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46)
446화 우리가 복될 것이오 (3)
마이스터는 조금 복잡한 심정으로 시험장을 응시했다. 그곳엔 역동적임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존재들이 흙먼지와 함께 마구 노다니는 중이었다.
흙에 더럽혀져도 그 힘찬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활력은 빛바래지 않는다. 오히려 떨어지는 땀방울과 근육이 팽창하고 수축할 때 보이는 약간의 반사광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직 이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예술 작품이었다.
“테이 군, 제가 인내심을 가지라고 한 이유를 알겠습니까?”
“대충은.”
달릴 때의 모습이야 흔히 보지만 저렇게 말과 기수가 서로 힘 씨름 하는 모습은 또 처음 본다. 프레드릭이 고집을 부리거든 지금까진 모험가가 대부분 넘어가 주는 경향이 컸기에 더욱 그랬다.
“정말 맡을 겁니까?”
“글쎄…….”
아깐 욱하는 마음에 “못 할 것 같느냐.”라고 외쳤지만, 이성적으로 차분히 사고해 보면 사실 감당 못 하는 게 맞다.
아무렴 저 왕성한 체력을 도대체 어떻게 커버하란 말인가? 저런 건 모험가 같은 괴물이나 가능한 거지, 일반인인 그로선 불가능했다.
“맡기면 받아 줘야지, 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거부할 생각도 없다. 모험가 성격상 프레드릭의 향후 거소가 제대로 결정되지 않으면 엄청 걱정할 것이 뻔한 까닭이다.
그리고 녀석은 이 세계를 위해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걸 생각하면 그런 녀석의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할 이유 없다.
일행 중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똑같이 답할 이야기였다.
“잘 돌볼 자신은 없지만.”
“…테이 군도 많이 변했군요.”
“형, 아까부터 계속 기어오른다?”
“칭찬의 의미였는데 왜 화내는 겁니까?”
티마뉴크가 당당한 표정으로 항의했다. 해서 마이스터는 그 볼따구를 잡고 쭈욱 늘려 주었다. “이헌 부당한 쳐사임니다.” 티마뉴크의 당당함이 단번에 사라졌다.
“힝.”
새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만지작거리며 티마뉴크는 축 늘어졌다. 사뭇 미안함이 들 만한 광경이 따로 없었다.
“아, 근데 저 새끼도 좀 웃기네?”
하나 마이스터에겐 어림도 없었다. 그는 죄책감의 ㅈ자도 보이지 않는 얼굴로 실소를 흘렸다.
“내가 부자가 될지 어떻게 알고.”
“……? 당연한 것 아닙니까? 테이 군의 연구는 성공만 하면 세상을 뒤엎을 종류의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돼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지만 그것도 정말 잠깐이었다. 이어진 대화에 마이스터는 괜히 멋쩍어져 애꿎은 뒤통수만 벅벅 긁었다.
“에라, 모르겠다.”
“가는 겁니까?”
“어차피 잠도 달아났겠다, 만든 거 점검이나 하지 뭐.”
“그건 내일 해도 되잖습니까. 지금 아니면 다신 못 볼 수도 있는데.”
티마뉴크의 말에 마이스터는 시험장을 떠나려던 발길을 잠깐 멈추었다. 그의 조그만 머리통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글쎄. 오직 그만이 알 일이었다.
“상관없어.”
그렇지만 그는 곧 망설임을 버렸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이걸로 충분해.”
마이스터는 마탑주를 닦달하여 공수해 온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여 줄 사람은 더 이상 없었으나, 딱히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공유한 지식만으로도 평생은 울궈 먹을 수 있어.”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이미 배터리를 이용해 제작한 마도구가 있었다.
칙. 모험가가 ‘라이터’라고 이름 붙인 마도구가 불꽃을 일으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영원히 이 세계에 남겨질 모험가의 흔적이었다.
* * *
나는 2시간가량을 격렬히 놀아 준 후에야 프레드릭에게서 겨우 풀려났다. 정말이지, 누가 명마 아니랄까 봐 체력 하나는 끝내줬다.
“마이스터는 갔나?”
“네. 개발한 것들이나 다시 한번 점검하겠다던군요.”
“그렇군.”
나는 그 결정이 참 마이스터답다고 생각하며 티마뉴크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프레드릭은 당연하지만 본래 있던 마구간행이다.
한껏 지친 상태라서 행패는 없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이제 무엇을 하실 겁니까?”
“글쎄.”
남은 애들은 티마뉴크처럼 딱 이거다 하고 약속해 둔 게 없단 말이지.
“일단 한 사람 한 사람 찾아 대화를 해 볼까 한다. 그리고… 저녁엔 모두를 초대해 식사를 하고 싶군. 생각해 보면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느긋한 휴식을 취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
“모두 모여 식사… 연회입니까! 전 좋다고 생각합니다.”
“연회… 그래, 그게 맞는 것 같군. 난 결전 전 마지막 파티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작고… 매우 조촐하겠지만 말이다.”
“조촐해도 연회는 연회인 법입니다. 그보다, 음. 그럼 식당을 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거창하리만치 크게 열 건 아닐지라도 친분 있는 이를 따져 부르거든 그 수가 꽤 되니까.
“정확히 어떤 분들을 초대하실 겁니까?”
“일단은… 마역 진입 인원과 마이스터, 데스브링거를 부를 거다.
오랜 여정을 함께한 이들은 기본이니까 당연하지.
“계명이 오는 이상 기사 두 사람도 따라 참가할 테고… 아, 이사른콜도, 아크메이지님과 보라뱀 님, 요정 님도 모셔야겠지.”
추가로 도착한 마탑주들도 있긴 하지만, 그분들은 나와 영 친분이 없어서 말이다. 애초에 2차 확장 구역까지 직접 온 대마법사는 이 셋이 끝이기도 하고.
해서 마탑 쪽에선 티마뉴크까지 딱 넷으로 끝내고 싶다. 마이스터까지 포함하면 다섯이 될 테고.
“가능하다면 다니엘과 맥시, 바람손도 부르고 싶군. 그들이 시간 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인했습니다… 그럼 그게 전부입니까?”
“당장 떠오르는 인원은. 그대는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 있나?”
“저는 친구가 욥이랑 테이 군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건 좀 슬픈 말인데. 나는 티마뉴크에게 사탕을 하나 더 쥐여 줬다. “감사합니다!” 그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대충 스물 어림인가.”
미스틸테인이 참가할지 아닐지 확실치 않거니와, 지인의 지인이 추가로 올지도 또 모르니까. 이쯤 되면 차라리 식당 하나를 전세 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비록 이곳은 개인 사업장이 하나도 없지만.
“이 정도 인원을 받을 수 있는 천막이 이곳에 있을지 모르겠군. 그렇다고 총 작전실이나 각 소속의 간이홀을 빌릴 순 없을 텐데.”
“하면 그 부분은 마탑주… 보라뱀 님과 상의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보라뱀 님이라면 분명 빌려도 괜찮은 곳을 아실 겁니다.”
어… 꼭 그래야 하나? 기왕 판을 벌일 거면 모두가 모르게 준비하고 싶은데.
“…깜짝 파티를 하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랬다간 몇몇이 시간을 못 맞출지도 모르겠군.”
이건 확실히 미리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귀하신 마탑주들을 허름한 숙소용 천막에 모시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고.
“하면 이 부분을 부탁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나는 그런 판단하에 티마뉴크에게 해당 문제를 일임했다. 티마뉴크는 연회가 열린다는 게 매우 마음에 드는지 무척이나 신난 얼굴이다.
“마탑주님들은 같은 장소에 계실 테니, 그쪽에 말을 전하는 것도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준다면 나야 감사할 따름이다.”
그들과도 대화해 보고 싶긴 하지만… 일단 연회에 전부 끌고 오는 게 중요하니까. 이걸로 동선 낭비할 일은 덜었군.
“아, 그렇지. 티마뉴크, 시간이 남는다면… 혹시 물건 제작도 가능한가?”
“물건 제작 말입니까?”
“지금껏 같이해 온 일행에게 무언갈 주고 싶어서 말이다.”
“부탁을 들어드리는 것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닙니다만, 선물이라면 지금도 많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것 대부분은 먹는 것들이었지 않나. 이번에 주고자 하는 것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부류의 선물이다.”
“아하.”
요깃거리도 분명 좋은 선물이지만, 소모되고 나면 기억에서 잊히는 경향이 크니까. 이왕이면 물질적으로 남아 소지할 수 있는 걸 새로 주고 싶단 말이지.
“다만 내가 대가로 줄 만한 것이 딱히 없어서─”
“아, 그건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맛있는 것을 여럿 주셨잖습니까? 전 그거면 충분합니다.”
아니, 그거랑 이건 가치가 너무 다르지 않아?
“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만들면 됩니까?”
나는 교환비가 너무 안 맞지 않나 하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의 재단사가 도와준다면 더 근사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이기에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사람마다 살짝 다른 형식으로 제작하고 싶다만, 귀찮다면 하나로 통일해도 좋다.”
“음. 도안이 있다면 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걸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러지.”
나는 종이를 꺼내 망설임 없이 무언가의 도안을 끄적였다.
“가능하겠나?”
“생각보다 간단한 것들이군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작지만 각각 다른 디자인이라 제작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문가 눈엔 또 그렇지 않았나 보다. 티마뉴크가 도안을 주섬주섬 챙겼다.
“전 그럼 마탑주님을 뵙고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래.”
“결정된 사항은 어찌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해가 지기 전에 그대 방에 방문하겠다.”
“알겠습니다.”
다른 이들에겐 저녁 전까지 간이 홀에 모여 달라고 하면 되겠지. 연회 장소가 결정되면 모인 이들을 끌고 바로 가면 될 테니까.
나는 그렇게 여기며 역할 분담을 마쳤다. 파티라는 단어에 흥이 오를 대로 오른 티마뉴크가 종종걸음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 그러면 이제 누구부터 찾는담.”
미스틸테인은 그쪽만의 파티를 즐길 거라 했으니 배제하고, 크러셔와 베르세르크는 오늘 하루 종일 빈둥… 아니, 숙소 근방에 머물 테니 우선순위를 아래쪽으로 놔도 되겠지.
“인퀴지터부터 말을 꺼내야겠군.”
나는 감각권에 명확히 인지되는 신성력을 두고 걸음을 옮겼다. 첫 타자가 정해졌다.
* * *
“아니, 아니, 이 박자로 해야죠.”
인퀴지터는 소녀가 보여 주는 손뼉치기를 보며 버벅거렸다. 처음에 알려 준 건 분명 따라하기 쉬웠는데, 가면 갈수록 순서가 복잡해져서 헷갈리기 일쑤였던 까닭이다.
“언니는 이거 진짜 한 번도 안 해 봤나 봐요.”
“내, 내가 있던 곳은 이런 식의 놀이를 안 해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 정도라면 훈련 명목으로 허용이 되었지만 이런 놀이는 해 본 적 없다.
땅에 금을 긋고 그것을 밟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나, 돌멩이를 모아 손바닥에서 굴리고 던지고 하는 건 단 한 번도 본 적 없단 소리다.
“비석치기는 잘했으면서.”
“그건 그냥 던져서 맞히기만 하면 되니까…….”
인퀴지터는 아이가 놀아 달라고 할 때마다 하나씩 새롭게 튀어나오는 놀이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살아온 생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정말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체감이 됐다.
“그럼 오늘은 돌 쌓기 해요.”
“그래.”
그래도 돌 쌓기라면 이것보단 쉬울 거다. 인퀴지터는 소녀가 알려 주는 돌 쌓기 방식을 보며 주변에 있던 돌멩이 두 개를 냉큼 집었다.
“어, 어?”
그러나 돌을 아무리 비벼 보아도 탑처럼 쌓이지는 않았다. 인퀴지터의 판단 실패였다.
“어렵다!”
“너무 작은 돌을 잡아서 그런 거예요.”
“그런가……?”
그런 것치고 이사른콜은 비슷한 크기의 돌로 벌써 5층 탑을 쌓아 버렸는데.
인퀴지터는 3층 탑도 제대로 못 가는 자신의 돌탑을 보며 다시 한번 돌과 돌을 맞대었다. 균형이라는 것이 참 절묘하여, 정말이지 기준점을 찾는 게 쉽지가 않았다.
“무턱대고 쌓기만 하니까 안 되는 거다.”
“모험가님?”
그러다, 익숙한 불쾌감에 청년은 고개를 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모험가였다.
“자, 이렇게 뾰족한 부분을 찾아 서로 이음매를 맞대면…….”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온 모험가는 인퀴지터가 하던 것을 받아 들고 다시 맞추었다. 저렇게 해서 탑이 쌓아질까 하는 구조였는데 놀랍게도 그건 성공했다. 아슬아슬한 3층 탑이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섰다.
“우와.”
“모험가님 짱이다!”
“둘이 이렇게 놀고 있었나?”
“네!”
소녀의 대답에 모험가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예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하나 진정한 그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 오늘 저녁에 특별히 일이 있나?”
“어… 무슨 일이 있단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전 없어요!”
“그런가. 그럼 해가 질 무렵에 간이 홀로 와 줄 수 있나.”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무슨 일이 있다기보다는…….”
코를 찡긋거린 모험가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눈꼬리를 접었다. 살살 정수리를 쓰다듬는 손은 가죽 장갑에 한 겹 가려졌음에도 부드럽기 짝이 없다.
인퀴지터의 뺨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내가 무슨 일을 벌일 작정이라서 말이다.”
“예?”
무슨 일을 벌이려 하신다니. 그 모험가가?
인퀴지터는 도대체 어떤 사건이 벌어지려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를 향한 절대적 신뢰가 가져온 주억임이었다.
“저도 꼭 갈게요!”
“그래. 너도 와 주면 정말 고마울 거다.”
모험가의 손을 능동적으로 정수리에 가져간 소녀 역시 발랄하게 수락했다. 모험가의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