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26)
426화 그러니 (9)
베르세르크는 아크메이지가 옛 인연과 대화하건 말건 자신의 기준으로 뱅글뱅글 도는 소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북쪽에 있었을 때만 해도 어엿한 노르다인으로서 한 사람분의 일을 하던 소녀는 어느샌가 어리광 부리는 아이가 다 되었다. 퇴행이나 퇴화, 그렇게 일컬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됐단 소리다.
“대전사, 이것 보세요! 살아서 움직이는 벌레가 있어요!”
“그래.”
하지만 이걸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아이가 이렇게 풀어질 때까지 어르고 달랜 모험가가 웃기고 신기할 뿐.
“이건 무슨 맛일까요?”
“글쎄, 바삭바삭하지 않겠나.”
“저기, 보통은 거기서 맛을 논할 게 아니라 먹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요……?”
“독도 아닌데 뭐가 문제지?”
설사 독을 품고 있대도, 그녀의 지식에 없는 걸 보면 그리 신경 써야 할 생물이 아님은 분명하다. 고로 먹어도 죽지 않는다.
“노르다인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노르다인을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아무튼 그녀는 그런 논리하에 팔랑팔랑 돌아다니는 소녀를 방치했다. 모든 게 끝나고 남쪽에 갈 수 있게 된다면 나비도 먹으려 들려나. 그건 맛없는데. 그쯤 되어 베르세르크의 머릿속에 잔재하는 상념은 고작 그 정도밖에 없다.
“이쪽 일행답게 화끈한 답변이구만. 하긴, 저 시기 아이들은 뭘 먹어도 다 소화하긴 해.”
그때, 데스브링거와 그녀의 대담에 스스로를 바람손이라 소개했던 사내가 깔깔 웃었다.
“바다풀도 먹는데 딱정벌레라고 못 먹겠어?”
데스브링거만치 넉살이 제법이다 싶은 사내였다.
“바다풀이라. 맛있나?”
“질기고 미끈미끈한 것만 빼면 짭조름하니 꽤 먹을 만해.”
뭔들 굶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남자는 그리 말했고 베르세르크는 동의했다. 굶는 것에 비하면 맛에 대한 호불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목숨 앞에 취향은 그 어떠한 의미도 없으므로.
“어?”
다만 팔랑팔랑 거리를 쏘다니던 소녀가 그들로부터 좀 멀어졌다 싶을 즈음, 교차로에 선 소녀가 한쪽을 가리켰다. 탁, 탁, 탁. 예민한 그녀의 귀에 맹렬한 발소리 여럿이 잡히기 시작했다.
“호크아이.”
“들었어.”
그것을 눈치챈 건 비단 베르세르크뿐만이 아니었다. 실실거리며 대마법사에게 영업하던 창잡이와 그 부하들 중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아따, 축제라도 열리는감.”
“보스…….”
상황을 눈치챈 자에 한해 그들의 손이 각자의 무기를 움켜쥔 그 순간, 한쪽을 가리키던 소녀가 말했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어요.”
“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신체에 치중된 능력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유일하게 분간하지 못한 인퀴지터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소녀의 어깨가 으쓱였다.
“몰라요. 다들 머리가 돈 것 같은데요? 꼭 곰에게 쫓기는 사람들 같아요.”
아이가 하기엔 어감이 다소 센 발언이었으나, 개중 그것에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 소녀의 발언 속 내용에만 집중한 어른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또 무슨 일 터진 거야?”
“설마 악마가……?”
“마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작은 문제라면 두고 볼 수 없는 인퀴지터였다. 뒤이어 오지랖 넓은 호크아이도 튀어 나가고, 친구가 나서니 선택지가 없어진 크러셔 역시 뒤를 따랐다.
“아오! 바람 잘 날 없네, 진짜!”
마지막으로 데스브링거까지 앞을 향해 튀어 나갔을 때, 베르세르크는 앞선 넷과 달리 느적느적 나아갔다.
“무슨 일인가?”
“소녀가 말한 그대로다. 그렇지만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군.”
그러면서 마법사들의 물음에 대답도 해 주었다. 마침 교차로에선 그들의 감각을 괴롭히는 대상이 막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설명할 것이 덜어졌다.
“아따, 이거 사방 천지 난리도 아니구마.”
더티 블론드 사내의 말이 맞았다. 그건 제대로 된 난리판이었다.
“선배.”
“…다들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하군. 다들 진압을 부탁해도 되겠나?”
“걱정 마십시오!”
이미 저 앞까지 나아간 인퀴지터가 호흡 한 번에 신성력을 공기 중으로 퍼트렸다. 그러자 사람들의 몽롱했던 눈에 빛이 돌아오며 갑자기 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잡아!”
“넘어지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 달려오던 사람들의 수는 한둘이 아니다. 그런 마당에 선두가 갑자기 멈춰 서 봐야 응당 사고가 날 수밖에.
“너는 계속 신성력을 운용해라. 사람 구조는 우리가 맡지.”
“부탁드립니다!”
다행히도 거리가 넓고 달려오던 사람들이 조금씩이나마 띄엄띄엄 있어서 사고가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호크아이와 크러셔, 베르세르크가 넘어지려는 사람들을 붙잡고 옆으로 빼내자 그럭저럭 서로 걸려 넘어지는 일이 줄어들었다.
“쓰읍, 수당 없는 일거리는 질색인데 말이제. 마법사 나으리들 눈에 들어야 하니까네 오늘 하루만 착한 일 좀 해 보까?”
“쓰잘데기 없는 말인들 고마하고 돕기나 하소, 대장!”
하물며 미스틸테인이 이끄는 트릭스터 용병단까지 합세하자 부상자는 획기적으로 줄었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거리 귀퉁이에 줄지어 선 채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거나 추위에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무슨 일인지…….”
“이러다 다 얼어 죽겠네.”
보다 못한 요정이 손가락을 튕기며 결계 마법을 펼쳤다. 고작해야 오가는 바람을 막는 수준의 결계였으나,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딱딱거림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다들 왜 그런 건가?”
“그게…….”
아크메이지가 인퀴지터와 함께 그들의 심문하는데 나섰을까. 한순간 요정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선배.”
“왜 그러는─”
요정의 손가락이 멀찍이 보이는 탑 중 하나를 가리켰다. 하얀 공 같은 것이 탑 외부를 감싸며 생겨나는 게 그들 눈에도 어렴풋이 보였다.
“크러셔!”
“또 왜.”
“사람들이……!”
심지어 그들 중 가장 눈이 좋던 호크아이는 비명과 함께 외쳤다.
“사람들이 탑에서 뛰어내리고 있어!”
호크아이가 가리키는 탑은 성벽의 마법을 유지하는 종탑 중 하나이자, 요정이 가리키던 것과 정반대 쪽에 위치한 것이었다.
* * *
“사망자 103명, 부상자 35명…….”
나는 또 터진 코피를 쓱 닦다 말고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계속되는 보라뱀이 나를 보고 있었다.
“종탑 두 개가 파괴되고 하나는 마법적 연결이 전부 끊겼다. 이번 일에 개입한 색욕의 추종자들이 대거 발각된 건 좋지만, 손실이 뼈아픈 건 어쩔 수 없군요.”
그, 혹시 종탑 하나가 망가진 것 때문에 저러나. 그치만 내가 그렇게 될 줄 뭐 알았나. 사람을 구하려고 발악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종탑의 복구는 언제 될 것 같지?”
“마법진의 절반이 날아갔습니다. 그걸 복구하느니 새로 만드는 게 빠를 겁니다.”
“그러니까, 시간으로 치면?”
“두 달은 넘게 걸리겠죠.”
보라뱀의 말에 성주가 앓는 소리를 냈다. 도시 전체가 진격할 거다 뭐다 하던 와중에 이런 일이 터지니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뭘 그리 죽상이야? 어차피 전진기지까지 성벽을 가지고 갈 수 있던 것도 아니잖아?”
“요정 마탑주, 이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쉽게? 어이가 없네. 이봐, 성주. 악마들 입장에서 암살 대상 상위권인 내가 여기까지 엉덩이를 옮긴 게 정말 ‘가벼운’ 일인 줄 알아?”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이가 얼굴을 구기며 짓씹듯 언어를 뱉었다.
“좌절할 시간 있으면 대책이나 강구해. 이것도 변수가 개입해서 좋아진 상태일 뿐, 원래라면 더 최악이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맞는 말이오.”
요정의 말에 성주는 결국 납득했다. 기실, 납득보다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인 것에 가까웠으나, 아무튼 수긍했으면 된 거였다. 기가 약한 성주를 보며 요정의 표정이 더욱 경멸에 가까워졌다.
“나리, 괜찮으십니까?”
“모험가님, 이걸로 닦으십시오.”
한편, 내 옆에 서 있던 만두 두 마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손수건과 약을 내미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낮잠 자다 뛰쳐나온 데스브링거는 둘째 치더라도, 인퀴지터 역시 사람들을 혼몽에서 꺼내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참 고마웠다.
“그보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시간을… 멈추다니.”
“그냥… 당시 떠오르는 것들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 보았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사망자 제로를 만드는 건 불가능했지만.
나는 구조가 늦어져 기어이 사망하고 만 두 사람을 떠올리며 울컥 올라오는 코피를 손수건으로 꾹 눌렀다. 코 안에서 터진 피가 위로 올라왔는지 눈도 한쪽이 살짝 붉어졌다.
“그리고 온전히 내가 해낸 일도 아니다. 찬사를 보내야 한다면, 마탑주 두 사람에게도 보내야 할 것이다.”
속죄하는 요정인지 뭔지 하는 마탑주와 계속되는 보라뱀이 합류하여 공간의 괴리를 보수하고, 유리된 공간을 축소해 가며 사람을 하나씩 빼내지 않았다면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을 테다.
“그래도 그때까지 시간을 끈 건 나리잖습니까요.”
“…그래.”
그건 확실히 내가 잘한 일이긴 하지. 요정 말로는 마법이 조금만 삐끗했어도 사람들 다 죽었을 거랬지만.
“다음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나도 어지간하면 그러고 싶다만…….”
때마침 성주와의 대화를 마치고 대현자 세 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대화가 다 끝난 것 같지는 않은 건데, 왜 오는 거지.
나는 눈치 보는 개가 흔히 그러하듯 눈만 데굴 옆으로 굴렸다. 아크메이지님의 시선은 따스했지만 나머지 둘은 따가워서 어쩔 수 없었다. 눈치 보인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다.”
“그… 자네가 착각하는 것 같아 노파심에 말하네만, 자네가 실수해서 사람들 죽을 걸 걱정하는 마음에 이리 말하는 게 아니네.”
“…그렇습니까?”
“그래. 우리가 정말 걱정하는 건─”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건 굉장히 섬세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제대로 된 지식이 없다면 더욱 그렇죠.”
“다시 말해, 자칫했다간 구하려 한 사람이 죽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네 모가지가 날아갈 거란 거지. 이제 이해했냐?”
아… 그렇구나. 이번 마법이 실패했다면 그 사람들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 목숨 줄도 위험할 뻔했구나.
어쩐지 시도할 때 분노가 뭐라 중얼거리더라니. 목숨 걸린 문제는 아주 기깔나게 나서지 그냥.
“다음부턴 유념하지.”
“새끼, 유념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닌데?”
“…무섭다고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진 싫어서.”
나는 절반 이상 피에 물든 손수건을 떼 내었다. 아크메이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서 손수건을 받아 갔다.
“그래도 다음부턴 몸 좀 챙기게. 마력이 다 꼬여서 이게 뭔가.”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나을 부상입니다.”
마력이 꼬였다 뭐다 하지만, 그래봤자 ‘위장’ 스킬에 붙는 ‘마력 순환 장애’ 밑이다. 그러니까, 이 정돈 코피 제외하면 익숙하다 이거다.
“야, 너 검사라고 마력 꼬이는 걸 얕보는 것 같은데─”
“얕보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도발로 받아들이네. 나는 마이스터처럼 구겨진 표정을 보며 황급히 말을 골랐다.
“전에도 여러 차례 경험해 본바, 그저 금방 나을 부상임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최소 하루 이틀, 길게는 사나흘까지 정양하는 게 좋을 부상이나 아무튼 그 정도면 괜찮은 축에 들지 않겠는가. 아무렴 2주 기절보단 훨 낫지. 그럼그럼.
“…이걸 전에도 경험해 봤단 말인가?”
“익숙해질 정도로… 마력이…….”
“이 새끼 여기 둘 게 아니라 당장 연구소에 처박아야 하는 거 아냐? 실시간으로 건강 체크하고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
“전 멀쩡합니다만.”
“코피를 한 바구니 쏟은 주제에 그딴 말 하면 설득이 되겠냐?”
“나리이이.”
“모험가니이이임.”
하나 다른 사람들은 의견이 다른가 보다. 만두 두 마리가 질질 짜기 시작하고 대마법사 세 명은 성주가 그들을 다시 부를 때까지 내 혈맥이나 이마 같은 걸 만지작거렸다.
좋은 의도라는 건 아는데, 좀 부담스러웠다.
* * *
[얼마나 죽었어?] [예상보단 적게 죽었네요.] […이거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요. 목적은 이뤘으니까. 다른 도시는 어떻죠?] [거긴 여기보다 더 많이 죽었지. 근데 정말 괜찮겠어? 이걸로 네 추종자들 태반이 끌려가게 생겼는데.] [그것도 괜찮아요.]연분홍빛 머리카락과 연두색 눈동자를 지닌 소녀가 나귀를 탄 여인과 함께 거리를 살살 걸었다.
[그들은 죽어도 이득이니까.] [……?] [저를 추종하는 자의 피건, 추종하지 않는 자의 피건… 결국 제물로서는 동등한 값을 지니잖아요.]그리고 소녀는 한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소녀의 저편에서는 보랏빛 머리카락의 청년이 무기를 고르고 있다.
[어차피 이 도시의 진격은 막을 수 없어요. 이 타이밍에 하급 악마들을 몰아치게 해도 용사 일행을 죽일 수는 없죠. 그렇다면… 차라리 이들의 빠듯한 물잔을 흘러넘치게 하는 게 최선이지 않겠어요?]소녀는 그 청년을 발견하자마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아 묶었다.
[괜찮아요. 이들은 이미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했어요. 이번 사건으로 그 물잔은 더욱 아슬아슬하게 됐겠죠. 식탐이 죽으며 풀어졌던 마음에 다시 경각심이 들었을 테니까.] [그으래도 말이지. 이게 정말 효과 있을까?] [절 믿으세요. 우린, 용사도 이 도시도 몰락시킬 수 있어요.] [그래, 뭐, 네가 말하면 그런 거겠지.]작은 발은 나귀를 탄 여인을 두고 그쪽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나귀의 여인이 심드렁한 얼굴로 소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남쪽의 꽃처럼 화사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을 때, 화살을 고르던 청년의 고개가 이쪽으로 막 돌려졌다.
[…아, 근데 이거 진짜 아닌 것 같은데.]연두빛 눈동자와 보라색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청년의 시선이 딱딱하게 굳었다.
“…타냐.”
나귀 여인의 말을 듣지 못한 소녀가 발그라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