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35)
435화 지금 선언하라 (8)
“계명, 미끼에 대한 후기를 말해 주러 왔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별것 아니다.”
나는 조용한 연구실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은데. 정말 별일 아니었으면 마법사들이 아가리를 다물고 고개만 숙인 채 있을 리 없잖아.
“티마뉴크.”
나는 고개를 돌려, 여기서 거짓말을 제일 못하는 사람을 찾았다. 내 시선을 받은 티마뉴크가 눈을 두어 번 껌뻑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즈랴 경과 계명 씨가 또 싸웠습니다.”
“아, 형! 말하지 말랬잖아!”
“마이스터는 옆에서 말을 얹다가 한 대 얻어맞을 뻔했습니다.”
“아오 씨.”
그래, 눈치 없고 솔직한 사람이 있으니까 이렇게 편하다. 감시자가 따로 필요 없네.
나는 진솔한 발언으로 나의 고생을 덜어 준 티마뉴크에게 고기꼬치를 건네주었다. 순찰 끝나고 돌아오며 사온 고기꼬치는 티마뉴크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것이다.
나이 3n살 먹고도 순진한 마법사가 눈을 반짝이며 고기꼬치를 받아 갔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면 내게 말해 주길 바란다. 사례는 톡톡히 하지.”
“물론입니다.”
“아니, 형.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오래 만난 나와의 약속은 쓰레기 버리듯 내던지고, 쟤랑은 희희낙락하며 손잡아?”
“하지만 테이 군, 욥은 저에게 고기꼬치와 과자를 주었습니다.”
“아니 시발, 나와의 인연은 고기꼬치만 못해?”
“그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티마뉴크가 잠깐 골몰하다가 마저 말을 이었다.
“테이 군은 험악하고 욥은 상냥합니다. 저는 욥과 좋은 관계를 이어 가고 싶습니다.”
완벽한 마이스터 1패였다. 할 말을 잃은 마이스터가 뒷목을 잡고, 나는 상황에 맞지 않게 살짝 웃었다.
“그러게, 평상시에 마음 좀 곱게 쓰랬을 텐데.”
“시발롬아, 비웃지 마라.”
“괜찮다. 난 잔소리를 할지언정 널 배신하진 않을 테니.”
“썅…….”
아무튼 나는 나와 친해지고 싶다는 티마뉴크에게 사탕을 더 준 후 여즉 주먹만 세게 쥐고 있는 즈랴 경을 보았다. 발긋하게 변한 눈가는 제대로 화난 사람 같기도 하고 울고 싶어 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그의 주먹에서 눈을 슬쩍 떼었다.
“계명.”
“…가벼운 말다툼이 있었을 뿐이다. 그 이상 부연할 가치는 하등 없어 보이는군.”
“좋다, 그러면 내가 즈랴 경을 데리고 가도 되겠나?”
“그것을 왜 내게 묻는지 모르겠군.”
그거야… 싸움이 일었다면 즈랴 경이 먼저였을 가능성이 크니까 그렇지? 그리고 싸움이 걸린 쪽은 보통 피해자로 분류되는 법이고. 뭐어, 그녀나 뮌문트 사람들이나 절대로 이 명제를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알았다. 하면 즈랴 경, 나와 대화할 의향이 있는가?”
“…전, 감시를.”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알겠다. 그렇지만 이곳의 마법사들은 마지막 싸움을 성공리에 끝내고자 불철주야 노력하는 이들이다. 그대의 사명 때문에 이들이 불편을 느꼈다면, 그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지 않겠나?”
“…….”
나는 즈랴 경을 설득하며 인벤토리에 넣어 온 음식들을 꺼냈다. 전부 대현자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사 온 간식거리였다.
“혹시 모를 탈출을 걱정하는 거라면, 내 맹세하겠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는 순간, 내가 먼저 그녀를 붙잡아 무릎 꿇리겠노라고.”
사실 이건 연구실 떠날 때 주려고 했는데 말이지. 분위기가 이래서야 지금 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뭘 먹으면 이 가라앉은 분위기도 풀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내 제안을 받아 줘서 고맙군. 그리고 티마뉴크, 이건 연구실에 일하는 모두를 위해 사 온 음식들이다. 넉넉하게 사 왔으니 모두 적절히 나눠서 먹길 기원하지.”
“아, 감사합니다.”
“마이스터, 너는 즈랴 경과의 대화가 끝나고 보겠다.”
“나는 왜.”
“잔소리는 한다고 했을 텐데.”
“아, 진짜.”
계명이 새삼 마이스터를 한 대만 때리려 했을 리 없으니, 말을 얹었단 이유로 한 대 패려고 했던 건 즈랴 경일 거다. 그리고 즈랴 경은… 지금까지 본 바로는 괜히 남을 패고 다닐 성정이 아니었지. 상대가 자신을 도발했거나 역린을 건드린 게 아니고서야.
하면 마이스터가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인 추론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즈랴 경을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으아, 드디어 살겠다.”
“몸 쓰는 놈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아, 방금 중재한 검사 빼고.”
“저… 기사라면 그렇게 작게 말해도 이 거리에선 다 들을 겁니다만.”
“헉!”
달칵. 문이 닫히기 직전 마법사들의 대화가 약간 오갔다. 뒷담은 둘째 치더라도 분위기는 풀린 거 같아 다행이었다.
“그래… 즈랴 경. 마이스터가 무슨 말을 했지?”
“…예?”
“그를 감싸 줄 필요는 없다. 그의 성질이 더럽다는 건 나도 아니까.”
그보다 즈랴 경, 왜 이렇게 당황해. 내가 설마 계명이랑 싸운 걸 먼저 신문할 거라 생각했어?
“별, 말 안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닌 건 나도 알고 저 마법사들도 안다. 솔직히 말하도록.”
“그, 그게.”
즈랴 경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혀를 달싹였다.
“시비 터는 심정은 알겠지만, 감시자로 온 거면 감시만 해라… 어차피 너는 지금 배신자를 죽일 수 없다… 실력으로도 명분으로도… 그러니까 감정을 주체 못 할 거면 이곳에서 나가든가, 아니면 닥치고 가만있든가… 대충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인성 터진 대명장은 그렇게 말했구나.
“…협조해 줘서 고맙군. 놈의 주리는 내가 반드시 틀어 버릴 테니, 부디 그를 한 번만 봐주지 않겠나. 다음에도 그렇게 말하면 그땐 나도 그대를 말리지 않겠다.”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해. 맞는 말이긴 한데… 세상 누가 그걸 면전에서 냅다 박아 버리냐고.
나는 마이스터의 인품을 새삼 깨달으며 즈랴 경에게 싹싹 빌었다. 즈랴 경이 암만 신입 기사래도 저 주먹에 맞았다간 마이스터는 뼈도 못 추릴 것이기에 선택지가 없었다.
걔가 처맞을 발언을 하긴 했어도, 일단 걔는 내 동료였다.
“전, 괜찮습니다. 대명장께서 하신 말은 한 점 틀림이 없습니다. 그저 제가 자제력이 부족하여…….”
나는 마이스터의 등짝을 열 대 때리는 상상을 하며 이 악문 기사를 보았다. 사파이어 경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업보는 다른 사람이 쌓았는데 멘탈 케어는 왜 내 몫이지. 살짝 현타가 왔다.
‘이래서 정신 의학이 발달해야 하는 건데…….’
「…….」
나는 빌어먹을 꼬맹이가 안절부절못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마를 짚었다. 나를 포함해 정신과 의사가 필요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난 그대의 자제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엔 의사는커녕 그쪽 분야에 대한 연구 자체가 없다. 나는 그 사실에 애석해하며 즈랴 경을 정원으로 이끌었다.
“철천지원수 앞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이해심을 발휘하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니까.”
하필 정원으로 이끈 이유는 별것 없다. 사람이 허여멀건 연구실에 처박혀 마법사들의 이해 못 할 대화와 원수 얼굴만 12시간씩 보다 보면 당연히 분노에 매몰되지. 이럴 땐 산책하면서 신선한 공기도 좀 쐬고 파르란 새싹도 좀 보며 감정을 좀 버려야 했다.
“다만 그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다면, 지금처럼 잠시 공간을 옮겨 숨을 돌리는 것이 어떤가… 라는 제의를 하고 싶다.”
“저는 감시를…….”
“목적을 그저 이루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그대 주변엔 감시 대상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다.”
근데 여기가 북쪽이라는 걸 잠시 깜빡했네. 나는 하얀 정원을 보며 이 추운 곳으로 나가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지 잠시 고민했다. 추우면… 생각이 좀 좁아질까?
“그리고 그들은 아까 말했다시피 악마들과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대의 사명이 가볍단 의미는 아니나, 그들 또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단 이야기다.”
“…죄송합니다.”
“사과는 내게 할 필요 없다. 나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으니.”
그래도 정신은 바짝 들겠지. 나는 부디 그러길 바라며 그를 데리고 나갔다. 하얀 입김이 두 줄기 피어올랐다.
“도리어 사과를 해야 한다면, 그건 내가 되어야 하겠지.”
그와 동시에 나는 사파이어 경과 나눴던 대화를 비슷한 형태로 반복했다. 사파이어 경처럼 내가 사과할 필요 없노라 말하던 이는 부탁을 빙자한 내 압박에 끝끝내 고개를 숙였다.
“저는, 배신자의 종자였습니다.”
다만 숙인 고개만큼이나 그의 반응은 많이 달랐다.
사파이어 경이 굳건한 표정으로 내게 긍정을 표해 주었다면 즈랴 경은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길 꺼냈단 소리다.
“그자에게 검을 사사하고 그자에게 기사로서의 몸가짐을 전수받으며… 그렇게 세월을 보냈단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태도를 막아서는 대신, 조용히 경청했다. 추위 때문인지 즈랴 경의 몸이 조금씩 떨려 오기 시작했다.
“존경했는데. 정말로 존경했는데…….”
나는 말없이 외투를 벗어 그의 몸에 둘러 주었다. 나보다 작기도 작고, 예전에 비해 살이 많이 내린 상태라 충분히 덮을 수 있었다.
“기사가 된다면, 꼭 저런 기사가 되자고 다짐할 만큼 좋아했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은 추웠다. 떨어지던 물방울이 그대로 얼어붙어 눈송이가 되었다.
“…제게, 배반자가 방해하지 않도록, 또 이 여정이 성공리에 끝나도록 도와 달라 말하셨지요.”
이 눈송이는 언제쯤 녹을까. 이 추운 땅에서 녹기는 할까. 나는 눈가를 쓱쓱 닦고 고개를 들어 올리는 어린 기사를 보았다.
“반드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다신 실수하지 않을게요.”
눈송이는 녹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새로운 눈이… 혹은 불어오는 바람이 그것을 덮고 또 먼 곳으로 보내 버릴 테니까. 그렇게 잊힐 것이니까.
“그래. 믿겠다.”
나는 어린 기사의 기상을 천천히 지켜보았다.
* * *
“즈랴 경은 1시간 정도 쉬기로 했다.”
“내게 그것을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다.”
“내가 말해 주고 싶어서 말해 주는 것뿐이다. 흘려들어도 된다.”
“…….”
나는 손끝이 잠시 멈춰 있는 이를 보다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먹으라고 사 온 간식이다. 왜 안 먹지?”
“불결한 자들이 앞다투어 건드린 것들이다. 그런 비위생적인 것을 내 입에 넣고 싶지는 않군.”
“그렇군. 그럼 다음부턴 그대의 것은 별도로 사 오겠다.”
“…마음대로.”
거절해도 내가 사 오리란 걸 학습한 것인가. 그녀는 한숨과 함께 선택권을 내버렸다. 현명한 행동이었다.
“그보다 미끼에 대한 후기는 어떻지?”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더군.”
나는 악마들이 우다다 몰려오던 광경을 건조하게 묘사했다. 모든 걸 들은 계명이 잠깐 고민한 끝에 답을 내렸다.
“악마에 대한 통제권을 반쯤 포기해 버린 듯하군. 아니, 이 경우엔 놓아 준 것인가.”
“무슨 의미지?”
“악마들에겐 복종이란 개념이 희미하다. 동족의 상위 존재가 갖는 압도적인 무력과 그 무력에서 나오는 공포. 오직 그런 것들에만 반응할 뿐.”
“그건 알고 있다만, 그게 오만의 통제권과 무슨 상관이 있지?”
“오만은 엄밀히 따졌을 때 악마가 아니다. 마기를 사용할 수 있고, 그 사실로 하여금 자신의 종을 악마와 혼동시킬 수 있는 개체일 뿐이지.”
음, 그건 저번에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게 왜 지금 나오─ 아?
“악마들의 동족이 아니라서… 통제권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가?”
“정확하다.”
“다만 그대 반응을 보면 본래는 통제권이 완벽했던 것 같은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완벽에 가까웠을 뿐.”
“하면 지금 더욱 불완전해진 사유는?”
“오만은 인신 공양 마법진으로 본신의 힘을 끌어올리고 있을 테다. 하나 그에게 있어 본신의 힘이란 마기가 아니지.”
“…악마가 쓰지 않는 힘을 강화한 탓에 악마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해졌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나?”
“애초에 스스로를 악마로 여긴 적도 없으니 정체성이 희미해졌다는 말에는 오류가 있겠으나… 그래. 악마로서 여겨질 점이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통제권이 상실된 것이니 꼭 틀린 말도 아니리라.”
“그렇군…….”
나는 내가 이해한 것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음에 안도했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럼 결전이 있는 날까지 악마를 싹 쓸어 버릴 수도 있겠군?”
“해서 나쁜 일은 아니리라. 다만 그대, 마법진은 다 외우고 하는 말이겠지?”
아, 제발. 나는 갑자기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진짜 너무해.
“현실을 알았다면 여기에 마력이나 불어넣도록. 미끼는 적절히 개량해 보겠다.”
“…이건 또 뭐에 쓰는 거지?”
“본인의 마력으로 제작한 포션만이 부작용 없이 음용 가능하단 판단이 내려졌다.”
“그런가.”
그런 거라면 협력해야지 뭐 어쩌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명이 건네준 물건에 마력을 주입했다. 드드득. 구 형태의 물건이 주입되는 마력에 따라 조금씩 강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