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47)
447화 우리가 복될 것이오 (4)
“아, 그리고… 으음.”
“아직 할 말이 남으셨습니까?”
그런데, 말을 다 한 것 같다 여겼던 모험가가 어쩐지 우물쭈물하며 발길 돌리길 주저했다. 이렇게 말하면 모험가께 실례가 될 수 있겠으나 꼭 고백하길 주저하는 어린 소년 같았다.
“인퀴지터, 이번 싸움이 끝나면… 너는 무엇을 하고 싶나?”
“저… 말입니까?”
싸움 이후? 내가 하고 싶은 것?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논제에 인퀴지터는 잠시 머뭇거렸다. 질문이 워낙 뜻밖이기도 하고 너무 낯선 것이도 해서 답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이사른콜, 너도 마찬가지다. 너는 하고 싶은 게 있나?”
“저는… 음, 대전사랑 같이 있고 싶어요.”
“그것도 좋지.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건 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 싶다거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다든가.
모험가가 제시하는 세밀한 예시에 두 사람은 고뇌를 시작했다. 언뜻 들으면 별 어려울 게 없는 문장임에도 그러했다.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도 희미하고 어렴풋해서 딱 이렇다 하고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인퀴지터는 인정했다. 그녀는 싸움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가.”
“모험가님은 어떠십니까?”
하면 이 질문을 던진 이는 어떤 답을 가슴에 품고 있을까. 이 싸움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게 될 그는, 과연 고향에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거다.”
“가족…….”
“친구들에겐 너무 그리웠다고, 정말 보고 싶었다고 말할 거고.”
“친구…….”
둘 다 그녀에겐 없는 것이다. 가족이라 할 만한 존재들은 대악마의 수작으로 대신전과 함께 몰락해 버렸으며, 친구는 애초에 사귈 틈조차 없었으니.
“그런 후에는 병원에 갈 거다.”
“병원? 어, 아프신 겁니까?”
“몸은 멀쩡하다.”
모험가의 말에서 자신의 답을 구해 보려던 차, 인퀴지터는 병원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 병원이면 치료소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럼 어디가 아프신 겁니까?”
“이곳.”
그런데 그녀의 반문에 모험가는 본인의 가슴께를 툭툭 두드렸다. 혹시 아픈 곳은 심장인 걸까?
“가슴?”
“마음.”
“…모험가님의 세상에는, 마음의 아픔을 고쳐 주는 곳도 있습니까?”
인퀴지터는 모험가의 말이 영 어색하여 양 손가락을 모았다. 그만큼 마음을 고쳐 주는 장소란 건 그녀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그래. 꼭 몸이 아픈 것만이 고통의 전부이진 않으니까.”
“하면, 모험가님은 지금 마음이 아프십니까?”
“조금은.”
“그럼, 어떡해요? 마음에는 약이 안 듣잖아요.”
동시에 모험가님이 마음 아픈 사람이라는 것도 퍽 낯설었다. 그는 감정이 없거나 닳고 닳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 버린 지금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확실히 보통의 약은 듣지 않지. 하지만 내가 떠나간 후에도 너희가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약속해 준다면… 내 마음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아…….”
아니, 낯설지 않다. 인퀴지터는 이어지는 말에 그가 말한 ‘마음의 상처’란 것이 무엇인지 바로 와닿았다.
“저도…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모험가가 떠나도 그녀는 살아갈 것이다. 예전에 맹세했던 대로 조금은 슬퍼하고 조금은 힘들어하면서도 꿋꿋이 나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그 빈자리가 애달파질 그 순간에, 모험가님이 고향에서 행복히 지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퍼득 든다면… 그 애달픔도 조금은 옅어질 테지. 영원히 못 만날지라도 그들은 분명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으니까.
“…전 모험가님이 보고 싶을 것 같은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차마 재회를 약속해 줄 수 없구나. 미안하다.”
“괜찮아요. 모험가님 잘못이 아닌걸요.”
이사른콜이 익숙하게 모험가의 품에 안겼다. 그것이 조금 부럽다면 부러울 일이라, 인퀴지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빤히 보았다.
“저, 대신 모험가님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 줄래요. 세상 그 누구도 잊지 못하게요.”
“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만.”
“싫어요. 전 말하고 다닐 거예요. 우리 대전사님이랑 모험가님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있었는지 외치고 다닐 거예요.”
“…그, 그래라.”
소녀의 박력에 모험가가 살짝 떨떠름한 낯으로 허락을 내렸다. 뭐어. 정확히 따지면 모험가가 수락했다기보다 소녀 쪽에서 윤허를 강탈한 쪽이 옳은 듯싶지만 말이다.
“…저도,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별개로 소녀의 그 외침에서 인퀴지터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대략적으로 깨달았다. 아직 명확하지는 않으나 최소한 그녀가 걸어야 할 길은 보이는 기분이었다.
“인퀴지터?”
“모험가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돕고,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꿔 가고 싶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 온 일들과 별반 다른 게 없을지도 모른다. 용사로서 했던 일을 그저 그녀의 이름으로 행하게 될 뿐인 일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맛있는 것들을 먹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 행해 보고, 지역마다 다른 것들을 잔뜩 체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미래가 차이점이 존재한다면, 그건 그녀가 새롭게 겪게 될 어떤 것들이리라.
“이사른콜에게 몰랐던 놀이를 배우게 된 오늘처럼, 제가 몰랐던 것들을 전부 알아 갈 겁니다.”
인퀴지터는 범인들이 누렸을 일상을 떠올리며 활짝 웃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이 끝나고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 정말 찬란하도록 멋진 포부다. 응원하마.”
모든 말을 들은 모험가는 뺨이 발그레해질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 * *
나는 다음으로 신전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이들을 찾았다.
크러셔와 베르세르크의 경우는 안 그래도 우선순위가 낮았지만, 인퀴지터와 이사른콜이 소식을 대신 전해 준다 한 상태라 더욱 떨어진 채다.
“형제자매님 중 찾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고요?”
“그래.”
그리고 신전에 소속된 이를 찾으려면, 역시 해당 신전에 문의를 넣는 게 가장 빠르다. 여긴 2차 확장 지구니 신전이라기보단 임시 지부라고 하는 게 더 적확하겠지만 말이다.
“막시모야크 이단심문관과 다니엘 이단심문관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은데… 혹시 가능한가?”
아무튼 나는 임시 지부에 찾아가 답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용사의 파티 소속이란 점과 워낙 특징적인 외형 덕에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내 정체를 순식간에 간파한 이들은 나를 주교 바로 아래 직급에게까지 데려다주었다.
“잠시만요, 두 분이라면 아마…….”
아무튼, 나와 마주하게 된 사제는 무언가 적힌 나무판을 달그락달그락 움직였다. 슬쩍 보니 점검표 양식이었다.
“음, 지금쯤이면 순찰을 돌고 계실 것 같은데. 잠시만요. 정확히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친절에 감사를 표하지.”
두 사람도 고생이네. 나는 손님에게 으레 내주어지는 다과를 입에 넣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근황이 들려온다 싶으면 대부분 순찰을 돌고 있거나 무언갈 수색 중이었기에 하릴없는 감상이었다.
오독오독.
한데 과자를 몇 개 볼로 쑤셔 넣고 있자니 임시 지부 입구 쪽이 시끄러운 게 보였다. 건축물을 제대로 지어 올릴 시간이 못 되어, 주변 건물이 죄 천막 형태라는 것도 내가 이 소란을 감지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천막이 곳곳에 세워져 있을 뿐 탁 트여서 대부분이 보이는 시야가 인물 두 명을 감지해 냈다.
‘호크아이… 인가?’
「네. 그분 같아요.」
소년의 건조한 호응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나는 몸을 잠깐 일으켰다.
호크아이가 마역 진입 파티에 포함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면은 튼 사이고 크러셔와 친하기도 하니 제의 한 번은 던져 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어.”
근데 그 옆은 애인인가?
나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며 잠깐 멈칫거렸다. 혹시 내가 연애 전선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확 든 탓이다.
[호크아이 씨는 정말 신전을 좋아하시네요. 검사하는 것도 참 좋아하시고.]“죄송해요. 제가 한두 번 데어 본 게 아니라서.”
[그럴 수 있죠. 저도 많이 데어 봤답니다. 그래서 그런데 호크아이 씨도 성수 좀 맞아 보시는 게 어떨까요?]“아, 그럴까요? 하긴 혼자 맞으면 쓸쓸하긴 하죠.”
그런데 대화 내용이 좀… 연인 간의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곳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연분홍색 머리가 눈높이 아래로 내려갔다.
“어! 당신은!”
“오랜만에 보는군.”
“진짜 오랜만이네요. 신전엔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찾을 사람이 있어서. 그보다… 소개를 부탁해도 되겠나?”
나는 턱을 당겨야만 눈에 드는 새 인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흠칫. 기분 탓인가? 은은하게 웃던 얼굴이 살짝 굳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 이쪽은 아스포델이에요. 아스포델, 이쪽은 모험가, 욥이에요.”
“만나서 반갑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묵례하고는 아스포델 씨를 다시 제대로 보았다. 워낙 희귀한 머리 색이라서 그런가 그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오묘해졌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호크아이 씨 친구분이신가 보죠?]“친구… 라고 해도 될진 잘 모르겠지만.”
“에이, 이 정도면 친구죠!”
호크아이가 내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넉살이 좋은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단지 그의 손이 좀 맵다는 감상이 들 뿐.
‘힘을 준 것 같진 않은데… 역시 궁사라서 그런가.’
감각이 둔한데도 맞은 자리에 온기가 드는 착각이 들 정도면 진심으로 얻어 맞을 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최소한 뼈는 나갈 것 같은데.
[놀랍네요. 전 호크아이 씨에게 친구라곤 크러셔 씨뿐일 거라 생각했는데.]와중에 이 사람… 아까부터 묘하게 호크아이를 돌려 까고 있지 않아?
나는 내가 과민한 건지, 아니면 정말 그런 건지 긴가민가해하며 둘 사이를 한번 물어보았다.
“두 사람은? 친구인가?”
[그럴 리가요.]“농담도.”
말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정색했다. 둘이 왜 같이 있는지 더욱 오리무중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군.”
친구도 아니고 그 이상의 관계도 아니면, 왜 그리 화기애애하게 돌려 까며 같이 있던 거냐. 나는 그런 의문을 품다가 문득 아스포델의 손이 젖어 있는 걸 발견했다. 이 추위에, 미친 짓이었다.
“이런.”
벌써 물이 얼었잖아. 나는 다급히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어쩌다 젖은 건진 모르겠으나, 손을 닦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아… 감사합니다.]저러다 동상 걸리면 어쩌려고. 내가 보부상 수준으로 들고 다니는 게 많다곤 하지만 여분의 장갑까진 없단 말이다.
“역시 욥은 상냥해요.”
“도리를 다한 것뿐이다. 그보다 그대는 왜 가만히 있던 거지?”
“글쎄요…….”
호크아이가 빛 없는 눈으로 아스포델을 응시했다.
“제가 배려가 부족했네요. 죄송해요.”
정말이지, 황망한 관계였다. 진짜 뭐 하는 거지? 서로 색욕의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일까 봐 간을 재는 건가? 근데 간을 봐도 뭐 이렇게 봐?
[아, 전 이만 가 봐야겠어요.]“벌써요? 성수 효력도 다 안 떨어졌을 텐데.”
[앞서 보신 것도 있으면서, 새삼 또 지켜보시게요? 앙큼도 하셔라.]…그래도 지난 시간 동안 북부인에 대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상상 이상으로 빡센 그들의 검열 문화를 보며 괜히 멋쩍어졌다.
[너무 집착하진 마세요. 어차피 곧 다시 볼 건데.]“…그래요. 알았어요. 잘 가요.”
나 괜히 끼어들었나 봐. 나는 기다리기도 심심하겠다, 그냥 반가운 마음에 온 거였는데.
“아, 그래서 욥. 욥은 왜 온 거예요? 찾을 사람은 또 누구고요?”
나는 드디어 내게로 시선을 돌리는 호크아이를 보며 목을 살짝 긁었다.
“별건 아니고, 오늘… 저녁을 함께할 수 있는지 다니엘 경과 맥시 경께 묻고자 온 거였다.”
“저녁을요?”
“그래. 아무래도 내일 떠나니까.”
“아, 그러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으음. 그래서 이왕 마주친 김에 그대에게도 올 의향이 있는지 묻고자 했는데…….”
어쩌다보니 쎄한 북부인의 연애… 아니, 관계? 대충 친해지려는 건지 뭐 하려는 건지 모르는 전선에 끼어들어 버렸네.
“크러셔도 와요?”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다른 이가 대신 전달해 주기로 해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거절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크러셔는 먹는 걸 좋아하니까요. 좋아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그래도 호크아이의 초대는 성공했다. 나는 그에게 모이기로 한 장소를 알려 주었다. 호크아이가 흔쾌히 그때까지 가겠다며 장담했다.
“모험가님! 찾았습니다!”
“아, 결과가 나왔나 보군. 그럼 나중에 보지.”
“네에.”
거기에 타이밍 좋게도 다니엘과 막시모야크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사제마저 돌아왔다. 나는 기쁘게 발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