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Bad That the Main Character’s a Roleplayer? RAW novel - Chapter (533)
533화 우리가 후회할 줄 아는 한, 영원히 (5)
“하나, 둘, 셋!”
“짠!!”
바닥에 깔린 나무판자가 삐걱 소리를 내고, 발효된 보리 냄새가 벽으로부터 큼큼하게 배어 나오는 어느 술집.
그곳에 모인 이들이 구호에 맞춰 각자의 나무 잔을 들었다. 맥주, 포도주, 증류하여 만든 독주 등등. 각자의 기호에 맞춰 나무 잔에 담긴 액체의 종류는 조금씩 다른 채다.
꿀꺽꿀꺽꿀꺽.
“크으!”
그렇지만 대다수가 목구멍 너머로 호쾌하게 술을 들이붓는 것만은 실로 비슷하다. 쾅. 단숨에 잔을 비운 이들이 나무 탁자 위로 거칠게 손을 내렸다. 들려 있던 나무잔이 탁자와 부딪치며 큰 소리를 낸 것은 덤이었다.
아까 전만 해도 안주가 담겨 있었던 그릇이 덜그럭 소리와 함께 기존의 위치로부터 몇 mm씩 이동했다.
“이야, 이거 시원해서 좋네.”
“따끈한 안주와 시원한 맥주… 아름다운 조합이에요.”
“으음, 으음!”
검은 피부의 두 사람이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았다. 한쪽은 북부 출신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한쪽은 키가 멀대같이 큰 이들이었다.
“바비큐 솜씨가 늘었군.”
다만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이는 출신을 고려해도 크고, 인종을 참고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두께감 있는 자라.
통째로 구운 새끼 사슴의 다리를 들고 씹은 이가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말이 한 모금이지 다시 채운 잔의 절반이 단번에 사라졌다.
“크하!”
“푸으하!”
그녀가 뱉는 탄성에 옆에 있던 소녀가 따라 하듯 음료를 삼키고 숨을 뱉었다. 소녀의 잔 속에서 찰랑거리는 음료는 술이 아니라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다.
“꼬맹이, 넌 아직도 술 못 마시냐?”
“대전사께서 아직은 안 된다고 하셔서요…….”
“맥주 정돈 괜찮지 않아?”
“안 된다.”
북부에 있어 맥주는 술이 아니라 물에 더 가까운 무언가로 취급된다. 하나 그 점을 생각해 물은 크러셔의 말에 베르세르크는 동의 대신 정색을 보였다.
“왜요?”
정말이지, 크러셔보다 그 옆에 있던 호크아이가 더 의아해할 정도로 단호한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모험가가 열아홉이 되기 전까진 먹이지 말라 했다.”
“열아호옵? 완전 늦잖아. 그 전에 애간장 다 타겠네.”
“아무튼 안 된다.”
그 전에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느니 성장에 지장이 간다느니, 모험가가 해 준 말은 더 있었다. 하나 베르세르크는 그런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귀찮은 것도 귀찮은 것이지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튼 안 돼. 베르세르크는 그냥 속 편히 그 말만을 우직하게 밀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꼬맹이도 모험가가 남기고 간 말이라고 하자마자 수긍한 이야기였다. 입 아프게 더 떠들 필요가 없다.
“그보다 그 말을 들어주는 게 나는 더 신기하다니까네. 우리 집 꼬맹이는 그렇게 말해도 귓구멍으로 흘려듣─”
“아아아아! 대장!”
“로키가 사고를 많이 치긴 했지요.”
그때 안주를 더 들고 온 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하들을 꼬랑지처럼 달고 있는 미스틸테인이었다.
“됐고, 음식 왔소.”
“오오오, 뭐냐, 뭐냐 이 비주얼!!”
“맛있겠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감사는 나 말고 내 아한테 해 주소. 기뻐할 거요.”
음식 그릇을 내려 둔 미스틸테인이 코 밑을 쓰는 사이, 호드와 로키도 들고온 것들을 내려놓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식탁을 둘러싼 의자가 전부 주인을 찾았다.
“크으, 치즈 봐라. 쭉쭉 늘어나네.”
“대전사, 대전사, 저거 주세요!”
“기다려 봐라.”
소녀가 토마토 고기찜에 열광하여 엉덩이를 들썩거리자, 베르세르크가 귀찮다는 듯 허리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모험가도 토마토에 환장하지 않았나? 걔 토마토수프를 거의 매일 먹었잖아.”
“그랬지.”
고기를 제외하면 가리는 게 없어서 티는 잘 안났지만, 토마토를 쓴 음식을 유독 잘 먹긴 했다. 단맛이 덜해서 그랬던 건지, 토마토 특유의 향을 좋아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지도 좋아했다.”
“그 흐물흐물한 걸?”
베르세르크의 말에 로키가 문어를 본 고양이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상상만 해도 싫다는 듯 몸서리를 치는 건 덤이었다.
딸랑.
“으어, 여긴 왜 갈수록 추워지는 겁니까요.”
“인마,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뭐가 되냐? 난 육지 밟을 때마다 얼어 죽을 것 같은데.”
그때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점의 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보이는 건, 오다 눈이라도 맞았는지 어깨와 머리에 하얀색을 묻히고 있는 두 명의 사내다.
“오셨어요?”
“와! 사냥꾼 오빠다!”
“왔나, 사냥꾼아.”
“어어, 도둑놈 왔냐.”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주먹 나리는 왜 저를 도둑놈이라 부르는 겁니까요? 제가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대악마의 목숨을 훔쳤잖냐. 그러면 훌륭한 도둑이지.”
“그런 논리라면 차라리 암살자라 해 주십쇼…….”
데스브링거는 턱에 호두를 만들며 망토를 털고 들어왔다.
“어우, 이제야 살겠네. 어이! 술 한잔! 제일 독한 걸로!”
눈을 파바박 털어 낸 나머지 한 사람도 연이어 건물 내부를 밟았다. 참고로 추워 죽겠다는 표정의 그는 현재 교역의 큰손으로 막 떠오르고 있는 상단의 선장, 바람손이다.
“독한 술이라면, 여기 있어요.”
“오, 좋아.”
바람손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와 호크아이가 건네는 술을 냉큼 들이켰다. 액체 자체는 차가울지언정 목구멍이 홧홧하게 데워지고 위장이 화끈하게 타오른단 점에서 추위를 타던 그에겐 완벽한 선택이었다.
“크. 여긴 술이 맛있어서 그나마 좋다니까.”
“의자는 알아서 끌고 오세요.”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 올 사람 고려해서 아예 탁자 하나를 더 붙이죠?”
“그것도 괜찮고.”
그들은 원형 탁자를 나란히 붙여 적당히 자리를 분배했다. 연결 지점에 앉게 될 이들은 좀 불편하겠지만, 그거야 어떻게 할 수 없다. 미스틸테인의 부하가 은퇴하여 차린 이 주점은 사각형 탁자가 단 하나도 없었으므로.
“자 자. 앉았으면 한잔 받으라고.”
“크으. 좋네요.”
크러셔가 신나서 술을 따라 주고, 데스브링거와 바람손은 거절 없이 바로 받아 마셨다. 둘 다 주량 하면 어디서 빠질 타입이 아니었기에 술의 종류는 당연히 독한 것이다.
“그보다 샌님은 아직인 겁니까요?”
“몰라. 오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보지.”
“헹. 오면 지각했다고 놀려야지.”
데스브링거는 스틱 모양으로 튀긴 감자를 입에 밀어넣으며 낄낄 웃었다. 모두가 반대 한 마디 하지 않는 시점에서 샌님 골탕 먹이기 작전은 암묵적으로 합의된 무언가가 되었다.
“그보다, 다들 잘 지냈습니까요?”
“뭐, 우리가 못 지낼 이유가 뭐 있겠어? 일거리가 줄어든 건 좀 짜증 나지만.”
“크러셔, 네가 짜증 난 건 일거리가 줄어서가 아니라 싸울 일이 줄어들어서잖아.”
“아무튼, 통하면 됐잖아.”
주먹 나리는 여전하구만. 데스브링거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기도 한 점 쿡 찍어 먹었다. 예상치 못한 맛있음에 그의 손이 잠시 멈췄다.
“뭡니까요. 왜 이렇게 맛있습니까요.”
“크하하하! 들었냐? 너 인정받았다!”
“아오, 대장. 제발 그런 말 좀 마소. 부끄럽다니까네.”
“아니, 농담 아니고 진짜 맛있는뎁쇼.”
“어디, 어디. 나도 먹어 보자.”
먹성 좋은 전사들을 위해 꾸준히 요리를 만들고 내오던 주방장이 칭찬 일색인 식탁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말 그대로 부끄러울 뿐이지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보다 다 만들면 우리 부르라니까네. 왜 직접 나오고 그러는 거여?”
“대화 중인디 뭘 부릅니까. 내도 걸을 수 있습니다.”
대신 주방장은 자신의 의족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미스틸테인의 표정이 어쩔 수 없다는 사람의 웃음으로 변했다.
쾅!
“아, 시발 존나 추워!”
그러던 차, 문이 갑작스럽게 열렸다. 거친 손길 뒤에는 머리 색이 두 개인 대명장이 하나, 맹한 표정의 재단사가 하나, 지팡이를 짚고 걷는 대마법사가 셋 있다.
“여, 명장 나리 왔습니까요.”
“아크메이지나 재단사 쪽은 그렇다치고, 둘이 더 올 줄은 몰랐는데.”
“오랜만에 뵙네요.”
“다들 안녕! 그보다 야, 음식 더 빨리 만들어야겠는데?”
“키히히히… 귀찮지만 내가 좀 도와주지.”
“와! 할머니다! 오랜만이에요!!”
“허허. 다들 오랜만일세.”
대명장이 자신을 둘둘 싸맨 천을 벗어 빈 협탁 위에 대충 던져 두는 사이, 대마법사들은 우다다 달려온 소녀를 받아 주었다. 아크메이지는 잠시 나이도 잊고 소녀를 번쩍 들어 올려 줄 정도였다.
“선배, 그러다 허리 나가요.”
“요정, 악담하지 마세요.”
“아니, 시발. 이 나이 처먹고 허리 나가면 고생인 거 너도 잘 알잖아.”
“뭐… 그 점은 동의합니다.”
“마법 쓰고 있으니 걱정 말게.”
아크메이지는 소녀를 꼭 안아 준 후 다시 풀어주었다. 그녀가 얼른 비켜 줘야 나머지 둘도 들어오고, 문도 닫을 수 있었다.
“난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군요.”
“허름해. 낡았어. 다른 좋은 곳 다 두고 왜 하필 여기로 한 거냐?”
“그… 허름해서 죄송합니다.”
“아, 거. 우리 아가 열심히 운영하는 가게 두고 악담하지 좀 마소. 이쪽은 당신네들처럼 돈이 많지 않다니까네?”
“악마 퇴치 비용으로 준 돈은 다 어쩌고?”
“아니… 그거 받은 덕택에 이 큰 도시에서 이만한 주점을 연 것일 텐뎁쇼. 심지어 입지도 좋고, 건물도 튼튼하잖습니까요.”
“이게? 튼튼?”
그렇게 아크메이지가 이사른콜을 데리고 탁자로 가는 사이, 요정은 벽면을 툭툭 두드렸다. 누가 봐도 못마땅한 심기라고 표현할 표정은 덤이었다.
“결계 하나도 없는 게 뭐가 튼튼하단 거냐?!”
“뭔 소립니까요! 보통은 결계가 없는 게 정상이라굽쇼!”
“아, 늙은이들은 그만 투덜대고 자리에 앉지? 나 배고파 뒈질 것 같거든요?”
“테이 군, 배고픈 건 알겠지만 말투가 너무 험합니다. 모험가가 보면 분명─”
“형도 얼른 오기나 해. 계속 그러면 음식 대신 형 뜯어먹어 버린다?”
“저, 저는 맛이 없습니다 테이 군.”
그래도 결국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소 많은 소란과 험악한 말들이 인사 대신 오갔을지라도, 어쨌든 간에.
“음식은 괜찮네.”
“확실히, 솜씨가 제법이네요. 서민적이긴 하지만.”
“음식이 식었잖아. 기껏 온기 보존 용기를 개발해 줬더니 왜 안 쓰는 거야?”
“그거야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니까?”
“뭐? 하여간 느려 터져서는.”
“저기, 물건이란 건 개발된다고 뚝딱 전파되는 게 아니거든? 양산에 필요한 노동력 구하기부터 유통에 걸리는 시간까지, 못해도 연 단위는 걸린다고.”
한 상단의 선장으로서 이런 분야에 빠삭한 바람손이 툴툴거리는 마이스터를 제압했다. 으레 있는 다툼이었기에 장내에 있던 그 누구도 마이스터의 심술에 주목을 주지 않았다. 하다못해 이사른콜마저도 그랬다.
“그런데 할머니, 용사님은 아직이에요?”
“음, 나도 잘 모르겠구나.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땐 분명 잘 오고 있다 했는데.”
아크메이지는 자리에 없는 사람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왜 늦는지는 모르겠다.
“오는군.”
“음?”
“오네.”
“오는구마잉.”
다행히라고 해야 할지, 그녀의 고민이 깊어지기 전 베르세르크와 크러셔, 미스틸테인이 고개를 들었다. 하나 같이 오감이 날 서 있기로 유명한 전사 셋이었다.
“오나 보군.”
그렇다면 믿어도 된다. 감각이 둔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번에 오는 이가 과연 누굴지 점쳐 보며 세 사람이 인지했을 누군가를 기다렸다. 얼마 안 가 딸랑 하는 종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흐아, 오랜만에 오니까 여기도 춥네요.”
추위로 인해 새빨갛게 튼 볼과 코, 그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선인의 광휘. 모두 신전에 소속된 인퀴지터와 다니엘, 맥시의 것이었다.
“늦었잖아요, 샌님.”
“미, 미안하다. 오는 길에 소매치기를 만나서…….”
“손 잘랐습니까요?”
“뭔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따끔히 말한 후 신전에 넣어 주고 왔다.”
인퀴지터는 데스브링거의 시비에 버럭 화를 내고는 식탁으로 주섬주섬 합류했다. 그녀의 앞에 내려진 나무 잔은 도수가 약한 포도주를 담고 있다.
“그보다, 저희가 마지막입니까?”
인퀴지터는 기존에 있던 인원들을 두고 차례차례 눈인사나 묵례를 하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그녀와 그녀의 일행이 정말 마지막에 도착한 것이라면 실로 면목 없는 일이었기에 꺼내게 된 말이었다.
“다행이 아닙니다요.”
“아직 한 사람이 안 왔네.”
“아,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급하게 인사할 당시 보여야 할 면면이 안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인퀴지터는 의자를 끌어 와 앉으며 다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베르세르크, 크러셔, 호크아이, 미스틸테인, 이사른콜, 호드, 데스브링거, 바람손, 마이스터, 아크메이지, 속죄하는 요정, 계속되는 보라뱀, 티마뉴크, 주방에 있는 로키, 그녀와 함께 온 다니엘과 막시모야크…….
딸랑.
그녀가 마지막 얼굴을 찾았을 때,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프레드릭이 마구간에 들어가는 걸 거부해서…….”
“모험가님……?”
아울러 문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 건 그립디그리운 얼굴이라. 인퀴지터의 눈이 한순간 커졌다가, 이내 울 것처럼 휘어졌다.
“죄송합니다, 파우스트 경.”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몇 년에 걸쳐 훌쩍 자란 청년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모험가와 실로 똑 닮은, 다만 물이 빠진 잿빛 머리를 깔끔히 뒤로 넘겨 엄숙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그보다, 기념식은 끝났습니까?”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어서 오기나 하라고.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으니까.”
“아, 네.”
하나 조금만 웃음기를 머금어도 다시 열아홉 소년으로 돌아가는 건 달라지지 않는지라. 그들은 파우스트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며 잔을 들었다.
“다 왔지? 그럼 종전 기념 건배사나 하자고.”
“이왕 하는 거, 이번 시작은 지각생이 열지? 이제 술 먹어도 되잖아.”
“아… 제가 하나요?”
“그래! 네가 해라!”
나이 먹은 자들의 미루기에 파우스트는 조금 곤란한 낯을 했다. 물론 자존감이 낮다 할 뿐이지 정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청년은 얼마 안 가 자신 몫의 잔을 들었다.
“그럼 선창하겠습니다.”
홀로 일어선 청년이 회색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나지막하게 말을 외쳤다. 몇 년 동안 치열하게 좇았던 누군가의 자취가 절로 그의 건배사를 결정시켰다.
“나의 검에 승리를.”
* * *
“저 하늘에 영광을!”
잔이 들렸다. 콜라가 가득 담겨 기포를 바글바글 올리는 잔이었다.
“와, 얘. 또 게임 하고 있네.”
“너도 참 너다. 그런 사고가 있었는데도 게임이 하고 싶디?”
그러다 등 뒤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몸이 유난히 들썩였다가, 어정쩡하게 근육의 긴장을 풀었다.
“어, 뭐야. 너희 왔어?”
요백은 콜라를 한 모금 삼킨 후,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었다. 타다당, 타다당. ‘아 저 미친 컨셉충 새끼! 또 헤드 땄어!’ 덕분에 사플─사운드 플레이─은 물 건너갔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치킨 한 마리 먹기 직전이었다.
“와, 화면 돌아가는 것 봐. 역시 너는 프로 게이머를 했어야 했다.”
“긴 잠 자고 깨어났는데 실력은 대체 왜 는 건지.”
그는 마지막 남은 적까지 헤드를 깔끔하게 날려 준 후, 의자를 빙글 돌렸다. 잘그락. 의자에 장식용으로 매달아 둔 우아한 등자끈이 잠시 원을 그렸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시간 아직 안 됐는데.”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왔지 뭐야. 그래서 바로 왔지.”
“나도 수업이 일찍 끝나서…….”
“그래?”
어차피 게임은 이 판을 마지막으로 그만하려 했다. 파티원들하고도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고.
해서 요백은 인사만 마친 후 바로 게임을 종료했다. 모니터를 가득 채웠던 게임 화면이 사라지자 그가 직접 그린 배경화면이 떠올랐다.
“그보다 이젠 완전히 회복됐는갑다? 한동안은 액션물도 보기 싫어하더니.”
“뭐어… 슬슬 그리워지더라고.”
적발, 녹발, 백금발, 백사자 등등 개성 넘치는 위인들이 반반 머리 사내와 함께 오밀조밀 모여서 축배를 드는 화면이었다.
“그보다 나 저녁 준비 아직 안 했는데.”
“저녁 준비는 무슨, 네 요리는 줘도 안 먹어.”
그리고, 요백은 그 그림을 등진 채 그의 친구들과 거실로 나갔다. 지금 그의 현실은 바로 이곳이었다.
= 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