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44)
444화 우리가 복될 것이오 (1)
“시발!”
“끄악!”
“허억!”
데스브링거는 상스러운 욕설과 함께 부정검을 내던졌다.
이유라고는 별것 없었다. 2주, 무려 2주를 수색했는데도 수확이 없다는 게 짜증의 전부였다.
혹은 겁도 없이 사람을 추행하려던 놈이 시야에 들어 버렸다는 것도 이 분노의 원인일 수 있고.
“썅, 진짜…….”
“흐, 흐으으으.”
하나 그런 그를 두고 너무 분노가 많다 말할 수는 없으리라. 그의 수색은 단순히 돌아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탐문하고 마탑에서 얻어 온 아이템까지 아낌없이 써 가며 한 것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뭐가 걸릴 만한데…….”
부정검을 통해 무언갈 본 것도 없고, 아이템을 통해 발견한 것도 딱히 없다. 이쯤 되면 이게 운 문제인지 실력 문제인지 분간도 안 갈 정도였다.
“하.”
그래도 영향을 끼친 건 두 쪽 전부겠지.
데스브링거는 차마 후자만의 문제라곤 여기고 싶지 않아서, 괜히 자신의 불운을 탓했다. 사람 찾는 데 있어 행운이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기에 마냥 자기합리화만은 아니었다.
데스브링거의 손이 벽에 박혔던 부정검을 빼냈다. 추행당할 뻔했던 이는 칼이 날아오고, 추행범이 무력화된 시점에서 기겁하며 도망간 지 오래다.
“흐, 흐어어어.”
대신 검에 의해 강제로 벽에 박혀 있던 추행범은 칼을 뽑자마자 벽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목에 칼을 꽂은 것도 아니고, 목에 두른 스카프만을 맞췄을 뿐인데 뭐 이리 쫄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야.”
물론 칼이 모가지 옆에 꽂혔으니 가슴이 좀 서늘하기야 하겠지. 하나 뒷골목 인간이 이리 담 작아서야 쓰나.
데스브링거는 무너진 인간을 발로 차며 말을 걸었다. 그만 아니었으면 범죄를 저질렀을 놈이니 별로 불쌍하지도 않았다. 퍼억! 쓰러진 이가 악 소리를 내었다.
“수상한 거 본 적 있냐?”
이 새끼가 일어나질 않네. 빡치게.
데스브링거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살짝 쪼그려 앉으며 손에 들린 부정검을 휘휘 돌렸다.
“수, 수상한 거라면…….”
“뭐든. 좀 이상하다 싶은 거 본 적 없냐고.”
다만 휙휙 돌아가던 검은 어느 순간 범죄자의 콧등에 포인트를 살짝 얹었다. 예리하기 짝이 없는 검날은 데스브링거가 손목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살갗을 가르고 피 한 방울을 터트리게 만든다.
“이, 이, 이상하다고 해도…….”
“악마나, 별 등신 같은 숭배자 새끼들이나, 바람피운 걸로 소동을 일으켜서 나를 혼동시키게 만드는 별 잡것들 이야기 말이야. 내가 이렇게까지 말 길게 해야겠어?”
“그, 어. 아! 이, 있어요. 요즘 뒷골목에 사람이─”
“점차 실종되고 있다고?”
“예, 예.”
“그건 알고 있어. 내막은 모르지만. 넌 알아?”
모르겠지. 시발, 실종자가 하나둘 생기고 있다는 거야 진즉 깨달았지만, 그쪽도 발견된 정보가 없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데스브링거는 그 기대감 제로의 마음으로 범죄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대화가 끝내면 그대로 경비대에 갖다 놔야지. 그런 상념은 덤이었다.
“그, 그게.”
“몰라? 모르면─”
역시나 상대는 우물쭈물거렸고, 데스브링거는 “됐어.”라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입을 달싹였다.
“먹혔습니다!”
허리춤으로 회수되려던 부정검이 살짝 흔들렸다.
“뭐라고?”
“바, 밤에. 긴 머리카락의 인간이 같은 사람을 먹는 걸 보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먹었다고? 네가 잘못 본 게 아니라?”
“지, 진짜입니다! 제가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
사람이 사람을 먹었다라. 데스브링거는 찰나간의 고민 끝에 부정검을 일단 내려놓았다.
“자세히 말해 봐.”
원하던 건 하얀까마귀 쪽이지만, 실종자 급증도 악마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으니만큼 이쪽도 나쁘진 않다. 드디어 대어를 문 데스브링거의 눈이 반짝 빛났다.
* * *
대족장은 산만큼 거대해진 뱀에게 실을 엮어 만든 목걸이를 주었다. 상단에서 실을 팔던 신세에서 벗어나, 휘하에 도제를 둘 만큼 어엿한 명장이 된 아카타가 보내온 것이었다.
【굉장히 어울립니다.】
[으헤헤.]당연하지만 아이가 보내온 선물과 연속되는 칭찬에 산군은 위엄 없이 웃었다. 누가 보면 ‘저런 게 산군?’ 따위의 의문을 뱉을 모습이었다.
[내가 그렇게 웃지 말랬을 텐데.] [아잉, 조상님, 좀 봐주시라 안 캅니까. 집 떠난 아가 준 건디.] [뭐라는 거야. 웃을 때 체통이나 챙겨.] [어차피 보는 사람두 없는디 체통 챙겨 봐야… 아, 아! 몸통 물기 금지! 몸통 물기 금지!!]다만 뱀의 곁에는 그보다 조금 작은 거북이 하나가 있었으니. 한 번 걸을 때마다 땅을 울리는 거대한 괴수는 뱀의 몸통을 콱 깨물었다. 산군이 나 죽는다 곡소리를 내도 그 깨물기는 계속되어서, 결국 대족장이 나서야만 했다.
【두 분 다 그만하시지요.】
[내는 암것도 안 했는데!] [또 물어 버린다?] [으이이잉, 조상님이 후손 괴롭힌다.] [이 자식이 정말.]【아, 쫌! 이젠 진짜 출발하셔야 한다고요!】
산군이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대족장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간 너무 친해져서 생긴 결과였으나 다행히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산군도 육귀도 험험 대며 자세를 고쳤다.
[근데 너. 이제 머리 좀 굵어진다고 슬슬 대든다?]【…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늦어졌다가는 마탑주가 기다리는 일이 벌어질 테고, 육귀께도 중요한 순간에 지각하는 존재란 평판만 붙을 것입니다.】
[…하여간 말은 진짜 잘해요. 그래, 간다 가.] [앗, 출발하는 깁니까.] [그래. 나 떨어트리기만 해 봐라, 죽여 버린다.] [지 없이는 혼자서 어디 멀리도 못 가는 분이 맨날 협박만…….] [말 다 했냐, 후손?] [아. 흔들림 없는 최고의 이동 수단, 지금 출발한다 안 캅니까.]그래도 어떻게 둘이 자리를 뜨기는 했다. 대족장은 두 사람을 출격시키는 데 성공한 것을 두고 안도하며 점차 멀어지기 시작하는 뱀과 거북이를 지켜보았다.
그들이 가는 자리 자리에는 파괴의 흔적과 새로운 순이 돋는 흔적이 한가득이다.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오냐아.] [대족장아!! 내 마왕성 잔뜩 보고 오께!!]【아니, 그것까진 보지 마시고요……!!】
그리고 그 순에는 생명력이 차고도 넘치게 흘렀으니.
저들 앞에선 사막조차 결국은 숲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 * *
“태곳적 짐승이… 그러니까 산군과 육귀가 나섰다고?”
“네. 사막이 죄다 풀밭 되는 게 아주 끝내준다며 흰바람 쪽으로 연락 왔어요.”
“허어.”
2차 확장 구역이 기습을 받아 피해를 입은 후로 2주의 시일이 더 흘렀다.
그간 내 머리는 마법진으로 터졌고, 새로 합류한 대마법사까지 포함해 마법사들의 갈림은 극한에 다다라 드디어 결과물을 내었으며, 우리는 2차 확장 지구로 숙소를 옮겼다. 덤으로 사라진 하얀까마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되, 다른 곳에선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는 중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예.”
“이거 큰 도움이 되겠군…….”
“아마 그쪽도 우릴 의식하고 나선 거겠죠.”
나는 아크메이지님과 요정이 감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입에 수프를 기계적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도중에도 시선은 책에 맹렬히 꽂혀 있는 상태다.
출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니 한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모험가님, 이것도 드세요!”
“그래, 고맙다.”
결국 보다 못한 소녀가 내 숟가락 위로 채소 절임을 올려 주었다.
아니, 사실만 따지면 이제 와서 한번 해 준 수준도 아니었다. 소녀는 내가 빡공 모드에 들어선 지 닷새가 흘렀을 때부터 이렇게 챙겨 주기 시작했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었다.
“모험가님! 여기, 생선 절임도 있습니다!”
“그래, 인퀴지터 너도 고맙다.”
그렇지만 이 못난 어른은 지금 여유란 게 없어서 말이다… 역으로 챙김받는 게 부끄럽긴 하나 그것을 거부하지도 못했다.
아무렴, 24시간 중 6시간은 수면에, 2시간은 단련에, 2시간은 세 끼 식사 시간에 소모하고 나머지 14시간은 전부 공부에 투자하다 보면 사람은 이리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진짜 사람 미치기 좋은 짓거리다.
“수능 땐 어떻게 살았던 건지…….”
“수능이요?”
“아니다.”
수능 때는 2주가 아니라 반년 가까이를 이렇게 살았던 것 같은데, 그땐 진짜 어떻게 버틴 거지.
나는 소녀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멈췄던 숟가락질을 다시 했다. 그러자 인퀴지터와 소녀가 내게 건네줄 새 반찬을 찾기 위해 눈을 빛냈다.
“모험가님! 이것도 드세요!”
“엇.”
그리고 기어이 다음 타자 자리를 쟁취해 낸 건 이사른콜이었다.
“새벽에 새로 뜯어 온 거예요!”
소녀는 내 숟가락 위로 나물무침을 올려 주었다. 내가 빡공 일주일째부터 나물 먹고 싶다 나물 먹고 싶다 노래를 불렀더니 소녀 혼자서 어떻게든 만들어 온 것이었다.
대충 베르세르크와 데스브링거의 지식과 무력을 빌려, 먹어도 되는 풀을 죄 모은 다음 맛있는 것만 선별해 봤다는데… 처음 받았을 땐 감동이 과해서 눈물까지 주륵주륵 흘렸었다. 다들 당황해서 펄쩍 뛰는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지.
“그래, 고맙다.”
각설하고, 내가 검은 머리 짐승이라 그런지─지금은 반만 검정색이다만─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그 감동이 많이 희석된 상태였다. 그래서 효과가 영 좋지가 않다.
내 영혼 나간 인사가 마법진을 담은 기억과 함께 하늘로 두둥실 올라갔다.
“쟤는 왜 하루가 가면 갈수록 지능이 떨어지냐?”
“정정하십시오, 테이 군. 그는 지능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넋이 나간 것입니다.”
“저기요, 모험가님 들으시거든요?”
“쟤가 지금 말귀를 알아들을 상황 같냐?”
“…폭언은 그만두게. 그가 원해서 저런 상태가 된 건 아니지 않나.”
근데 잠깐만. 아크메이지님도 은근하게 내 지능이 낮아졌다는 걸 인정한 것 같은데.
저기요, 저는 과부하가 걸린 거지 지능이 낮아진 게 아니거든요?!
“…다 듣고 있다.”
“거봐요!”
“듣고 있었나?”
“선배, 애들이랑 놀아 주면서 너무 유치해지신 거 아니에요?”
“허허, 농담일세.”
나는 나 놀리기에 동참한 아크메이지를 보며 배신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들 진짜 너무해.
“…출발이 내일이라고 했지.”
“그렇네.”
“후. 알았다.”
됐고, 덕분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반도 비우지 못한 수프 그릇을 힐끗 보았다가, 그대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내게 반찬을 얹어 줄 순번을 두고 눈싸움을 하던 인퀴지터, 소녀가 동시에 앗 소리를 내었다.
“벌써 가는가?”
“속이 더부룩하여.”
공부할 땐 당이 땡기지만, 그렇다고 너무 속을 채우면 기분이 나빠진단 말이지. 물론 육체가 바뀌어서 그런지 그런 경향은 많이 옅어졌으나… 스트레스 앞에선 그 어떠한 몸도 무용했다.
나는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책을 쥐고 단련실로 나갔다. 출격 전 마지막으로 모든 마법진을 실사용해 볼 요량이었다.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되뇌는 것보단 실전에서 쓰는 게 더 몸에 잘 익었으니까.
“왔나?”
“…식사 자리에 왜 얼굴 안 보이나 했더니, 여기 있었나?”
한데 단련장─이라고 하지만 그냥 공터였다─로 가 보니 선객으로 베르세르크와 크러셔가 있었다.
근처가 지저분하고 서로의 몸에 멍과 먼지 자국이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한번 푸닥거리를 한 모양이다.
“마지막 대련이었다, 새 무기의 길을 들이기 위한.”
“거기에 계속 합을 맞춰 보긴 했지만, 혹시 또 모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의 행위를 단순한 호승심이나 투쟁심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아무렴, 언뜻 취미를 따르는 듯한 그들의 행동은 다르게 보면 결전을 위한 마지막 준비가 되기도 했다.
뭐어, 둘의 호전적인 성격이 이 방식에 영향을 안 끼쳤느냐면, 그건 또 아니겠지만.
“그랬나. 그래도 식사는 챙기도록. 밥을 먹지 않아서야, 힘이 안 나지 않나.”
“안 그래도 이거 끝나면 먹으러 가려 그랬어.”
“걱정 마라. 네놈보단 우리가 더 잘 챙겨 먹을 테니.”
하긴, 둘은 걱정할 필요 없을 만큼 잘 먹긴 해. 나는 인퀴지터와 함께 40인분을 해치웠던 세 사람을 떠올리며 뒷머리를 살살 긁었다.
“한데 미스틸테인은 어디 갔지?”
“돈귀신 새끼라면 부하들한테 갔다 온다더라.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거기서 먹고 자고 온다던데.”
“그런가.”
계명은 식사 대신 잠을 잘 거랬고, 사파이어 경과 즈랴 경도 강제로 컨디션 조절에 들어갔으니…….
조사라는 명목으로 며칠째 안 들어오고 있는 데스브링거만 제하면 전부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건가.
나는 그제야 우리가 정말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있다는 게 와닿았다. 오늘이 지나면 출발. 뭔가 머리가 멍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