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45)
445화 우리가 복될 것이오 (2)
“어두워서 제대로 안 보였다고? 아깐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며. 야, 장난치냐?”
“죄, 죄송합니다! 그, 그렇지만 잡아먹은 건 진짜입니다!”
“염병, 사람 빡치게 진짜. 너 죽고 싶냐?”
“허억, 아닙, 아닙니다! 당장 기억해 내겠습니다!”
데스브링거에겐 안타까운 일이나, 빌어먹을 추행 미수범은 그의 관심을 끈 것에 비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 머리카락이 길었고…….”
“어느 정도로.”
“어, 어어어어… 드, 등을 다 덮었던 것 같은데.”
“…하, 진짜 좆같게. 아니다, 그래. 그리고?”
“그, 키가 컸습니다!”
“얼만큼.”
“제, 제가 그때 엎드린 채 있었어서 정확한 수준은…….”
“시발.”
물어보는 족족 이런 답만 돌아왔으니 설명 없어도 그 수준을 알 만하리라.
“넌 감옥 가서 갱생이나 해라, 등신 새끼.”
“겨, 경비대행만은 제발! 지금 끌려가면 형벌 부대에 들어가게 된단 말입니다!”
“알 바냐? 범죄를 저지를 거면 걸리지나 말든가.”
그도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눈감아 줄 만한 일로 했어야지. 귀족을 눈앞에서 죽였는데 하인들이 그를 슬쩍 보내 준 것처럼.
데스브링거는 그런 마인드로 추행 미수범을 경비대에 던져 버렸다. 그가 형벌 부대에 들어가 최전열에 서게 될 거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사람을 먹는 사람이라…….”
대신 그는 그놈이 말했던 존재에 대해 한번 고찰해 보았다. 머리가 길고 몸 전체가 갈라지며 타인을 잡아먹는 존재라.
“악마였다면 이단심문관이 진즉 찾아냈을 텐데…….”
그러나 묘사된 꼬라지를 보면 악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악마라면 왜 이단심문관이 못 찾은 것이고, 악마가 아니라면 그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혹, 하얀까마귀와 연관된 존재인 건 아닐까? 하얀까마귀는 본래 생명 마법과 그를 통한 키메라 제작에 일가견 있는 마법사라 했으니까.
“…이거, 아무래도 어제 실종된 사람을 좀 알아봐야겠는데.”
그는 그놈에게 뜯어 놨던 사건 장소를 찾아 발을 움직였다. 그 부근을 뒤지다 보면 그쪽을 활동 장소로 잡는 놈들이 두엇 걸릴 테고, 그놈들에게 물어보면 어제 잡아먹힌 인간을 특정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이번엔 제발 걸려라…….”
그래야만 나리 가기 전에 볼 낯이 생긴단 말이다.
그는 부디 이것이 하얀까마귀와 연관된 일이길 바라며 망토를 다시 여몄다. 펄럭. 흔들리는 망토 깃 너머로는 머리를 평범하게 자른 청년이 걸어가고 있다. 전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밤색 머리카락의 청년이었다.
* * *
“욥, 괜찮습니까?”
“…아, 미안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괜찮은지 여쭈었습니다. 아침부터 유난히 정신이 없어 보이십니다.”
“으음.”
나는 내가 마법 부리는 걸 구경하러 온 티마뉴크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조작하던 마력을 거두었다. 그의 말대로 오늘은 영 집중이 안 됐다.
“마지막이라서 그런 것 같군.”
“마지막… 말입니까? 아, 하긴. 승리하고 오시면 악마들과의 싸움도 종결이지요.”
“그것도 그렇다만… 내가 말한 마지막은 조금 결이 다르다.”
싸움의 승패가 어떻게 되든 나는 집에 돌아간다. 그것만은 확정된 사실이다. 마왕을 죽이든, 마왕에게 죽임을 당하든 둘 다 나를 집에 보내 주긴 한다니까.
“내 사정에 대해선 이미 들었을 테지.”
“예, 들었습니다. 이 몸에 강령된 거라 하셨지요.”
“이 싸움이 끝나면… 난 강령이 풀리며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그러고 보니 원래 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못 들은 것 같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조금 진솔하게 말하면 맹한 티마뉴크의 표정을 보며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곧 튀어나온 건 메이플 시럽으로 만든 막대 사탕이다. 티마뉴크가 익숙하게 받아먹었다.
“이 세계는 아니다.”
“그렇군요… 다른 세계가 실존한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마계 외의 세계 말입니다.”
“나도 이 사건으로 알게 됐다.”
“그곳은 어떤 곳입니까?”
“여기보단 싸움이 덜… 한 곳이다.”
나는 심심하면 불거지는 인터넷 속 전쟁을 떠올리며 말을 흐렸다. 대놓고 무기를 겨누지는 않으니까… 덜하다고 해도 되겠지?
“살기 편합니까?”
“편의성에 대해선 더 발달하였으니… 그렇지만 개개인의 고충이 있는 건 그곳이나 이곳이나 매한가지다.”
“그렇군요.”
혀로 사탕을 할짝거리던 티마뉴크가 잠깐 말을 끊더니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계속 서서 지켜보더라니 슬슬 다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바로 가시는 겁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마왕을 죽이는 즉시 강령이 풀리게 되는 건지, 아니면 약간의 시간이 주어질는지.”
안 그래도 조그만 티마뉴크가 쪼그려 앉으니 눈높이가 너무 안 맞는다. 나는 다리를 길게 뻗는 식으로 철푸덕 앉았다.
“욥은 어느 쪽이길 바랍니까?”
“글쎄…….”
죽임당하여 돌아가게 되는 것이면 애초에 선택지가 없으니 배제하고. 만약 사탄을 죽이는 것으로 내게 선택지가 생긴다면…….
「전 얼마만큼 남아 계셔도 상관없어요. 아니, 물론 당장 돌아가고 싶으시겠지만…….」
나는 무엇이든 좋다며 말하다가 황급히 선회하는 소년의 목소리를 들으며 숨을 후 뱉었다.
“오래 남아 있을 의향은 없다만, 모두에게 인사 정도는 하고 싶군. 특히 이곳에 남는 이들을 다시 만나,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
“…그렇습니까?”
“그래. 싸우기 전 인사가 마지막이라면, 그건 너무 섭섭하지 않나.”
마역에 같이 진입할 사람들이야 끝까지 살아만 남는다면 바로바로 이별의 말을 건넬 수 있겠지만, 이쪽에 남는 이들은 전언으로 전달받거나 출발 전 나눌 말이 전부인 게 된다. 그리고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다 싶다.
“하면 그 기회가 왔을 때, 욥은 제게도 인사하러 와 주실 겁니까?”
“당연하지.”
“그렇군요. 기쁩니다.”
사탕을 날름날름 핥던 티마뉴크가 민들레처럼 소박하게 웃었다.
“그럼 저는 욥이 돌아와 인사해 주길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하지만 그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 너무 기다리진 말아라.”
기약 없는 기다림만큼 서러운 것도 또 없을 것이니. 나는 뒤쪽 땅을 짚은 채 몸을 뒤로 살짝 기울였다가, 한쪽 손을 떼어 하늘 쪽으로 가져왔다.
장갑 낀 손이 태양을 가렸다. 손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이 눈부셨다.
“아무래도 오늘은 다 포기하고 쉬어야겠군.”
“좋은 생각입니다. 욥은 지난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딱히 그런 이유에서 내린 결정은 아니지만…….”
나는 눈을 감고 몸을 일으켰다.
“따라와라.”
“……?”
“프레드릭을 타는 모습, 다시 보여 달랬잖나. 약속은 지켜야지.”
“헛.”
정했다. 오늘은 공부 때려치우고 각자와 한 번씩 시간을 보낸다.
“그래야 후회가 안 남을 테니까.”
“…예!”
나는 그렇게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쉬는 사람 갑자기 끌고 와서 하는 게, 고작 승마냐?”
나는 도시 마탑에 두고 왔다가 성질을 감당할 수 없어 여기까지 데리고 온 프레드릭의 갈기를 살살 쓰다듬었다. 푸륵. 녀석이 오늘따라 순하게 쓰다듬을 받았다.
“테이 군, 그의 승마는 매우 예술적입니다. 인내심을 가지십시오.”
“내가 쟤 승마를 한두 번 본 줄 알아?”
“보통 때와는 다를 거다.”
그렇지만 이다음마저도 그럴까?
“그게 아니더라도, 마이스터. 잘 봐 둬라.”
“내가 왜.”
“프레드릭은 너한테 맡길 거니까.”
“…아니, 그 성질 더러운 놈을 왜?”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마이스터의 말에 피식 웃고는 프레드릭의 고삐를 매만졌다. 푸르륵. 맡긴다는 말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녀석의 심기가 서서히 불편해지는 게 보였다.
“내가 떠난 후 녀석을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너면 좋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용사나 도둑놈 두고 날?”
“그들 모두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발을 가지고 있지만, 너는 아니니까.”
프레드릭은 그 누구보다 빠른 발을 가지고 있는 말이고, 싸울 힘이 없는 마이스터에게 있어 그것은 꽤 도움이 될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쓸 일이 없는 거지만… 세상은 모르는 거니까.
“무엇보다 프레드릭을 맡기면 원치 않아도 규칙적으로 골방을 빠져나오게 될 것 아닌가. 너는 주에 한 번 이상 햇볕을 쬘 필요가 있다.”
“…내가 걜 안 돌보면 어쩌려고.”
“글쎄. 나는 알 방도가 없으니 관여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마이스터를 응시했다.
“정 싫다면 말해라. 다른 이들에게 맡기거나 본래 있던 것으로 돌려보낼 테니까.”
“시발, 거절도 못 하게 하네.”
“저 말과 테이 군이… 과연 잘 지낼 수 있겠습니까? 둘이 싸우면 테이 군이 죽을 텐데.”
“아니, 형은 또 왜.”
“…음. 그건 확실히 좀 걱정이군.”
나는 티마뉴크가 꺼낸 굉장히 현실적인 지적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역시 마이스터에게 맡기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저 자식, 이런 거라도 안 붙여 두면 연구에 매진하다 과로사로 훅 가 버릴 것 같아 걱정인데.
“시발, 진짜. 야 내가 못 할 것 같아? 내가 못 할 것 같냐고.”
“아무래도 안 될 것 같군.”
쟤한텐 다른 소동물을 구해다 줘야겠다. 근데 여기도 소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있던가……? 병아리랑 닭 같은 건 그래도 좀 키우던데.
“거위…….”
“거위는 염병할 또 뭔 거위야.”
“거위가 더 나을지도…….”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이쪽도 성질 더럽기로 유명하긴 하지만, 설마 거위에게 물려 죽겠어? 그리고 거위는 집 지킴이로도 잘 활약한다니까 이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푸르르륵!
“아, 미안하다.”
생각해 보니 프레드릭의 의사도 고려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씩씩대는 마이스터를 등진 채 앞발로 땅을 벅벅 긁는 프레드릭에게 이마를 대었다. 숨길 수 없는 분함이 프레드릭의 숨소리에서 느껴졌다.
“네 의견도 중요한 것을, 내가 너무 멋대로 결정해 버렸구나.”
히잉!
“아오, 저 새끼 말 끊는 것 봐.”
“테이 군이 참으십시오. 그리고 테이 군이 저 말에게 지는 건 사실이잖습니까.”
“형, 내가 형은 못 때릴 것 같아?”
하지만 떠나는 건 막을 수 없다. 나는 프레드릭과 시선을 얽으며 부드럽게 목과 갈기를 쓸었다.
“…너도 영혼을 구분할 수 있을까?”
푸륵
“똑같은 얼굴로, 다만 다른 몸짓과 억양으로 대하면 너는 그걸 같은 사람으로 여기기보다 다른 존재임을 먼저 알아차릴까?”
사실, 가장 좋은 건 프레드릭을 파우스트에게 인계하는 것이다.
육신이 동일하니 같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고, 파우스트라면 내 부탁을 거절하긴커녕 성실히 이행해 줄 것이며, 동시에 이건 파우스트가 삶을 이어 나갈 하나의 이유가 되어 줄 것이니까.
“네 영리함이 어디까지 닿아 있을지 몰라,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구나.”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프레드릭이 나와 파우스트를 다른 사람으로 인식할지, 혹은 똑같은 놈이 왜 다르게 행동하냐며 혼란스러워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차마 이쪽에게 맡기기가 어렵다.
“프레드릭.”
푸힝
“나는 곧 집에 간다.”
푸르륵.
“그리운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으로… 다만 다시는 이곳에 올 수 없게 되는 저편의 세상으로 가게 될 거다.”
나는 싫다는 듯 투레질을 하는 프레드릭을 가만가만 쓸어 주며 그 콧등이 얼굴을 부볐다.
“네가 싫어서, 너를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아서 혼자 가려는 건 결코 아니다. 넌 내가 아는 말 중 가장 훌륭한 존재이며, 내게 더없이 중요한 친구니까.”
푸륵
“다만 그곳은 너무 멀고 가는 길이 험하여… 차마 데리고 갈 수가 없다. 미안하다.”
매일 아침 빗질을 해 주고 쓰다듬어 준 털이 살갗에 부드럽게 엉겼다. 나는 그 보들보들함을 계속 느끼며 이마와 이마를 온전히 대었다.
“그 대신 나를 닮은 사람이 이곳에 남게 될 거다. 내가 너를 맡길 후보로 가장 먼저 떠올렸던 사람이지.”
물론 파우스트의 의사를 물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걔한텐 끝까지 안 물어볼 거다. 아무렴 내가 해 준 게 얼만데, 이 정도 부탁 하나 안 들어주겠어?
푸르륵
“물론 네가 싫다면 거부해도 된다. 넌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 존재니까.”
푸륵
“다만 그가 영 마음에 안 든다면… 마이스터는 어떻겠냐고 제의해 보고 싶다. 그는 앞으로 돈을 굉장히 많이 벌 테고… 그 돈이면 너도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테니까.”
각설하고 평소엔 마이스터의 돈을 누리다가, 저 새끼가 사고 치면 데리고 튀는 역할을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제발 같이 사람 치고 다니지 말고.
“그것도 싫다면, 본래 있던 도시로 돌아가도 좋다. 인퀴지터나 다른 동료들을 뽑아도 된다. 만약 야생이 좋다면, 그곳으로 보내 줄 수도 있다.”
아무튼, 프레드릭이 실질적인 역할을 해 준 적은 거의 없을지언정 프레드릭이 곁에 있다는 것으로 위안받은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가능한 프레드릭의 의사를 반영해 주고 싶다. 나는 나와 수많은 밤을 보내었던 동물의 몸을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었다.
“당장 선택할 필요는 없다. 대신 내가 내일 떠나고, 내가 아닌 사람이 이곳에 돌아오게 되면… 그때 결론을 내려라.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동시에 고삐가 풀리고, 나는 프레드릭의 등에 올랐다.
“그전까진, 나와 놀자꾸나. 네가 원하는 만큼.”
히이잉!!
프레드릭이 이별 통보받고 화풀이하는 사람처럼 새초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