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472)
472화 그리고 복될 것이니 (1)
사파이어는 들려오는 굉음에 화들짝 놀랐다. 적진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자의 어쩔 수 없는 불안이었다.
“들킨 건가?”
“아니.”
반면 계명은 태연한 낯으로 그들이 향하던 정원 방향을 응시했다. 소리 자체는 널리 퍼지되 근원지는 특정 짓지 못하도록 설계된 건물이지만, 이렇게까지 소리가 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 까닭이다.
“서두르지.”
하나 이조차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트인 정원조차 상공 4m 위에는 빛과 소리를 굴절시키는 마법이, 미로처럼 심어 둔 풀들은 소리를 흡수했다 제멋대로 뱉어 내는 성질이 있으니까.
쿠웅!
와르르르.
굉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소음의 강도는 먼젓번의 것보다 작았다. 비록 소리가 여기저기서 반사되며 마구잡이로 울리는 통에 귀 아프기는 쓸데없이 아팠지만 말이다.
“…여기군.”
그래도 계명은 두어 번의 헤맴 끝에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빛을 굴절시키는 마법 덕택에 보이지 않았던 먼지 구름이 일정 반경에 들어서야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크게 구름이 일었던 것인지 먼지 구름은 아직도 일부가 남아 공중을 부유하는 중이다.
“벽이…….”
참으로 단순하고 우악스러운 수법이다. 계명은 감탄하는 사파이어를 버려 두고 무너진 벽의 잔해를 살폈다. 파편의 단면을 보니 일격에, 둔기 및 타격을 이용해서 자행한 파괴 같았다.
‘하면 용사나 격투가 쪽이겠군.’
모험가라고 이런 광경을 못 만들진 않겠지만, 성향 차이란 게 있다. 모험가였다면 이보다 더 세련되게 뚫거나, 부수지 않고 길을 찾는 걸 택했을 것이다.
“따라가지.”
각설하고, 미련할 정도로 포악스럽게 만들어진 길이라도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것을 아군이 만들었다면 더욱 그렇다.
계명의 발이 조심스럽게 잔해 더미를 넘었다.
“…이 길을 따라도 되는 건가?”
“남고자 한다면 막지 않는다.”
“…하.”
사파이어가 주먹을 쥐며 짜증 어린 숨을 뱉었다. 그가 왜 그러는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녀가 배신자이기 이전에,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아서다.
그러나 반대로 그녀가 제대로 된 답을 주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길이 함정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 함정은 아니되 소란을 듣고 모여들지 모를 적에 대한 염려… 그런 것들을 그녀가 왜 일일이 해결해 줘야 하느냔 말이야.
머리가 있다면 알아서 사고하고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남에게 판단을 마구잡이로 떠밀게 아니라.
‘차라리 그 남자가 이 자리에 대신 있었으면 좀 나았을 것을.’
그런 점에서 모험가는 그나마 괜찮은 동행자였다. 과거 그녀의 심장을 뚫어 낸 전적이 있고, 가끔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미련하게 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순간에까지 지능이 떨어지진 않으니까.
“내가 기억해 둬야 할 변수가 있나?”
“…글쎄.”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나약하고 어리석으며 사적으로 그녀를 경멸하기까지 하는 얼간이다. 계명은 그 사실에 소소한 유감을 곱씹으며 복도에 장식된 도자기를 넘어트렸다.
와장창!
협탁 위에서 넘어진 도자기가 맑고 높은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
“이젠 뛰어도 된다.”
얼간이는 그녀의 행동이 무엇을 노린 것인지, 쨍그랑 소리가 났음에도 변화 없는 복도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눈치 못 챈 듯했다.
그러나 계명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구태여 설명하기보단 결론만을 말했다. 그녀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과정을 스스로 알아낼 수 없는 자에겐 이해를 위한 말보다 일방적인 통보가 더 알맞았다.
“잠깐, 아깐 안 된다고─”
“하.”
함에도 나오는 한숨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 그녀는 그냥 뛰었다. 뒤에서 욕지거리가 잠시 들리는 듯했다.
* * *
콰앙!
“야, 꼬맹아. 아직도 길 찾기는 멀었냐?”
“잠, 시만!”
한편, 자르딘은 크러셔와 함께 성내를 헤매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쪽, 이쪽 같습니다!”
“오냐!”
침입자들이 으레 보이는 은밀함이나 조용함 따위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처음 발을 디뎠던 장소가 복도였던 것도 있고, 복도에서 큰 소리를 내선 안 된다는 걸 기억한 사람도 없었던 탓이다.
하여 그들은 머리가 부족하면 몸이 어떻게 고되지는지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크러셔의 주먹이 호쾌하게 건물 벽을 부쉈다. 정원과 직행으로 연결되는 코스의 탄생이었다.
[감히, 주인님이 기거하는 성을!] [아아, 어떻게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당연하게도 소란을 듣고 소환된 괴물들은 그 광경에 너 나 할 것 없이 비명을 질러 댔다. 심지어는 머리를 짚으며 벽에 몸을 기대 버리는 개체도 있었다.
외관상으로 따지건대 전투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닌, 아마도 성의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놈들 같았다.
“뭐라는 거야.”
“저런 것들에게… 관심 같은 건 주시면 안 됩니다!”
서걱!
그러나 참으로 잔혹하고 악독한─악마들의 말로는 그런─두 사람은 저 치들이 경악하건 말건 앞으로 꾸역꾸역 나아갔다. 잘 꾸며진 화단이 순식간에 박살 나고 꽃과 나무가 파헤쳐졌다.
[이, 이 끔찍한 족속들 같으니라고!] [신께서 종종 산책까지 하시는 정원을 이리 망치다니!]그러다 악마가 위험 수위까지 모였다. 후열에서 악마들을 견제하던 크러셔의 눈썹이 구부러졌다.
“야, 수류탄 하나 까라.”
“네!”
“그리고 전방에 함정 있다. 조심해.”
“네!”
메이드복을 입은 그림자인간이 대걸레를 쳐든 순간, 크러셔는 메이드의 명치를 걷어차 넘어트렸다. 그러곤 몸을 빠르게 반 바퀴 회전시키는 것으로 악마가 놓친 대걸레 봉을 연이어 차 냈다.
퍼억!
[악!]날아간 대걸레 봉이 옆쪽에서 다가오던 악마들을 막아 세웠다.
[이놈!]낫과 로브가 특징적인 악마 역시 크러셔에겐 식은 수프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휘둘러진 낫에 손가락을 얹듯이 미끄러트렸다. 그리고 날의 면적이 커지는 부분에서 힘을 주어 잡았다.
낫이 벽에 박힌 것처럼 고정되었다.
[엇─!]그 상태에서 다른 손으론 봉 부분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같이 끌려온 악마는 크러셔의 발차기를 복부로 받아 낸 직후 부웅 날아가 땅바닥을 나뒹굴고 만다.
붕─
크러셔는 악마가 놓고 간 낫도 야무지게 써먹었다. 악마가 유난히 몰려든 부분에 낫을 횡으로 길게 던진 것이다.
퍼억!
[컥!] [억!]거대한 낫이 횡으로 길게 날아오니 다들 피하지도 못하고 낫에 깔려 넘어졌다. 꽤 쏠쏠한 이득이었다.
“갑니다!”
이 와중에 앞서서 뛰던 이가 강화 폭탄의 안전 핀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뒤를 보지 않고 던져서 포물선이 영 안 예쁘게 그려졌지만, 뭐. 크러셔에겐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일단 시야에만 들어오면, 발등으로 부드럽게 받아 내든 손으로 조심스럽게 낚아채든, 어떻게든 다시 날려보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조금만 삐끗해도 그녀의 목숨이 날아갈 도박수긴 했다. 타이머형 신관이면 몰라, 지금 던지는 건 충격형 신관인 까닭이다.
하나 진정 목숨이 아까웠다면 처음부터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긴 마왕성이니까.
스윽
그런 이유에서 크러셔는 서슴없이 폭탄을 받아 냈고, 다시 던졌다. 악마가 몰린 데로 날아간 폭탄이 쾅 터졌다.
“나이스.”
못해도 일곱 마리의 악마가 죽었다. 크러셔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후퇴 같은 전진이 보편적인 전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서걱!
“근데 이 길이 맞아?”
“그건…….”
크러셔의 물음에 앞에서 길을 뚫던 기사는 말을 흐렸다. 여기라고는 생각하지만 자신은 없는, 딱 전형적인 소심함이었다.
“뭐, 아니더라도 이제 와서 바꾸진 못하지만.”
크러셔는 그 사실을 눈치채곤 애먼 귀를 쫑긋거렸다. 사실, 길이 가늠되지 않는 건 그녀도 매한가지인지라 탓할 의향도 별로 없었다.
“다른 놈들은 살아 있기나 할는지.”
“…다들 무사하실 겁니다. 어느 하나 빠지는 분이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래.”
낙오된 베르세르크는 둘째 치더라도 용사나 모험가는 그녀보다 강하다. 걱정해 봐야 의미 없을 것이다.
“근데 네 쪽은─”
그러나 푸른 머리의 기사나 보석을 닮은 검사 쪽은?
크러셔는 상대적 최약체에 속한 두 사람의 안위를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저쪽에서 먼저 말 꺼낼 것도 아니라면 굳이 화제 삼을 이유가 없었다.
“됐다. 비켜.”
그녀는 대신 그들을 가로막는 벽에게로 손을 들었다. 콰앙. 한 번 내지른 정권이 성의 단단한 외벽을 박살 내며 안으로 가는 길을 뚫었다.
[이, 이이이!!!]그 꼴을 본 악마들이 또 한 번 자지러졌다. 그렇게 미안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다리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
더럽다. 참 더러운 싸움이다.
그것이 이 싸움에 대한 내 감상이었다.
“이, 개─”
‘같은 자식이!’라는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말을 내뱉을 시간에 숨을 골라야 한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상대가 너무 더럽게 나오는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진짜, 진심으로, 오만은 지금껏 상대했던 악마 중 가장 지랄염… 아니, 상도덕 없는 악마였다.
사사삭!
얼음 회오리를 몸에 두른 늑대가 내게로 달려들었다. 사족 보행으로 날렵하게 달리던 몸은 어느 순간 벌크 업을 한 트레이너처럼 앞발을 펌핑하여 호수를 내려친다.
콰앙!
놈이 내려친 곳을 기점으로 거대한 얼음 기둥이 솟아났다. 원형으로 퍼지되 시간차로 쿵, 쿵, 쿵, 솟구치는 기둥이었다.
토옹─ 통!
이런 와중에도 허공을 노니는 빛의 구체는 마치 고무공처럼 잘만 튀어 다녔다. 짙은 랜덤성과 약간의 유도 기능이 결합되어, 아까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는 개쓰레기 공격이었다.
심지어 마력을 들여 태우지 않고 자르기만 하면 두 개로 분열되는 성질까지 있어 더 짜증났다. 오만은 정말이지 사람 빡치게 만드는 데 일가견 있는 악마였다.
치리링!
이때 종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화살 무더기들이 날아왔다. 스피어가 간간히 섞여 있는 그 공격은 솟구치는 얼음 기둥과 함께 나를 특정 방향으로 내몰았다.
오만이 싸움 도중 깔기 시작한 덫 쪽이었다.
콰직!
그 덫을 밟으면 몸 반쪽이 날아간다. 이어지는 연계 공격─사슬을 이용한 속박, 아벨의 얼음 공격, 기타 마법 공격 등─에 당하는 건 덤이고.
해서 나는 억지로 정면 돌파를 택했다. 이것 또한 상대가 원하는 바임을 아나, 선택지가 없었다. 벽에 거의 가까워진 내 몸이 기어이 얼음 기둥을 밟았다.
크릉!
그와 동시에 표면에 비친 늑대 초상이 얼음을 깨부수고 튀어나왔다. 내가 대처하기 힘든 각도에서의 공격이었다.
콰앙!
그러나 이 현실좆망개쓰레기겜은 무적 구르기도 없었기에 나는 내 스스로 무적 시간을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마력을 퍼부어 사방 모든 걸 갈아 버렸단 거다. 주변 얼음이나 늑대나 통통볼까지, 그 전부를.
“후.”
거기까지 하면, 내가 다음으로 잡아야 할 행선지는 말할 것도 없다.
[오라.]노리는 건 오직 오만 본체. 한결같은 나의 대응에 오만이 기다렸다는 듯 왕홀을 흔들었다.
신성의 가루가 피할 곳 없이 천장 전체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입장에선 폐를 태우는 극독─여과기 덕에 한번 걸러진 상태임에도─이었다.
콰드드드드득!
심지어 천장에선 빛의 화살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나를 향해 한 번 쏘아지는 게 아니라 머리 위, 나아갈 길, 피할 만한 공간 전부를 점유한 채 반복적으로 내리는 비였다.
“하.”
이런 건 아까처럼 구 형태로 마력을 흩뿌린다고 막히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걸 여러 번 반복하면 나라도 마력이 남아나질 않고.
해서 나는 그냥 처맞고 뛰기를 택했다. 저건 뭐,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달리면서 쳐 낼 건 쳐 내고 맞을 건 맞는 게 최선이었다.
쨍그랑!
이때 대미지를 버티지 못한 보석 한 개가 박살 났다. 남은 건 이제 고작 3개뿐이었다.
정말이지, 리셋할 거면 나까지 리셋해주든가. 나는 쏙 빼 놓고 리셋시키는 무례함 덕에 숫자가 이렇게까지 줄어 버렸다. 정말 염병할 노릇이었다.
[멈춰라!]물론 이런 진창 같은 상황에서도 더 아래에 위치한 바닥은 있었다. 나와 다르게 신성에 타격을 입지 않는, 그래서 자유로운 공격이 가능한 호로새─ 아니, 늑대가 바로 그 바닥이었다.
“흡!”
내 어깨와 등에 화살이 몇 개씩 박히고, 늑대의 발톱도 내 몸에 상흔을 남긴 채 지나갔다.
어깨에 박힌 몇 개의 화살이 열병과도 같은 열기를 체내에 침투시켰다. 체내에서 시작된 것이라 여과기가 걸러 주지도 못했다.
끔찍한 고통이 근육을 마비시키고 피를 불살랐다.
하나 이런 상황에 멈칫거렸다간 진짜 죽는다. 나는 내 몸을 지지는 신성 화살들을 마기로 태워 버리며 늑대가 비치는 얼음면으로 달려들었다.
늑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얼음을 부수고 나왔으나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것이었다.
나는 늑대의 발톱이 어깨에 박히기 전, 몸을 휙 틀어 버림과 동시에 발을 헛디디듯 일부러 몸을 미끄러트렸다. 디뎠던 얼음면이 경사진 상태였기에 어려울 것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를 물고 찢기 위해 돌진한 녀석이 내 머리 위로 붕 뜨고, 내 몸은 아래로 아래로 밀려 내렸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타격은 신성 화살비까지 포함해 한없이 0에 수렴한다.
녀석이 나를 공격하려면 순간적으로나마 물질화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내가 녀석을 우산으로 쓸 수 있는 덕택이었다.
그렇게 내 몸은 경사면을 타고 얼음 최하단, 기둥과 기둥이 교차하는 곳까지 닿았다. 차가운 한기가 더워진 몸을 식혔다.
“후.”
그러나 내 마력은 달랐다. 입새로 흘러나오는 입김과 함께 마력이 라텔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갔다. 라텔의 검 끝은 어느새 얼음에 닿아 수평을 그리고 있다.
콰앙. 검 끝에 모일 대로 모인 마력이 전방 직선으로 쏘아졌다. 봄바드. 새까만 마력이 지나간 자리엔 원형의 길이 새롭게 만들어진 채다.
나를 빛의 화살로부터 보호해 줄, 다만 늑대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얼음의 터널이다. 내 몸이 그 안으로 구르듯 들어갔다.
[노옴!]빠르게 쫓아온 늑대가 터널 안 표면을 부수고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이쯤 되면 이 공격은 예상 수준에서 놀 뿐이다.
나는 얼음에서 튀어나온 녀석의 머리를 쪼갰다. 놈이 황급히 안개로 흩어졌으나 한쪽 눈이 잘리는 걸 보았다. 재생하기 전까진 섣불리 못 덤빌 것이다.
나는 녀석이 부수는 바람에 조금 무너진 터널을 약간의 마력으로 다시 뚫어 냈다.
[부수어라.]한데, 내가 좀 쉽게 쉽게 가려니, 오만이 수를 썼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얼음 터널에 균열이 쩍쩍, 가더니 그대로 깨져 버린 것이다.
잘개 부서지거나 사라지는 대신, 큼직큼직하게 두둥실 떠오르는 빙산의 조각들이 꼭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잠겨라.]그러나 그 모든 조각들은 한순간 중력에 사로잡혀 추락했다. 호수면에 거대한 물보라가 일고 호수 전체의 수위가 점차 높아졌다.
왕좌도, 나도, 오만도. 전부 잠겨 버릴 만큼 높게.
시발. 또 물이야.
나는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