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29)
429화 지금 선언하라 (2)
“드디어 도착했네요.”
사파이어의 기사, 클라우스. 그는 그와 함께 파견된 기사, 자르딘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주억였다.
“…있는 거, 맞겠죠?”
“의심하지 마라, 신입.”
동시에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의 성문으로 말을 재촉했다. 성문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수록 기존에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명을 받았고, 명을 받은 시점에서 그저 이행하면 된다. 임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사고와 상급자의 판단에 대한 의구심은 전혀 다른 것임을 명심하도록.”
그러나 그런 이들은 깃발 하나만 들어 올리면 얼마든지 제칠 수 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신원을 검사받는 자리에 섰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뮌문트에서 파견된 수석기사, 키샤다. 성주님을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 뒤에 계신 분은 종자이십니까?”
“…뮌문트의 정식기사로 부임하고 있는 즈랴입니다.”
최전선에 위치한 도시의 신원 검사는 어딜 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 굉장히 엄하고 또 철저하다. 두 사람은 그들의 신분 패를 내민 채 한참을 기다렸다.
“확인되었습니다. 리네이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사님.”
“성주님이 기거하시는 성은 어디인가?”
“안내할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하나 기다림이 길지언정 정해진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다. 그들은 수문을 위해 대기하던 병사 하나의 도움을 받아 리네이루 성주의 앞까지 도달했다.
“이야기는 들었네. 그러니까, 음. 감시를 위해 왔다지.”
처음 보는 리네이루의 성주는 썩 미덥지 못한 인상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다른 곳을 힐끔거리는 눈이나 좁게 구겨진 어깨 따위가 유독 그런 느낌을 강화시켰다.
“그들은 마탑에 머물고 있네. 마탑까지 안내인을 붙여 주지.”
“성주님의 배려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뮌문트와 리네이루의 긴밀한 동맹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점심시간인데 식사라도 하고 가는 건…….”
“성주님의 제안에 실로 감사한 마음이나, 저는 뮌문트의 기사로서 제 주군의 명을 우선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클라우스는 굉장히 사무적이고 건조한 태도로 대화에 응했고, 그렇게 끝냈다. 성주가 조금 애석해하는 표정이었으나 두 번 권하지는 않았다.
“수석기사님, 그, 거절해도 괜찮은 건가요?”
“리네이루의 현 성주는 기가 약하고 통솔에 재주가 없어, 자신의 부관에게 대부분의 일을 일임하고 있다더군. 그를 고려하면 식사 제안을 거절하는 것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거다.”
“그렇군요.”
“너도 이제 어엿한 기사인 만큼 다른 성에 파견 나갈 일이 종종 생길 터. 이 정도는 알아 둬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들은 안내인의 귀에 소리가 닿지 않도록 입술만 살짝 달싹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사이에도 성과 가까이 있다는 마탑은 성큼성큼 가까워져 왔다. 배신자가 있는 곳이었다.
“마탑 안까지는 제가 안내해 드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상관없네. 이만 돌아가 보게.”
마탑에는 이미 공문이 갔을 것이니, 시간만 지나면 허가는 알아서 떨어질 것이다. 두 사람은 그것을 알고 초조한 마음 없이 가만 기다렸다.
콰드득.
아니, 초조한 마음이 없다는 것은 사실 거짓이었다.
클라우스는 관성적으로 칼자루 위에 올려 두었던 손을 콱 움켜쥐었다. 칼자루와 가죽 장갑 사이에서 마찰이 일며 섬찟한 소리를 흘렸다.
“두 분의 출입이 허락되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오시지요.”
그리고 끝내 그들이 염원했던 때가 도래했다. 두 사람은 마법사의 인도를 따라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문득, 긴 복도와 한 겹의 문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해요!
…떻습니까!
“이곳입니다.”
마침내 마법사가 거대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끼이익. 클라우스와 자르딘이 숨 한번 고를 틈 없이 열린 문 너머로는 환기 마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열기가 화악 퍼져 나온다.
“내 분명 말했을 터다. 더러운 손을 나에게 가져다 대지 말라.”
“아,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저, 마법사님! 이 이론은 어떤지 확인을─!”
다만 그 열기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그렇게 보고 싶던 유의 것이 아니었다. 클라우스의 손이 기어이 허리춤의 칼자루를 붙잡았다.
* * *
“아, 당 떨어진다.”
나는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홀로 공부하다 말고 의자에 눕듯이 기댔다. 새벽에 운동하고 아침 먹고 지금까지 쭈욱 마법진만 들여다봤더니 정말 정신 나갈 것 같았다.
“진짜 고 삼 때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아니, 차라리 고 삼 때가 나았다. 좆같기는 둘 다 좆같지만, 그땐 그래도 세상의 명운 같은 건 안 걸려 있었다고. 재수라는 2회 차, 3회 차 기회도 있었고.
“아, 근데 진짜 당 떨어지는데.”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단 걸 먹어야지.”
음, 아빠가 타 준 커피 먹고 싶다. 기본 원두 우린 물에 코코넛 가루랑 꿀 섞은 다음 얼음 동동 띄워서 주셨는데… 그거 참 맛있었지. 내가 타면 이상하게 그 맛 안 나와서 혼자 살고는 못 먹었지만.
“…아버지 보고 싶다.”
「…….」
수능 때 공부로 머리 싸매고 있으면 엄마가 슬쩍 가져다주던 식빵 피자랑 콜라도 먹고 싶어. 아빠표 잡탕 김치죽도, 엄마표 가지튀김도…….
짝!
“정신 차리자.”
괜찮아. 이것만 하면 집에 갈 수 있어. 이것만 해내면… 진짜 집에 갈 수 있어.
나는 그것으로 울적해지려던 정신을 겨우 붙들고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이 상태로는 바로 집중이 안 될 게 훤하니, 가볍게 걸으면서 요깃거리를 좀 챙겨 오자 하는 판단이었다.
「…죄송해요.」
그 과정에서 나는 그 어떠한 종류의 답도 내뱉지 않았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차마 ‘괜찮다’라고 할 수 없었으므로.
“그러고 보니 여긴 코코아가 없네. 코코아 있으면 딱 좋은데.”
겨울에는 코코아가 짱인데. 아쉽구만.
“볼일 있으신가요?”
“괜찮다면, 요깃거리를 좀 받을 수 있겠나?”
“물론이죠!”
나는 아쉬운 대로 마탑 식당에서 먹을 걸 좀 챙겼다. 마탑 밥은 묘하게 짬밥 맛이 나서 별로지만… 그렇다고 마탑 밖에서 음식을 구해 오는 것도 좀 그랬다. 인벤토리에 답례로 받은 먹거리가 여태 남아 있기도 하고.
“그렇지. 마이스터나 티마뉴크가 오늘 식당에 들른 적 있나?”
“아침엔 들르셨는데…….”
“그들 것까지 부탁하지.”
그보다 이 자식들, 또 점심 걸렀구만.
나는 익숙하게 그들 몫을 챙겼다. 계명은 굳이 걱정하지 않았다. 뭔가에 열중하면 시간조차 잊는 둘과 달리, 그녀는 스스로 척척 잘하는 사람이니까.
와장창!
“당신이!”
근데 또 무슨 일이야.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냐고.
나는 도시락을 머리 위에 올린 채 걷다가 복도 너머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을 듣고 바로 도시락을 회수했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훌쩍 뛰어 나가는 몸은 순식간에 공동 연구실 문 앞에 도달한다.
“당신이 어떻게─!”
뭐야, 뭐야? 나는 연구실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소동을 두고 잠깐 멈칫거렸다. 어쩔 수 없었다. 면식은 있는데 익숙하진 않은 얼굴 둘과 계명이 서로 대치 중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살벌한 분위기를 두른 채로.
“진정해라, 신입!”
“…….”
그래도 칼부림까진 안 난 것 같지……?
나는 바닥에 떨어진 시약 병들과 앳된 청년을 만류하는 청색 머리칼의 사내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정면에 서 있는 계명은 차디찬 얼굴로 단 한 번의 발언조차 하지 않는 중이다.
“이거 놓으십시오! 전, 저는, 저 사람에게!!”
“내가 진정하라고 분명 말을─!”
뭐, 칼부림까지 갔건 안 갔건 중재가 필요하단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소동의 중심이 육체파인 반면, 휘말린 인간들이나 구경하는 인간들은 죄다 허약한 두뇌파라서.
“이게 무슨 소란이지.”
하니 중재를 해야 한다면 내가 나서는 게 맞겠지. 맞겠지? 마탑 인사는 아니지만, 저쪽도 마탑 관계자는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
“…당신은.”
“왔나.”
그보다 이 사람들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다른 도시에서 본 건 분명한데.
요즘 따라 옛 인연들을 많이 본다 생각하며, 나는 계명 쪽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고고하고 서늘한 여인은 내가 다가옴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슬 감았다.
“설명.”
“보는 그대로다. 이상 말할 건 없어 보이는군.”
저기요, 보이는 건 결과고, 제가 바란 건 원인이거든요.
“마이스터.”
“저 갈색 머리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검 휘둘렀어. 그걸 저 인간이 막아섰고. 그 뒤론 파란 머리가 갈색 머리 잡고 지금 상태.”
“그렇군. 다친 사람은 없나?”
“나를 향한 공격도 아닌데 다칠 일이 뭐 있겠어?”
“테이 군이 유리 파편에 맞았습니다.”
“아, 형.”
“작은 상처라도 상처는 상처다. 치료하는 게 좋겠군.”
특히 살에 깊이 파고들기라도 했으면 파상풍의 위험이 생기니까. 나는 가져온 도시락은 일단 주변 책상에 대충 올려 두곤 인벤토리에 항상 넣어 두고 다니는 연고를 꺼냈다.
“일하면 항상 입는 상천데 뭐…….”
“그래도 발라라.”
치료 마법도 있겠지만, 연고도 있어서 나쁠 건 없겠지. 나는 그런 의도로 연고를 던지듯 건네주곤 아직도 쌔액쌔액 숨을 내쉬는 쪽을 돌아보았다.
“관등 성명.”
이 도시 사람은 아니되 옷차림이나 자세를 보면 최소한 병사 계급 이상.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도 되겠지.
“못 들었나?”
“…뮌문트의 정식기사, 즈랴입니다.”
이렇게 물으면 안 되나… 내가 그리 재고해 보려던 순간, 갈색 머리카락과 강아지처럼 넙데데한 귀를 가진 앳된 청년이 답했다. 그와 동시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던 그의 몸은 스윽 이완되어 그를 붙잡고 있던 이가 손을 풀어도 되도록 한다.
“…뮌문트에서 파견된 수석기사, 키샤입니다. 사파이어라고 불러 주시지요.”
“뮌문트라면…….”
나는 그제야 저 청년이 이곳에 오자마자 난동을 부린 이유를 깨달았다. 아무렴, 고향을 불태울 뻔한 원수를 보게 되면 장소고 뭐고 칼부터 뽑을 수밖에 없다.
“…그래, 만나서 반갑군. 모험가, 욥이다.”
그, 그래도 장소는 좀 고려해 주지 그랬냐. 여기 마탑인데… 물론 쟤네도 여기에서 마주칠 걸 바라진 않았겠지만.
“더불어… 그대들의 심정은 이해하나, 때와 장소가 좋지 않았음은 지적할 수밖에 없겠군. 애당초, 그녀의 처분에 대해선 이미 전달된 바가 있을 텐데?”
“…할 말 없습니다. 전적으로 이쪽 책임입니다.”
나, 나, 다른 데 갈래.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낄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남의 원한─그것도 절대 용서 못 할 수준의─에 끼는 건 진짜 괴롭다고!
“무슨 일입니까?”
그때 마탑의 총책임자가 자리에 강림했다. 해방이었다.
“제3자로서 할 말은 아니겠으나, 그들을 부디 선처해 주었으면 하는군.”
아니다, 안 해방이었다.
나는 기사가 작정하고 칼을 휘두르면 막기 난처하단 이유하에 같이 집무실로 끌려왔다. 억지라면 억지이나, 그렇다고 막 낙관할 사항 또한 아니라서 거부조차 할 수 없었다.
막말로 저들이 복수심에 미쳐 날뛸지 어떨지 누가 알겠는가. 열 길 물속은 볼 수 있어도 사람 속은 확신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들을 봐주길 바라는 겁니까?”
“그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뮌문트에서 벌어진 참사를 두 눈으로 보았고, 그것은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종류의 사건이었다. 그들이 한순간 분노에 먼 것이 납득될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었단 이야기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곁다리로 딸려 왔고 거기서 기어이 한마디 뱉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나 같아도 가족을 죽이려 든 놈이 눈에 보이면 쉽게 용서를 뱉지 못할진대, 저들 심정은 어떻겠나.
다짜고짜 칼을 휘두른 것까진 두둔하지 못해도 그 일을 저지른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소극적으로 그들을 변호했다.
“물론 난동을 부린 것 자체는 심판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명백히 저쪽의 잘못이니. 다만… 나는 그 형벌이 정도 이상으로 엄해지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선처도 딱 그 정도 선에서 염원하며 꺼낸 발언이고.”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내 의견에 그들을 억지로 용서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걱정 마십시오. 일개 객의 의견에 흔들릴 만큼 줏대 없는 사람은 아니니.”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다.”
“걱정 마십시오. 그런 오해도 한 적 없으니.”
보라뱀은 드물게 힐끔 웃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뭐, 객이 아니라 제자의 의견이면 마음을 꺾을 순 있겠습니다.” 땀이 삐질 날 소리였다.
“두 분은 하실 말 있으십니까?”
“잘못을 저지른 입장에서 감히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이 행위를 뮌문트 전체의 의견으로 받아들이지만 않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사파이어 경이 나서서 답하자 보라뱀이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한참 뒤, 그는 처벌을 정한 듯 입술을 떼었다.
“깨진 시약 병과 망가진 재료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습니다. 단, 이는 뮌문트란 도시가 아니라, 두 사람 개인에게 청구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쎄요, 가격을 보면 그런 생각은 안 드실 겁니다.”
“…어떻게든 지불할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시약 병이랑 재료라… 얼마나 비쌀까. 나는 예전에 마이스터의 심부름을 하며 봤던 재료들의 가격을 떠올렸다.
기사가 얼마나 받는진 모르지만… 두 사람, 봉급 통째로 바쳐야 할지도.
“그 이상의 죄는 묻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제가 당신들을 용서한 건 다친 사람이 나오지 았았으며, 욥 경이 그대들의 선처를 구했기 때문일 뿐이니.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땐 우리 마탑을 경시하는 것으로 판단, 정식으로 뮌문트에 항의할 것입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보시죠.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자가 기거할 방까지 안내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일은 대충 정리된 것 같다. 나는 요깃거리 챙기자고 했던 일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한숨을 내쉬며 떠나는 기사들과 같이 걸음을 옮기고자 했다.
“어딜 가십니까?”
“…방에 가려 했다만. 할 말이라도?”
“어차피 공부하시러 가시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하시죠.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아, 교수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