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36)
436화 지금 선언하라 (9)
“근데 꼭 포션 형태여야만 하나?”
“무슨 의미지?”
“전투 중엔 무언갈 섭취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 않나. 액상이면 특히 더 그럴 테고.”
배터리 자체를 쥐고 마력을 원하는 대로 뽑아 쓰는 게 불가능한 일이노라 판명 난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포션 자체를 꼭 액체 형태로 만들 필요도 없지 않나. 단환 같은 형태면 섭취가 좀 더 편할 텐데.
“참고하지. 하지만 고체화 한다고 하여 불편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째서?”
“체력 포션의 부작용의 사유가 되감는 데 있다면, 마력 포션의 부작용은 주입되는 마력이 그 자신의 것이 아니란 것에 있으니. 하나 근본된 까닭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많은 양의 마력이 한 번에 몸에 주입되며 부하되는 이유도 있지. 그리고 고체는…….”
“액체보다 밀도가 높지. 그래. 부작용이 더 커질 거란 건 알아들었다. 이건 어쩔 수 없겠군.”
“…방도가 아예 없진 않다. 섭취의 편의성도 중요한 문제기는 하니, 액상 포션과 고상 포션을 둘 다 준비토록 하겠다.”
“부작용이 더 커질 거라 하지 않았나?”
“밀도가 높아져서 부작용이 커진다면, 그 크기를 줄이면 될 일이다.”
“아, 하긴, 그렇겠군. 하면 아예 먹기 편하도록 한 입 크기 이하로 조절하는 건 어떻겠나?”
“한 입 크기라… 회복되는 양은 좀 적겠으나, 싸움 중이라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고려하겠다.”
나는 그쯤 되어 환하게 밝아진 구체를 들어 올렸다.
“이건 언제까지 넣어야 하지?”
“…마력이 얼마나 남았지?”
“사분지 삼은 남은 듯하다만.”
“거기까지.”
내 대답에 계명이 징그러운 무언가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서 구체를 돌려받았다. 내가 뭘 했다고. 조금 상처였다.
“나머지는 여기다 담도록.”
“방금 담은 양만큼 담으면 되나?”
“그래.”
그래도 계명이 새로 가져다주는 것들은 순순히 받아 들었다. 내가 사분지 삼이란 발언을 해서 그런지, 가져온 구체형 아이템은 딱 3개다.
“내 마력 전부를 긁어 가고 싶은 거라면, 두 개 더 가져오는 게 좋을 거다.”
“…회복량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군.”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밸런스가 맞춰지는 이 세상도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나는 순순히 아까 넣은 만큼의 마력을 각각 불어넣었다. ‘각각’이라 하는 이유는 생각해 보니 사람 손은 하나가 아닌 두 개여서다.
“하나면 될 것 같기도 하군.”
“하…….”
두 개를 동시에 채우니 걸리는 시간도 1/3으로 줄어들었다. 그 말은즉슨, 소모와 동시에 회복되는 마력량이 그만큼 줄었단 소리고.
내가 그런 의도에서 한마디 하자 계명은 말하기도 싫다는 듯 숨을 뱉었다.
“마력이 회복될 때마다 이곳에 방문하여 마력을 저장하고 가도록.”
“그러지.”
이것도 이제 거의 다 찼네. 나는 마지막 하나와 계명이 가져다준 새로운 하나를 양손에 쥐었다.
“이것은 결전과 관계없는 이야기다만, 즈랴 경과 대화를 제대로 해 보는 게 좋을 거다.”
드드득. 주입될 때마다 약하게 불어나는 빛은 내 마력의 종류 때문인지 색이 좀 탁해 보일 때가 있다. 내 눈꺼풀이 반쯤 내려왔다.
“쓸데없는 소리를─”
“정말 쓸데없다 여겼다면, 그대는 이 말에 반응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
그래도 빛은 빛이다. 그것의 색이 좀 어둡대도, 명확히 세상을 밝히지 못한대도. 모든 걸 삼키는 어둠과는 결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대에게 혹은 즈랴 경에게, 이번 싸움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면 끝의 끝에서 후회할 바에야… 미리 털어놓는 게 속 시원하지 않겠나?”
나야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계명과 즈랴 경은 좀 다르다. 그들은 대화할 수 있다. 그것이 설사 약속된 파국일지라도, 속내를 말했을 때 거짓 취급 당할 일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이야기 나눌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것은 그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그래, 그것도 사실이지.”
뭐, 당사자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지켜보는 입장에서 한번 꺼내 본 말이다. 강요는 아니었으나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
아무튼 이걸로 마지막도 끝이다. 나는 마력이 쑥 빠져나가 허한 기분을 느끼며 계명이 있는 자리를 떴다. 그녀와의 볼일은 더 없으므로 마땅한 선택이었다.
“마이스터.”
“…왜.”
“우리 할 이야기가 있지 않나?”
별개로 마이스터 네 이놈. 내가 말 좀 곱게 하라 했을 텐데!
나는 마이스터의 등짝을… 때리지는 않고 말로 다다다 쏘아붙였다. 마이스터가 잔소리를 듣는 아들내미처럼 귀를 막으며 마법사들 사이로 도망쳤다. 아주 미운 오리 새끼가 따로 없었다.
* * *
“이야아, 이거 좋네.”
마도구를 품 한가득 집어 가려는 미스틸테인의 모습에 크러셔는 눈살을 찌푸렸다. 모험가보다 용병이 돈을 더 밝히는 성향이 있긴 하지만, 저 정도로 돈에 미친 놈은 또 처음이었던 까닭이다.
“이것도, 이짝에 것도 가져가도 되는 거요?”
“저, 그렇게 많이 가져가시면…….”
“잇, 나가 용사님이랑 함께하는데.”
“야, 돈에 미친 새끼. 악마추종자로 몰리기 전에 적당히 해.”
애초에 여기 전시된 물건들은 마역에 가져갈 용도의 것도 아니다. 가장 위험한 곳에 설 그들을 위한 무기 및 소모품들은 실시간으로 개발 및 개량되는 상황이니 당연하다.
“이거, 동종업자 간의 살피주는 게 너무 읎지 않겄소. 내 한 몸 안위를 위해 이리 챙기는 것도 아닌디.”
“네 안위가 아니면 뭐에 쓸 건데?”
“거 뭐고. 싹바가지 읎지마는 그래도 가족이긴 한 우리 아 좀 챙기 주고… 용돈 벌이도 좀…….”
크러셔는 그쯤 되어서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건 곤란합니다.” 그녀를 대신해 말해 줄 사람이 왔으니 당연했다.
“저희가 용사님을 비롯한 그 일행분께 최대한의 대접을 드리려 하는 것은 맞지만, 되팔이까지 용인해 드리는 건 별개의 문제거든요.”
보라뱀 마탑주의 담담한 발언에 미스틸테인은 잠시 실실 웃다가 주섬주섬 수집한 아이템들을 깔끔히 포기했다. 선 위에서 하는 줄타기만큼은 기가 막히게 하는 인간이었다.
“근데 이것 좀 보소, 나으리. 그놈의 사탄잡이란 건 은제 출발할지도 모르고, 그동안 함부로 자리를 오래 비워서도 안 되구만. 그럼 내는 그 기간 동안 하릴없이 팽팽 놀아라 이 말이오?”
“저희는 일행분의 일정을 강제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아따 거, 단기 의뢰를 업으로 삼는 저짝이랑 내랑 같나. 내는 우리 아랑 하는 호위가 전문이란 말이제.”
“잠시 단기 업무 전문으로 전환하시면 되겠군요. 마역에 진입하여 악마를 사냥하는 일도 따지자면 단기 임무니까요.”
“거참, 매정도 하구만.”
아무튼 보라뱀이 왔으니 저놈의 지랄도 좀 줄어들겠지. 크러셔는 마역에서 쓰지는 않을 것이나, 순찰을 갈 때는 쓸 만한 소모품─발열 팔찌─등을 골라 품에 슬쩍 넣었다.
보라뱀의 시선이 잠깐 이쪽에 닿았지만 다행히 뭐라 하진 않았다. 이 정돈 허용선이란 의미였다.
“맥이야 할 군식구가 많은 사람 사정도 좀 봐주─”
“그렇게 돈이 급하면, 같이 순찰을 돌면 되겠군.”
그러다 잠깐. 입구에서 팔짱을 낀 채로 있던 베르세르크가 척척 다가왔다.
“아니, 그건 시간 및 수고 대비 비용이─”
“걱정 마라. 마역에 있는 모든 악마들을 때려잡으면 그 어떠한 단기 의뢰보다도 더 많은 황금이 수중에 들어올 테니.”
“아니아니, 그게 뭔 소리─”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그녀는 돈에 미친 새끼에게 다가가 그대로 놈의 뒷목을 잡고 들었다. 고양이가 제 새끼를 물고 들어 올리듯 집어 올려진 사내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굉장히 볼만한 표정이었다.
“괜찮겠어? 이번엔 반반머리도 없는데.”
“글쎄. 그의 빈자리가 무섭나?”
“설마.”
“자, 자, 잠만. 증말 뭘 할라카는 기요!?”
“돈 좋다며? 시간 대비 최고의 일터로 데려가 줄 테니까 가만히 따라오라고.”
“아니, 내는─!!”
그보다 반반머리가 빠진 채로 하는 마역 사냥이라. 제법 괜찮은데?
저번엔 규격 외의 강자, 모험가 때문에 제대로 된 사냥도 하지 못했다. 안전하기는 했지만 되레 그렇기에 싸움의 격렬함과 치열함이 덜 느껴졌단 거다.
하나 그가 빠진 채로 몰려오는 악마들을 상대하게 된다면…….
“이번엔 내가 이겨.”
크러셔는 벌써부터 흥분에 떨리는 몸을 두고 입꼬리만 슬쩍 올렸다. 평상시 표정이랄 게 없다시피 한 그녀로선 최대의 의사 표현이었다.
“과연 그게 가능할지.”
그에 맞춰 대부분 심드렁한 표정이던 투사가 씨익 웃었다.
“놔, 이거 놔 보이소!!”
그녀 손에 잡혀 덜렁덜렁 들려가는 사내놈만 빼면 아주 마음에 드는 긴장감이었다.
* * *
“아이 씨, 그 인간은 맨날 나만 부려 먹어.”
속죄하는 요정이 그를 고집하는 이유야 이제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맨날 심부름하는 입장에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데스브링거는 신전에 갖다주라는 물건을 머리에 얹은 채로 스카일라에게 온 두 번째 편지를 북북 찢었다.
‘감기는 다 나았고 네가 길 잃을까 봐 조치한 거였다.’ 그리 적혀 있는 종잇장이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문장 옆에 새겨진 웃는 그림이 공연히 열받았다.
“아오, 이 인간은 진짜.”
감기가 다 나은 건 다행이지만 짜증나. 데스브링거는 쪽지를 곱게 접어 품에 넣었다. 딱히 소중해서는 아니고, 불태우려면 불이 있는 곳까진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응?”
그런데 그가 신전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심각한 얼굴의 이단심문관들이 우르르 나왔다. 하나같이 험악하단 말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심문관 나리?”
“……?”
문제는 그 사이에 다니엘도 섞여 있단 것이라. 데스브링거는 무심코 그를 불렀다.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다니엘이 고개를 확 돌려 자신을 부른 자를 확인했다.
“아.”
그리고 그는 자신을 부른 게 데스브링거인 걸 확인하자마자 표정을 풀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이전에 살기등등했던 분위기가 단번에 사라지진 않았다.
데스브링거의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건 태생이 뒷골목인 자가 신전의 무력이자 폭력의 상징인 이단심문관을 마주했을 때의, 정말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여긴 무슨 일입니까.”
주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무리에서 빠져나온 다니엘이 그에게 다가왔다. 나머지 이단심문관들은 다니엘을 기다려 주지 않고 먼저 어딘가로 향한다.
“아니, 그. 마탑주님이 심부름을 시켜서. 그보다 뭡니까요?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했어요?”
“으음.”
데스브링거의 질문에 다니엘이 한참 고민했다. 그건 그만큼 그가 품고 있는 비밀이 거대한 사항임을 증명한다.
데스브링거의 목울대가 상하 운동을 했다.
“…원래라면 기밀 사항이지만, 당신이라면 괜찮겠죠.”
“아니, 중요한 거면 저는 괜찮습니다요.”
“어차피 대리자님께 사실을 전해야 하기도 했으니.”
“아니, 진짜 저는 괜찮다니까요.”
“하얀까마귀가 실종되었습니다.”
“끅.”
알고 싶지 않다 했는데도 기어코 말하는 저 심보를 보아라. 본인이 전할 시간 없다고 나 시키는 거지 또. 근데 이런 와중에 내용은 진짜 시간 없을 만한 내용이잖아.
데스브링거는 그런 모든 심정을 담아 딸꾹질을 했다.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 그 인간이 무슨 능력으로요!?”
그가 듣기로 하얀까마귀는 마탑과 신전이 힘을 합쳐 만든 특수 감옥에 투옥되었다 들었다. 그런데 진짜 어떻게?
“…이쪽에선 악마가 관여한 것으로 추측 중입니다.”
“예? 신전 한복판에서요?”
마탑 대신 신전 쪽에 감옥을 마련한 것도 악마와 또 내통할까 봐 걱정해서가 아니었나? 그걸 또 뚫어 냈다고? 이쯤 되면 그냥 그 양반은 가둬 두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게 답이었던 거 아냐?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니아니, 탓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요. 악마가 무슨 용을 써서 신전 안에 갇힌 그 양반을 빼낸 건데요?”
“…….”
데스브링거는 어이가 나간 채로 다니엘에게 재차 물었다. 이 부분도 제법 중요한 이야기인지 다니엘이 말을 잠시 아꼈다. 뭐, 이미 탈출 사실을 알린 시점에서 이것마저 비밀을 지켜봐야 별 의미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끝내는 입을 열어 주었지만 말이다.
“얼마 전… 종탑 몇 개가 박살 난 때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죠?”
“그때 탈출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신전 사람들의 눈을 속일 만큼 정교한 대체품을 남겨 둔 채.”
“…예?”
아니, 그거 2주 넘게 지난 일이잖아. 하얀까마귀가 탈출한 게 그때라고?
데스브링거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