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도망치라고?”
꿈의 주인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났다. 옅게 남은 웃음을 가라앉히며 나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뱅글 팔찌를 손목에 끼워 넣었다. 형이 기력을 건네며 함께 주었던 아이템.
“누가 누굴 보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네.”
낫을 손에 쥐고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가자 사방에서 뜯어진 철골들이 나를 겨누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에 떠 있는 꿈의 주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이 승부의 결말은 정해져 있어.”
―그건 모르지. 이곳은 네가 아는 과거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 과거와 같은 조건이지.”
―아니, 과거에는 내가 실체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이곳에선 아니야. 이것들 전부 실체지.
“그래?”
과거와 같은 조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통. 발아래가 하얗게 빛났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바닥에 별 모양의 흔적이 남았다. 바닥에 남겨진 별들이 하얀 선으로 이어지며, 곧이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퍼져 나간 별들이 무너지지 않는 건물에 닿자.
퍼버버벙! 회색빛 도시가 무너져 내렸다. 건물 잔해들이 바닥에 깔리고, 찬란했던 하늘 아래로 파편이 흩날렸다.
“그럼 더 해 봐. 얼마든지 받아 줄 테니.”
―상태가 좋아 보이네.
“최상이지.”
―그럼 더 받아.
쿠궁! 파편이 떠다니는 하늘 너머에서 거대한 건물 하나가 추락해 나를 덮쳤다. 나를 먹어 치운 건물 안쪽이 곧이어 속절없이 터져 나갔다. 건물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온갖 종류의 자동차가 날아와 내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모두 큰 타격이 되지는 못했다.
수차례 날아드는 파편을 지나 꿈의 주인에게 가까워진 찰나, 꿈의 주인이 물었다.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
“뭔데.”
―너는 어째서, 그리 약한 몸을 지녔음에도 강할 수가 있는 거지?
“네가 하나 착각하는 게 있는데.”
쿠르릉. 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꿈의 주인을 감싸 보호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낫을 비틀고 거세게 휘둘렀다. 카가강! 금색 손가락들이 무참히 썰려 나갔다.
“약한 건 몸이지, 능력이 아니잖아.”
괜히 등급이 S급으로 나온 게 아니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리고, 기술이라는 것도 있고. 내가 그간 허투루 살았을 거 같아?”
물론 그래 봤자 재능 없는 인간이라 직접 세상을 구해 내지는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등을 밀어 주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었기에. 나 혼자 해야 했기에. 내 등을 스스로 민다.
‘이것도, 착용할 생각 없었는데.’
손목에 끼워져 있는 팔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굳이 내가 착용해 봤자 큰 이득이 없었던 아이템. 그렇기에 항상 더 강한 사람에게 끼워 주었던 아이템. 이번 회차에서 처음으로, 내가 끼고 있었다.
‘그만큼 바뀌었다는 거겠지.’
퍼버벙! 주변이 폭발로 뒤덮였다. 회색빛 도시는 무너진 지 오래고, 허공에는 건물의 잔해들이 떠다녔다. 그 모습이 꼭 우주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다.
다만 그것뿐.
“겁에 질린 생쥐 꼴이네. 그렇게 계속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고?”
―너도 잘 알잖아. 닿으면 네가 바로 나를 죽일 텐데.
“그러니까 그냥 자결하라고 했잖아.”
―자결을 하기에는, 네 능력을 더 보고 싶거든. 별들이 반짝반짝한 거 말이야.
“그럼 많이 봐.”
퐁, 포보봉. 하늘 위로 하얀 별들이 생겨나며, 그대로 꿈의 주인을 향해 쏘아졌다. 그러나 꿈의 주인은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을 보였다.
―남겨진 네 과거의 꿈 조각들을 보며 생각했어.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런 길을 반복하는 것일까 하고. 그런데 너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말만 반복하니, 끝내 이유를 알 수 없겠구나.
“세계의 평화 때문에 이러는 거 맞는데 왜 네가 맞느니 틀리느니 하고 있어.”
―말에 그 어떤 진심하나 담기지 않았는데,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한 거야?
“내가 그렇다는데, 뭐.”
―글쎄. 네가 생각해도 단순히 대답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답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글쎄. 적어도 내가 그걸 원하는 건 맞아서.”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서뜨리고, 베고, 녹였다. 꿈의 주인은 실체라고 했지만,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단순한 실체일 뿐. 별다른 능력이 없는 것들이었기에 나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결국, 넌, 이번에도 날 이기지 못하는 모양인가 보네.”
―…….
꿈의 주인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꿈의 군주라는 이름, 되게 거창하지 않아?”
―거창하다니?
“결국, 꿈은 개개인이 가지는 거잖아. 그게 모여서 네가 만들어지고, 군주가 되었다는 게 이상해서.”
―그게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지? 그 꿈들이 모여, 내가 만들어졌다는 게, 어디가 이상해? 지금도 꿈은 모이고 있어. 모이고, 모이고, 모여, 내가 되고 있지.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꿈은 개개인의 것인데, 그게 왜 합쳐지냐는 거지. 사람은 모두 별개의 생명이지, 하나의 합쳐진 존재가 아니잖아. 그래서 난 그렇게 생각해. 어쩌면 넌, 단순히 역할이 필요했던 어떤 생명이 아닐까 하고.”
―…이젠 내 존재를 부정하려 하는구나.
“부정이라니. 애초에 누구의 말이 맞느냐는 승부에서도 내가 이겼잖아. 이번에도 내 말이 맞을지 어떻게 알아.”
―아니, 이번에는 내 말이 맞는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꿈이었으니까.
“뭐, 그래. 그렇다고 치자.”
―꽤 쉽게 인정하네.
그 말에 나는 꿈의 주인을 보며 웃었다. 내 웃음에 꿈의 주인이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팔을 하늘 위로 뻗었다. 곧이어 찬란했던 하늘이 암흑에 먹혀들고, 그 암흑 위에 수를 놓듯, 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별들이 쏟아지기 직전, 나는 꿈의 주인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이 승부의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퉁. 운석이 떨어지듯, 무수한 별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떨어졌다. 피할 곳 하나 존재하지 않는 멸망 직전의 모습처럼.
툭, 투둑. 공격의 여파가 가시고, 건물의 잔해들이 주변 바닥을 뒹굴었다. 허공에도 잔해가 가루가 되어 떠다녔다.
망가진 공간 사이, 나는 유일하게 하얀 것을 향해 다가갔다.
“지던 걸 눈으로만 보았다가 실제로 겪으니 어때?”
―…글쎄. 결국, 이것도 내 운명 중 하나였겠지.
“하나가 아니라, 네 운명은 이것뿐이야. 내가 있는 이상은 말이지.”
―…그래. 굳이 반박하지는 않을게. 나는 졌고, 이긴 건 너니. 그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순순히 인정하네.”
―졌다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
“뭐, 그렇지.”
나는 낫을 치켜들었다.
“마지막 할 말은?”
―…….
꿈의 주인이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 행동에 대답하듯, 나는 낫을 가볍게 휘둘렀다.
꿈의 주인의 목이 베이며, 몸의 형체가 아스러졌다. 곧이어 꿈의 주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걸로 하나 남았네.”
꿈의 주인을 죽였다는 것에 큰 감흥은 없었다. 애초에 예정된 결말이었으니까. 꿈의 주인도 그렇게 생각했고.
‘이다음은……. 잠만.’
나는 풀었던 긴장을 다시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같은 장소.
“…왜, 탑이 안 무너지지?”
천천히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지금쯤은 부서져야 정상일 텐데.
“…….”
건물의 잔해도 사라진 공간. 나는 그곳의 하늘을 조용히 응시했다.
‘무언가 잘못됐나.’
아니, 그렇다기에는 확실한 전투를 치렀고, 이겼다. 그리고 탑의 주인을 죽였다.
‘뭐가 더 있나?’
고개를 내려 주위를 둘러보자, 아까부터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 내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
그냥 배경이라고 하기엔 형태가 뚜렷하고 홀로 우뚝 서 있는 것.
“하얀 나무…….”
나는 거대한 하얀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위로 뻗은 가지가 어찌나 거대하고 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분명, 유토피아에서도 하얀 나뭇가지가 근원이었지.’
그리고 이곳에는 하얀 나무가 있다.
‘…우연일 리가.’
그럼 지금까지의 싸움은 뭐였던 거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하얀 나무를 보고 말했다.
“이게 네 본체인가 보지.”
―…….
지금껏 하얀 구가 사람의 형태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이전 회차에서 넘어온 드리니스는 그럼 지금껏 이것 일부였던 건가?
“지금까지 내 앞에 나타났던 건 네 일부였나?”
―…글쎄. 마음대로 생각해.
“침묵하는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래, 본체를 말 안 한 이유는? 너도 결국 죽기 싫었나?”
―아니. 너라면 찾을 거라 생각했어. 애초에 숨기지도 않았는걸. 가벼운 농이라 생각해.
“…그러냐.”
―애초에 이 모습으론 싸우지도 못하니까. 처음부터 이 모습으로 등장하면 너무 멋없게 끝나잖아?
“이 와중에 멋을 챙길 줄은 몰랐는데.”
―나름의 자존심이라고 해 두지.
“그래. 결론은 이걸 베어 버리면, 넌 정말 끝이라는 거지?”
―그래.
“진짜 마지막 할 말은?”
―…내가 죽는다고 꿈이 끝나는 게 아니야.
“응? 뭔 당연한 소리야. 꿈은 개개인의 거니까 끝날 리가 없지.”
―그 뜻이 아니야.
옅은 바람이 불었다. 꿈의 주인의 말이 오르골 소리처럼 울렸다.
―새로운 아이가, 또다시 내 자리를 이어받겠지.
“…그것참, 무서운 이야기네.”
―꿈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나는 영원해.
“할 말은 끝났지?”
이제 지체할 수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바깥엔 일행들이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체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을 터. 대화를 이어 가는 게 딱히 나쁘지 않아 이야기를 계속해 왔지만,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도 여기까지.
“이번에도, 잘 가라.”
나는 나무에 손을 얹었다. 하얀 나무에 별이 튀어 오르기 시작하고, 이내 속절없이 무너졌다.
―다음 아이는…….
“다음 아이도 잘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
퉁! 나무가 무너져 내리며 그 파동이 나에게까지 치달았다. 옷자락이 펄럭이고 하얀 나무의 빛이 주변을 장악하던 순간.
화악! 빛이 갈라지며, 푸른 하늘이 보였다.
“…아.”
푸른 하늘. 바로 아래, 장난감처럼 작게 보이는 도시들. 간단히 말해서, 상공이었다.
‘…땅으로 좀 옮겨 주지.’
아래를 바라보자, 생전 처음 보는 도시였다. 하나 다행인 점은 떨어지는 곳이 넓은 공터인 것.
“왜! 뭔데 갑자기 하늘이야!”
누군가의 외침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더 높은 하늘,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엇! 한지언 헌터!”
윤시아가 날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마 클리어 때문이겠지.
그 뒤로 모르는 헌터들이 줄줄이 떨어졌다.
‘이걸 어쩐다.’
비행 아이템도 없는데, 과연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 높이에서는 아무리 S급 헌터라 해도 부상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인원도 많아서, 전부 땅으로 떨어지면 아마 저 공터와 그 주변도 무사하진 못할 것 같았다. 몇몇 헌터들은 비행을 할 수 있거나 아이템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우리를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적어도 충격을 최소화할 무언가가 필요한데…….
‘희민이의 능력이 가장 낫겠지.’
거대한 나무를 솟아나게 해서 그 가지에 떨어지면 아마 큰 충격은 면할 테다.
생각을 끝낸 나는 저 멀리 있는 희민이를 바라봤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전달하느냐인데.
‘역시 말이 빠르겠지.’
과연 내 말이 닿을까 싶지만.
‘…해 봐야지.’
지금으로서는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나는 희민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 지팡이를 붙잡고 눈을 질끈 감은 모습을 보아 과연 될까 싶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기에 일단은 시도라도 해야 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희민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강희―!”
그러나 내가 희민이의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그림자의 주인이 높은 하늘에서부터 점점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을 붙잡았다. 이윽고 내가 있는 아래까지 다가온 그것을 나는 고민 없이 붙잡았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흰 용.’
익숙한 하얀 용. 크기만 달랐지, 모습은 똑같았으니.
나는 용의 등에 올라, 용의 머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헝클어진 머리. 그러나 처음 봤을 때보다 밝은 안색을 보이는 진메이가 누구보다 가장 앞에서 하늘을 가로질렀다.