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그러니 (10)
“괜찮은 무기가 없군.”
베르세르크는 그 난리가 났음에도 아크메이지를 따라 성주를 만나러 가는 대신, 무기를 사러 가는 걸 택했다. 수습이야 병사와 신전의 몫이고 그녀가 더 끼어들 당위성도 없었기에 별 이상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요? 큰일이네. 이 도시에선 여기가 그나마 괜찮던데.”
또한 그것은 호크아이도 비슷했다. 높으신 분들 모이는 데 따라가 봐야 우두커니 서 있는 것밖에 더 있겠냐며, 그 시간에 화살 보충하길 고른 것이다.
“어휴, 나 왔다.”
“어, 크러셔!”
그때, 아크메이지를 따라갔던 크러셔가 저편에서 설렁설렁 걸어왔다. 의뢰 문제로 선택권 없이 마법사를 따라갔는데, 그새 어찌 해결을 본 모양이다.
“일찍 왔네?”
“일이 길어지겠다 싶었는지, 편지를 써 주더라고. 덕분에 기다리는 일 없이 바로 파기하고 나왔어.”
“선수금은?”
“몰라. 아무 말 안 했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크러셔! 그렇게 대충 넘어가면 안 돼!”
“시끄러워.”
하여튼 여기엔 마음에 차는 무기가 없다. 품질이 모자라진 않으나 묘하게 끌리는, 쥐었을 때 그립감이 착 달라붙는 듯한 그런 게 없단 말이다.
“대전사, 이건 어때요?!”
“나쁘진 않군.”
이러면 차라리 주문 제작으로 가야 하나. 베르세르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사른콜이 가져온 무기를 쥐어 보았다.
조막만 한 아이도 들 수 있을 만큼 가볍고 가느다란 검. 아이 딴에는 도끼도 싫다 창도 별로다 하니 아예 새로운 유형을 가져온 모양이지만, 이것도 딱히 취향은 아니었다.
“역시 세검은 대전사에게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 기색을 기민하게 눈치챈 아이가 재빨리 세검을 회수했다. 잡으려면 잡을 수 있었으나,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이었으므로 베르세르크는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세검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직도 무기를 못 골랐나 보지?”
한데 그 꼴을 보던 크러셔가 팔짱을 끼며 문가에 기댔다. 그에 베르세르크는 가슴에 항상 품고 다니는 금속 조각을 손에 굴렸다.
“영 마뜩하지 않군.”
“그럼 주문 제작으로 해. 돈도 시간도 있잖아?”
“…그래. 그게 낫겠지.”
“비록 이 도시엔 대명장급 대장장이가 없지만 명장이라 할 만한 사람은 두엇 있으니까─”
대명장이란 말에 베르세르크의 눈살이 살풋 찌푸려졌다. 결국 그 재수 없는 놈에게 가야 하는가?
“…타냐.”
“……?”
그녀가 그리 고민하고 있을 적, 아까부터 조용하게 있던 호크아이가 입을 달싹였다.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대충 보기에 사람 이름에 가까워 보인다.
“얜 또 뭔 소리를─”
호크아이를 따라 시선을 돌린 크러셔 역시 곧 말문을 닫았다. 딱딱하게 굳은 두 사람의 표정은 꼭 밀랍을 발라 굳힌 인형과 같다.
베르세르크의 눈동자가 그들을 따라 옆으로 굴러갔다.
“흠.”
연분홍색 머리카락이라. 언니가 보았다면 색이 참 곱다며 좋아했으려나. 베르세르크는 신기한 머리색을 보며 방방 뛰는 소녀에게 팔을 내주며 그런 상념을 잠깐 했다. “대전사, 대전사!” 한시도 끊이질 않는 재잘거림 때문인가, 떠올린 과거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입에 넣으면 녹을까요?”
“사람 머리카락은 눈이 아니다.”
“엄청 포근포근해 보이는데.”
“포근포근한 게 먹고 싶다면 모험가에게 가서 매달려라. 네가 매달리면 다 해 주는 인간이니.”
“그럴까요?”
아이에게 너무 잘해 준 나머지, 모험가를 향한 아이의 인식이 누르면 간식이 나오는 무언가쯤으로 된 모양이지만… 베르세르크는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노르다인의 기준으로서 모험가의 양육 방식은 너무 무르고 유약했으나, 아이의 웃음을 잣대 삼는다면 그녀보단 모험가가 더 좋은 어른이었다.
“그치만 모험가님, 아픈 거 나을 때까진 절대 안 된다고 하셨는데.”
소녀가 지금 말한 바와 같이, 진정 엄해야 할 땐 정말로 엄격해진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건 네 실수가 자초한 것이니 너 혼자 감당해야 할 문제다.”
“히이잉.”
각설하고, 이것들은 아직도 왜 굳어 있는가. 베르세르크는 크러셔의 발끝을 부츠 코로 툭툭 쳤다. 보이지 않는 얼음에 갇힌 것처럼 정지해 있던 크러셔의 몸이 그제야 숨을 들이켰다.
“아는 사이인가?”
“…글쎄. 아는 얼굴이긴 한데, 아는 사람인지는.”
그 잠깐 사이에 근육이 뻣뻣해졌는가, 크러셔가 고개를 두둑두둑 꺾었다.
“호크아이.”
동시에 그녀의 발 옆면이 호크아이의 부츠 옆 부분을 쳤다. 호크아이도 최면에서 깨어나듯 “아.” 하는 탄성을 흘렸다.
“미안. 타냐가 아니었네.”
어색하게 웃는 얼굴은 누가 보아도 제대로 된 형상의 것이 아니었다. 베르세르크의 코에서 콧김이 흥 튀어나왔다.
“그래서 어쩔 거야?”
“주문 제작으로 가야겠지. 도시에 있다는 무기점을 다 뒤졌는데도 이 모양이니.”
“잘 생각했어.”
그래도 다들 어느 정도는 정신이 든 것 같다. 그거면 됐다. 베르세르크는 대부분의 북부인들이 그러하듯, 묻지 않는 것을 미덕 삼아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네 사람의 걸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려 했다.
[저기.]하나 그런 그들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이사른콜보다는 많이 크고, 북부인 평균 체구에는 못 다다르는 연분홍 소녀였다. 두 사람의 몸이 알게 모르게 다시 굳었다.
[제가 이 도시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데, 괜찮은 무기점이 뭔지 여쭐 수 있을까요?]“미안하지만, 우리도 잘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나서기 전, 베르세르크는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사람의 사정에 파고들 의향은 없으나 이 정도 배려조차 못 해 줄 형편은 아닌 까닭이다.
“다른 데 가라.”
[아, 죄송해요.]어쩌면 이 행위조차 과한 오지랖일 수 있겠으나 두 사람의 반발이 없는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베르세르크는 순순히 물러나는 소녀를 보며 팔짱을 꼈다.
뭔가 감이 썩 좋지 않았다.
“저기… 대전사. 저 수즈마 먹으면 안 돼요?”
하나 그녀의 찝찝함은 소녀의 말에 날아갔다. 소녀의 눈동자가 두 사람을 연신 힐끗대며 조르듯 팔에 매달렸다.
“수즈마라면 괜찮을 것 같군. 이봐, 아는 데 있나?”
“네? 아, 네! 있어요!”
“애한테 아주 지극정성이네.”
다행히 소녀의 계책은 정확히 먹혔다. 두 사람의 관심이 수즈마가 맛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왕이면 많이 사 가요. 모험가님한테도 드리고 싶어요.”
“그래.”
아니, 정말로 주목하는 것이 바뀌었을까? 베르세르크는 은근슬쩍 돌아가는 호크아이의 고개를 보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의 걸음이 다른 시장으로 향했다.
* * *
한참에 걸려 성주와 마탑, 신전 쪽의 대책 회의가 끝났다. 당연하지만 나는 꼬인 마력이 안정될 때까지 무조건적인 안정이었다.
“몸 상태는 괜찮으십니까?”
아무튼 그렇게 성을 나오니, 수습을 돕겠다며 신전 사람들을 따라갔던 다니엘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쪽도 일이 다 끝난 모양이다.
“괜찮으니 걱정 마라.”
“심문관 나리, 저거 다 뻥입니다요. 속지 마십쇼.”
“제가, 제가 치료만 할 수 있었어도!”
만두들이 또 육즙 짜낸다. 나는 그 분통해하는 두 사람을 보며 애먼 뒷목만 쓸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었던 만큼 뭐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앞으론 푹 쉬시지요.”
이 와중에 다니엘은 두 사람의 반응만으로도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게 꾸러미 몇 개를 건넸다. 비싼 비단과 끈으로 감싸진 못했을지언정 하나같이 정성스럽게 포장한 게 티가 났다.
“뭔지 물어도 되겠나?”
“경 덕분에 목숨을 건진 분들께서 보내셨습니다. 경이 먼저 떠나신 까닭에 부득이하게도 제가 대신 받아 왔습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은 일이었다만.”
“저도 그러실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만… 제3자의 입장으로 함부로 거절하긴 뭣하여 그냥 받아 왔습니다.”
아니, 다들 뭐 이리 많이 주셨대. 나는 꾸러미를 인벤토리에 주섬주섬 넣었다. 당사자들이 여기 있었다면 바로 돌려주었겠으나 이제 와서는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거 다 음식입니까요?”
그때 코를 킁킁거리던 데스브링거가 물었다. 확실히, 그 말을 듣고 보니까 포장 사이로 음식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몇 개는 꼬리꼬리한, 예상이 안 가는 냄새가 풍기고.
“북쪽에선 음식을 주는 것이 감사의 최대 표현이기에, 다들 그리한 것 같군요.”
내가 포장을 뜯어 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뒤쪽에서 나온 보라뱀이 한마디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자세로 보아 우리의 이야기가 전부 들린 듯했다.
보라뱀 뒤편에 서 있던 아크메이지가 허허롭게 웃고 요정이 새침하게 팔짱을 꼈다.
“그런가.”
이런 전통도 식탐 때문에 생긴 거겠지. 나는 문화가 생긴 배경을 어렴풋이 짐작해 보며 꾸러미를 전부 넣었다. 이게 정말 음식이라면 여기서 풀어 보는 것보단 가서 푸는 게 나았다.
“그보다, 어서 돌아가시지요. 전진 배치 건이 앞당겨진 이상, 여러분의 쉴 시간도 넉넉하진 못할 테니.”
“예?”
“전진 배치 건이라 하면…….”
“그렇게 됐다. 근데 왜 여기서 미적거리냐?”
“요정 마탑주님.”
그러고 보니 속죄하는 요정도 마탑으로 같이 가려나. 나는 그의 꽃술 같은 속눈썹과 그 아래 자리한 백금안을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회피했다. 마력 순환 장애에 익숙하단 대화 이후로 그가 친할아버지처럼 계속 잔소리를 하는 까닭이다.
그게 엄청 싫은 건 아니지만… 잔소리 듣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건 아무래도 모든 사람 공통인 법이라. 나는 어서 돌아가는 말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벌써 전진해도 되는 것입니까?”
그 과정에서 다니엘이 잠깐 질문했다. 그는 우리와 달리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충분히 물어볼 만한 질문이었다.
“그건 말일세─”
“벽이 멀쩡했다면 모를까, 벽이 망가진 상태니까. 어차피 고칠 벽이라면 좀 앞에 세워도 되잖아?”
한데 친절해 답해 주려던 아크메이지를 제치고 요정이 끼어들었다. 그쪽이라고 설명이 이상하게 나오진 않았는데… 다니엘이 약간 당황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으럼 땅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아! 그건 제가 도맡아 정화하기로 했습니다!”
“대리자께서 맡으신다면 걱정이 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만일 이 틈을 타 대악마가 오면 대항할 무력이 부족한 것 아닙니까?”
“그건…….”
확실히 인퀴지터가 정화에 힘을 다 쓰는 사이 쳐들어오면 곤란하긴 하지. 본래라면 인퀴지터의 빈자리를 커버해 주는 건 내가 되어야 하는데 이번 일로 사흘간 정양하게 생겼으니까.
“오면 좋지.”
그렇지만 다니엘이 찌른 부분은 속죄하는 요정의 한마디로 해결되었다. 요상한 빛을 흘리는 큐브를 힐끔 들여다보던 요정이 이죽거리며 웃었다.
“그 녀석들을 위해 쌔끈한 결계도 준비한 참이거든.”
그런 미소 이면에선 약간의… 광기가 엿보이는 듯했다.
“그보다 너 말야.”
“…나 불렀나?”
“그래, 너.”
그리고 그런 광기의 보유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공연히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가 나를 잡아먹지는 않겠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까는 성주 때문에 미처 못 물어봤는데, 그거 어떻게 한 거냐?”
“……?”
뜬금없이 그렇게 물으면… 아, 탑의 시간을 멈췄던 거 말인가.
“그냥… 마탑과 성벽에 새겨져 있던 마력의 흐름을 따라 했을 뿐이다.”
“뭐?”
“…혹, 제 마탑과 이 도시의 성벽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게 말이, 아니, 그래. 그렇다 치자. 그 둘은 어떻게 연결했는데?”
“요즘 마법진에 대해 공부하는 게 있어서… 그 덕에 서로 다른 마법 두 개를 연결 짓는 원리를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그대들의 지식에 비하면 하염없이 얕을 지혜겠지만, 다행히 성공했군.”
“…그 공부하고 있는 마법진은?”
“으음.”
나는 그냥 책자를 꺼내서 보여 줬다. 다들 마탑주니까 마이스터나 티마뉴크만큼의 경박함은 안 보여 주겠지. 그런 기대는 덤이었다.
“이 미친─”
“…이것을 누가 만든 것인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고작 이것을 공부하며 연계의 원리를 파악하셨단 것입니까.”
“제대로는 알지 못한다.”
나는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다지 의미는 없었다. 두 사람의 눈이 나를 먹잇감 보는 매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요정, 보라뱀.”
“아, 선배. 손 좀 잠깐 놔 보실래요?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서.”
“저도 지금 할 일이 좀 생긴 것 같습니다. 어깨를 놔주시지 않겠습니까.”
“마음은 이해하네만, 그는 모든 일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야 할 사람이네.”
“아, 괜찮아요. 쟤도 우리 마탑 복지 듣고 나면 생각이 바뀔걸?”
“동의하는 바입니다.”
“어허.”
어쩐지 교수님에게 대학원 권유받던 날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 *
[아, 진짜 일하기 싫다.]나귀를 탄 여인은 꿈 안을 사브작사브작 걸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망 없는 것 같은데.]차라리 한번 물러났다가 현 용사랑 그의 검이 늙어 죽은 후 다시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모든 걸 걸고 그들과 한판 붙는 게 정말 현명한 선택일까?
[꿈을 거니는 것도 이제 힘들어졌는데…….]북쪽의 구멍이 회복되며 이 세상을 품은 신의 영향력이 늘어났다. 이젠 마역 바깥에선 허투루 힘을 쓰기도 어려울 수준이다.
[에휴, 난 몰라. 다들 알아서 하겠지.]하지만 나태는 곧 모든 불만을 접었다. 그 불만을 제기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던 까닭이다.
[아, 도착했다.]대신 그는 드디어 다다른 어느 꿈에 들어갔다.
[안녕, 인간. 도와줄까?]“…이것 참, 진귀한 손님이네요.”
창살에 갇힌 하얀 까마귀가 살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