 사람이 소도 아니고 왜 이렇게 무거워?”
“내가 무거운 게 아니라 네가 약한 것이 아닐지 고민해 봐야지 않겠나?”
“개자식이?”
마이스터가 짜증 서린 얼굴로 내 의자를 퍽 첬다. 보통이라면 넘어갔겠으나, 110kg가 힘주고 버티는 중의 의자는 좀 달랐다. 마이스터가 소리도 못 지른 채 자신의 발을 부여잡았다.
“쌤통이군.”
“썅, 연구실 좀 같이 가면 뭐가 덧나냐?!”
“자는 사람이 있다. 언성 좀 낮추도록.”
다니엘 깨겠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책상의 책자를 집었다.
“별도로 내가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그거 어차피 한 달이나 남았잖아.”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할 수가 없군.”
최소 한 달 이상 남은 걸 누가 모르냐. 근데 나는 너처럼 머리가 그렇게 안 좋다고.
“그리고 우리 없으면 그거 그리는 순서도 모르잖아.”
“…그건 그렇군. 누구 하나 남아 줘야─”
“순서가 적힌 책자를 내일까지 적어 넘겨 주지.”
“…음, 그대도 내가 필요한가?”
“그럴 리가. 다만 그대가 공부할 때마다 내가 붙어야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 판단했을 뿐이다.”
그건 그렇지. 나는 계명의 합리적인 발언에 납득했다. “그럼 오늘은 미뤄도 되겠네.” 그게 마이스터의 억지에 어울려 줄 근거가 되는 건 다소 불쾌했지만 말이다.
“후, 그래. 대체 뭘 노리고 그리 용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시간을 내주겠다.”
“비싸게 굴기는.”
“비싸게 구는 게 아니라, 원래 비싸다.”
“하, 야. 너만 비싼 줄 아냐? 나도─”
탁.
계명이 펜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러자 가장 시끄럽던 이의 입이 음소거 되고, 여전히 내 팔을 잡고 있던─왜 안 놓는 거지?─티마뉴크가 골몰을 그만두었다.
“아! 혹시 연구실에 같이 가 주시는 겁니까?”
“…지금까지 그걸 고민하고 있었나?”
“예. 테이 군이 왜 이러는지 몰라서 잠시 추론을 했습니다.”
그, 예상은 했지만 너무 눈치 없어서 걱정되는 사람은 또 오랜만이네.
나는 내 팔을 잡고 있는지도 인식 못 하는 듯한 티마뉴크로부터 팔을 빼고는 그에게 탁자 위 사탕을 건네주었다.
“주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사탕에 놀랄 법함에도 그는 고개만 한 번 갸웃거릴 뿐, 순순히 사탕을 받아 입에 넣었다. 이 사람은 진짜 마탑 나가면 안 되겠다. 나는 오랜만에 다 큰 어른이 안쓰러워졌다.
“야, 너 한 번만 더 그 마법 쓰면 죽여 버린다.”
“가능의 여부조차 사고하지 않고 장담하는 언행이라. 경이롭다. 그대처럼 어리석은 마법사는 세상에 또 존재하지 않으리.”
“이 새끼가 말 다 했─”
“이번 일은 네 잘못이 맞으니 그만두도록.”
나는 치와와처럼 왁왁 짖어 대는 마이스터를 번쩍 들어 어깨에 걸쳤다. 굳이 행동까지 이어 간 것에는 별 이유 없다. 마이스터라면 진짜 계명에게 덤빌 것 같았고, 계명은 참지 않고 마이스터의 사지 한쪽을 아작 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어딜 가면 되는 거지?”
“제 연구실은 이쪽인데… 테이 군, 공동 연구실에 갈 겁니까?”
“공동 연구실로 가야지. 시간 없으니까 인력이라도 갈아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너 안 내려놔!?”
사람이 침착한 건지 아니면 성격 더러운 건지. 치와와가 지랄하는 동시에 목적지를 지정해 주었다.
“공동 연구실이면 이 방향입니다!”
다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그의 짖음을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개빡친 마이스터가 나를 물기 시작했다. 문명인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야만성이었다.
“이게 사람인지 개인지…….”
“경이로울 정도의 미개함이구나.”
오랜만에, 아니 오랜만은 아니겠지만, 계명과 내 마음이 맞아떨어졌다. 마이스터의 팔뚝 힘줄이 더 도드라졌다.
“야 너─”
“여기입니다!”
마이스터의 노림 대상이 계명에서 나로 돌아온 것 같으니 이만 내려 줄까. 마침 도착도 한 것 같고.
나는 마이스터를 바닥에 내려 둔 후 티마뉴크를 따라 연구실로 들어갔다. “아오!” 마이스터가 콱콱 발소리를 내며 뒤따라왔다.
“넓군…….”
“공동 연구실이니까요.”
개인 연구실은 들어가 봤어도 이런 공용의 공간까지 들어와 본 경험은 없다. 여태껏 가야 할 필요성이나 그러고 싶은 마음 따위를 느껴 보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여기선 보통 뭘 하지?”
“보통은… 팀 단위 연구나 마탑 전체에서 주도하는 메인 연구를 합니다. 혹 지금처럼 사람을 구하고 싶을 때 오기도 하죠. 이곳은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이고… 진행 중인 연구를 본 누군가는 합류 의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느낌인가.”
나는 곳곳에 마련된 테이블과 실험 도구들을 보며 괜히 몸가짐을 다시 했다. 여기서 조금만 힘 조절 잘못하면 뭐가 우수수 박살 날 것 같았던 탓이다.
“그런데, 그냥 빈 테이블을 쓰는 건가?”
“아, 그건 아닙니다. 원래는 사전 신청을 따로 해야 합니다. 특정 실험 기관의 경우는 설치 개수보다 신청자가 더 많은 까닭에…….”
“…반대로 빈 테이블이 많은 건 신청 없이 그냥 쓰는 인간이 많아서야. 신청자가 오거든 비켜 주면 그만이니까.”
“드디어 화가 식었나?”
“그래, 이 자식아.”
나는 부들부들 떠는 마이스터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당연하게도, 마이스터는 더 기분 나빠했다.
“어떻게 가면 갈수록 깝치는 놈들이 느냐?”
“그만큼 친밀해졌단 의미가 아니겠나.”
친밀하지 않으면, 장난이 아니라 무례함이 되니까.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못 하는 짓이지, 이것도.
“그래서 우리가 가야 할 테이블은 어디지?”
“글쎄요. 워낙 연굿거리가 많아서…….”
“칠판으로 가지.”
나는 급격히 조용해진 마이스터를 보고 의문을 표하다가, 불쑥 앞서 나가는 계명에게 주목을 다시 빼앗겼다. 티마뉴크도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쫑쫑 우리 뒤를 따라왔다.
“칠판에서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조제 방식과 필요한 것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남은 것은 그것을 이론화하고 실현성이 있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겠지.”
“벌써 떠올리신 것입니까? 대단하시군요.”
“펜.”
“여기, 이걸로 쓰시면 됩니다. 그리고 공간이 부족하면 패널을 터치하여 위로 올리면 되고, 쓴 것을 가져가고 싶다면 이 버튼을 눌러 종이에 내용을 옮길 수 있습니다.”
오, 이거 꽤 현대 느낌 물씬 나는데. 나는 위로 올리기 시스템 때문인지, 여러 개로 분할되어 있는 칠판을 응시하다가 은근슬쩍 티마뉴크의 옆자리에 섰다. 뽁. 해당 칠판 전용 펜이 특유의 소리와 함께 뚜껑과 분리됐다.
“저도 떠올린 것들을 적어야겠습니다. 기사님도 적으실 겁니까?”
“아니… 그냥 낙서만 좀 하려 한다. 구석을 좀 빌리지.”
“예.”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사람은 참 착해. 나는 손쉽게 칠판의 구석자리를 얻어 낸 후, 거기다가 그림을 끄적였다.
“뭐 그리냐?”
“그냥, 아무거나 그린다.”
나는 내가 잡았던 악마나 짐승들을 데포르메하여 그렸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여 관찰할 시간이 적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어 먹은 것도 맞아서 그렇게 정확하진 못했다.
“아, 그렇지. 계명, 혹시 방해가 안 된다면 질문을 해도 되나?”
“고하라.”
“오만이나 그 권속들의 형태를 말해 줄 수 있나?”
“권속부터 설명하겠다.”
“잠시, 자리를 바꾸지.”
낙서였다면 여기서 해도 됐지만, 오만과 그 권속의 몽타주는 인쇄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
“아앗.”
그 과정에서 내 낙서를 물끄러미 구경하던 티마뉴크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손도 안 움직이고 있던 걸 보면 그림 그리는 게 그쪽 눈에 꽤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마이스터, 넌 일 안 하나?”
“시끄러워, 지금 할 거였으니까.”
아무튼 나는 티마뉴크 기준으론 옆옆, 계명의 기준으론 옆의 자리에 서서 칠판에 펜을 대었다. 마이스터도 내 옆쪽 칠판을 차지했기 때문에 벽면에 있던 10개의 칠판 중 4개는 우리의 차지가 되었다.
지금 칠판 쓰는 사람이 없어서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