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
1화
【이야기】
나는 이미 끝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것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끝이 어디인지 모를, 쭉 이어진 길을 셀 수 없는 시간만큼 걸었다는 것만이 직감적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몇 번째더라.’
도시가 불에 타고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그 불이 어찌나 붉던지, 하늘마저 붉은색으로 뒤덮이며 검은 재들이 그 하늘을 유영했다.
“아…….”
반복한 횟수를 세는 걸 멈췄음에도, 계속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려 한 내 모습에 나는 침음을 내뱉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거지.’
멸망 징조들을 간신히 막아 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멸망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게이트.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 사람들을 전부 대피시켜도 대피소에 게이트가 생겨나고, 몬스터에만 전념해도 몬스터가 아닌 압도적인 무언가들에 처참히 패했다.
내가 무얼 하든 결과는 똑같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엇을 하건, 내 노력을 비웃는 양 결과는 늘 같았다.
‘다 뭔 소용이지, 이게.’
움직이는 한쪽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니 피로 질척이는 뺨이 느껴졌다. 한쪽 눈에서 흐르는 피였지만 그다지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어차피 전부 되돌아갈 테니.
회귀.
아니, 어쩌면 저주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야 내가 뭔 짓을 하건 결과가 같은데, 그것이 저주가 아니라면 무얼까.
세상의 멸망. 사람들의 죽음.
정말 미쳐 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아주 많이 봐 온 풍경이었다. 어쩌면 내 이야기는, 이 풍경을 처음 본 날에 이미 끝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아득히 먼 예전에 이미.
“…….”
고개를 돌려 잔해들 사이에 누워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몇 차례 강한 공격을 막아 내느라 생긴 치명상, 그리고 자잘한 상처들과 그간의 잔흔들. 전부 한 사람에게 난 것들이었다.
“…참.”
이런 몸 상태로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용했다. 동시에 상처로 엉망인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한결같이 왜 이 모양인 건지.
푹. 나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애매한 숨을 내뱉는 사람을 바라봤다. 곧 시체가 될 이 사람은, 다름 아닌 내 형. 한지운이었다.
“에휴…….”
나는 다친 배를 어루만지며 형이 죽을 때를 기다렸다. 형이 죽을 때를 기다리는 이유? 간단했다. 형이 죽어야 되돌아가니까.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다.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돌아가려면 죽어야 하고, 돌아가려면 죽여야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당연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녔다.
‘죽일까 말까.’
나라고 다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배는 이미 찢어져 있었고 왼팔은 움직이지 않으며 오른쪽 눈은 미끼로 던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고통이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저, 멸망한 풍경은 취향이 아니었기에 돌아갈 거면 빨리 돌아가는 게 내 성미에 맞았다.
“…….”
됐다. 애꿎이 힘을 소진할 필요도 없고, 굳이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으니.
“눈이나 좀 감아라.”
어디를 보는 건지, 허공을 바라보는 뜬 눈이 퍽 불쌍해 보여 나는 형의 눈꺼풀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눈을 감기려던 찰나, 형의 입이 움직였다.
“와, 씨.”
순간 당황한 손이 퍼뜩 허공으로 올라갔다.
“…….”
형이 죽기 전에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멋쩍게 들어 올린 손을 조심스레 내리며 형에게 고개를 가져갔다. 뻐끔거리며 무어라 말하려는 듯한 입에선 쇳소리만 들려왔다. 아마 목이 나가 소리가 나오지 않는 거겠지.
‘포션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나는 빈털터리 신세였다. 그렇기에 현재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형의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새로운 장면인데 기다리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다가 말없이 꽥 죽어 버리면 별수 없고.
“지언…….”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갈라져서 듣기 힘든 소리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형태가 확실하게 잡혀갔다.
내 이름. 갈라진 소리였어도 수없이 들어 온 내 이름이었기에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지, 언아.”
입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니 썩 보기 좋지는 않았다. 시체가 입만 벙긋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형은 그 뒤로도 갈라지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나를 불렀다. 마치 나를 찾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다물고 있던 입을 조그맣게 벌려 대답했다.
“왜.”
“…….”
귀는 멀쩡한 모양인지 내 대답에 곧장 말이 끊겼다.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마 ‘미안해’나 ‘잘 있어’ 정도겠지만 뭐든 상관없었다. 처음 생긴 지금 상황으로 충분하니까. 작은 이변. 그걸로 됐다.
“…지언아. 여긴…….”
의식이 있어서 저렇게 말을 어물쩍거리는 건지, 무의식적으로 그러는 건지. 계속 말을 잇지 못하는 형의 모습에 이번엔 내가 먼저 물었다.
“형.”
“…….”
“왜.”
그러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이변은 무슨 이변.
‘…다음에는 어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내가 하는 것은 끝없는 반복. 아니, 제각기 다른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결과는 같으니.
나는 시선을 데구루루 굴려 형을 바라봤다. 아직도 작게 달싹이는 입이 시야에 들어왔다.
“형,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진 모르겠는데 무리하지 말고 그냥―”
“지언아. 여긴, 소설 속이야.”
순간적으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감각이 들었다. 혹여나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내가 헛것을 들은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뭐?”
그러나 형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듯했다. 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형의 멱살을 잡고 또다시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냐고.”
“…….”
“형.”
“…….”
“한지운. 야.”
형은 미동이 없었다. 아니, 가슴이 움직이기는 하였으나 곧 끊어질 숨에 미세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뿐이었다.
“소설이라니 그게 뭔 소리야.”
“…….”
“말을 할 거면 끝까지 해야……!”
푹.
그 순간 배가 순식간에 따뜻해져 왔다. 아니, 뜨겁다고 해야 하나.
잡았던 형의 멱살을 놓치며 몸이 허공으로 번쩍 들어 올려졌다. 시선을 아래로 굴려 내 몸을 확인하자 타이밍이 좋지 않게 기계형 벌레 몬스터의 다리에 배가 뚫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컥.”
곧이어 몸에 차 있었던 피가 역류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방금까지 멀쩡했던 발아래는 이내 피로 흥건해지고, 입 안은 비릿한 쇠 맛으로 가득 메워졌다.
그러나 배가 뚫려도.
‘…소설.’
내 정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소설이라고?’
배가 뚫려서일까. 정신이 조금 차가워졌다. 몸에 힘이 겨우 들어가며 손아귀에 긴 막대가 생겨났고, 끝에는 낫날이 만들어졌다.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몸이어서인지 낫의 형태가 흐릿했다. 그러나, 당장 몬스터를 처리하기에는 충분했다.
휙. 낫을 가볍게 뒤로 휘두르자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왔다. 동시에 다리인지 팔인지 모를 것이 쑥 빠져나갔다.
“아.”
툭. 다리에서 힘이 완전히 빠졌다. 곧이어 다시 괴성이 들리며 머리 위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좀.”
휙. 한쪽 팔밖에 움직이지 않아 제한된 공격만 가능했지만 그리 큰 제약은 아니었다. 내가 한쪽 팔로 싸운 전적이 얼마나 많은데.
―케에엑!
몬스터의 검은 피가 흩뿌려지며 이내 툭, 움직임이 멈췄다.
“…….”
작게 숨이 헐떡여졌다.
“소설…….”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계속 되감은 단어.
소설.
소설이라는 한 단어를, 계속해서, 몇 번이고 되새겼다.
소설이라는 것은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
‘그렇다는 뜻은.’
지금, 아니, 그동안 내가 겪었던 모든 멸망의 끝이, 정해진 이야기이며 순리라는 뜻이었다.
“…허.”
허허하고 웃음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그 어떤 이유를 붙이건 그것이 이유가 될 텐데, 굳이 이유가 필요할까.
“허, 허…….”
그동안 내가 되돌아가며 이런 꼴의 세상을 본 이유가 그저, 그냥.
“소설이어서 그렇다고?”
허탈하진 않았다. 그냥, 좀 어이가 없었다.
“겨우 그딴 이유였다고?”
그냥 이유가 너무 단순해서 좀, 많이 어이가 없었다. 열심히 골인을 향해 뛰었거늘, 알고 보니 골인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나.
예전에, 이 모든 것이 전부 꿈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면 소설처럼, 정말 만들어진 세상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회귀를 반복할수록 그 모든 것들이 현실 도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을 그만뒀었거늘.
“하.”
설마 그 허상들이 진짜였을 줄이야.
이 시점에서 웃은 건 미쳤을 때 말고 없었는데, 처음으로 지금 상황에서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케에에엑!
“내가 너무 멍청했네.”
바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곧장 달려오는 다른 몬스터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끝없이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끝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머리가 점점 더 맑아지며, 이젠 어이없던 감정도 사라지고 단 하나의 감정만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하하.”
즐거움.
즐거움이, 내 머릿속을 휘어잡으며 지휘했다.
“포기할 틈을… 안 주네.”
휙! 겨우 움직이는 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거늘, 유감스럽게도 빗나가 팔이 몬스터의 입에 물렸다. 이빨이 살갗을 뚫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오며 살이 터져 나가 피가 흘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쾅! 몬스터를 향해 뻗은 손바닥에서 하얀 것들이 생겨나 이윽고 터져 나갔다.
“하…….”
그런 말이 있다.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던가.
‘그렇다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변이진 않을 것이었다.
그야, 미끼만 던져 주고 가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비틀거리며 포위된 주변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힘없이 팔을 휘두르며 공격을 받아 내던 찰나.
“아.”
콰득. 어깨를 물리며 곧이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 타이밍을 노려 다른 몬스터들이 달려들어 내 몸을 베어 물었다.
콰드득. 씹히는 감각이 생생해지며 결국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순간, 시야에 형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몬스터로 인해 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의 형의 모습이.
모처럼의 이변이었다. 아니, 생전 처음의 이변이었다. 그래서일까. 저 죽어 가는 얼굴이 왜 이렇게 고마운지, 입가에 미소가 다 번졌다.
‘…고마워.’
입 밖으로 말이 나갈 정도로 남은 힘은 없었기에 고맙다는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았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웠다. 정처 없이 떠돌던 인간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기에.
‘다음에는.’
다음에는 반드시, 저 지긋지긋한 붉은 하늘을 보지 않을 것이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는 도시도 보지 않을 것이며,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지 않을 것이다. 이 망할 결말을,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뜯어고칠 거다.
이 소설을 쓴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니, 솔직히 미안하지 않다. 애초에 내가 이 망작에 어울려 줄 만한 인물이 아니라.
‘…다음에는 반드시.’
쿵. 바닥으로 쓰러지는 동시에 짓밟히고 먹혀 들어갔다. 그리고 내 몸이 바닥에 닿은 순간, 몬스터의 다리가 단숨에 형의 배를 파고들어 형의 몸이 덜컥거렸다.
의식이 흐려져 갔다. 아마 몇십 초 안 돼서 되돌아가겠지.
“…….”
되돌아간다면, 이 망작에 어울리지 않고, 반드시.
“다 구할 거다. 망할 자식들아.”
죽는 순간까지 입가에서 미소가 사그라지지 않았다가 이내 뚝, 세상이 암전되며 모든 것들이 되돌아갔다.
다시 처음으로.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