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거울 미로】
“또 흩어졌나…….”
어둡지만 앞이 보이기는 하는 정도의 공간이었다.
여기 주인은 왜 이렇게 흩어 놓는 걸 좋아하는지.
‘우선 이동을―’
후웅! 그때 깃털을 닮은 단검이 내 목을 겨누었다. 옆으로 슬쩍 피하자마자 고개를 돌리니 단검의 주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통성명도 안 하고 검부터 들이미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듬지 않은 단발에 앳된 인상. 많이 쳐줘도 이제 막 스무 살 정도 된 듯한 여자였다.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아.’
류쵸망이었나 류체멩이었나, 왕국 키우기에서 보았던 중국 헌터의 팀원 중 하나였나.
‘다른 헌터들이랑 다르게 되게 초췌해서 인상 깊었지.’
단검을 쥔 여자가 손을 떨며 중얼거렸다.
“탑을 클리어해야… 다음 층으로 가고, 먼저 탑의 주인을 쓰러뜨리려면… 헌터들이 적으면, 가능성이 커…….”
번쩍. 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죽여야 해…….”
“…뭔지 알겠네.”
엄청나게 탑을 클리어하고 싶어 하더니, 류타망이 팀원들을 어지간히도 압박한 모양이군.
나는 나를 제대로 찌를 수 있을지도 의문일 정도로 떨리는 손을 잠시 응시하다가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탑은 클리어한다 해도 누가 클리어했는지 알 수 없어.”
“뭐? 아니야……. 분명 그랬어. 탑을 클리어하면 온갖 명예를 얻는다고…….”
“봐 봐. 이곳은 첫 번째 탑처럼 단계를 거칠수록 인원이 줄어드는 시스템이 아니야. 게다가 층마다 입구가 계속 열려서 사람들이 계속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지.”
“그래도… 클리어만 한다면…….”
“탑이 없어지는 모습 봤어? 그냥 단숨에 사라져. 누가 탑을 클리어했다는 말이 뜨거나 하는 게 아니라고. 그냥 클리어되면 끝이지. 다시 말해서, 설령 너희들이 탑을 클리어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자기가 클리어했다고 주장하면 별수 없다는 거야. 너희가 클리어했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말이지. 하지만 증거는 꾸며 냈다고 의심받을 수 있지.”
“아니야. 분명, 분명 클리어하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알려지면…….”
“그건 첫 번째 탑에 한해서지. 여기선 그런다는 보장이 없어.”
“…….”
툭. 단검을 쥔 여자의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왜……. 가족은…….”
“가족?”
“가족이… 인질로 있단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해야…….”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지.
“나는 자원봉사자가 아니야.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해.”
“…….”
여자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말에 수긍했다.
애초에 내가 도울 방법 같은 건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사는 인간인지라. 중국 사정은 알 바 아니었다.
“한지언 헌터, 너무 매정한 거 아녜요?”
“…윤시아 헌터. 매정하다니요.”
그때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모를 윤시아가 다가와 말을 이었다.
“물론 도울 방법이 없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래도 조금 돌려서 말할 수도 있잖아요.”
“현실을 직시해야죠.”
“참 딱딱하시네.”
“정 그러면 윤시아 헌터가 달래 주세요. 전 그런 재능 없습니다.”
“저도 없거든요!”
“…….”
“저기요! 이름이 뭐예요? 전 윤시아예요!”
“에? 전, 진메이…….”
“메이 헌터구나. 혹시 팀원들이랑은 친해요?”
“친한……. 친, 네. 친해요.”
“거짓말.”
“아니, 아니, 진짜 친한데…….”
“다 보이거든요? 진짜 친하면 그렇게 더듬으면서 말 안 해요.”
“그렇지 않…….”
“지금 혼자 떨어지신 거죠?”
“네…….”
“그럼 저희랑 가요!”
“아니, 그렇게 민폐를 끼칠 수는…….”
“민폐라뇨! 저희 둘 다 A급 언저리라 강한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거든요.”
“…….”
난 그래도 나름 S급인데. 종합 능력치로 따지면 A급 언저리가 맞긴 하지만……. 됐다. 따지고 들어서 뭐 하냐.
“그러니까 같이 가요!”
윤시아가 진메이의 두 손을 잡고 끌었다. 진메이가 당황하면서 윤시아의 걸음에 맞춰 걸었다.
“가요, 한지언 헌터!”
“그러죠.”
윤시아가 진메이의 한쪽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출구를 찾아 나아갔다.
그렇게 걸음의 수가 늘어날수록, 주변이 밝아졌다. 이윽고 검었던 주변이 하얗게 변하며 새로운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신없네요!”
윤시아의 말에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하얀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 그리 넓지 않은 통로. 그러나 왠지 그 통로를 넓어 보이게 만드는 벽에 걸린 거울들.
벽에 걸린 거울들에 우리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벽 위에 온통 거울뿐이라 사방에서 우리의 모습이 드러나 정신이 없었다.
“오, 다른 사람들도 있어요! 이게 얼마 만인지.”
윤시아의 말대로 다른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본래 와야 할 곳에 안전히 온 것이 확실했다.
“미로인 것 같으니 움직이죠.”
내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모습이 비치는 거울을 주시하며 걸었다.
‘거울이 괜히 있는 게 아닐 텐데.’
보통 던전의 거울에서는, 본인과 같은 모습의 몬스터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몬스터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줄곧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마주하며 걸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미로를 탈출하려 움직이던 와중.
화악! 거울에서 검은 손이 뻗어 나왔다. 즉시 그 손을 피하려 몸을 움직였지만, 검은 손은 예측한 듯 그대로 꺾여 내 목을 죄었다.
“윽!”
“한지언 헌터! 몬스터가……. 헉!”
윤시아가 무엇을 봤는지 놀라며 몬스터를 처리했다. 나 역시 몬스터를 처리하려 검은 손목을 붙잡았다.
‘좀 떨어져―’
쿵. 심장이 떨어진 것 같았다.
거울에서 천천히, 하지만 명확한 형태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하진 않지만 내 모습을 검게 본뜬 듯한 형상이었다.
다만, 나는 그것에 놀란 게 아니었다. 거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대부분 거울에 비친 존재의 형상을 본뜨니까. 내가 놀란 건…….
―다 죽이는… 게, 더 편할 거야……. 그딴 진실을 알 바에…….
투쾅! 나는 없는 기력을 단숨에 끌어모아 능력을 쏘았다. 하얀 별과 대비되는 검은 형체가 곧바로 터져 나갔다.
“…짜증 나게 하고 있어.”
슬쩍 고개를 돌려 보았다. 혹여 다른 사람들이 보진 않았을까, 심장이 쿵쿵 계단 내려가듯 내려앉았다.
“메이 헌터, 정신 차려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다행히 진메이의 착란에 아무도 그것을 못 본 듯 보였다. 다행이네.
아니, 다행은 아니지.
“윤시아 헌터, 무슨 일이죠?”
“메이 헌터가 거울에서 나온 걸 보고…….”
“아니야!”
진메이의 뒤로 사람 크기만 한 검은 용이 생겨났다. 터터터텅!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거울들이 단숨에 터져 나갔다.
“우왁!”
윤시아가 진메이의 능력에 뒤로 밀려나며 바닥에 굴렀다. 버티고 서 있는 내 옷에는 픽픽 구멍이 생겨났다.
‘미치겠네, 진짜.’
거울이 다 깨진 건 좋다만, 난 거울처럼 깨지고 싶지 않다고.
‘저걸 어떻게 말리지?’
그냥 기절시켜 버리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귀찮게 진메이를 들고 다녀야 했다.
“진메이 헌터! 진정해요!”
“아니야, 아니야!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검은 용이 미친 듯이 포효했다. 그 파동에 머리가 다 울렸다.
‘기력도 바닥인데, 진짜.’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몬스터인가 싶었는지 보러 왔다가 서둘러 도망쳤다. 봤으면 좀 도와 달라고.
‘별 방도 없나.’
남을 달래는 건 적성이 아니었다.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시키는 게 적성이지.
‘역시 기절을 시켜야―’
턱. 거센 파동에 윤시아가 겨우 진메이에게 다가갔다. 살갗에 계속해서 상처가 생김에도 악착같이 움직여, 진메이에게 닿았다.
윤시아가 진메이의 젖은 눈가를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눈 감고, 다른 생각 해요.”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알아요, 안 죽은 거. 그러니까, 행복한 생각만 해요. 지금 상황이 거짓이라 생각하고.”
“안 죽었어…….”
“네, 맞아요. 메이 헌터가 알고 있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불안한 생각은 이제 하지 말아요. 불안한 생각만 하면 너무 아프잖아요. 우리 잠깐 현실을 망각해요.”
“…으…….”
강하게 불어오던 바람도, 진동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해진 주변에 진메이의 훌쩍이는 울음소리만 작게 들려왔다. 진메이의 뒤에 있던 검은 용이 하얗게 변했다.
윤시아가 물었다.
“이제 괜찮아졌죠?”
“…죄송…해요.”
“뭘요.”
진메이의 눈가를 소매로 닦아 준 윤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그녀는 진메이를 일으킨 뒤 시선을 나에게 옮겨 가자는 듯 고개를 움직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뒤로 돌아 길을 걸었다. 발을 옮기자 유리가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슬쩍 돌려 보니 진메이가 한쪽 팔을 윤시아에게 걸쳐 둔 채 잠이 들어 있었다. 딱히 무언갈 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아마 진메이 홀로 잠이 든 것이 맞을 거다.
‘기절시키는 거랑 다를 게 뭐야.’
윤시아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나를 마주 보며 웃었다.
“윤시아 헌터 스물두 살이었죠?”
“네? 아, 네. 그렇죠?”
“근데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잘 달랠 수 있는 겁니까? 그냥 적성의 문제인가.”
“적성…은 아니고, 경험 덕분이죠.”
“경험이요?”
“음……. 예전에 바다 근처에서 살 때, 배에 타고 있는데 파도가 엄청나게 친 적이 있었어요. 같이 배에 탄 사람 중에 동생 같은 애가 파도를 엄청 무서워해서 메이 헌터처럼 달래 줬었죠. 그때의 기억을 그대로 이용한 거뿐이에요.”
“예전에 바닷가에서 살았나요?”
“네. 그래서 바다를 무척 좋아해요. 바다가 집이나 다름없었죠.”
얼마나 좋아하는 건지, 윤시아가 바다와 대비되는 따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문양을 개방했을 때 해적의 모습으로 변하시는 걸까요?”
내 말에 윤시아가 투덜거리며 답했다.
“그런 건 아닐 거예요. 해적은 바다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약탈을 좋아하는 거잖아요. 전 약탈엔 흥미 없어요.”
“해적이라고 무조건 약탈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해적 자체가 바다 위의 무법자인데요?”
“뭐… 예전의 해적과 요즘의 해적 인식은 다르잖아요.”
“그건 변명에 불과해요. 애초에 그건 인식이 다른 게 아니라 미화죠.”
“뭐, 그건 그렇지만… 아 그래. 해적 중에도 사략선이라고, 허가를 받고 해적질을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한지언 헌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윤시아 헌터는 나쁜 해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그럼 애초에 해적의 모습이 안 되는 게 맞았어요. 전 이 모습 마음에 안 들어요. 애초에 해적은 약탈을 하는 사람들인데 안 나쁜 해적이 어디 있어요. 약탈을 하는 건 같은데.”
“…그렇죠.”
“하여튼… 뭐 그래도 한지언 헌터 말대로 해적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져서 그나마 다행인 거예요. 옛날에 이 모습이었어 봐요. 바로 돌팔매질당했을걸요?”
“도대체 얼마나 옛날을 말하는 겁니까.”
“어… 몇백? 아니, 몇천 년 전인가? 몰라요! 아무튼, 옛날!”
“으…….”
우리의 대화 소리에 깼는지 진메이가 눈을 떴다.
“엇? 일어났어요? 딱 맞게 일어났네!”
화들짝 놀란 진메이가 땅에 닿지 않는 발을 휘둘렀다. 진메이의 체구가 작긴 하다만, 윤시아의 어깨에 팔을 걸친 걸로 발이 땅에 안 닿을 줄이야. 지금 알았네.
진메이가 윤시아에게서 내려오며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민폐를 끼쳐서 죄송―”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돕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나는 앞에 있는 문을 바라봤다. 이게 다음 층으로 가는 문이겠지.
‘진메이 덕에 오는 길은 확실히 편했지.’
진메이의 곁에 있던 하얀 용이 바로바로 거울을 부숴 주었다. 마치 은혜를 갚는 것처럼. 덕분에 우리는 달리 힘을 쓰지 않고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번엔 윤시아의 행동이 옳았던 것 같네.’
훙. 문에 손을 얹자, 단숨에 다음 층으로 이동됐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