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시스템의 딱딱한 메시지가 아닌 신의 의지가 담긴 진짜 신어, 참으로 오랜만이다.
첫 메시지는 감사의 표현.
[그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덕분에 에론 대륙은 ‘미래’를 가지게 될 겁니다. 그동안 가져 보지 못했던 변화라는 미래를.]운호는 살짝 부끄럽다. 한 게 뭐가 있다고.
“미래라,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차원과 차원의 만남이 시작될 것인데… 전 다만 부작용이나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인간은 항상 그렇게 발전해 왔습니다.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노력, 그것이 발전의 원동력.]부작용이라고 하니 언뜻 생각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동안 에론 대륙을 괴롭혀 왔던, 그래서 운호가 차원 거래자가 된 원인.
“정체의 저주는? 완전히 벗어났나요?”
[거의 사라졌습니다. 현재 에론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사라졌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대체 차원 정체의 원인은 뭐였습니까?”
[질병입니다. 매우 단순한 원인.]질병이라니, 차원이 살아 있는 생명체인가?
[타당한 비유입니다. 차원은 생명체와 다를 바 없습니다.]“네?”
[인간을 예로 들어 보면… 인간의 몸속엔 수많은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산균, 대장균, 백혈구 등 다양한 존재들이 모여 ‘인간이라는 세상’을 구성합니다.]“아!”
[차원도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생명체입니다.]맞는 말이긴 하지만…….
“신의 권능으로 질병을 치유할 수 없었나요? 당신이 창조한 세상이 아닙니까?”
[또다시 인간을 예로 들자면… 부모는 자식들을 창조합니다. 잘 자랄 수 있게 정성을 들여 양육하지만 결국 성장은 자식들의 몫.] [마찬가지입니다. 차원을 창조한 건 신이지만 성장은 차원 스스로의 몫, 반드시 신이 설정한 법칙을 따르지 않습니다.]“…그렇죠, 아무리 아이들을 잘 키워도 뜻대로 자라진 않죠.”
[성장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우연과 역행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스스로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차원의 정체는 질병, 바이러스였습니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법칙이 무시되면서 생겨난 불치의 질환, 그러하기에 신조차 치유할 수 없는 저주.] [정체된 차원은 썩어 들어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가 되겠지요. 그리고 차원과 운명을 함께하는 신마저도,] [치유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차원 내부에서 생겨난 질병은 그 차원 자체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맞습니다. 치유를 위한 처방, 지구 차원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백신의 접종입니다.]질병과 백신 접종, 그렇다면 던전이란 건 결국 병든 환자에게 수액을 꽂은 거였다. 병든 차원 에론이 건강한 차원 지구의 힘을 전달받기 위해.
[그러나 1차 백신 접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절망의 순간에서 그대가 나타났습니다. 2차 백신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1차 백신 접종 실패, 글리제 차원을 말하는가 보다.
[글리제의 운명은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제안드릴 것이 있습니다.]‘뭐지?’
[글리제와 에론과의 연결을 완전하게 회복하고 싶습니다. 차원 교류의 부작용으로 인한 글리제의 참극,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으흠.”
[에론은 건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글리제와의 연결을 온전하게 감당할 여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그대 덕분.]운호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감당이 가능하다면 서로 좋은 일이지.
“그럼 어떻게 연결을?”
[새로운 수액을 연결하겠습니다. 그것은 글리제의 변질된 마나를 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던전 연결을 말하는가 보다.
기존 안식처 던전 말고 새롭게 연결되는 던전.
“하지만 본격적인 차원 교류는 에론과 지구에도 부담인데… 글리제가 알고 보면 보통 차원은 아니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연결을 주재하는 권리는 그대에게 있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십시오.]“후우.”
일이 또 늘게 생겼나?
아니지.
어차피 예전부터 글리제와 에론, 지구는 비공식적으로 연결된 상태, 달라진 건 그것을 공식화하겠다는 신의 의지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하죠.”
[에론과 글리제, 그리고 지구 간의 삼각 연결이 공식화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점수…….]…….
무수히 떠오르는 메시지.
그리고.
[그대의 조력자로서 독립적인 차원 거래자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선정 대상, 자격 취소, 능력의 범위, 회수를 뜻대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부디 건투를!]또다시 운호의 가슴속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다른 차원 거래자를 선정할 수 있다고?
‘나 승진했구나.’
좋은 건가?
최소한 일은 편하게 할 수 있겠다.
* * *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본격적인 차원의 교류가 진행된 지 벌써 1년, 곳곳에서 잡음이 일어났지만 눈에 띌 만한 부작용은 아직 없었다.
운호가 임명한 차원 거래자들이 열심히 차원을 넘나들며 조율하는 중.
그중 한 명인 정지훈이 불퉁거리며 운호에게 말했다.
“그만 놀고 일 좀 하시죠?”
“논다니! 사업 구상 중이잖아.”
“사업 구상은 개뿔. 아니면 새장가라도 가던가!”
“연애 세포가 죽었어. 그러는 넌? 할아버지에게 증손자 보여 줘야지.”
“없어도 돼요. 지금 할아버지는 돼랑이한테 폭 빠져서 정신이 없는데…….”
돼랑이는 짬타와 천산설묘 간에 생겨난 사랑의 결실이다. 무려 일곱 마리의 새끼 중 하나, 어미젖을 떼자마자 정휘선 회장은 냉큼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로산트 제국 황제 롤랑 님이 제발 한 마리만 분양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더라고요.”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 그래!”
“일리나와 미오 론티아도 욕심을 내고 있고.”
“으흠, 그래도 안 돼! …정 그렇게 하려면 일단 짬타에게 먼저 허락을 받으라고 하고.”
짬타의 새끼들은 지구는 물론이고 에론 대륙, 글리제, 심지어 마계에서조차 초미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중동의 부자는 한 마리 분양받는데 10조를 제시했고, 에론의 권력자들은 수많은 보석과 결정석들을 거래 대가로 제시했다.
마계도 마찬가지 마왕 릴리트는 수시로 메이린을 보내 운호를 졸랐다.
하지만 운호는 절대 보낼 생각이 없다.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놈들이 얼마나 귀여운데,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키우지도 못할 것이다.
짬타의 혈통을 이어받아 그런지 보통 고양이가 아니다. S등급 헌터라 할지라도 가벼운 냥펀치 한 대에 골로 간다.
“무조건 거절해. 그리고 너 글리제로 간다 하지 않았어?”
“갔다 왔어요. 형이 안 왔다고 되게 섭섭해하던데…….”
“후우, 외부 도시가 하나씩 건설될 때마다 가 줬잖아. 새로 생겨난 도시가 몇 개지?”
“10개요. 던전도 10개가 생성되었고요.”
글리제 차원과의 연결이 회복된 후 외부에 던전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들은 안식처와는 달리 출입이 불가능한 던전, 마나 정화 장치처럼 대기 중 변질 마나를 흡수하는 역할, 그리하여 글리제 정상화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었다.
“참! 블루 드래곤이 또 사고 친 거 아시죠?”
“또 무슨 사고?”
“게임을 하다 누가 패드립을 쳤나 봐요. 현피 뜨기로 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그런데?”
“중학생 놈들이 패거리를 이끌고 나왔데요. 그래서 싹 다 개구리로 만들어 버렸다고.”
“후우.”
“지금은 풀어 줬지만요.”
“걔 입국 금지 6개월 때려. 반성해도 절대 들어주지 말고.”
“넵!”
사소한 부작용들은 계속 일어났지만 죄다 무시해도 될 만한 것들.
“그나저나 버킷 리스트가 하나 더 생겼네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운호는 정지훈의 소원이 뭔질 안다.
“꿈 깨라. 거기 이젠 못 가!”
“왜요? 망령의 위협도 다 사라졌다면서요?”
“관리하는 차원이 몇 개인데 하나 더 추가되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안 돼! 그리고 강호에 간다고 해도 천마가 순순히 네 소원 들어줄까?”
“…거래하면 되죠.”
“잘도 들어주겠다.”
정지훈의 새로운 버킷 리스트는 바로 천마에게 천마신공을 전수받는 것.
그래서 차원 천마가 되고 싶단다.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꿈.
바로 그때!
“냥!”
“야옹.”
짬타가 천산설묘와 함께 귀여운 여섯 마리의 새끼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어이쿠! 내 새끼들 왔어?”
“냐아아.”
“아응.”
“끼잉.”
아장아장 기어와 운호의 발아래 모여드는 아기 고양이들, 그래! 이게 행복이지.
결혼?
그까짓 거 안 해도 상관없다.
…뭐, 생각은 바뀔 수 있지.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오랜만에 릴리트나 보러 갈까?’
이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제나 믿음직한 조력자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운호의 곁에서 함께하고 있으니까.
* * *
강호 무림.
운호가 떠난 지 거의 50년이 지났지만 그곳도 평화로웠다.
갈등이 생기기만 하면 말의 대화가 아닌 칼의 대화를 나누는 무림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울까마는, 흔한(?) 정사대전도 일어나지 않았고 강호 정복을 노리는 비밀 세력에 대한 혈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시라도 치고받지 못하면 정신 건강이 매우 피로한 천마에겐 전혀 달갑지 않은 평화였다. 무공의 경지가 높아지면 뭘 하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뭔가 꼬투리를 잡아 무림맹과 한판 거하게 뜨고 싶지만 명분이 서지 않은 상황에선 그것도 어렵고, 그래서 도망친 독비구검 장표를 잡아 족치기로 했다.
개방과 하오문에 의뢰했지만 강호에선 종적을 찾지 못했다.
그럼?
당연히 변방이겠지.
마뇌 놈이 정운호를 따라 이계의 차원으로 떠나면서 보은으로 남겨 준 제트 드론 때문에 기동력은 충분하다.
쐐애애액!
대막의 사막 주변, 운남의 밀림 지역, 대월, 남해, 빙궁의 설산…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만큼 강호는 넓었다.
처음엔 괘씸한 장표를 잡아 버릇을 고쳐 주려 한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놈을 찾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경험하지 못했던 강호의 진면목이 새삼 신기하기만 할 뿐.
그러다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좁디좁은 강호? 웃기는 말이지.
이렇게 돌아다녀 보니 강호는 생각보다 넓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자연환경, 전혀 다른 변방인들의 생활상.
한때 무림을 지배하려 했던 천마였지만 알고 보니 자신이 살고 있던 강호조차도 다 둘러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였다.
“허허, 참으로 우습군.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았어. 한낱 종교 단체에 불과했던 마교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강호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벗어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중세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 반경은 지극히 좁기 때문에 누구나 개구리 신세다. 특히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는 세상은 특히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제트 드론은 보통 물건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해 주는 기물 중의 기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의 세상을 1할도 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강호만이 아니지.’
색목인들의 세상인 에론 대륙, 빌어먹을 뿔쟁이 새끼들이 있는 마계, 너무 강력한 기술 탓에 멸망해 버린 글리제, 그리고 이 모든 세상을 하나로 합쳐 놓은 것 같은 지구.
강호? 그냥 마을 수준이지. 자신은 그저 힘센 마을 사람 중 한 명이고.
갑자기 혈마 새끼가 고맙기까지 하다.
비록 놈의 흉계 때문에 마계로 끌려가 횡액을 당할 뻔했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맞다, 세상은 넓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만약 자신의 마교의 교주로서 남았다면 어땠을까? 아무도 모르고 무림을 지배할 계획이나 세우며 살다가 천수를 누리며 만족했겠지.
하찮다.
무엇을 얻으려고 아등바등 살아왔을까? 강호 지배? 그래서 성공하면 어쩔 건데? 골목대장으로 고만고만한 놈들 밑에 두고 으스대면서 산다고 뭐가 달라질까?
순간 천마의 감정을 휩쓸어 오는 지독한 허무감, 모든 것이 부질없다.
그리고 대오각성(大悟覺醒)했다.
“하하하하!”
천마는 제트 드론을 움직여 하늘로 나아갔다.
그의 의식은 몸뚱이보다 더 빠르게 나아갔다. 멀리멀리, 우주를 너머, 또다시 새로운 차원으로!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천마의 육신, 황금빛 가루가 되어 산산이 뿌려졌다. 금속으로 된 두 팔과 다리를 남기고 말이다.
그렇게 천마는 등선(登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