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42)
442화 지금 선언하라 (15)
“…제게 가 보라고 한 마법사가 저 여자였습니까?”
자르딘은 연구실에 들어선 순간, 보이는 두 얼굴에 할 말을 잃었다. 늦은 시각인 만큼 사람이 몇 없을 것은 알았지만, 설마 저 두 사람만 있을 줄은 또 몰랐다.
그의 시선이 사파이어 수석기사님과 배신자를 번갈아 살폈다.
“…다른 마법사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라, 부득이하게도 그리되었다.”
자르딘은 모험가의 말이 상냥할지언정 진실이 아님을 눈치챘다. 기실, 모험가 본인도 그 핑계가 썩 설득력 있지 않음은 아는 듯싶었고.
“…그렇군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자르딘은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마법사들이 단체로 알아낸 것이건 배신자 홀로 눈치챈 것이건, 그가 악몽을 꾸었던 건 사실이지 않은가.
하물며 모험가는 그런 그를 위해 이 새벽, 복도를 내달려 그의 방까지 찾아와 준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감사를 표하지 못할망정 원망을 전가하는 건 옳지 않다. 그가 부러 호도한 진실이 실상 그를 배려하기 위함이었기에 더더욱.
“후우.”
하여 자르딘은 몇 번 숨을 고르며 분노를 다스렸다.
“신입.”
그리고 그가 평정을 되찾았을 즈음, 사파이어 수석기사님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배신자가 말을 건 것보단 훨 나은 일이었다.
“악몽을 선사하는 악마가 침입했다고 전해 들었다. 사실인가?”
“…예, 아마 맞는 것 같습니다.”
기실 악몽을 워낙 자주 꾸던 그였기에 이번 악몽이 악마의 탓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를 그저 우연이라 치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니.
“악몽을… 꾸기는 했습니다.”
그는 악몽을 꾸었다는 사실 자체를 순순히 인정했다. 꿈의 내용까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겼기에 그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똑똑.
그러다 잠깐, 아까부터 침묵만을 지키던 배신자가 자신 앞 책상을 두드렸다. 자르딘은 울렁거리는 속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이쪽으로.”
“내가 왜─”
그는 반사적으로 거부를 하려다, 여기 오는 길에 들었던 말을 떠올리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검사가 필요하댔지. 악마가 다녀간 부작용이 뭔지 모르니까,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저 배신자에게 혹시 모를 검사를….
“즈랴 경.”
감정적 거부감에 입만 앙다문 채 가만히 있으려니, 옆에 있던 모험가가 그를 불렀다. 독촉이라고 하기엔 부드럽고, 그를 이 상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라기엔 딱딱한 부름이었다.
“괜찮다.”
그래도 그 덕에 망설임은 사라졌다. 자르딘은 책상을 끼고 배신자 앞에 섰다. “팔.” 건조한 낱말 하나에 그의 심장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뭘 하려는 거지?”
더불어 자르딘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말하기엔 우스운 이야기이나, 모험가가 이 자리에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신체에 남은 마기의 잔흔을 뽑아낼 것이다.”
아무렴 그가 없었다면 이 자리엔 배신자와 그, 사파이어 수석기사님만이 있었을 터. 그렇게 됐다면 그중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어 설명을 요구하거나 설명을 해 주는 등의 친절을 베풀진 않았을 것이다.
배신자가 뭘 하려는 건지 미치도록 불안하고 궁금해도, 그것을 해소하지 못한 채 침묵만을 이어 갔을 거란 소리다.
“그게 끝인가?”
“그럴 리가. 뽑아낸 마기의 잔재로 이번 일을 벌인 악마를 추적할 것이다. 놈들도 지성이 있다면 진즉 자리를 옮겼겠으나, 하지 않음보다는 의미 있으리라.”
“그렇군.”
반면 이 자리엔 운 좋게도 모험가가 있었고, 그는 그들이 차마 물어볼 수 없는 것들을 대신 물어봐 주었다. 그가 진정 그들을 배려하여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저 본인이 궁금했을 뿐인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감사한 일이었다.
팔을 요구한 이유를 알게 된 자르딘의 손가락이 몇 번 쥐어졌다 펴지길 반복했다.
“끝났다. 돌아가도 좋다.”
그사이, 팔뚝에 무언가를 대고 이리저리 조작하던 이가 기구를 떼 내었다. 마기의 잔흔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쉽게 뽑히는가 싶긴 했지만, 자르딘은 일단 팔을 거두고 보았다.
기구가 닿았던 팔뚝이, 그리고 관련도 없는 심장이 화끈거렸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고작 그거면 되는 건가?”
“그럼 무엇이 더 필요할 거라 생각하는가?”
“아니… 육신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었나?”
“그것이라면 이미 끝났다.”
그가 그 기묘한 감각에 눈살을 찌푸리는 동안, 배신자는 소리 없는 걸음으로 뒤쪽 책상까지 물러갔다. 길쭉한 책상에서는 수많은 기구들이 쉴 새 없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다.
“…그것참 빠르군. 그래서, 문제는 없는 건가?”
“잔재가 아직 몸에 남아 있으니, 악몽을 추가로 더 꿀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 그 외의 문제는 없으리라.”
“그건 문제가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 안에 방금 사용했던 기구를 끼워 넣은 이가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오래전 기사들에게 허락되었던 성내 서가에서 보았던 것과 썩 비슷했다.
“마법적으로 해결하기엔 오래 걸리는 일이다. 정 걸린다면 그대가 사제 앞까지 데려다주도록.”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고…….
“전, 괜찮습니다.”
자르딘은 샛길로 새던 상념을 겨우 현실에 고정하며 다급히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악몽을 피하자고 신전까지 가는 건 기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했다. 오늘 낮의 일로 곤할 사제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정말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그대가 그렇다면 할 말은 없다만.”
왼쪽 눈을 게슴츠레 뜬 모험가가 배신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악몽 자체를 방치해도 되는 건가? 안 되기에 나를 그에게 보낸 것 아니었나?”
“악몽 자체는 별 의미 없다. 하나 악몽 사이로 악마가 숨어들어 기억을 엿보려 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지.”
“…그래서 그를 깨우라 한 것이군.”
기억… 잠깐, 기억을 엿본다고?
자르딘은 모험가 덕에 듣게 된 사실을 듣고 잠시 얼굴이 파리해졌다. 하필 그 순간을 악마에게 보였다는 것도 수치스럽지만, 자칫했다가는 중요한 정보가 누설될 수도 있었음을 깨달은 까닭이다.
“신입.”
“…누출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파이어 수석기사님도 이 일의 심각성을 지금 알았는지, 그의 곁으로 슬쩍 다가왔다. 무엇을 위해 왔는지는 볼 것도 없었다.
“가슴을 찔렸던 순간만 꾸었을 뿐이니까요.”
이것만은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르딘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그가 꾼 꿈을 이야기했다. 그의 비참함보다 정보 유출을 막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수석기사님이 이를 악 다무는 것이 설핏 보였다.
“하지만 제가 꾸는 꿈의 내용과 상관없이 기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면…….”
별도로 그는 자신 때문에 얼마만큼의 정보가 새어 나갔을지 불안해하며 손을 죔죔했다. 늦게 합류했고, 직종이 다른 만큼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완성된 아이템이나 대략적인 계획은 들은 상태인데, 그것들이 전부 발각되었을까?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하는 거지?
“계명.”
“그 악마가 볼 수 있는 건 숨어 들어간 꿈의 내용뿐이다. 기억을 들춰 보는 것은 다른 영역의 일이니, 정보가 담긴 꿈을 꾼 것이 아니라면 악마가 알아챈 것은 없으리라.”
정말 다행스럽게도, 악마에게 그런 능력까지는 없는 듯했다. 불안에서 풀려난 자르딘의 어깨가 땅으로 꺼지듯 내려앉았다.
“그건 그나마 좋은 소식이군. 놈들이 계속 이런 일을 시도한다면 곤란해지겠지만…….”
그간 모험가는 조금 고민하는 기색으로 팔짱을 꼈다.
“계명, 악마가 꿈에 개입하는 걸 눈치챌 방도가 따로 있나?”
“관련 마법이 있다. 알고 싶다면 알려 주겠으나, 권유하진 않으리라.”
“어째서?”
“분노의 그릇인 그대를 건드리느니 그 옆의 인간을 노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기에.”
“내겐 의미 없다는 건가. 하나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겐 대비가 필요하지 않겠나?”
“그럴 필요 없다. 주요 인사에겐 이미 다 조치를 취해 두었으니.”
“그런가.”
모험가가 잠시 눈을 내리깔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이어 향하는 모험가의 시선은 자르딘 자신 쪽이다. 그의 시선이 모험가와 살짝 얽혔다가 금방 떨어졌다.
“그럼 내가 깨우기도 전에 즈랴 경이 먼저 일어나 있던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래.”
다만 모험가의 말에 답변하던 이가 대답 전 잠시 멈칫거린 듯하다면 그건 기분 탓일까?
자르딘은 느릿하게 긍정한 배신자를 좀 더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것이 무엇을 찾고자 함이었는지는 그도 몰랐다.
“알았다. 그럼 이 부분에 대해선 더는 걱정 안 해도 되겠군.”
그렇지만 모험가가 그리 말하며 돌아서려 했을 때, 배신자가 새로이 덧붙이는 말은 똑똑히 들었다.
“잠깐, 갱신이 필요하니 남아 있도록.”
“아… 소모 형식의 마법인가?”
“그래.”
“내가 필요한 건… 마력 때문이겠군.”
“한 사람은 내가 맡겠다. 보고 따라 그리도록.”
“그래.”
모험가를 붙잡아 세운 배신자는 곧 그에게로 다가왔다.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준비임은 알았으나 자르딘은 또 한 번 몸을 떨고 말았다.
배신자가 그의 정면에서 마력을 일으켰다.
“회로가 복잡하군. 아홉 개까진 알아보겠는데, 대체 몇 개의 마법이 중첩된 거지?”
“열네 개.”
그런데… 이렇게 길고 복잡한 마법진을 배신자는 언제 그에게 새긴 거지?
“정신계라 그런지 복잡하기 짝이 없군.”
그들은, 아니 적어도 그는 이곳에 온 직후 이런 마법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모두에게 걸려면 시간 좀 쓰였을 것 같은데… 언제 걸었지?”
그는 5분에 걸쳐서 마법을 마친 배신자를 응시했다. 상대도 구태여 그의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남을 깔볼지언정 오는 도전을 막진 않았던 그 언젠가처럼.
“그대가 없던 순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신자가 그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던 그때, 그녀가 “그렇지 않느냐?”란 말도 했었던가?
* * *
“불이야!!”
한편, 기름에서 시작된 불길이 집을 삼키고 그 주변의 건물마저 탐내려 드는 그 무렵.
“어서 물을 뿌려!”
“사람들 깨워! 깨우라고!!”
“불이야!! 불이 났다고!!”
사람들은 화마를 피해 도망가거나 불을 끄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려 들었다. 개중에는 세간살이 일부라도 건지겠답시고 불이 옮겨붙는 집에 도로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엄마!”
“이리야! 이걸 들고 나가! 어서!”
이리야의 집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하필이면 불난 집 바로 옆자리가 그들의 집이었기에 심정은 더욱 다급했다.
어머니의 호통에 이리야는 몽롱한 정신에도 물건을 바리바리 집어 집 밖으로 나갔다.
“여보!”
“더 가져가야 할 게 뭐야!”
“그, 이불! 이불을 챙겨 나오세요!”
“알았어!”
다만 이리야가 바깥으로 나갈 때, 아버지는 반대로 집 안을 향해 움직였다. 돈이나 귀금속, 옷을 우선해 챙긴 이리야의 어머니가 가리킨 것들을 가지고 나오기 위함이었다.
“크윽!”
하지만 이미 불은 옮겨붙을 대로 옮겨붙어, 원하던 것들을 챙기기는 썩 어려워 보였다. 이불 같은 천 종류는 쉽게 타는 편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젠장.”
결국 그는 집에 얼마 없는 금속제 물건만이라도 건지고자 부엌으로 향했다. 부지깽이나, 식칼이나. 당장 떠오르는 물건이 딱 부엌에 쏠려 있던 탓이다.
꿈틀, 꿈틀.
그런데 그런 그가 가벽 하나를 통과하여 부엌으로 들어섰을 때, 부엌에 있는 화덕 안쪽에서 검은 무언가가 꿀렁꿀렁 튀어나왔다.
“……?!”
그것의 외관은 꼭 그을린 살덩이 같기도 하고 잿가루를 뭉친 것 같기도 하여, 정체가 퍽 오묘했다.
“뭔─”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저것의 정체가 악마든, 그 외의 것이든 적어도 일반인인 그가 가까이해서 좋지는 않을 거라고.
“쿨럭, 빌어먹을!”
하여 이리야의 아버지는 짜증을 한껏 부리며 겨우 들어왔던 부엌을 나가고자 했다.
꼭 저 검은 덩어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부엌 상공에 연기가 꽉 찬 상태라 그는 반드시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콰득!
“……?!”
하나 그가 몸을 돌려 집 밖으로 나가려던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젖은 천 조각으로 입을 막고 있던 그의 시선이 다급히 아래쪽을 향했다.
“…어?”
재가 치덕치덕 붙은 살덩이가 길게 늘어져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것도 꼭… 사람의 팔과 손을 따라 한 형태로.
“이, 괴물 새끼가─”
안 그래도 급한 상황인데 이 악마인지 뭔지 모를 것은 왜 그를 붙잡는가. 이리야의 아버지는 등골이 선득한 상태로 빠르게 발을 휘저었다. 1초라도 빨리 저 정체 모를 것을 떼 내고 도망가기 위함이었다.
콰드득.
그러나 살덩이는 그에게서 떨어지는 대신 도리어 새로운 팔을 만들어 내 그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가 몸을 흔들고, 주변에 있던 집기 중 아무거나 붙잡아 살덩이를 퍽퍽 내려쳐도 그 움직임은 멈추질 않았다.
“이 개─”
결국 이리야의 아버지가 외부의 힘이라도 빌리고자 그 상태 그대로 집 밖을 향해 나가려던 순간. 콱! 머리까지 올라온 살덩이가 무게를 이용해 그를 넘어트렸다.
“미카르!!”
“마샤!”
심지어, 그의 아내는 그가 걱정된 듯 막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리야의 아버지는 치밀어 오르는 공포와 불안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도와 달라고 할까, 아니면 도망치라고 할까. 그의 본능이 찰나간 치열한 고민을 했다.
“마─”
하지만 그 고민이 무용하게도 그에겐 선택지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살덩이의 몸체가 쩍 갈라지더니, 그대로 거대한 입이 되어 그의 머리를 삼켜 버렸으므로.
“미카르!!”
집의 지붕이 무너지며 살덩이와 그의 몸을 덮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