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became the Three Kingdoms Sackcloth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천수 장악을 위한 행보
나는 놈의 목소리에 반응해 비수를 던졌다.
비수는 허공을 체공하다가 촛불을 꺼트리고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다.
“나는 그림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조용한 어둠을 원한다.”
이에 문밖의 사내는 화답이라도 하듯 화톳불을 꺼뜨리며 대답했다.
“왕이 님께서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그러지.”
뱉어낸 말에 살기를 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살기가 향한 문밖이 아닌 문안의 장기를 향하고 있기에 사내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이에 완전한 어둠 속에 숨어든 나는 한없이 초라해진 장기를 바라보고 한 마디했다.
“장기, 그대와는 추억을 다시 만들어야겠어.”
*
내 앞을 걸어가는 이가 ‘등현’인 걸 알았다.
맹달의 사촌,
배신자에 비겁자,
왕이의 더러운 혓바닥 같은 존재,
어쩜 그녀의 은밀한 기둥서방이 이놈일지도 모르는 노릇. 묵묵히 걸어가는 놈의 등을 쳐다보며 몇 번이고 목덜미를 긋고 싶은 걸 참았다.
그렇게 그를 따라 어둠이 싸인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 사방이 탁 트인 곳에 다다랐다.
호젓한 정자가 멋들어지게 자리한 정원.
그 후원이 예전 장제의 안사람. 추씨가 사용하던 전각인 걸 알았다.
나는 더는 따라오지 않는 등현을 버려두고 안채의 더 깊은 곳. 금남의 장소였던 그곳에 발을 디뎠다.
어릴 적 추씨와 추억이 되새겨졌던 그곳으로.
기암 괴초가 뿜어내는 향기에 취하듯 머뭇거렸다. 은은하게 퍼져가는 향기는 몸 안에 두르던 어둠을 서서히 벗겨내듯 떨어뜨렸다.
이런 일이…
쉽게 나약해질 심력이 아닐 진데?
몸에서 떨어져 나간 어둠을 주워 담고 머리 위로 선기를 돌려 그녀의 방안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방안의 짙은 어둠과 마대의 살기에 따라 출렁이는 촛불만이 일렁일 뿐.
주변을 경계하는 병력도 없이 오롯이 나와 왕이 단 둘만이 있을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등현에게 미리 소식을 전했는지, 전체적으로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는,
남자의 방심을 흔들어 놓고 눈앞에 환하게 웃는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
“호호호, 어서 오세요. 안정에서 오시느라 길이 험했을 텐데.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
그녀의 목소리는 한 떨기 꽃처럼 나긋나긋했다.
왕이는 가시를 품은 붉은 장미.
아무도 없는 방안. 그녀와 단둘이 있으니 그녀가 뿜어내는 체향에 코끝이 반응했다.
어쩐 일인지?
그녀에게 살심을 품고 있는 내게 이런 욕구라니?
낭심을 뜨겁게 달구는 그녀의 목소리, 냄새, 미묘한 분위기, 모든 게 이상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이…
아, 아까 괴이한 향초 냄새 때부터 이상하기는 했어.
요녀妖女.
그녀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그것이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어 흩어질 것 같은 이성을 되찾았다.
하마터면 흔들릴 뻔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
가까이 붙으려는 그녀와 한걸음 물러서며 내 몸을 두르고 있던 어둠을 더 두껍게 했다.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한 걸음 나서며 체향을, 농익을 냄새를 짙게 했다.
“호호호, 역시 말수가 적으신 분이군요.”
“…..”
“천수를 방문하신 이유가, 저번에 말씀하신 약조를 지키라는 게지요. 어서 천수 호족을 설득해서 조 승상께 바치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억지로 한마디 내뱉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했기에 건네진 대답.
“그거라면 천수 호족을 설득할 명분을 획득했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태수 인장과 함께 병사들을 넘겨드리겠습니다.”
“…결국, 그렇게 됐어.”
그녀의 대답을 들을수록 얼굴이 붉어지고 분기가 치솟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줄 때.
“요망한 년.”
크게 소리치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단 한걸음. 바닥을 쿵, 하고 찍고 그녀의 앞까지 당도했다.
오늘 그녀를 죽일 것이다.
마음은 분노로 잠식했고 뻗은 손길은 그녀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당겼다.
찌지직.
그녀의 옷이 찢긴다. “아아악!” 교성 같은 그녀의 비명이 나왔다. 당혹스러운 눈빛.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왕이가 말했다.
“너는.”
“그래 나다.”
“어떻게? 이곳에. 으으윽. 놓아. 놓아줘.”
찌겨진 옷과 내 손길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 치는 그녀의 낯빛.
어깨를 꽉 움켜쥐어 살깔이 찢기고 붉은 핏물이 흐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그녀가 입술을 벌려 소리쳤다.
“놓아줘, 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 어떻게든 도망치려 몸을 흔들었다.
나는 바짝 잡아당겨 그녀를 품었다. 훅, 그녀의 체향이 지내진다.
“감히! 네놈이 그러고도 살 줄 알고.”
버둥버둥, 지지 않으려는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 길고 흰 그녀의 손가락이 내 목덜미를 흩고 지나쳤다.
손톱으로 긁어내는 앙칼짐. 목덜미에 상처가 생겼다. 뚝, 주르륵. 살점이 짧게 파였다.
쓰리다.
무의식적으로 목덜미에 손을 가져갔다. 그렇게 한 손이 떨어져 나가자 왕이의 발버둥은 필사적으로 변했다.
“놔, 이걸 놓아!”
치이익.
더욱 버둥거려 그녀를 붙잡던 옷가지가 찢어진다. 거기다가 나를 밀어내던 반동에 몸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었다.
쿵,
“악!”
불시에 떨어진 충격 때문일까? 항상 야릇하게 바라보던 눈동자가 풀리고 그 자세 또한 미묘했다.
헝클어진 머리. 찢겨진 옷섶과 벗겨지듯 드러난 가슴.
그녀는 그것도 모르고 신음을 뱉는다.
“끙.”
추잡한 걸 보았기 때문일까, 눈매를 좁히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꼴이라니 더러운 년과 드잡이를 벌이다니.
“추잡스러운 몸뚱이로 날 어찌할 생각은 말아라.”
분노와 흥분이 번질거려 욕망처럼 들끓었다. 어찌보면 도발적이고, 미워 죽이고만 싶었다.
이상했다.
내 마음이 미묘하게 들끓었다.
더럽힐 것이다.
그녀를 고통 속에서 천천히 괴롭힐 것이다.
흥분과 살의. 그녀의 가슴을 보지 않으려는 마음과 다르게 낭패하게 흐트러진 그녀의 몸 전체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녀의 체향이 진해질수록 머리를 두르던 선도의 기운은 작아지고 주변을 밝히는 불꽃은 일렁였다.
주춤거리는 사이, 정신을 차린 왕이가 옷섶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한쪽 다리를 벌려 묘한 자세를 취한다.
나는 그걸 보자 눈이 붉어졌다.
“더러운 것. 지금 나를 유혹하는 것이냐?!”
하지만 왕이는 찢긴 옷섶을 가리기보다 드러나게 만지막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이런!”
호통을 쳤다. 어이없음에 내뱉은 고함이다. 그런 왕이가 가슴 사이에 머물던 손가락을 뽑아내며 말했다.
“마대 네놈에게 유혹이라니? 가당키나 해?! 네놈에게 줄건 이것뿐이지.”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손아귀에 숨겼던 향낭을 집어던진다. 아니 뿌렸다는 말이 맞을 터였다.
흰 가루가 확,하고 퍼져나간다. 콧속으로 들이켜진 가루.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던 냄새가 그곳에서 났다.
나는 날아오는 가루와 향낭을 손바닥으로 쳐냈다.
툭, 저 멀리 날아가는 향낭. 하지만 흰 가루는 퍼질 대로 퍼져서 입과 코로 삼켜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흡.
숨을 멈췄다.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퍼져가는 흰 가루를 흩어냈다.
향긋한 냄새.
끄적거린 감정을 일으키던 냄새.
이건 정원의 괴초에서 나던 냄새였다. 어찌 보면 처음 이곳에 들던 때부터 냄새에 정신이 이상했는지도 몰랐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칼을 든 적장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별 더러운 수를. 네년이 발악해도 너는 죽는다.”
향낭의 정체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대마와 같고, 또 어찌 보면 양귀비 꽃을 원료로 했을 지도 몰랐다.
그걸 숨으로 삼켰으니 흔들린 마음이었지.
그런 내 생각과 다르게 왕이는 웃고 있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흰 치아를 핥고 있었다. 마치 나를 유혹하듯.
이게 뭔?
아직인가? 중독이 심해지는 것인가?
그럼에도 그녀는 고혹적이다.
한 걸음 옮긴 내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소매 안에 숨긴 비수를 꺼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백광이 번쩍이는 비수.
차가운 비수가 손안에 쥐니 끄적거린 감정들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긴 호흡을 후, 내뱉고 말했다.
“요녀.”
마음에 담긴 말을 털어냈다. 그럼에도 그녀는 웃는다.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호호호. 그 비수로 뭘 하려고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혀를 핥는다.
“…..”
“저를 어떻게 죽이실 거죠?”
“….”
간드러진 비음과 고혹적인 목소리. 그녀는 웃던 걸 멈추고 허리를 세웠다. 그것과 동시에 올라간 치맛자락. 한쪽이 벗겨진 치마 사이로 하얀 다리와 그 안의 검은 것들이 보였다.
“…..”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는지? 중독되어 헛것을 보고 있는 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털어냈다. 세차게 흔들어 그녀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럼에도 보이는 하얀 다리.
허벅지 살이 탄탄하게 뻗어있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 검은 숲과 촉촉하게 흘러내리는 그것은…
“큭.”
입술을 깨물었다. 신음을 뱉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중독되었다. 분명 내가 보는 건 헛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수를 쓴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이다지도 마음이 흔들리는 기운은.
부동不動으로 단단한 선술의 도리가 흔들리다니. 나는 좌자의 제자. 이런 경우가 없어야 할 좌자의 제자가 내가 아닌가.
부끄럽다. 이런 경우를 겪다니. 스승께서 들으신다면 혼내실 것이다.
마음에 수치심이 일자 머리는 차가워지고 선도의 심결을 일으켜 정신을 다독였다.
머리끝에서 퍼진 한기는 얼굴을 지나 온몸으로.
하지만 온 방안에 퍼진 향나으이 기운과 가루들은 지금도 허공에 퍼져있어 선도의 기운을 돌린다고 다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심결을 일으켜 정신을 보호했다. 백회혈, 미간, 가슴을 지나 온몸으로,
후우- 이 정면, 정신을 놓지는 않을 테다.
감았던 눈을 뜨고 요녀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앞에 있었다. 잠깐 감았던 눈이었건만, 그녀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내 얼굴 가까이에서 혀끝을 내밀고 있었다.
마치, 나를 가지세요, 라고 말하듯이.
“무슨?!”
또다시 놀랐다. 헛것이다. 선도의 기운이 들끓었다. 중독이 심하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그녀의 혀끝은 미끈거렸고 그녀의 체향은 그윽하게 올라와 아찔했다.
“저리가.”
하지만,
그녀의 혀끝은 얼굴을 타고 목덜미를 훔치고 있었다.
저리가.
밀어냈다.
뭘 밀어낸 지도 모르게 밀었다.
독사와 같은 혀뿌리를 밀자 그녀의 체향도 멀어진 것 같았다.
정말인가?
내가 민 것이 왕이였나?
쿵, 하고 소리가 났으니 그녀가 맞을 터였다.
왕이는 엉덩이를 매만지며 아픈 표정을 짓는다. 눈썹을 치켜뜨고 매섭게 쳐다본다. 그러며 내뱉은 말이.
“나를 두 번씩이나 밀어.”
정말이군. 실체를 밀었어.
그 생각과 함께 울리는 그녀의 웃음.
“호호호. 아무리 바른 정기를 가졌어도 사람이, 그것도 수컷인 네놈이 날 피할 수가 없을걸. 네놈이 날 밀쳤으니 나도 네놈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리 말하는 왕이가 어딘가를 바라본다. 내 허리춤. 나는 그 눈길에 따라 허리를 매만졌다.
뜨끔. 피가 흐른다. 언제 다쳤는지? 뭐에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게 핏물이 흐른다.
뚝. 뚜뚝.
통증이 느껴졌다. 다시금 만져보니 작은 아주 작은 비수가 허리춤에 박혀있다. 아니, 비수라기보다 비녀라는 표현이 맞을 터였다. 그걸 붙잡고 뽑았다. 작은 비수라서 오장육부를 끊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윽.”
다른 게 느껴졌다. 비수에 독이라도 바라졌는지 몸이 뻣뻣해짐을 느꼈다.
“이건. 독인가…”
“호호호. 네놈처럼 버티는 녀석도 처음이다. 오랜 삶 속에 네놈 같은 종자는 없었어.”
“무슨?”
“은의 주왕도 네놈보다 짧았지. 좋은 영약과 신선 술에 능한 수하가 있어도 말이지.”
“무슨 미친 소리를.”
“호호호. 그렇게 들리지. 약에 취해 미친 소리 같지? 나를 막았던 것들은 다들 비슷한 소리를 했지. 그중 비간比干의 심통 맛이 가장 좋았지.”
“심장?”
“그래 네놈 심통은 어떨까?”
“무슨 미친 소리를.”
미간을 씰룩거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겨웠다.
헛것을 듣는 것인가?
헛것을 본 망상인가?
머릿속 생각들이 뒤죽박죽이 된 것인가?
“호호호. 이해하기 힘들지?”
“네년의 정체가 뭐야?!”
말을 걸었다. 마비된 몸을 풀고자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녀가 말을 꺼내도록, 짧은 시간이라도 벌고자, 턱밑으로 땀이 떨어지고 정신을 일깨우려고 선술의 묘리를 돌렸다.
“나? 내가 누구냐고?”
“그래.”
“호호호호. 그걸 몰라서 묻는거야?”
요사스럽게 웃는다. 장난스러운 눈동자가 지나친다.
“나는 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
“무슨 소리를?”
“먼 옛날은 달기妲己라고 불렸고, 또 어떨 때는 말희末喜라고도 불렸지. 이곳보다 더 먼 곳에서는 ‘릴리’라고도 사랑받았지.”
“무슨 미친 소리를. 제정신이 아닌 게야. 지금 말하는 거라면, 은殷 나라 달기와 하 왕조 말희를 닮고 싶어 지껄이는 소리겠지.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원한다면 네년에게 꼭 어울리는 헛소리다.”
“호호호. 비슷한데 틀렸어. 주지육림의 향락보다 절망과 슬픔을 좋아하지. 특히 네놈 같은 녀석이 마음에 들어. 그 심장이 어떨지가 궁금하다고.”
“구미호 흉내라도 내려고? 인간의 심장을 뽑아먹고 싶다는 게지.”
“호호호, 어찌 알았을까?”
“제정신이 아닌 게야. 네년도 미약에 취해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지.”
“좋을 대로 생각해. 그딴 소리를 지껄이며 심장이 뽑힌 녀석이 하나둘이 아니라니깐.”
“무슨?”
“…그날도 그랬어. 주왕의 침실에서 이렇게 노래 불렀지.
‘왕이시어, 성인聖人의 심장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은나라 스승, 비간比干의 심장에는 분명 일곱의 구멍이 있을 겁니다.’
주왕의 허락을 구했지. 그리고 붙잡아 온 비간의 심장을 뽑아냈어. 붉고 영롱한 빛깔, 그놈의 심장을 먹고 얼마나 행복했다고.”
“미친년. 제정신이 아닌 게야. 약에 취해서 돌아버렸어.”
“괜찮아. 다들 너같이 얘기해.”
그 말과 함께 비수를 뽑아든 왕이가 한발짝 다가왔다. 비수 끝이 가슴을 가리켰다.
시간이 없었다. 저 미친 것은 내 심장을 원했다. 은나라 재상 비간의 고사처럼 내 심장을 뽑아죽이고 싶음을 알았다.
미친년. 얼마나 약에 취한 거야.
아니면 내 환상인 건가?
내가 들어마신 미약이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가?
고개를 흔들었다. 칼이라면 나도 있었다. 저 작은 비수를 움켜진 그녀와 달리 나도 비수가 하나 더 있었다.
생각을 집중했다.
비도술의 진언을 중얼거렸다. 내 의지를 일으켜 움직여주기를.
저 멀리 떨어진 비수가 부르르 떤다.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다면 움직이려고 한다. 그녀가 찔러낼 비수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를 바랬다.
“윽.”
파고든다. 그녀가 찔러낸 비수가
얇디얇은 내옷을 찢고, 심장을 보호하는 가슴뼈에 부딪쳤다.
푹,
피가 나온다. 윽, 하는 짧음을 삼킨다. 그 고통과 함께 옥죄던 감각이 돌아옴을 느꼈다.
손을 뻗어 가슴으로 파고들던 칼날을 붙잡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부르르 떨고 있는 비수를 원했다.
주르륵 딸려 온다. 의지로 부르자 비수가 손안에 잡혔다. 그리고 그걸 왕의의 가슴팍에 밀어넣었다.
푹, 찔렀다. 짧은 비수로 몇 번이나 찔렀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에 변화가 없었다. 비명이라도 질러야 할 것을. 헛것인가? 망상이 끝나지 않은 건가? 그럼에도 손끝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따뜻함을 느꼈다. 그걸 느끼자 온힘을 다해 심장에 박아넣었다.
그러자 나온다.
“아아악,”하는 그녀의 소리를 들었다. 왕이는, 아닌 내가 보는 헛것은 비명을 지르면서 내가 박아넣는 비수를 움켜쥐었다. 죽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그녀는 입가로 울컥하는 핏물을 뱉어내며 읍조리고 있었다.
“비간의 심장. 그것처럼 네놈도 구멍이 있기를…”
“뭐라는 거야?!”
“먹고 싶다고.”
“제정신이 아니야. 나도, 너도, 지금의 상황도.”
죽을힘을 다해 비수를 밀어 넣었다. 계집의 힘보다 내가 강해야 옳았다. 비수를 붙잡은 그녀의 손길을 이겨내고 찌르기보다 그어냈다. 그녀의 가슴에 큰 상처를 냈다. 벌떡거리는 그녀의 심장이 보일 정도로.
그녀의 심장은 검다.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검게 보인다.
이게 맞는지 싶을 정도로,
그걸 옴켜쥐고 선술의 진언을 외웠다.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게 지금은 그러고 있었다.
모든 게 망상일 것이다.
이렇게 죽이는 왕이도 지금의 상황도.
버둥거리는 그녀, 그녀를 죽이고 있는 나.
힘이 풀려 쓰려진 왕이를 내려다보았다.
부끄럽고 진저리 친 싸움이다.
그 순간.
문밖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흠칫 놀랐다.
지금껏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곳에 들리는 목소리였다.
[송구합니다. 분명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건 꼭 전해야 하기에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무슨 말인가? 문밖에서 말하는 저자의 급보는.
답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있었다. 그러자 문밖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안정의 조조의 군병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선발대로 하후연이 직접 왔고, 후속으로 장합이 5천 본대를 이끌고 천수로 향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척후대의 보고가 얼마 전이니 잠시의 시간이면 성문을 통과해 정청으로 들어설 겁니다.
그러니 외교 사신과 독대를 끝내시고 채비를 갖추시는 게 옳습니다.]
놈의 목소리를 듣다가 보니 등현임을 알았다. 순간 갈등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행동했다. 아직 손안에 잡힌 비수를 뽑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등현이 문을 여는 걸 보았다.
벌컥 방문을 잡아당긴 등현의 손에는 검이 잡혔다. 그리고 비수를 잡은 나를 노려보고 소리친다.
“이노오오옴, 네놈이 감히!”
헛소리. 왕이의 하수인에 불과한 놈이 어디서.
검을 휘두르는 등현과 붙었다. 들불 맞은 황소처럼 달려드는 놈의 검을 피해 뒷걸음쳤다. 그리고 기회를 보아 비수를 던졌다. 이딴 놈은 충분히 맞출 수 있는 실력은 있다.
푹! 목덜미에 박히는 비수. 그걸 붙잡고 꾸르륵, 더러운 소리를 내뱉은 등현.
입밖으로 피거품을 게워냈다. 비겁한 자의 삶은 짧은 것이.
배신자 녀석.
죽어라. 시원하게 죽어라.
죽어버린 등현을 내려다보며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긴장이 풀리자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짜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스라한 고통 속에 왕이의 품속을 뒤졌다. 분명 그녀의 품속에 해약이 있으리라, 아직 덜 풀린 다리의 마비로 어기적거리며 한참을 찾았다.
다행히 몇 가지 약재가 나왔다.
일일이 냄새를 맡으며 해약과 독약을 구분했다. 또 어떤 것은 일일이 손끝에 살짝 묻혀 중독 상태를 확인.
그렇게 시간을 보내길 한참.
그제야 중독이 풀리고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풍류대 장횡이 찾아왔다. 멀찍이 대기하던 장횡이 찾아와 말하고 있었다.
“가주님, 큰일입니다. 하후연의 선발대가 성안을 들쑤시고 다닙니다. 얼마후면 이곳까지 당도할 것입니다.”
장횡은 방안에 퍼진 혈향과 죽어버린 시체들을 바라보고 이맛살을 좁혔다.
“가주님, 왕이의 가슴팍을 파헤치셨습니까?”
“…..”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보면 복수에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장횡은 배신자 등현을 알아보고 침을 뱉었다.
“카아악. 퉤! 잘하셨습니다. 배신자는 죽어 마땅하지요. 가주님, 서두르셔야 합니다. 하후연의 군졸이 올라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장횡의 부축을 받고 길을 나섰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 않아 어둑했지만, 천수 곳곳은 어수선했다.
특히나 관청의 입구를 나서자 하후연의 병졸이 들이치고 있어 관청 밖을 빠져나가기 힘들었다.
그때, 숨었던 풍류대가 움직여 하후연의 병사를 제압했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고는 달려왔다.
“가주님, 하후연의 병사가 천수의 주요 지점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병영이 있는 곳으로 하후연이 직접 갔습니다. 아무래도 병영을 점거하려는 것 같습니다.”
“병영을.”
“그것을 막고자. 정은 장군과 풍류대가 그쪽으로 갔습니다.”
인상을 찡그렸다. 어려운 문제였던 왕이를 잡았건만, 다시금 조조 군의 행보에 일이 급하게 되었다.
하후연의 선발대를 막고, 장합의 본대까지 제압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천수 병력이 필요한데. 그들이 나를 도와 함께해야 하는데.
천수 태수 장기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고 있어 기다릴 수는 없었다.
하후연의 선발대가 많지 않다고 했으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대기 중인 풍류대와 성밖에 숨은 성의의 기마대에게 지시해 이곳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하후연을 저지할 것이다. 그를 이겨내고 우리가 천수를 장악할 시간이 필요하다]몇 마디 명령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